[유레카] 찰나동안 빛날 그들의 여정 (후편)
[유레카] 찰나동안 빛날 그들의 여정 (후편)
  • 배명현
  • 승인 2019.09.17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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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신지, 희망이 드리운 새로운 세계를 찍다
사진 ⓒ서울아트 시네마
사진 ⓒ서울아트 시네마

 

러닝타임의 후반을 지나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은 나오키였다. 정확한 살인 동기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의 맥락과 그의 대사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사건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사회로부터 죽임을 당한 그는 의문이 생겼을 것이다. 타인은 너무나 쉽게 나를 죽였는데 왜 나는 안되는 것인가. 나는 이 순간 영화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능성. 세상에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가. 영화는 대답한다. ‘그래야 한다.’

마코토는 나오키와 함께 경찰서로 향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오키에게 요청한다. “살아있으라곤 하진 않을게, 죽지는 마.” 나오키는 아마 종신형 혹은 사형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운이 좋다 하더라도 십수 년을 감옥에서 살 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오키는 다시 한번 그에게 이야기한다. “기다릴게. 널 데리러 갈게.” 이 믿음은 아마 아오야마 신지가 세상에 요청하는 메시지 였을 것이다. 어른을 한 번만 믿어달라고. 지금을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온 세상이 너를 버렸지만 버리지 않을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아직 세상은 믿을만 하다고.

세상에 무한한 신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일본의 상황을 안다면 아마 불가능할 절대적 긍정. 아오야마 신지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무차별 독가스 테러가 일어나고 대지진과 자살이 끊임없이 뉴스를 통해 비추던, 그 시기에 이러한 희망을 이야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이 감독이 비참한 세상을 사는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믿음과 신뢰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영화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결말 부에 대사가 아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롱테이크 부감 쇼트로 찍은 엔딩은 크레딧의 중간이 넘어갈 때까지 이어진다. 아마 영화 역사상 가장 멋진 결말 장면 중 하나로 뽑힐 이 장면은 감독이 말 그대로 ‘유레카’ 였다. 감독 존 포드의 <수색자> 엔딩을 트리뷰트 한 장면에서 시작해, 환상의 시간으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은 아오야마 신지가 영화를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남은 여운을 모두 감각할 세도 없이 <유레카>의 첫 신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밀려오는 쓰나미와 그 앞에 서 있는 코즈에. 그녀는 말한다. “난 알아. 머지 않아 우리를 휩쓸어 버릴 거란 걸.” 신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 모든 게 무너져 버린 시점, 그 이후를 새롭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부서지고 비참하지만 영화라는 비현실의 역사는 희망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비현실은 현실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현실을 바꾸려는 한 감독의 희망이 엿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만 하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이 영화 또한 그런 영화이다. 분명히 티브이나 컴퓨터로 보았다면 이 정도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나는 이 글의 독자들이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유레카>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 

[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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