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h SIWFF] '여름 생존자' 찰나의 동행, 넘실거리는 우울함
[21th SIWFF] '여름 생존자' 찰나의 동행, 넘실거리는 우울함
  • 오세준
  • 승인 2019.09.05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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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름 생존자'(Summer Suviors, 2018, Lithuania)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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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름 생존자'는 리투아니아 여성 감독 '마리아 카브타라드제'(Marija KAVTARADZE)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해 제43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섹션 진출작이며, 올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제장편경쟁 부분에 초청됐다.

'여름 생존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인드레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정신병원을 찾았다가, 양극성 기분 장애를 앓는 파울리우스와 자살 시도를 한 주스테를 팔랑가의 다른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다. 원치 않았던 시작이었지만 세 주인공이 자동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며 점차 가까워지는 모습은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리 북'이나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떠오르게 한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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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장소로 떠난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함께' 이동한다는 점에서 친해질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 감독은 정신질환을 가진 불안정한 파울리우스와 주스테 그리고 그들이 걱정스럽기만 한 안드레를 자동차에 집어넣어 이동하게 만드는, 즉 이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도록 한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따뜻하고 밝게 느껴진다.

하지만 웃음과 재치가 영화 곳곳에 머무는 동시에 기저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심어둔다. 이것은 '정신질환'을 가진 파울리우스와 주스테와 같이 한 인간이 가진 우울함이나 불안 등의 정신적인 아픔은 쉽게 이해할 수도, 해소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감독 나름의 태도와 이 영화가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톤으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지속해서 파울리우스나 주스테를 원샷으로 잡는데 마치 살짝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익숙하지 않은 앵글과 구도로 화면을 채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무심코 창밖을 보는 파울리우스와 주스테, 어쩌면 그들의 마음 안에는 '자동차의 움직임'처럼정신적인 고통과 혼란스러움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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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정신질환을 가진 인물들을 쉽게 다루지 않는다. 이는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홀로 살기를 결심한 파울리우스의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여름 생존자'는 제목 그대로 '생존'에 대한 물음을 가진다. 분명 영화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순간을 더 많이 보여주지만, 개인이 가진 정신적인 문제는 결국 개인이 이겨내야 할 싸움임을 말한다. 

영화 처음 안드레가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다시 반복할 가능성을 정량화'하기 위한 연구에 도움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온 것을 비추어 볼 때, 개개인에게 교감과 이해가 아닌 수치를 이용한 도구적인 방법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직 미숙한 인물이다. 또 이는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이 짜놓은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파울리우스와 주스테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다'라는 나름의 추측이나 소망이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임을 마지막 파울리우스의 죽음을 통해서 깨닫는다.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 채 생각한다.

-지그문드 프로이트-

인간의 내면을 움직이는 이미지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꽤 잘 풀어낸 '여름 생존자'는 감독의 예리한 관찰이 돋보이며, 심각하게 우울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밝지 않은, 균형감 있는 작품이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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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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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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