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h SIWFF] '내 발 아래' 끊임없이 달리는 여자
[21th SIWFF] '내 발 아래' 끊임없이 달리는 여자
  • 오세준
  • 승인 2019.09.05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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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발 아래'(The Ground Beneath My Feet, 2019, Austria)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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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 아래'는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감독 '마리 크로이처'(Marie KREUTZER)의 네 번째 장편 영화다. 올해 제69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분'(Golden Berlin Bear) 진출작이며, 제21회 서울여성국제영화제 새로운 물결(New Currents) 섹션을 통해 소개됐다.

'내 발 아래'는 고도 자본주의 경쟁 사회, 더 나아가 결핍으로부터 오는 불안정함과 예측할 수 없는 삶에 갇힌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48시간' 근무가 어렵지 않은 주인공 '롤라'는 금발머리, 단정한 복장, 버버리 머플러, 검은 하이힐 등 커리어 우먼이라 불릴 만한 반듯한 복장을 유지하며, 오로지 사무실과 호텔을 반복적으로 이동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운동을 하는 모습은 살기 위해 버텨내야 하는 강한 인상을 준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 마우스피스를 물고 슬픔을 참는 모습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하지만 롤라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수성가 캐릭터와 거리가 멀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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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잠을 자던 롤라가 눈을 부릅뜨며 화들짝 깨어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담는다. 심지어 이 장면은 영화에서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그녀가 항상 긴장하는 인물임을 느낄 수 있다. 또 영화 초반 마치 스릴러처럼 정신병원에 있는 언니의 집착적인 연락(실제 병원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통해 정신적인 문제, 즉 심각한 편집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니의 반복적인 연락으로 그녀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병원과 직장을 반복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다루는 주된 갈등은 '롤라가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방해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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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족 관계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관계도 그녀를 괴롭히긴 마찬가지다. 롤라는 동성애인이자 상사인 엘리스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만큼 괜찮은 연인이다.(벌거벗는 것은 약점이 노출되는 행위로 다가온다) 그러나 언니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과거를 알고 나서부터 업무에 차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공들여 온 프로젝트를 라이벌인 남자 동료에게 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남성은 프로젝트를 맡을 자질의 차이를 성기의 유무로 모욕감을 줄뿐만 아니라 업무 협약을 빌미로 한 남성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농담을 던진다. '내 발 아래'는 말 그대로 롤라 발 아래에 있는, 그늘진 사회의 더러운 모습을 끌어올린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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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발 아래'는 누군가 위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올라가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갈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특히, 그녀의 주업무가 다른 회사의 구조조정을 돕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일을 위해서 누군가를 반드시 해고해야 하는 함을 가진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구조조정에 따른 자신의 해고가 불가피할 수 없느냐는 말에 롤라는 공감은커녕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마땅함을 주장한다. 또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한 여성을 무시하거나 끝내 돈을 던져주는 모습을 통해서 그녀의 모순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결말에 이르러 유일한 '가족'인 코니는 혼자 살 수 없음을 호소하며, 롤라에게 퇴원 후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지만, 끝내 거부한 채 엘리스와 함께 시드니로 떠나기를 결심한다. 롤라의 외면, 이는 결국 코니의 자살로 돌아온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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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의 발 아래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러닝머신'이 존재한다.

 

롤라는 엘리스에게 아스피린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가방에서 여러 약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며, 여러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똑같이 불안정한 삶을 사는 여성들이 연대하거나 같이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약을 먹어야 하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인물들을 잔뜩 배치해 롤라나 엘리네처럼 가족을 등지거나 동료나 애인을 배신하는, 신뢰를 하지 않는 모습을 더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 죽은 코니의 묘 앞에 서있던 롤라가 계단을 오르며 떠나는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아니 갈 수밖에 없는 현시대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와 냉혹하고 우울하게 느껴진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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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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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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