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넘어가는 지금,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늦은 일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감독이 있다고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올해 이 글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기생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기생충을 찍으며 그의 영화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명작 하나가 나왔다는 확신을 했다. 영화를 보기도 전, 심지어 감독의 한마디로 어떤 믿음을 가지게 만드는 건 ‘봉준호’라는 감독이 그가 ‘김기영’이라는 이름을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에 많은 이름이 거론되지만 가장 독창적인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엔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해본다. 시대를 뛰어넘는 주제 의식과 영상미, 과감한 편집과 박력, 그로테스크와 컬트 그리고 섹스, 이 모든 것을 과감하게 섞어 놓았다. 그의 대표작인 <하녀>는 60년대 한국의 전, 근대 부조화 속에 놓인 인물과 부조리를 다루었다. 이때 특이한 점은 여성을 전면에 앞세워 영화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현재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60년대 영화의 주인공은 남성이라는 공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김기영은 이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는 여성이 작품을 이끌어가도록 설정함으로써 당대 에 반 하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여성과 기존 가부장제의 몰락. 그는 영화의 끝에 반전의 요소를 집어넣어 영화적 재미를 성취한 것은 물론,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끌어낼 수 있을지 능동적으로 생각한 감독이었다.
이러한 과감함은 <하녀> 이후로 계속 이어진다. 불후의 명작이자 한국에 다시는 없을 괴작<이어도>와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하녀의 연장선이자 더욱 완고해진 스타일을 볼 수 있다. 그는 계속해서 ‘욕망’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끌고 가면서 인간 내면의 가려진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점만으로 한국 연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란 힘들 것이다. 독특한 스타일, 과감한 카메라 기법과 미장센을 넘어서는 특징이 있다. 그는 당대 문화(가부장, 전체주의)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그 무엇을 담아내고 있다.
김기영은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며 해외의 영화 혹은 문학작품을 베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명확한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러한 세계에는 전적으로 한국의 정서가 묻어있다. <이어도>의 설화와 여인의 한, <하녀>에서 경제개발 시기의 미싱공과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단지 전통을 베껴오는 것을 넘어 문화, 역사 전반에 걸친 한국인의 인식을 영화 속에 투영함으로써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
박찬욱과 봉준호를 필두로 영화계에는 여전히 김기영이 살아있다. 그리고 김기영과 봉준호는 시대를 뛰어넘은 소통으로 한국 영화 100주년에 기생충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의 초석에는 분명 김기영이라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영화는 한국의 고전으로 남았다. 하지만 일반 관객에게 김기영이라는 이름은 친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현재 한국의 관객이 김기영의 영화를 다시 찾았으면 한다. 그의 영화는 단언컨대 관객에게 새로운 스펙터클을 느끼게 할 것이다.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감독들의 대화를 체험했다. 이제 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독과 관객의 대화가 만들어낼 결과가 궁금하다. 그와 현재의 관객이 만들어낸 화음에선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