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th BIFAN] '아니아라' 실패한 인류애(愛), 우주의 방주 그 안에서
[23th BIFAN] '아니아라' 실패한 인류애(愛), 우주의 방주 그 안에서
  • 오세준
  • 승인 2019.07.09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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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니아라’(Aniara, 2018, Sweden, Denmark)
포스터 ⓒ IMDb
포스터 ⓒ IMDb

 

영화 '아니아라'(Aniara)는 펠라 카게르만(Pella KAGERMAN)과 휴고 릴자(Hugo LILJA) 감독의 작품으로 2018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상영됐으며, 올해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초청됐다.

더는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지구. 거대한 수송선 '아니아라'(Aniara)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태워 3주 동안 목적지인 화성으로 향한다. 거대한 우주선은 레스토랑, 수영장, 클럽, 바 등 완벽한 시설을 갖췄다. 그러나 우주선이 파편에 부딪히면서 경로를 이탈해 버렸고, 심지어 가장 중요한 연료 탱크가 부서지면서 다시는 움직일 수 없는 절망에 놓인다. 주인공 MR(Emelie Jonsson)은 인간의 기억을 사용해 황폐해지기 전 아름다웠던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AI 프로그램인 '미마'(Mima)의 관리자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우주선에서 사람들은 미마를 이용해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남용으로 기억 속에 자리한 '공포'까지 느껴버린 미마는 감당하지 못한 채 부서지고 만다. 그리고 3년, 10년 점점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주선 안에 사람들은 점점 피폐해져만 가고, 우울함에 빠져 자살을 하는 등 거대하고 공허한 우주 안에 갇힌 채 삶을 영위한다.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니아라'(Aniara)는 스웨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하리 마르틴손(Harry Martinson)이 1956년에 쓴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거대한 우주 공간 속에서 '실존의 두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6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렬하고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원작이 가진 선견지명 혹은 존재감에 대해 감탄을 하고 만다. 물론, 소설을 놀라운 수준으로 영상화한 감독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는 '지도없는 항해', '신음', '종교' 등 챕터로 나눠어 이야기가 진행하며, 재앙적인 사건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제목을 통해 알려준다.

결국, 상황마다 겪는 갈등은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지구와 살기 위해 반드시 가야 했던 화성 사이에 길을 잃은 인간들이 그 순간마다 어떤 태도로 버텨내는지 보여준다. 또 영화는 끊임없이 희망을 찾는 사람들과 반대로 우주선이 생을 이어갈 마지막 공간임을 인정한 사람들 그리고 우울과 광기에 사라잡힌 사람들까지 고립된 환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여러 단상을 그려내 혼란스러움과 복잡함, 참담함 등 관객으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만든다.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마'는 AI이지만 마치 감정을 가진 생명처럼 다뤄진다. 천장에 스크린으로 머리의 뒤에 자리한 후두엽(시각입력을 받은 시상핵의 축색들이 종지하는 곳)에 특정한 빛을 비추어 기억을 재생하는 원리다. 꽤 인상적인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바닥에 엎드린 채 누워있는 모습은 광합성을 하는 식물 혹은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시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단순하게 인간이 가진 기억을 복원해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 기억을 미마 역시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항해가 지속할수록 인간들이 가지는 불안함이 커지면서 과거 지구가 파괴되는 기억까지 미마가 확인하게 되는데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받아들여진 미마가 파괴되는 순간은 영화 초반에 급하게 지구를 떠나는 장면만 확인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즉, 미마의 죽음 곧 지구의 죽음으로, '지구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죽어갔는지', 미마가 대신해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고 한탄을 하며 그들의 어리석음에 분노를 가진 채 한줌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사진 ⓒ IMDb
사진 ⓒ IMDb

이 영화는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과 같은 SF영화임이 분명하나 오히려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아닌 컵 안에 담긴 물속에 발생하는 셀 수 없는 거품 방울과도 같은 방대한 우주 안에 갇힌 한 우주선 속 인간들의 삶을 포착한, 이를테면 '패신저스'(2016)나 '이퀄스'(2016) 같은 영화들처럼 SF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세계와 더 가까워 보이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를 보호하고 지켜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경고가 담겼다는 점이다. '아니아라'는 기술(미마)에 의존하는 삶, 비극적인 공간 속 허무주의의 공포, 파괴되는 질서 속에서 자리 잡은 숭배와 종교 의식까지 다양한 서브플롯을 통해 매혹적인 이야기를 끌어낸 작품이다.

 

포스터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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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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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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