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드가 니토'(Edgar NITO)
영화 <기름도둑>은 2019 트라이베카영화제 극영화 부분에서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에드가 니토'(Edgar NITO) 감독 작품으로, 올해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다.
중부 멕시코의 황량한 들판에는 밤마다 지하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훔치는 기름도둑들이 기승이다. 가난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순진한 고등학생 랄로는 짝사랑 아니에게 용기를 내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 말하지만 한낱 웃음거리만 된다. 아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롤로 일당과 어울리지만 쉽게 롤로에게 마음을 주지도 않는다. 알바를 하는 석유 가게 노인에게 빚을 지고 있고, 아나에게 스마트폰을 선물해 환심도 사고 싶은 랄로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롤로가 속한 기름도둑 일당에 가담해 함께 일을 시작한다. 이후 아나에게 스마트 폰을 선물한 뒤의 하룻밤 데이트는 랄로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름을 훔치는 도중 룰루와 다툼는 과정에서 한순간의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이후 조직으로부터 도망치던 와중 어머니까지 잃은 룰루는 석유가게 노인의 도움으로 몰래 숨어 지내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에 따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이 어린 소년은 결국 죽음을 맡이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명과 암이 대비하는 강렬한 시퀀스들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뉴스나 시위를 하는 장면을 통해 이들이 사는 '멕시코'라는 국가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 삶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130여명의 멕시코 주민의 목숨을 앗아간 '송유관 폭발사고'가 영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예로 말할 수 있다. 스크린을 통해 비춰진, 카메라에 담긴 인물들의 표정은 비참한 현실로부터 피해 잠시 숨을 돌릴 때야 비로소 미소를 보인다. 마치 불안이 기저에 깔린 그들의 삶이 '생존을 위한 삶'임을 느낄 수 있다.
감히 고작 '기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 '랄로'와 함께 기름을 훔치는 인물들은 이 멕시코라는 나라에서 기름을 훔치는 행위가 이들에게 결코 불법이 아닌 생존의 수단으로써 정당한 행위임을 공공연하게 말을 하며 또 서로에게 이해시킨다. 그것이 자동차 라이트를 켜 기름을 훔치는 모습을 통해 그들에게 이것이 곧 노동이 되고 불법이 아님을, 어찌 보면 이들은 서로 기름을 훔치면서 '죄의식'을 공유하는, 신뢰와 믿음을 다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함께 사는 공유는 없다. 이미 기름으로 장난치는 국가부터 이 세계는 오로지 살기 위한 투쟁이며, 결국 돈이 없으면 가난에 처한 삶, 카프카의 뜻에 따라 모두가 억압된 존재들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활활 타오르는 기름에 더 목숨을 거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또한, 영화는 그 어떤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묘한 '단절감'을 준다. 주인공을 둘러싼 엄마, 아나, 룰루, 석유가게 노인까지. 마치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말처럼 그들은 같은 국가, 같은 동네에 사는 힘든 처지의 인물들이지만, '돈' 즉, 그들의 부유함이나 가진 것에 대한 차이는 그들의 관계를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지게 하는 얕은 관계이다. 이를테면 이는 엄마가 자신 동생의 수술비를 위해 랄로가 모은 돈을 몰래 가져가는 장면 이후에 똑같이 랄로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기름을 훔치는 장면의 배치는 서로가 어쩔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다.
관객 입장에서 랄로의 행위가 불법 행위로써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라고 받아들이는 이상으로 알 수 없는, 마치 그를 동정하는 감정이 들게 하는 것은 영화 내내 계속해서 보여주는 멕시코라는 국가의 폐해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삶인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소년인 주인공 랄로뿐만 아니라 동료 룰루나 기름을 훔치다가 죽은 여러 인물들을 단순히 죗값을 치르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보단 이같이 돈을 벌기 위해 너무 쉽게 범죄에 노출된 멕시코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느껴져 꽤 씁쓸하다.
[코아르 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