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내 작품에는 한국영화의 피가 흐른다"
[Interview] "내 작품에는 한국영화의 피가 흐른다"
  • 홍상현
  • 승인 2024.09.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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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타츠미> 쇼지 히로시 감독 인터뷰
「타츠미」는 「켄과 카즈」로 아시아 하드보일드영화의 미래를 보여주었던 쇼지 히로시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대망의 신작’이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타츠미」는 「켄과 카즈」로 아시아 하드보일드영화의 미래를 보여주었던 쇼지 히로시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대망의 신작'이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필자가 '오이처럼 차가운(cool as a cucumber)' 같은 표현을 쉽게 떠올리고 공감할 수 있는 데는 성장기의 적지 않은 시기를 영어권국가에서 보냈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또한 이 이상으로 공감하는 표현이 우리가 현대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완숙란(a hard-boiled egg)'에서 기원한 '하드보일드'이다. 일반적인 가정, 혹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 계란을 어떻게 주문할 지가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안다면 의미를 더 이해하기 쉽다. 스크램블이냐, 서니 사이드 업이냐, 오믈렛이냐, 그도 아니면 삶더라도 이를 반숙으로 할지 완숙으로 할지에 대한 질문은 항상 받게 돼있으니까.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계란은 안쪽까지 충분히 익히기 위해 '삶다(boil)'보면 '단단(hard)'해진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신병훈련소의 교관을 연상시켰던 모양이다. 하긴, <풀 메탈 자켓>(1987)이나 <포레스트 검프>(1994)에 등장해 주인공들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레인저햇을 쓴 사내들을 떠올려 보자. 파리도 미끄러질 만큼 빳빳하게 풀 먹여 다려놓은 제복이야말로 그들이 이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따발총 토크를 쏟아낼 것이라는 예감에 힘을 실어주지 않던가. 이 모습을 설명하는데 어울리는 문체라면 단연 단문 위주에 간결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그것일 테다. 필자가 사랑한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파이프 담배를 물고 범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논리적 모순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셜록 홈즈가 아니라 바로 이 하드보일드의 히어로, 중절모에 코트를 입고 줄담배에 마운트 버논 산 위스키를 즐기며 수틀리면 종종 권총을 꺼내들기도 하는 거친 사내 필립 말로였다. 시카고 출생으로 한때 런던의 몇몇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와 수필을 쓰던 시절 영웅담이나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던 레이먼드 챈들러가 커리어의 정점이던 대브니 석유회사(Dabney Oil Syndicate)의 부사장직에서 음주와 장기결근으로 밀려난 뒤 만들어낸 페르소나. 영화에서 하드보일드는 장르가 아닌 스타일로서 자연주의적이며 폭력적인 주제를 '냉혈한의(cold blooded)' 태도로 무신경하리만치 담담하고 건조하게 드러낸다.

 

쇼지 히로시 감독은 늘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내 작품에는 한국영화의 피가 흐른다’고. 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쇼지 히로시 감독은 늘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내 작품에는 한국영화의 피가 흐른다'고. 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모두에 왜 이리 장황한 하드보일드론을 풀어놓았는지에 고백하자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쇼지 히로시 감독의 전작이자 장편데뷔작인 <켄과 카즈>(2015)를 보고 난 필자가 느낀 감상이 다름 아닌 “아시아 하드보일드의 교과서 같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변의 확대'와 '방송 판권 판매'라는 두 가지 고려지점이 도리어 검열기재로 작용하고 있는 까닭에 뜨뜻미지근한 작품이 넘쳐나는 일본영화의 현실에서 더없이 감사한 마음. 그로부터 무려 8년 만에 도쿄국제영화제 셀렉션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더욱 기뻤던 건 크라우드펀딩 등 만만찮은 산고를 거쳐 자주영화로 태어난 두 번째 작품 <타츠미> 역시 여전히 거침없는 하드보일드 노선을 고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용은 이렇다. 야쿠자들의 시체를 처리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타츠미(엔도 유야 분)는 헤어진 연인 쿄코(카메다 나나미 분)의 동생 아오이(모리타 코코로 분)가 범죄조직의 마약을 빼돌렸다는 걸 알게 된다. 쿄코의 부탁으로 아오이의 절도 사실을 숨겨주는 타츠미. 하지만 야쿠자들은 마약을 키요코의 남편(와타베 류헤이 분)이 훔쳤다고 오해해 그를 살해하고, 타츠미와 아오이는 범행현장에서 간신히 쿄코를 구해내지만 결국 그녀 역시 숨을 거두고 만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언니의 죽음에 아오이는 복수를 결심하는 아오이. 그리고 그런 아오이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타츠미는 어느새 자신의 안에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싹트고 있음을 깨닫는다.

 

히로인 ‘아오이’로 분한 모리타 코코로 배우. 위험부담이 큰 액션장면이 가득한 작품에서 문자 그대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준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히로인 '아오이'로 분한 모리타 코코로 배우. 위험부담이 큰 액션장면이 가득한 작품에서 문자 그대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준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홍상현

<켄과 카즈> 이후 8년 만에 BIFAN에 오셨습니다. 다시 뵙게 되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웃음)

쇼지 히로시

예전에 상영을 하는데 관객의 수준이 무척 높아서 오랫동안 기억이 났습니다. GV 때 날카로운 질문도 많이 받았고. 이번에도 여전하더군요. 다들 변함없이 다들 열정적이시고. 이런 게 다 한국사회의 높은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 거 아닐까 해요.

 

홍상현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오셨을 땐 연재를 시작하기 전이라 미쳐 여쭤보지 못했으니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을 위해 매번 준비하는 질문도 오늘 처음으로 드리게 되네요. 한국영화,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쇼지 히로시

한국영화요.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좋아하죠. (웃음)

특히 일본에서 2009년 개봉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2009)는 제 '인생영화'입니다. <타츠미>에도 이 영화의 피가 흐르고 있죠. 극중에서 양익준 감독이 분했던 '상훈'의 캐릭터가 모리타 배우가 분한 '아오이'와 닮아있기도 하고요. <똥파리>에서 '연희(김꽃비 분)'가 상훈(양익준 분)을 처음 만났을 때 침을 뱉잖아요? <타츠미>에서도 아오이가 타츠미에게 침을 뱉습니다. (웃음)

물론 <똥파리> 외에도 <타츠미>는 <살인의 추억>(2003)이나 <아저씨>(2010) 같은 작품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점이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너무 기대가 되고요.

 

홍상현

<똥파리>는 일본 개봉 당시 데뷔를 준비하셨던 감독들과 대화하다 보면 진짜 '필수요소'처럼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웃음)

쇼지 히로시

저 같은 경우, 정말 양익준 감독 덕분에 영화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초에 장편데뷔작인 <켄과 카즈>도 <똥파리>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만든 영화였고요. 아직도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방금 전에도 그랬듯이 좋아하는 영화에 관한 질문에 반사적으로 <똥파리>라는 타이틀이 튀어나오는 것만 봐도 말이죠. (웃음)

 

홍상현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워낙 거침없이 드러내시니까 궁금해지는데 혹시 한국 배우 중에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분은 없으신가요?

쇼지 히로시

없다니요. 많죠! (웃음) 봉준호 감독 작품에 많이 출연하신 송강호 배우나 황정민 배우, 그리고 하정우 배우도 좋아합니다.

 

홍상현

<타츠미>에서 타이틀 롤로 분한 엔도 배우는 공유 배우와 정말 많이 닮으셨던데요. (웃음)

쇼지 히로시

그렇죠? (웃음) 본인도 무척 좋아할 겁니다. 공유 배우도 제가 언급한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톱클래스라고 말씀드릴 수 있죠. (웃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타이틀 롤을 연기한 엔도 유야 배우. 쇼지 감독과 여러 가지를 고민한 끝에 ‘행동자체의 리얼리티에 주안점을 두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타이틀 롤을 연기한 엔도 유야 배우. 쇼지 감독과 여러 가지를 고민한 끝에 '행동자체의 리얼리티에 주안점을 두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홍상현

데뷔작인 <켄과 카즈>와 마찬가지로 <타츠미>에서도 '아웃로(outlaw)'캐릭터인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이런 유형의 인물을 자주 등장시키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쇼지 히로시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만든 두 편의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의 저와 영 딴판인 인물들이기 때문이죠. 이런 관심은 애정을 낳고, 프리프로덕션을 거듭할수록 인물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치열히 고민하게 만들어줬어요.

 

홍상현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서. 우선 스토리텔링에 대해 짚어보죠.

세간에는 일본영화의 특징을 '느린 전개'로 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중하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감독 본인께서 가장 잘 아시겠지만 <타츠미>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쇼지 히로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그게 이른바 '템플릿(template)'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속도감과 관계가 있죠. 제 경우 한국영화나 할리우드식 방법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의식적으로 느린 전개를 경계하려고 노력합니다. <타츠미>의 편집을 할 때도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홍상현

나중에 이야기를 좀 더 하게 될 텐데, <타츠미>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였습니다. 다만, 연기자들로서는 액션이나 폭력장면이 많다 보니 촬영에 임하면서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쇼지 히로시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해서 다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로서도 여기 많은 비중을 두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아낸다는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더라고요. 단언컨대, 이런 부분들을 매니저들과 그때그때 조율해야 했다면 아마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충분히 면담을 하고 대본을 읽을 시간도 충분히 드렸던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홍상현

말씀을 듣고 보니 오디션과 캐스팅에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은데요.

쇼지 히로시

6개월 이상이요. 주연급은 한 달이 좀 지나면서 거의 정해졌는데 오히려 조연, 특히 빌런 캐릭터를 어떤 배우들이 연기할지 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이게 대략 반년 정도. 그밖에 다른 배우들도 평균 두 번 이상 오디션을 거쳤습니다.

 

홍상현

그래서인지 캐스트 한 분 한 분이 연기를 말 그대로 '제대로' 하고 계신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별도로 워크숍도 진행하셨던 건가요?

쇼지 히로시

아뇨, 워크숍은 따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리허설에 공을 들였죠. 요즘 만들어지는 일본영화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촬영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나마 <타츠미>의 경우 제작비를 자체적으로 충당한 자주영화라서 가능했지만.

 

「타츠미」의 오디션과 캐스팅에 소요된 기간은 6개월. 작품의 특성상 조연. 특히 빌런 캐릭터를 어떤 배우들이 연기할지 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타츠미」의 오디션과 캐스팅에 소요된 기간은 6개월. 작품의 특성상 조연. 특히 빌런 캐릭터를 어떤 배우들이 연기할지 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홍상현

이쯤 되니 제작비에 관한 내용을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요. 크라우드펀딩을 하면서 어렵게 제작비를 마련하기는 했어도 가성비가 무척 뛰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예산이 얼마정도 소요됐나요?

쇼지 히로시

대략 2천 5백만 엔 조금 못 되는 정도일 겁니다. 이렇게까지 저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촬영감독이 제 사촌이었던 게 컸고요. (웃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모일 때까지 일정이 미뤄지는 등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던 친척과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제게 큰 행운이었어요. 작품에 대해서 기탄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말씀하신 '가성비'의 비결 아니었을까 합니다.

 

홍상현

일단 주인공부터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픽션이지만, 한편으로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거든요. 다른 디테일의 경우는 아마도 시나리오 집필 당시 철저한 사전취재를 통해 확보되지 않았나 싶고요.

쇼지 히로시

사전취재에 들인 시간만 모두 합쳐 1년 반 정도입니다. 일본에서 폭력조직은 반사회적 집단으로 분류되어 치안당국이 대부분 와해시켜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잠입취재 같은 걸 하기는 어려웠는데요. 오랫동안 관련한 글을 써오신 르포라이터 분을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컨대 항만지역에서 폭력조직의 활동양상이라든가 시체처리 같은 내용이요. 다만, 막상 취재를 하고 보니까 이게 또 너무 리얼해서 극적이지 않더라고요. 해서 일정부분 픽션과 뒤섞어 '중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밖에 시체를 처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내라는 설정은 완전히 픽션인데요. 실제사례에서처럼 단순히 바다에 던져버리고 마는 건 좀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창작한 거였어요. 물론 상상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실제의 느낌을 연출해내기 위해 많은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홍상현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연기해야 했던 엔도 배우도 대단히 당황스럽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쇼지 히로시

안 그래도 그 지점에 대해서 저하고 계속 의견을 나누었는데요. '행동자체의 리얼리티에 주안점을 두자'는 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시체를 해체한다면 어떤 식으로 작업에 임할까'를 충분히 고민하면서 세밀한 움직임이나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죠.

 

크라우드펀딩 등으로 어렵사리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을 거쳐 태어난 「타츠미」그러나 작품이 보여주는 ‘가성비’는 놀라울 정도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크라우드펀딩 등으로 어렵사리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을 거쳐 태어난 「타츠미」그러나 작품이 보여주는 '가성비'는 놀라울 정도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홍상현

워낙 '센'드라마이다 보니 히로인인 아오이로 분한 모리타 배우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쇼지 히로시

놀라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어요. 또, 이런 분위기가 촬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사적인 감상을 최대한 배제하고 완전히 배우로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홍상현

대단하네요. 몸을 던져서 액션을 해야 하는, 일반적인 여성연기자라면 꾀 위험부담을 느꼈을 만한 신도 있던데. 스턴트맨이나 액션 코디네이터를 따로 쓸 만 한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요?

쇼지 히로시

비용이 아니라 퀄리티 때문에라도 액션코디네이터를 합류시키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경계했던 건, 딱 짜여 진 느낌의 액션을 보여드리게 되는 거였어요. 제가 한국영화의 액션연출을 좋아하는 이유는 거칠어 보일지라도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거든요. 비유해보자면 '진흙냄새 나는 액션'이라고 할까요? 혹시나 연기자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주의를 거듭하면서도 내내 머릿속에 넣고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생각들이었습니다.

덧붙여서 모리타 배우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 다시 한 번 느낀 게, 카메라 앞에서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더라고요. 마치 아오이 역을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말이죠. 본인이 어떻게 보일 지를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액션을 하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제로 얻어맞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전혀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더라고요. 연기력을 넘어 인간적인 저력을 느꼈습니다.

 

홍상현

엔도 배우와의 케미스트리도 정말 좋았잖아요.

쇼지 히로시

연기도 연기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거리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했습니다. 그밖에 리허설에만 3주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죠. 어떤 상황이 있어도 절대 이 일정에는 변동을 주지 않도록 했는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리허설에 이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자체가 일본영화에서는 무척 드문 사례거든요. 그래서 결국 애초의 취지에 맞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지’로 분해 소름끼치는 악역연기를 보여준 쿠라모토 토모유키 배우. 쇼지 감독의 좋은 친구인 그는 무대공연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유지'로 분해 소름끼치는 악역연기를 보여준 쿠라모토 토모유키 배우. 쇼지 감독의 좋은 친구인 그는 무대공연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홍상현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악역관련 언급은 잘 하지 않게 되는데 <타츠미> 같은 경우, '유지'로 분한 쿠라모토 토모유키 배우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정말 소름이 끼치던데요. (웃음)

쇼지 히로시

구라모토 배우는 저와 많은 작업을 함께해왔고,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무대공연 연출가로도 유명한데, 이번에 <타츠미>를 준비하면서 감독의 말을 믿고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고 싶다더라고요. 의미인 즉, '배우의 이기심' 차원에서 나름의 표현 욕구를 드러내기보다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해나가겠다는 거였습니다. 본인이 배우들과 일하면서 느껴온 내용이기도 한데 일종의 실험이라는 의미 또한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구라모토 배우라면 대본에 적혀 있는 걸 충실히 보여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홍상현

인터뷰가 슬슬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요. 장르영화이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해 무척 많이 고민하신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더라고요.

쇼지 히로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저로서는 요즘이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무척 어려워진 시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타츠미>에서는 남들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행위와 가장 거리가 있어 보이는 타이틀 롤이 등장해서 아오이를 위해 목숨을 걸죠.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라인일 수 있겠지만 바로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 살기도 바쁘다'는 말이 너무 당연한 현실이니까요.

 

홍상현

마지막 질문은 최근 진행했던 인터뷰들과 조금 다른 느낌의 부탁을 드리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타츠미>에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계신 장면을 하나만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쇼지 히로시

포스터가 된 장면이기도 한데 가까워지기 전의 아오이와 타츠미가 툭탁거리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이 있어요. 대립의 극한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고, 타츠미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내레티브에 있어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면이거든요. 문자 그대로 '하이라이트'라고 할까요? 관객 여러분께 가장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입니다. 오디션에서 두 배우에게 상황을 지시해서 만들어냈는데 느낌이 너무 좋아서 영화에서 사용한 건 물론, 스틸커트로 포스터까지 만들었지요.

 

쇼지 감독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 이 장면은 오디션 과정에서 탄생해 영화에 사용된 것은 물론, 스틸커트로 포스터에까지 쓰였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쇼지 감독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 이 장면은 오디션 과정에서 탄생해 영화에 사용된 것은 물론, 스틸커트로 포스터에까지 쓰였다. (c)2024 Tatsumi Film Partners

"한국에 올 때마다 평단과 대중, 즉 인터뷰를 맡아주시는 평론가나 기자 분들이나 GV에서 뵙게 되는 관객 여러분들의 높은 수준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한국영화가 세계영화산업을 주도하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지점이기도 하죠. 이런 환경이라면 창작자도 영화 상영에 참여하면서 훨씬 즐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타츠미>의 첫 해외상영지가 한국이라는 걸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분들께서 부디 제 작품에는 한국영화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당연히 <타츠미>의 한국개봉을 온 마음으로 바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와서, 한국의 스태프, 캐스트와 함께 영화, 또는 드라마를 만드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지개봉 이후 5개월.

<켄과 카즈> 때와 마찬가지로 도쿄국제영화제에서부터 화제를 뿌렸던 <타츠미>는 부천에서의 뜨거운 호응을 이어가듯 아직도 열도 이곳저곳의 미니시어터를 돌며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기왕이면 전작처럼 조금 더 많은 수의 관객들을 동원해 얼마간의 수익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걱정이 앞서면서도 함부로 안쓰러움이 담은 시선을 보내지는 않으려 한다. 매 순간순간 목숨을 거는 각오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쇼지 감독과 동료들에게 오히려 모욕적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지난여름과 다르지 않은 반가움으로 재회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할 뿐이다. 기왕이면 <똥파리>와 함께 또 한편의 한국영화인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리라는 결심을 굳혔다는 그가 일단 연극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후 영화화를 계획하고 있다는 로맨틱 코미디로.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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