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던데."
"아, 봤어?"
"그럼. (일본에) 오자마자봤지. 이노우에 류타(기획ㆍ프로듀스) 때문에도 봐야 돼서. 기획 단계부터 얘기 들었던 작품이잖아. 뭐, (마츠무라) 호쿠토 군 연기가 좋기도 좋았지만 역시 당신이 안정적으로 받쳐줘서 시너지를 발휘한 게 느껴지더라고."
"하여간 누가 평론가 아니랄까봐 발림말도 참 기분 좋게 해요. (웃음)"
"아니야, 정말 그랬다고. 근데, 미야케씨랑은 <플레이백>(2012) 이후 처음이었던 건가?"
"그렇지."
"<플레이백> 이후에 나온 <3류들의 사랑>(2016)이었지? 첫 주연이."
"아냐, 그 전에 <그리고 진흙 배는 간다>(2014)라고 코미디영화가 있었어."
"아, 그래. 미안하네. 그런데 난 왜 여태껏 <3류들의 사랑>을 첫 주연작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웃음)"
"사람이 제일 많이 들었으니까? 앞으로도 내 주연으로 그렇게까지 팔리는 영화가 있겠나 싶다. (웃음)"
3월 24일 일요일. 다카사키예술극장 1층 흡연실에서 1년 만에 동갑내기 친구 키(KEE, 배우 시부카와 요시히코의 옛 예명. 현재도 지인들 사이에서 별명으로 쓰인다. ※ 주)를 만났다. 다카사키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하는 이상 반드시 마주치게 돼있는 고정사회자. 개최지인 군마현 출신인 그와 담배한대를 피우며 올해 첫 출연작인 <새벽의 모든>(2024)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 필자가 최고의 스토리텔러 중 하나로 꼽는 감독을 떠올렸다.
"요즘 그나마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예산이 주어지는 건 만화원작에 아이돌을 캐스팅한 소위 ‘실사화’ 영화뿐입니다. 부족하고 거칠어 보일지 몰라도 이야기의 힘을 믿는, 저와 현장을 누비며 와신상담하는 동료들에게 힘을 실어주셔야 해요. 뻔뻔한 말씀 같지만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일본영화는 언젠가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부천 상동 어딘가의 전집. 막걸리 잔을 마주하고 앉은 그가 열변을 토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지만 정작 안면을 튼 건 선배평론가이자 선배기자이기도 한 김봉석 형의 권유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무렵. 서글서글한 한편 어딘가 고집스러운 면모도 엿보이는 사내의 얼굴에서 불과 몇 분 전 익살맞은 이야기를 할 때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허나 필자에게 그의 이런 이야기가 비로소 설득력을 지닌 것은 이, 딱히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묘한 매력을 풍기는 어법을 구사하는 중절모 사나이와, 스크린 한 개짜리 단관인 테아트르 신주쿠를 겹겹이 둘러싼 관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만들었던 <3류들의 사랑>의 감독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한편, 특유의 ‘센 스토리와 캐릭터’로 장르영화와 정극사이를 넘나들며 흡인력 있는 서사를 전개한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그레이트풀 데드>(2014), 풍자의 극한을 보여줌과 더불어 이토 사이리라는 배우와의 만남으로 필자를 이끌었던 <파란만장 청춘! 짐승처럼 가라!>(2017) 등을 연신 무릎을 치면서 보고난 뒤부터였다. 이후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미드나잇 스완>(2023),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른 방향에서’ 일본 영상콘텐츠의 힘을 보여준 넷플릭스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로 감독으로서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으며 메이저의 반열에 든 것처럼 보이던 그는 카타야마 신조와 구상한 단편영화가 원안인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2023)로 여전한 인디크리에이터의 내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그의 자작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BIFAN 초청작 <매칭>으로 재회한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웨딩플래너로 일하는 린카(츠치야 타오 분)는 연애에 서툰 독신여성.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나오미(카타야마 모에미 분)의 권유로 거래처의 매칭 앱에 등록, 묘하게 관심이 가는 토무(사쿠마 다이스케 분)라는 상대와 문자를 주고받다 만나보기로 결심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모처럼의 결심이 후회될 만큼 어두운 분위기의 사내였다. 이후 스토커로 돌변해버리는 토무.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매칭 앱 운영회사의 프로그래머 카케야마에(카네코 노부아키 분)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고, 여기 다시 매칭 앱을 통해 만난 커플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맞물린다. 그렇게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날수록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음모 또한 거리를 좁혀온다.
홍상현
BIFAN과는 그야말로 ‘뗄 라야 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깊은 인연이 있으십니다.
우치다 에이지
부천에 도착하자마자 늘 가는 냉면집이 있거든요. 폴라리스호텔 옆 건물 1층에 있는 곳인데 거기서 냉면을 먹으면 바로소 ‘아, 이제 부천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시간이 시간이라 가게에 저 혼자뿐이었지만. (웃음) 여하튼, 말씀처럼 BIFAN과의 인연도 어느새 이렇게 오래되었네요. 하지만 언제나 불러주실 때마나 정말 기뻐요.
홍상현
최근 한국에서는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가 코로나 19 사태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져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영화표 가격의 급등이나 홈시어터, 그리고 OTT의 보급 등을 꼽기도 하는데요.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우치다 에이지
조금 엉뚱한 대답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런 일들이 오히려 기회가 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인력풀이나 제작환경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한국 시장상황에 변화가 생기면서 도리어 한국 제작사가 일본에 진출해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늘어났거든요.
당장 저만해도 올 1월에 영화를 찍었는데 제작비의 3분의 2를 댄 게 한국 영화사였어요. 물론 어려운 현실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런 식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상현
역시 독립영화계를 누비며 성장해 오신 우치다 감독답습니다. (웃음)
우치다 에이지
다른 곳은 어떨까 모르겠는데 일본의 독립영화계에서는 아트하우스가 아니면 오히려 더 힘들어요. 조성금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대부분을 민간투자에 기댈 수밖에 없거든요.
홍상현
<사일런트 러브>의 경우도 그렇고 최근 들어 아예 직접 원작소설을 쓰시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우치다 에이지
예전에 <미드나잇 스완>을 찍고 나서 노벨라이즈로 소설을 냈더니 평판이 무척 좋았거든요. 아시다시피 일본영화는 원작에 큰 비중을 두는 반면, 오리지널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무조건 리스크가 클 거라는 인식이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직접 원작을 써 보자는 발상을 한 거죠. 저작권을 가지면 다른 나라에 판매해서 저변을 넓힐 수도 있으니까.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쉽지는 않지만 요즘 들어서는 기본적으로 원작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홍상현
원작은 그랬고. 그렇다고 이걸 시나리오로 창작한다는 게 그대로 옮겨쓰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아요.
우치다 에이지
물론이죠. 장르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미스터리 스릴러에는 메인스토리와 서브스토리가 있는데 이걸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장르적인 재미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 부분이 힘들었죠. 단순한 휴먼드라마라면 그냥 사람의 감정이나 스토리라인을 생각하면 될 텐데 <매칭>같은 작품은 여러 가지가 혼재된 양상을 띠니까요.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매칭>의 원안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매칭앱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중을 두었죠. 그런데 문자매체와 영상매체에서의 표현이라는 게 전혀 다르잖아요. 따라서 초기 설정의 상당부분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힘들었죠. 덕분에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좋아진 부분도 있으니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웃음)
홍상현
기본적으로 감독의 이야기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보니 그 모든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칭> 같은 경우 원작소설이 먼저 나왔는데요. 그렇다면 애초부터 영화로 만들 생각이 있으셨다는 거죠?
우치다 에이지
아이디어를 낸 게 4년 전입니다. 마침 매칭앱이 일본에서 대단히 유행하고 있었죠. 주변에서 지상파 TV드라마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센’ 이야기이다 보니 그냥 영화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관련한 범죄사건 등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해서 여러 가지 내용들을 취재하면서 최대한 준비해놓고 시나리오를 써나갔습니다.
홍상현
한편, 최근 들어서는 매칭앱이 결혼상대를 만나는 공식적인 채널로 손꼽힐 만큼 완전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있는데요. 애초에 가지고 계셨던 비판적인 시선에도 변화가 있으셨나요?
우치다 에이지
지금도 그런 어두운 측면이 없진 않지만 과거에 ‘온라인 만남’은 성적인 대상을 찾으려는 목적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벌써 당시로부터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죠. 모든 것이 그렇듯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과 더불어 여러 가지 어두운 측면도 바뀌어나갔습니다. 최근에는 매칭앱으로 만난 커플이 결혼으로 맺어져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웃음)
홍상현
제가 느끼기에 ‘우치다 에이지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흑과 백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입체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매칭>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최근 주로 멜로드라마가 팔리는 일본 영화시장에서 이 영화가 꽤 히트했다는 사실인데요.
우치다 에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뜻밖이었어요. 아무도 보러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웃음) 일단 장르자체도 미스터리 스릴러라서 아무래도 젊은 층의 기호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일본영화계의 경우 ‘휴먼드라마’에 대한 강박이 큰 편이거든요. 감동을 주거나, 울릴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한 갈망. 그런데 이조차도 절대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 계기였습니다.
홍상현
우치다 감독의 영화는 개성이 무척 강한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렇다보니 상당한 연기력을 요하고요. 주연을 맡은 츠치야 타오 배우와 촬영하면서 어떤 내용들을 가지고 소통하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우치다 에이지
원래 츠치야 배우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제 작품 중에서는 <미드나잇 스완>을 가장 재미있게 본지라 이번 작품도 아마 휴먼드라마일 거라고 예상했던 거 같고. 그러다가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조금 놀랐는지 상당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쳤죠, 결국 출연을 결심해주었지만. (웃음)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 보여준 모습은 또 달랐습니다. 원래 츠치야 배우는 일종의 ‘국민여동생’ 같은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는데 최근 들어 가정을 이루고 엄마도 되면서 연기자로서도 뭔가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미스터리 스릴러를 썩 좋아하지 않는 배우가 맞나 싶을 만큼 의욕적으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홍상현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모자장수로 알려진 카네코 노부아키 배우가 연기한 반전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치다 에이지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카네코 배우가 원래 뮤지션 출신입니다. 록밴드를 했죠. 그래서 사이토 타쿠미 배우가 연출한 <13년의 공백>(2019)이라는 작품의 음악을 맡기도 했고요. 그런데 역시나 그런 예술적 감수성 때문인지 연기를 할 때의 순발력도 엄청나게 뛰어나더라고요. 일본 연기자 중에는 촬영에 들어가면서 필요이상으로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요. 깜짝 깜짝 놀라는 장면이 많은 <매칭>으로서는 최적의 캐스팅이었다고 할 수 있죠.
홍상현
토무로 분한 사쿠마 다이스케 배우는 2년 전 <오소마츠상>(2020)에서 봤을 때에 비해 연기자로서 부쩍 성장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인물창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나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도.
우치다 에이지
사쿠마 배우는 보이밴드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나 연기자로서는 거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토무를 연기하면서 의식적으로 ‘이것은 연기가 아니’라는 자기암시를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도리어 연기를 하게 되면 ‘스노우맨의 멤버 사쿠마 다이스케’가 되어버리는 느낌이었거든요. 이를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했는데,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었던 것 같습니다.
홍상현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와 관련해서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요.
우치다 에이지
일단 사전에 깊은 공감대를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크랭크인 전부터 셋이 모여서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여기서 제가 주문했던 건 ‘불필요한 연기를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세 사람 모두 방송출연 경력이 꽤 오래된 편이라 TV카메라 앞에서의 자기표현에는 나름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연기하는 인물의 내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서 고민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내적인 캐릭터구축이 몸이나 표정의 움직임과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니까요.
홍상현
연기도 연기지만 <매칭>은 시각적인 완성도 또한 무척 돋보이는 작품인데요. 영화의 비주얼콘셉트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우치다 에이지
이 부분은 <미드나잇 스완>의 경우와도 유사성을 지니는데 일단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에서 강한 컬러를 사용했어요. 일본영화는 등급심의가 엄격한데 이게 결과적으로 검열처럼 작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보니까 폭력을 묘사할 때도 디테일한 표현을 주저하게 됩니다. 따라서 <매칭>의 경우, CG와 의상에 보다 신경을 써야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꼭 등급심의 때문에만 이 부분에 신경을 썼던 건 아닙니다. 원래 제가 구상하던 <매칭>의 비주얼콘셉트는 호러영화에 가까운 분위기였거든요. 그런 게 이걸 유지하면 관객층을 넓히기가 힘들어요. 표현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좀 더 많은 관객이 즐겨줬으면 했습니다. 장르영화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기왕이면 평소 미스터리 스릴러를 잘 보지 않고 폭력묘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까지 배려했지요. 그 과정에서 무척 많이 공부가 됐습니다.
"<매칭>은 말 그대로 매칭앱이라는, 굳이 표현하자면 문명의 이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지만 작가인 제가 바라보는 최근의 시대상이 반영돼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요즘 사회에서는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전혀 다를 수도 있는 행복에 대한 정의조차 지나치게 단정적이잖아요.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 동의하지 않는 경우, SNS 등을 통해 린치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대단히 위선적인 전체주의라고 할까요. <매칭>에는 사회적인 기준에 어긋나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꾸밈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에 대해 그냥 일방적으로 재단하기보단 그 함의를 곱씹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그 표현의 양상은 또 얼마나 여러 가지인가요. 아울러 반전이 주는 장르영화 특유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국 관객 여러분 같은 경우, 강도 높은 표현에 대해서도 단순히 충격적이다 무섭다 같은 단선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다양한 정서적 층위를 이해하는 감식안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2008) 같은 작품도 태어날 수 있었을 테지요. 아무쪼록 그런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일본 관객들이 미처 만끽할 수 없는 조금은 다른 재미의 지점을 많이 찾아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칭> 외에도 일본에 이어 태국에서 개봉한 직후, 특유의 개성이 뭍어나는 독특한 컬러의 러브스토리에 <강철의 연금술사> 시리즈의 야마다 료스케, <이윽고 바다에 닿다>(2023) 하마베 미나미의 팬덤까지 가세하며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사일런트 러브>까지, 올해에만 본인이 원작소설까지 집필한 영화 두 편을 선보인 우치다 감독. 차기작에 대해 물으니 내년 초 이례적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영화 한 편이 공개될 예정이란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에 대해서는 "아마, 아시는 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이틀을 검색해 보니 대학후배로 <열병을 앓고 난 뒤>(2023)의 각본을 담당했던 이나원 작가. 벌써부터 내년 초의 숙제가 생긴 건가, 작품소개와 함께 적혀있는 시납시스로 향하던 시선을 억지로 다른 곳으로 돌라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