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꼭, 남들 같아야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
[Interview] 꼭, 남들 같아야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
  • 홍상현
  • 승인 2024.08.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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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위국일기> 세타 나츠키 감독
「위국일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유난히 인연이 깊은 세타 감독의 세 번째 초청작이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위국일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유난히 인연이 깊은 세타 감독의 세 번째 초청작이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그녀는 프랭크와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는 것이었다. 프랭크는 아주 친절하고, 사내답고, 솔직했다. 그의 아내가 되어 부에노스아이에스에서 그와 함께 살려고 밤배로 그를 따라가려는 것이었다. 거기다 그는 살림집을 하나 사놓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프랭크를 처음 만났던 그때를 그녀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몇 주일 전의 일만 같았다. 그는 대문 앞에 서있었는데, 운두 높은 모자를 뒤로 젖혀 쓰고 있어, 붉게 탄 얼굴 위로 머리칼이 내려 덮여 있었다. 그 다음 두 사람은 서로 사귀게 되었다. 그녀를 늘 저녁마다 백화점 밖에서 기다려 집에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보헤미아 처녀>[아일랜드의 작곡가 마이클 윌리엄 벨프(1808~1870)의 대표적 오페라로 1843년에 발표]를 보러 극장엘 같이 간 적도 있었다. 그럴 때 그와 함께 낯선 극장의 어느 좌석에 앉아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김병철 옮김),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1999)

조금 과장을 섞어 이야기해 보면 제임스 조이스는 그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는 연구자들이 어쩌면 독자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르는 소설가다. 그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를 펼쳐 「이블린」의 인물묘사를 읽어보았다.

열아홉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에 위협을 느낄 때가 있고, 그로 인해 울렁증이 생겼음에도 번 돈을 고스란히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집안일과 졸지에 떠맡은 두 아이까지 책임지면서 힘겨운 일상을 살고 있는 가련한 여성. 그러나 조이스가 묘사하는 그녀의 일상은 어두운 톤 앤 무드(tone & mood)로만 통일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영문학자 오길영은 자신의 소설이"불편할 정도로 사실에 정밀하게 접근"해있다고 했던 조이스의 주장을 언급하며 작품에 그대로 주어지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긴, 필자도 종종 생각했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각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장년기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갈등에 직면하다, 끝내는 자유스러운 세계로 탈출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현실속의 더블린 사람들’을 인터뷰한 적 있을까. 범주를 조이스의 다른 저작으로까지 확대해 보면, 확실히 그의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필자가 떠올린 것이 에피파니(epiphany)이다. ‘현시’쯤으로 해석되는 조이스의 표현방식. 예컨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은 자신에게 성직을 권하는 신부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에게서 뜻밖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창을 등진 상태라 뒤에서 들어오는 오후의 일광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버린 얼굴. 그렇듯 ‘구원’을 상징하는 빛을 가로막고 서 있는 신부의 모습에서 종교의 부정적인 면과 더불어 죽음의 이미지를 찾아내고 종교와의 단절을 결심한다. 매 순간이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별 감흥 없이 지낸다면 결코 가능할 수 없는 전개. 그러나 창의성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으며 그 한복판을 비집고 들어온다. 조이스는 이렇듯 서사물(narrative)에서 보여주기와 극적 제시, 그리고 말해주기의 세 가지로 정형화되는 인물창조(characterization)의 범주구분을 뛰어 넘었다.

그의 이러한 시도가 단지 관념의 차원에 머물러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거든 문상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보자. 적지 않은 경우에 상주는 힘껏 함께 슬퍼할 준비를 하고 찾아간 우리가 무색할 정도로 굳건하거나 (다소) 밝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에서 자연스레 오늘의 인터뷰이가 연출한 작품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2023년 카도카와가 발간하는 도서정보 월간지 《다빈치》에서 "2023년 최고의 책"으로 꼽은 야마시타 토모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위국일기>도 마찬가지다.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열다섯 소녀(아사, 하야세 이코이 분)와 그 어머니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앙금을 안고 살아가던 이모(마키오, 아라가키 유이 분)의 만남을 다룬 이 작품은 얼핏 ‘흔히 보는 휴먼드라마’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공원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를 오랜 기억이 담긴 공간으로 읽어내는 <파크>에서 남다른 작가적 시선을 보여줬던 이 작가는 이번에도 인물창조 영역에서 스토리텔러의 자질을 발휘한다.

영화기자 차한비가 요약하는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당연히 필자도 작품을 보았지만 시납시스를 정리한 문장이 재미있어 인용했다. 성의 없는 박스인용보다 낫지 않을까. ※ 주) 절연하고 살던 언니가 죽었다. 서른다섯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키오는 오갈 데 없는 열다섯 조카 아사를 충동적으로 집에 들인다. 결혼, 임신, 출산 등은 물론이거니와 타인과 한집에 사는 것조차 계획한 적 없는 마키오에게 아사의 존재는 매일 물음표를 던진다. 한편, 하루아침 부모를 잃은 사춘기 소녀는 새로운 환경에 곧잘 적응하는 것 같다가도 문득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영화는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불행을 뒤쫓는 대신에, 느리고 담백한 호흡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따라간다.

 

세타 감독은 대단히 주의 깊고,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것 같다가도 순간순간 재치가 번득이는 독특한 화법의 소유자다. ⓒ 2024 BIFAN
세타 감독은 대단히 주의 깊고,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것 같다가도 순간순간 재치가 번득이는 독특한 화법의 소유자다. ⓒ 2024 BIFAN

홍상현

어느새 <위국일기>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만 세 번 초청되셨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요.

세타 나츠키

<위국일기>가 장르상 그렇게 판타스틱하지는 않은 작품인 것 같은데(농담, 웃음) 불러주시니 너무 기뻐요. 한국 관객 여러분들께서 봐주시는 건 매번 기대가 됩니다.

 

홍상현

물론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의 원작이 있긴 하지만 역시 세타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세타 나츠키

원작이 전부 11권인데, 이걸 2시간 19분짜리 영화로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일단 원작의 에센스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을 유지하면서 정리를 하려니까 말이죠.

다만, 무척 당연한 이야기이긴 할 텐데요. 영화는 영화, 만화는 만화로써 각각 서로 다른 매체로서의 특징을 가지잖아요. 이 점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홍상현

최근 세계영화산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관객 수가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져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거든요. 그 동안의 영화티켓 가격 인상이나 홈시어터, OTT의 보급 등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이기도 한데요.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요?

세타 나츠키 

일본도 만만찮은 상황이죠. 팬데믹이 끝나고 더디게나마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돌아오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화를 접하는 방법은 물론 관객의 자세 또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티켓 가격이 오르는 것도 비슷한데 일본에는 한국처럼 영화발전기금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게 다르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큰 영화라면 모르지만 미니시어터 같은 공간들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홍상현

일단 가장 먼저 도드라지는 <이국일기>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의 중심이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해 나갈지를, 결론을 정해놓는 형태가 아니라 서로 간에 공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데 있지 않나 합니다.

세타 나츠키

어떤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 예기치 못한 계기로 우연히 만나 같이 살게 된 두 사람의 일상을 스케치 같은 형태로 하루하루 잘라내고, 이걸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배어나오는 것처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해 드렸지만 이 영화엔 원작이 있죠. 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는 제가 썼고, 각 장면에서의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직접 결정했어요. 이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었던 건 최대한 자연스러운 형태로, 평소의 생활을 관찰하는 시선을 표현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TBS 드라마「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대표작일 정도로 코미디연기에 강하지만 정작 아라가키 유이 배우는 대단히 조용하고 언제나 한 발짝 물러나서 모두를 관찰하는 스타일이라고.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TBS 드라마「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대표작일 정도로 코미디연기에 강하지만 정작 아라가키 유이 배우는 대단히 조용하고 언제나 한 발짝 물러나서 모두를 관찰하는 스타일이라고.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홍상현

그렇게 언급하시니까 갑자기 시나리오 집필과 관련한 말씀을 나눠보고 싶어지는데요. (웃음) 조금 크게 질문해 보죠. 어떻게 쓰셨나요?

세타 나츠키 

주어진 기간이 무척 짧았어요. 초교까지 3주 정도였거든요. 원작의 분량이 대단히 긴 한편 무척 매력적이기도 한 까닭에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됐죠. 예컨대 어떤 에피소드를 시각화할까, 등장인물은 어떤 면에 중점을 둬서 표현할까 같은 거. 그밖에 두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들이 공유하는 또 다른 세계의 느낌이 연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시나리오는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정리한다기보다 작은 힌트들이 조금씩 겹쳐지는 형태로 써 나갔어요. 그렇게 다시 쓸 때마다 점점 다르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홍상현

감독님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에는 비주얼이 뛰어난 작품이 많죠. <위국일기>도 견고한 미장센에 자연스럽게 인물이 녹아들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세타 나츠키 

어떤 하나의 색이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보다 여러 가지 색이 화면에 박혀 있는 걸 좋아해서 의상의 경우도 때로는 유난히 눈에 띠는 컬러를 선택했습니다. 미술을 담당했던 분이 스즈키 세이준 감독과 <피스톨 오페라>(2001)에서 미술을 맡았던 아타카 노리후미 씨라 이 부분에 있어서의 제 구상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또, 뭐든 색을 정해놓으면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꼭 그레이딩을 해주셨기 때문에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산만하진 않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홍상현

세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의 결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신다는 점 아닐까 합니다. 캐릭터의 클리셰나 평면성을 넘어서는 ‘세타 나츠키만의 인물창조’가 보여주는 특징 아닐까 하는데요.

세타 나츠키 

이번엔 단순히 ‘슬프다’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 한 단어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이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한 어떤 무거운 정서보다 마키오와 아사, 두 사람의 생활 자체를 관조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요. 바로 이 부분에서 현시점에 부재한 사람들의 빈자리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다만, 아사를 연기한 하야세 이코이 배우의 움직임이 워낙 다양하고 표정도 풍부했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사에게 있어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은 상상하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다가온 극단적인 사건이지요. 종잡을 수 없었기에 미처 슬픈 감정을 마주하기 어렵고,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실자체를 숨기는 일을 되풀했던 거 아닐까 싶어요. 감독으로서 어떤 인물이 고독이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안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무거운 느낌만을 풍겨야 할 필요는 없고, 밝은 표정을 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 밝은 표정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지만요. (웃음)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열다섯 소녀, 그 어머니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앙금을 안고 살아가던 이모. 「이국일기」에서 전형적인 것은 오직 이 설정뿐이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열다섯 소녀, 그 어머니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앙금을 안고 살아가던 이모. 「이국일기」에서 전형적인 것은 오직 이 설정뿐이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홍상현

<파크>부터 이번 <위국일기>까지 하나같이 여성캐릭터가 서사를 주도하는 작품이었는데, 제가 볼 때 이야기 자체는 늘 ‘여성영화’라기 보다 좀 더 폭넓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인 것들이었지 않나 싶어요.

세타 나츠키

정확한 평가이십니다.

<위국일기>의 스토리를 전개해 가는 건 두 명의 여성캐릭터이지만 이를테면 마키오를 꼭 여성으로 설정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좁은 의미에서의 ‘여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을 그려가고 싶었어요. 물론 ‘젠더’라는 토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단수, 혹은 복수의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홍상현

아라가키 배우와 하야세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너무 좋던데요.

세타 나츠키 

두 배우가 주어진 역할에 너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아라가키 배우는 지금껏 TV드라마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는데 정작 본인은 대단히 조용하고 언제나 한 발짝 물러나서 모두를 관찰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마키오로 캐스팅 된 걸 무척 기뻐했다고 합니다.

하야세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서 만났는데 영화출연 자체가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워낙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 아라가키 배우에게 대단히 에너제틱하게 다가가더라고요. 당연히 그런 하야세 배우를 아라가키 배우도 기꺼이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홍상현

캐스트 사이의 관계성은 그랬고, 감독께서는 어떤 디렉션을 하셨나요?

세타 나츠키 

연기를 하면서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아사의 경우에는 꽤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사나리오에 충실하려는 목적 외에도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젊은 캐릭터들은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요. 다만, 그래서 하야세 배우가 어떻게 움직여야할지는 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현장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의논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저뿐만 아니라 촬영감독이나 다른 스태프들까지 참여해서 말이죠.

 

「레드」, 「블루아워」 등의 작품을 통해 확연히 달라진 연기력을 보여준 카호 배우의 얼굴도 반갑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레드」, 「블루아워」 등의 작품을 통해 확연히 달라진 연기력을 보여준 카호 배우의 얼굴도 반갑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홍상현

친숙한 캐릭터를 아라가키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또한 <위국일기>라는 작품의 매력 포인트 아니었나 싶은데요.

세타 나츠키 

그렇죠? 아라가키 배우는 일단 캐스팅 단계에서 원작을 무척 열심히 읽어주셨고, 그 감상을 제가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들려주셨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를 참고할 수 있었죠. 촬영 현장에서도 주어진 대사와 관련해서 충분히 의견을 나눈 연후에 차분하게 역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물론 동명만화인 원작과 제가 연출한 영화는 전혀 별개겠지만 아라가키 배우의 이런 진지한 태도는 극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실제로 촬영 후반부엔 아라가키 배우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홍상현

<레드>(2020)나 <블루아워>(2020) 등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연기력을 선보인 카호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관객에게 어떤 안심감, 안도감을 전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극적재미를 높이는데에도 기여한 것 같고요.

세타 나츠키 

카호 배우가 연기한 나나라는 인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키오의 친구였던 걸로 설정되어있어요. 이 지점에 주목하면서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또 다른 인물상을 연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극중에서 나나라는 인물 자체가 말씀하신 것처럼 무척 밝고, 안정감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촬영현장에 카호 배우가 나타나면 분위기가 좋아졌지요.

저로서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마키오의 모습을 끌어내주는 인물로 기능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어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상대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제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연기를 보여주셨죠. (웃음)

 

홍상현

예전에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2020)을 소개하시면서 ‘배우들의 표정 변화를 잘 살펴보시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보니까 정말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위국일기>랑 관련해서는 어떤 어드바이스를 주고 싶으신가요? (웃음)

세타 나츠키 

음. (웃음)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 때와 그렇게까지 다르진 않은데요. 아사와 마키오 두 사람이 시퀀스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표정과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서로 상호작용하면서요. 이 지점에 주목해보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위국일기」는 곧 국내개봉관에서 일반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기왕이면 저녁공기가 청명한 가을 주말에 개봉했으면 좋겠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위국일기」는 곧 국내개봉관에서 일반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기왕이면 저녁공기가 청명한 가을 주말에 개봉했으면 좋겠다. ⓒ2024 Tomoko Yamashita, SHODENSHA Publishing Co., Ltd./ "Worlds Apart" Film Partners

"<위국일기>가 보는 사람에 따라 범주화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나 사람 본연의 자세를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했어요. 마키오의 언니이자 아사의 어머니인 미노리(나카무라 유코 분)는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인물이죠. 하지만 그렇게 평행선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결국 그녀가 떠나고 아사와 마키오가 만나면서 어쩌면 두 사람이 평생 동안 몰았을 수도 있을 모습이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서로 다른 면모를 보고 있더라도 미노리의 동생과 딸은 결국 같은 사람을 알고 있었던 거니까요. 아무쪼록 이런 ‘소통’의 부분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작품의 배경이 일본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를 그리는 영화인만큼 한국에서 공개될 때 관객 여러분께서도 많은 부분을 공감해주시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게 감상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극중에 미노리가 한국드라마의 팬인 걸로 설정돼있는데요. 딸인 아사도 영향을 받아서 아사도 분명 한국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요? (웃음) 감사합니다."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대단히 주의 깊고,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것 같다가도 순간순간 재치가 번득이는 특유의 화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대화. 평소보다 더 유쾌한 기분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부쳔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 이후 영화가 국내에서 일반관객을 만나게 될 거라는 소식 때문이었을까. 전형적인 이야기일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순간순간 필자를 몰입시켰던 인물창조의 재미. 기왕이면 저녁공기가 청명한 가을 주말에 개봉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중에는 필자처럼 라스트신에서 전형적이진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관객도, 분명 있을 테다.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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