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우리의 모든 상상친구에게
[Critique] 우리의 모든 상상친구에게
  • 김경수
  • 승인 2024.06.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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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닥터와 <인사이드 아웃>의 세계"

'픽사'(Pixar)의 팬이라면, '피트 닥터'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몬스터 주식회사>(2001)부터 시작해 <업>(2009)과 <인사이드 아웃>(2015), <소울>(2020)까지 그의 작품이 픽사의 정체성을 굳히는 데에 공헌하며 픽사 팬의 열렬한 신뢰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원안을 한 작품을 제외한다면 그가 연출한 작품은 총 네 편이다. 30년에 달하는 그의 활동 기간을 생각하면 과작이라 볼 수 있다. 과작인 만큼 피트 닥터의 각 영화에서 그리는 세계관은 창의적이고 정교하다.

피트 닥터의 필모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다. 부모가 아니라 제3의 존재가 어린아이를 관찰하고 돌보는 설정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반과 마이크, <업>의 칼, <인사이드 아웃>의 5가지 감정, <소울>의 가드너의 행보가 그러하다. <업>과 <소울>은 전혀 관련 없는 어른이, <몬스터 주식회사>와 <인사이드 아웃>은 상상친구가 아이의 보호자가 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차이는 있다. 피트 닥터는 이들이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에 함께 머무르며 응원한다는 상상력을 되풀이한다. 그들의 보호 아래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더해진다.

그의 영화는 분명 감동적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눈물을 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말하듯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적인 감정이어서가 아니다. 순간적인 감정보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관객을 데려갔기에 감동적이다. 피트 닥터의 상상력은 누구든지 한번은 경험했을 법한 성장통의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다만 성장통을 통과하는 순간에는 나만이 힘들다는 생각에 갇히기 마련이다. 피트 닥터는 그 순간을 겨냥한다. 그때 누군가 함께 있다는 상상이야말로 나한테 위로를 주기 마련이다. 또한 성장통을 경험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독창적인 캐릭터로 그려내고 그들의 역학 관계를 시각화해 보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이같은 스토리텔링은 성장통을 경험할 때의 내 경험을 이해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상상친구와 악몽을, <소울>은 사춘기를, <인사이드 아웃>은 가출 경험 등 인생의 흑역사를 감싼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피트 닥터가 설계한 세계관 가운데 가장 탄탄하다. 물론 신체과 감정이 움직이는 역학을 시각화한 것이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우디 앨런의 옴니버스 영화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1972) 중 7화가 그 사례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순간적인 반응이 아니라 유기체로 대하며 정교한 규칙에 따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를 새롭게 갱신한 사례다. <인사이드 아웃>의 플롯은 단순하다. 라일리가 탄생한 순간 그녀의 내면에 함께 탄생한 기쁨이의 탄생을 함께 그려낸다. 그녀의 성장기를 그려내며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분노가 탄생하는 과정이 소개된다. 각 감정은 본인의 역할에 따라서 라일리를 움직이게 하며, 본인의 활약에 따라서 핵심 기억을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다. 감정은 라일리가 잠들기 전까지 항상 모니터로 라일리를 관찰하면서 게임기로 조종하듯이 라일리를 조종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가 평생 자라온 터전을 떠나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는 순간과 거기서 경험하는 공포를 기쁨이의 모험담으로 그린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본부 바깥, 즉 무의식에 버려진 기쁨이와 슬픔이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쁨이는 언제나 슬픔이를 문제아로 여기며 슬픔이의 무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의식에서 그들은 라일리의 잊힌 상상친구 빙봉과 만나서 본부로 돌아가는 상황을 다룬다. 빙봉은 여러 차례 본부로 돌아가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사라진다. 기쁨이가 처음 슬픔을 느끼며 슬픔이를 감싸안으며 사건을 해결해가기 시작한다.

감독이 교체되기는 했지만, <인사이드 아웃 2> 또한 피트 닥터의 세계관이 뚜렷이 남아 있다. 아이스하키 선수로 막 활약을 시작한 라일리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중등부 아이스하키 시합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라일리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고등학교 하키부의 합숙 훈련에 초대받는다. 그 훈련에는 고등부 아이스하키의 전설적인 존재인 발렌티나가 있다. 그녀가 캠프로 가기로 한 날 그녀의 사춘기가 시작된다. 다섯 가지 감정만 있던 본부가 급작스레 철거되고 동경, 권태, 불안, 당황이 새 멤버로 영입된다. 라일리는 합숙 훈련에서 최선을 다해서 발렌티나과 코치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발렌티나의 팀에 영입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그 과정을 이끄는 감정이 기쁨이가 아니라 불안이라는 사실이다. 불안은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라일리의 신념을 망가뜨리며 그를 악몽에 빠뜨린다. 기쁨이와 슬픔이 등 라일리의 다섯 감정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추방하면서까지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2>는 불안이가 폭주하며 생기는 공황을 섬세히 다루면서 라일리가 최악의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을 통해서 관객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흥미로운 점은 감정을 게임화했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뼈대를 이룬 다섯 가지 감정은 MBTI의 시대에 보기에는 새롭지 않다. 초반에 각 감정을 소개하는 과정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게임적인 캐릭터 소개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저마다의 서사가 아니라 감정의 규칙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감정들은 각기 다른 색깔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를 선택하듯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이 감정을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인사이드 아웃>의 재미가 게임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 다섯 감정은 라일리의 1인칭 시점으로 세계를 보며 라일리를 조종한다. 게임에서 세계를 체험하는 방식과 같다. 라일리의 움직임은 다섯 감정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라일리의 행동은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을 안긴다. 라일리가 새로운 곳에 이사를 가고 친구를 사귀는 과정과 기쁨이를 비롯한 여러 감정이 미지의 무의식을 탐험하는 여정 또한 영화적이라기보다 게임 문법에 가깝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의 감정을 게임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이는 성장통에 깃든 무게감을 다섯 감정이 벌이는 게임으로 그려내며 우리에게 의문의 해방감을 안긴다. 이 영화가 규칙을 지킬 때 그에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는 게임의 긍정적인 면과 닮아 있어서다.

다만, 이번 2편에 이르러서 캐릭터가 9명에 이르며 혼란이 더해지고, 스토리의 균형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쉽다. 다섯 감정 외에도 새로운 감정들이 추가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각 감정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아 관객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는 마치 게임에서 지나치게 많은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하려 할 때 발생하는 혼란과 유사하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게임적인 스토리텔링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그림체가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기쁨이가 잊혀진 감정을 처리하는 무의식에서 마주한 여러 순간이 흥미롭다. 1편에서는 빙봉이 픽셀로 그려진 세계에 간다. 이는 <소울>의 두 악당이 신호 체계의 차원에서 그려진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다양한 스타일의 도입은 각 기억과 감정이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2편에서는 라일리가 어릴 적에 보았던 니켈로디언 스타일의 2D 애니메이션, 라일리의 내적인 이상형인 젤다 풍의 3D 그래픽 캐릭터가 그려진다. <인사이드 아웃>은 이질적인 둘 이상의 그림체가 공존하는 것이 무의식 속 세계라 보는 듯하다. 이는 무의식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여러 그림체에 접속할 수 있는 다중창이다. 최근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그려낸 경이로운 그림체의 충돌은 이를 잘 드러낸다.

<인사이드 아웃>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기존의 픽사 애니메이션과 달리 무의식의 다양한 층위를 시각화해서다. 무의식으로 추방된 기억을 다른 그림체로 시각화하면서 충돌하게끔 하는 설정은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설정이다. 안타깝게도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한계는 그림체의 충돌이 조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우위로 나아간다는 데에 있다. 이는 특정 그림체가 다른 그림체를 압도하거나, 특정 감정이 다른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표현될 때 발생한다. 이러한 접근은 무의식의 복잡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대신 특정 요소를 강조하는 데 그치게 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피트 닥터는 그의 필모 중 두 편에 걸쳐서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의 감수를 거쳤다. 경외심과 긍정을 연구하는 대커 켈트너는 <인사이드 아웃>을 설계할 때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하나는 감정이 곧 나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며, 감정이 과거의 정보를 검색하는 렌즈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감정이 비이성적이라기보다 사회생활의 문법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회에서 타인과 어우러지며 역할을 수행하듯이 감정도 각각의 역할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우리가 바깥에서 타인과 어우러지며 사회생활을 하듯이 감정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가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는 과정이라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대커 켈트너가 한 말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에 대한 명상"이다. 이 두 작품이 슬픔과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둘을 감싸 안는 것은 물론 과거의 실패까지 인정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무의식 너머로 추방당한 감정을 포용하고 신념을 이루는 신경망을 나무처럼 그려내 하나의 열매가 맺게끔 하는 것도 이 영화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은 의문이다. 우선 피트 닥터의 <소울>의 결론을 생각해보자. 피트 닥터의 세계관은 무의식의 무한함을 정리하려는 쪽에 속한다. <소울>의 22호는 디지털 세계에 머무르는 인터넷 폐인에 가까운 존재다. 그가 물리적인 실체를 터치할 수 없다는 설정, 일렉트로닉 느낌이 물씬 드는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과 제리라는 악당이 비트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소크라테스 등의 위인과도 말싸움을 벌이며 편향된 사실에 잡혀 있다는 것에서 우리 시대의 청년과 유사성이 감지된다. <소울>의 하이라이트는 22호가 가드너의 몸에 이입되어 낙엽을 보는 장면이다. 디지털에서는 타인과 전투적이었던 22호는 인생의 경외감에 압도당한다. 22호는 경외감에 감화되어서 생의 의지를 회복한다. <소울>의 해결은 편의적이다. 현대의 어린이에게 고전적 삶을 체험하게끔 하면 그들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에 기반해 있어서다.

마찬가지로 <인사이드 아웃>도 편의적인 지점이 있다. 불안이가 통제하는 악몽 공장은 마치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현대적인 미디어의 풍경과 비슷하다. 라일리가 본인이 사랑했던 밴드의 음악을 부정하는 등, 취향으로 서로의 위계를 가르는 힙스터의 소비 양상도 더없이 지금의 SNS 세대의 풍속과 유사하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라일리가 어릴 적에 본 2D 애니메이션과 고전적인 게임이 기쁨이를 본부에 데려다주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다. 피트 닥터의 세계관은 현대적 불안을 감지하기는 하나 결국은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존해 해결하는 한계를 보인다. 가령 기쁨이가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이 무의식의 여러 층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감정적으로 옹호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과 함께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경외감이 우리의 쉼터가 될 것이라는 감독의 다정함이, 기어이 상상친구가 되겠다는 어른의 마음이 절실해서일 것이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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