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 안 훙] '씨클로'를 탑승하여 먹는 '프렌치 수프'의 맛
[트란 안 훙] '씨클로'를 탑승하여 먹는 '프렌치 수프'의 맛
  • 이현동
  • 승인 2024.06.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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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감각의 충돌, 트란 안 훙의 영화적 풍경들"
ⓒ <여름의 수직선에서>(2000)

90년대 초는 공교롭게도 천 카이거의 <패왕별희>(1993), 이안의 <결혼 피로연>(1993), 차이밍량의 <애정만세>(1994)가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동양 감독들의 선전이 예고된 시기였다. 트란 안 훙도 두 번째 장편인 <씨클로>(1995)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이 대열에 합류하였고, 그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이는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을 획득하면서도 그 공간과 담론 안에서 반경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갱신하기 위해 트란 안 훙 또한 도전적인 시도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여름의 수직선에서>(2000) 이후 수상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혹평을 받는 작품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그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그가 혹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초기 성공작들이 대중의 미적 판단 기준이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시각 이미지 수용의 민주화, 즉 "대중의 부상", "나날이 강도가 더해 가는 대중의 움직임"과 얽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군중의 복제성을 논구했다. 벤야민은 저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작품이 지닌 독특하고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예술의 경험이 민주화되고 대중화된다고 보았다. 그는 대중이 예술작품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가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은 트란 안 훙이 연출했던 독특한 동양적 특성을 배제하고, 보다 상업적이고 스펙터클한 요소를 시도하려는 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간파하게 된다.

 

ⓒ <씨클로>(1995)

트란 안 훙의 작품들을 정리해보면, 베트남을 배경으로 촬영한 초기작 <그린 파파야 향기>(1993), <씨클로>(1995), <여름의 수직선에서>(2000)는 대체로 평단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후 발표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9)와 <노르웨이의 숲>(2011), <이터니티>(2016)는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 특히, <노르웨이 숲>의 경우,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명확한 서사를 갖고 운용되지 않는 것을 고려한다면, 트란 안 훙의 성공과 실패는 '서사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혹평의 시작인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관찰하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우선,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가 왜 베트남에 돌아가서 영화를 제작했는지를 묻게 된다.

트란 안 훙은 1962년 베트남 남부 다낭에서 태어나 1975년까지 그곳에 거주하다 월남 패망으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가족 모두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는 첫 번째 장편인 <그린 파파야 향기>의 서두에서 특정 장소인 사이공과 특정한 시기인 1951년을 명기한다. 이때 관측되는 목가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는 그의 상황과 반대되는 반자전적 성격을 드러내며, 그가 내면에 갖고 있었던 상상의 노스탤지어를 펼쳐 보인다. 또한 흥미롭게도 베트남이 아닌 프랑스 세트장에서 촬영되면서 이 영화는 실상 베트남 외부로 나가지 못한 채 가상의 공간에 머무른다. 롱테이크를 사용한 첫 장면은 중산층 가정에 하녀로 취직하려는 시골 소녀 무이(만상루)가 그 가정을 출입하기까지 이리저리 세트장을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베트남 외부로 온전히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란 안 훙의 롱테이크는 제한된 상황에서도 동양이란 공간을 설득력 있게 구현할 뿐만 아니라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묘사함으로써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최고 신인에게 주어지는 '황금 카메라' 수상과 더불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첫 작품의 성공에 이어 베트남으로 장소를 옮긴 영화 <씨클로>와 <여름의 수직선에서>를 통해 그는 더욱 자유로운 베트남이라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었다. <여름의 수직선에서>가 <그린 파파야 향기>의 연장선이라면, <씨클로>는 베트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문제작으로 그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양조위의 출연과 배우로는 기록이 전무한 레반록의 얼굴은 초기 차이밍량 영화와 탐미적인 미학을 보여주었던 왕가위 영화가 동시에 떠오르기도 한다.

'씨클로'는 베트남의 운송수단을 가리키는 단어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청년의 삶을 반추하는 상징적 의미로 쓰인다. 갱스터와 매춘, 폭동이 난무하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극적 서사는 전작과는 다르게 자연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자연은 프레임에서 종적을 감추고 그곳엔 폐허가 된 건물과 욕망이 가득한 인간들이 그 공간을 채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급 아파트, 테니스 코트, 수영장과 같은 건축물과 수많은 자전거의 행렬을 보여주는데, 이는 해결되지 않은 계층 격차가 이어지고 있음을 폭로한다. <씨클로>는 베트남이라는 공간과 장르적으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여름의 수직선에서>가 가족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좋은 평을 끌어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그는 베트남을 떠나 자신의 야심을 펼쳐 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그의 영화가 잃어버린 것

첫 번째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던 작품인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전작에 이어 무려 9년이 지나 발표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배우들의 캐스팅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아시아 대륙에서 큰 스타 중 하나인 기무라 타쿠야와 이병헌, 조쉬 하트넷과 같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등장은 이 영화의 흥행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화려한 비주얼과 더불어 <씨클로>를 넘어선 폭력성, 내러티브를 방치하면서까지 얻으려는 가학적 요소는 감각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였다. 그러나 트란 안 훙은 이 영화를 "신약성서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 호명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기하게 하는 십자가를 소환해 냈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그가 갖고 있었던 '직관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서사'를 붕괴시켰다.  초기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인물들 간의 깊은 연결성과 직관적인 이야기 전개가 사라지고, 대신 과도한 상징성과 폭력성이 자리 잡으면서 점차 그의 몰락을 예고하였다.

 

ⓒ <노르웨이의 숲>

상징성을 제거한 반대의 경우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원작으로 한 <노르웨이의 숲>은 전작의 실패를 인식했는지 서정성을 강조한 영화로 돌아왔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와 <여름의 수직선에서> 같은 플롯을 생각나게 하는 이 영화의 구조는 잠시 그의 영화가 잃어버렸던 것을 복구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노르웨이의 숲』을 해석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소설의 주요한 내러티브를 쫓아가긴 하지만, 하루키 텍스트가 나타내는 일상에서의 낯선 감각과 현실 구조를 뒤흔드는 기묘한 요소는 트란 안 훙의 톤과 이질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또한, 몇몇 장면은 짧게 편집되고 몽타주가 유연하게 연결되지 못하면서 그의 장점마저 드러내지 못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문학과 사회 하이픈』(2022년 가을호)에 수록한 「문학과 위생: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트란 안 훙의 <노르웨이의 숲>의 실패 원인을 "무라카미적 텍스트를 하마구치처럼 용의주도하게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의 소설 자체를 서사적 뼈대로 삼아 고스란히 따라갈 때 얼마나 공허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지적하며 분석한다. 그의 말대로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하루키 소설을 각색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것은 서사 구조를 온전히 따라가기보다 이를 기능적으로 사용하고, 이야기를 지탱할 수 있는 다른 요소를 추가했을 때 이루어진 것이었다.

트란 안 훙의 영화에서 강조되고 있는 '자연'은 단순히 기술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칸트가 말했던 자연을 아름다운 형태로 느끼는 단계로 나아가길 은연중에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의 우월성을 통해 도덕적 규정으로 나아가는 합목적성의 칸트 미학은 영화가 스펙터클로 라벨링 되면서 종적을 감추었다. 칸트는 이런 합목적성을 통해 자유로운 유희를 감응하길 희망했다. 이미 기계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롱테이크는 느리고 긴 설교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비록 실패로 치부되는 작품일지언정, 트란 안 훙의 개성을 발휘한 작품이라는 점은 유효할지도 모른다.

 

프랑스로 무대를 옮긴 다음 작품 <이터니티>도 안타깝게 대중들과 평단에 외면을 받았다. 트란 안 훙은 두 번의 실패에도 성공을 거두었던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로 돌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이 영화 또한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이야기이며,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면서 수년에 걸쳐 일어나는 한 부르주아 가문이 겪는 삶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덤덤하게 트란 누 엔 케의 음성으로 해설된다. 이러한 해설 속에서 감정의 고조 없이 흘러가는 이 영화는 사실 그의 영화가 잃고 있었던 것을 복권하는 계기로 보인다.

트란 안 훙은 <이터니티>에서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명상적 표현'을 회복하려 한다.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 기억과 추억은 영화 안에서 명상적으로 작용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스오버는 명상을 이끄는 에세이가 되며 계속해서 복제되는 이야기는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며 영화 전체를 롱테이크로 구조화한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현대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이터니티>는 <씨클로>에서 계층과 계층을 연결했던 것과 같이 이번엔 시간과 시간을 접합한다. 이 영화가 증명한 건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을 텍스처로 한 공간적 역량을 끌어 올린 양식이 프랑스에서 적절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이 영화가 서사를 구현하는 데 약점이 드러났을지라도, 트란 안 훙이 창조한 장소의 독특함은 분명 주의깊게 볼만 한다.

트란 안 훙의 영화들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자기만의 길을 모색해왔다. 그의 영화 여정은 초기의 성공과 이후의 좌절, 그리고 서서히 재건되는 창작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과도한 상징성과 폭력성,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서사적 공허함, 그리고 <이터니티>에서의 명상적 복권 시도까지, 트란 안 훙은 비록 몇 차례의 실패를 겪었지만, 그의 독특한 감각과 미학적 접근 방식은 여전히 그의 작품을 빛나게 하는 요소이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스크린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 순간을 새롭게 빚어내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프렌치 수프> ⓒ 플레이그램

다시 또 다시

<프렌치 수프>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까지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마티유 뷔르니아가 그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가 다시금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게 보면 직관적이라는 데 있다. 미학적으로 보면 직관성은 영화의 정체성을 규명해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칸트에 의하면 직관이란 사물과 직접 연결되어 있을 때,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남긴 표상으로서 경험과 지식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직역하면 사물의 맛(The taste of thing)인데, 이는 칸트의 물자체(thing-in-itself)라는 개념과 잘 어울린다(칸트의 물자체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넘어 존재하는 실제 사물의 본질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본질을 직접 인식할 수 없고,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즉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에서 '사물의 맛'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본질적인 맛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개념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다만, 우린 영화에서 종종 영화 밖, 자신의 현실을 상상하고 동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기억을 끌어모아 저편에 있는 감각을 진동한다. 그것은 도무지 규정할 수 없지만 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를 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을 회고하는 인물과 같이 우리는 <프렌치 수프>를 통해 지극히 일상적인 요리를 만드는 과정, 음미하는 순간, 대화를 추억하는 데 의식을 기울인다. 시각적으로 이 영화가 확보한 모든 이미지는 사랑이라기보다 기억에 가깝다. 첫 작품 <그린 파파야의 향기>가 첫사랑의 향기를 더듬거리며 후각이란 감각을 영화 안에서 표현하였다면, <프렌치 수프>는 미각을 통해 다시금 사랑을 재현해 낸다.

다른 한편으로 <씨클로>에 찬사를 보냈던 많은 이들이 <이터니티>가 배경으로 한 부르주아적 양식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식이라고 말했던 바 있다. 혹자는 <프렌치 수프>까지 이어지는 유사한 계층을 배경으로 한 것에 대해 '구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작이라 불렸던 이전 방식에서(정치적, 형식적, 장르적이든 관계없이) 멀어진 트란 안 훙은 시대 배경과는 무관하며 일상에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작품을 연출해 냈다.

 

<프렌치 수프> ⓒ 플레이그램

<프렌치 수프>는 19세기 프랑스 남서부의 요리사이자 오랜 파트너 외제니(쥘리에트 비노슈)와 미식가인 도댕 부팡(브누와 마지멜)이 손님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년 동안 함께 일한 둘은 숙성된 와인과 요리의 완성도와 어울리는 로맨틱한 사랑을 키워낸다. 그러던 중 외제니가 병으로 눕게 되고, 도댕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간호하지만,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트란 안 훙은 롱테이크로 영화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조율해 낸다.

여기서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게 하는 롱테이크는 영화 전체를 통솔하며 음식을 요리하고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며 특히, 영화가 구조적으로 운용되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요리는 시간의 예술로써, 재료를 보관하기 위한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고, 모든 음식은 실제였기 때문에 그 과정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영화에서 큰 존재로 자리한다. 이때, 배우는 NG가 나지 않도록 여러 번 연습 기간이 필요했으며 카메라 동선과 움직임은 사실 안무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어야만 했다. 이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트란 안 훙은 음악을 배제하고 주방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소리를 부각하기도 했다. 360도 패닝은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는 유의미하게 감각과 교감한다. 시간을 점프하는 이 숏은 우리 감각과 인식 속으로 들어와 기억을 교란하고 접합한다.

영화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지만, 우리의 인식은 변화한다. 부부가 함께했던 주방을 비추는 카메라와 함께 그들의 대화가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한다. 계절 이야기가 오고 가다 과거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외제니는 묻는다. "나는 당신에게 요리사야, 아내야?" 그는 "요리사"라고 말한다. 왜 "아내"가 아니라 "요리사"일까. 단순히 과거의 기억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함께했던 요리사의 행복이 더 컸던 것일까. <프렌치 수프>는 <그린 파파야 향기>보다 더 나아가 감각이 얼마나 순수하게 반응할 수 있을지를 시험한다. 계절마다 또는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마다 변화하는 빛의 방향과 날씨는 이 영화가 얼마나 긴 롱테이크를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내포한다.

<프렌치 수프> ⓒ 플레이그램

 

최근에 베트남 감독인 팜 티엔 안의 <노란 누에꼬치 껍질 속>(2023)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작품은 2023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30년 전에는 트란 안 훙이 <그린 파파야 향기>로 동일한 상을 받은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혹은 왜 여전히 명상적이라 불리는 롱테이크 기법이 높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하는 감독 중 하나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 시간과 인위적으로 조작된 시간은 마치 서로 직경이 다른 수도 파이프가 서로 연결될 수 없듯이 영화 속에서도 서로 연결되기 힘들다. 영화의 리듬은 편집된 쇼트의 길이가 아니라 쇼트들 속에서 흐르는 시간의 압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린 그의 말처럼 영화를 통해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예술의 의미, 그 구체적인 여정에 대해 탐구한다. "예술은 영혼 너머의 영역으로 가는 신비로운 도정"이라는 타르코프스키의 말은 트란 안 훙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테다. <프렌치 수프>는 시간과 감각의 깊이를 탐구하는 영화적 여정을 보여준다. 트란 안 훙의 영화는  단순히 시각적 경험을 넘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변화시키며,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재탐색할 수 있도로 이끈다. <프렌치 수프>의 성공은 분명 그가 여전히 강력한 창작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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