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ABOUT] 유실물 보관소: "부산을 재발견하다"
[TALK ABOUT] 유실물 보관소: "부산을 재발견하다"
  • 함윤정
  • 승인 2024.06.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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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전시 연계 토크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두 항을 동시에 괄호 친 명제 앞에서 묻게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산일 수 있는가?

부산현대미술관의 대규모 기획전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은 지역 소멸 위기의 시대에 '로컬리티'를 질문한다. '전술'이라 이름 붙여진 일곱 개의 섹션을 마주하는 동안, 전시의 관람객은 부산 근방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작가들이 '로컬리티'를 통해 각자의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그중 네 번째 전술 '그 풍경은 늘 습관적으로 하듯이'에서는 국내외 19인의 작가가 연출한 2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극장 을숙'의 스크린에 투사된 작품들은 결코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역동적으로 영화가 비추는 시대와 장소의 풍경에 관한 물음들을 환기한다.

지난 5월 25일, 을숙도에 위치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해당 전술에 참여한 오민욱, 박지선, 윤지혜 감독과 전시 연계 토크 '유실물 보관소'를 진행했다. 구획된 영토 사이 깊은 해협에 수장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누군가의 편지(오민욱 <해협>),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왔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박지선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 <마녀들의 카니발>), 모두가 잠든 시각 픽션의 장소를 유영하는 인물을 비추는 카메라(윤지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영화를 시작한 계기부터 작품 제작에 관한 일화, 매체의 경계와 예술의 자리에 대한 생각까지 서로 다른 작품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세 감독의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그러한 차이와 간극 사이로 미묘하게 공명하는 무언가가 환기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곱씹으며 예술이란 명료한 인식이 선행한 후 그것을 따라 그리는 일이 아니라, 물음을 거듭한 후에야 흐릿하게나마 형태가 드러나는 사태를 매만지는 일이 아닐지 생각했다. 각자의 실천을 한데 모은 이 시간이 그들 각자가 걸어갈 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쓰이길 바란다.

 

함윤정

부산현대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전시 제목이 내용과 근사하게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은 '전술'이라는 용어로 총 일곱 개의 소주제를 소개하고 있고, 그중 네 번째 전술 '그 풍경은 늘 습관적으로 하듯이'는 오민욱 감독이 추진 위원으로 참여한 전시의 한 꼭지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쓴 텍스트를 발췌한 구절인 제목이 눈에 띄는데, 해당 전술에 관한 코멘트를 부탁한다.

오민욱

'극장 을숙' 입구에 전술에 관해 설명하는 텍스트가 비치되어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좋겠다. 사실 벤야민의 텍스트가 부산이라는 로컬리티를 적절히 담아내고 있거나, 이를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이를 인용한 것만은 아니다. '유실물 보관소'라는 제목의 텍스트가 실린 『일방통행로』라는 저술 작업뿐 아니라, 벤야민이 생전 동료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을 열람해보면 그가 당대의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벤야민은 비록 특정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지만, 자신이 헤쳐나가야 하는 시공간적 상황에 대해 무척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만들어낸 시청각적 작업물을 보면서 각자가 갖고 있는 전술과 태도가 특정한 궤적과 형태로 기록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의 텍스트가 부산이라는 곳과 연결될 때 조응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용했고, 같은 맥락에서 '유실물 보관소'라는 자리를 마련해봤다.

함윤정

네 번째 전술에서 소개되는 스물세 편의 영화 중에서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감독 뿐 아니라 국내외의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행사를 함께하게 된 박지선, 윤지혜 감독의 작품을 나란히 두고 보며 어떠한 모종의 관계성을 느꼈는지.

오민욱

시청각적 예술 작업이란 분리되어 있거나 파편으로 흩어져있는 것을 사람의 손과 생각을 통해 한데 모으는 것이라 생각한다. 두 감독이 단순히 상황과 관습에 기대어 '여성'과 '지역'을 바라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들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 태도가 작품 속에서 분명하게 읽혀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우선 박지선 감독의 두 작품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2011)와 <마녀들의 카니발>(2022)을 감상하며,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방법론이 감지되는 와중에도 굉장히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음성적인 참여를 통해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 정서의 표면을 환기하는 것인데, 감독 자신이 카메라 뒤에서 취하고 있는 제스처가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에게 유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같은 다큐멘터리 창작자로서 그것이 박지선 감독의 성격과 그가 살아가는 방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윤지혜 감독의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2022)는 전형적인 드라마로 시작하는 작품이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물과 사건, 서사 등이 그 전형을 무너뜨린다. 이후로는 인물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하는데, 그 과정 또한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단순히 소외된 존재로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영화 속에서 복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장면들 사이에 여성을 놓아두었을 때 그들 스스로가 생명력을 갖고 앞으로 향해간다는 인상을 두 작품 모두에서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박지선 감독의 작품은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고, 윤지혜 감독의 작품은 픽션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가 '영화'라는 방법을 놓지 않으면서 여성 스스로 여성을 그려나간다. 그런 점에서 해당 전술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작품 중 두 감독의 작업을 연결 짓는다면, 전시의 주제와 각 전술들이 전개되는 맥락을 확장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윤정

오민욱 감독이 언급한대로 두 감독의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와 그 방법론은 서로 매우 판이하다. 박지선 감독은 두 편의 장편을 모두 논픽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윤지혜 감독은 이전의 단편에 이어 또다시 픽션의 장르 안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두 감독에게 작품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제작 당시에 영화라는 실천을 행하며 주요하게 가졌던 문제의식에 관해 질문하고 싶다.

박지선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는 과거 부산의 여성노동자였던 분들을 조명하는 영화다. 방직 공장이나 신발 공장에서 일하며 당시를 주름잡았던 언니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데, 해당 작품을 발표한 시점으로부터 10년 뒤에 만든 <마녀들의 카니발>은 현재 삶의 터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작품 사이에 시간적인 공백은 있지만, 부산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스스로 기획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지역에서 기록해야 할 이야기와 그 실천을 다큐멘터리로 행할 수 있을지 제안을 받은 입장이었다.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의 연령대가 높지 않은 편이라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근현대사를 다루게 됐는데, 우리 모두가 몰랐던 부분을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부족하지만 도전해보겠단 태도로 시작했다. 탐색, 수집, 감탄 등 여러 경험과 감흥이 엉켜 비로소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마무리된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윤지혜

영화를 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기획 당시의 기억이 꽤 희미해져서 한참을 생각해봤다. 다소 모호한 말일 수 있지만, 돌이켜보니 두 가지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더라. 내용적으로는 '기다리는 마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고, 형식적으로는 최대한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이러한 두 가지 생각이 결합되어 완성된 픽션이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다. 사실 영화를 찍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제작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 혹은 실천이라 할 만한 것들이 굉장히 사적인 것이라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될지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오히려 작품을 다 만든 후에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발견하려 했다는 점에서 순서가 바뀌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 오민욱 <해협>
ⓒ 박지선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

함윤정

작품의 형식적인 차이만큼이나 기획 당시의 입장 또한 무척 달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수집'과 '확인'이라는 표현이 그 차이를 더욱 확연하게 감지하게 만든다.

지금 행사가 진행되는 공간이자 네 번째 전술의 작품들이 상영되는 이곳 '극장 을숙'은 미술관 내 영화관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장소다. 이전에도 영화제나 작은 상영회 등의 경로를 통해 작품을 상영했을 텐데, 로컬리티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기획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다시 바라본 경험에 관해 질문하고 싶다. 본인의 영화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 전시장에서 일련의 맥락 속에서 이어지는 것에 어떤 감흥을 받았는지, 또 이러한 방식이 제작 당시의 실천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윤지혜

일주일 전쯤, 내 영화를 상영하는 날에 맞춰 미술관을 방문했다. 전시를 보다가 이곳 '극장 을숙'에 들어왔을 때 굉장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이토록 영화관과 유사한 환경으로 구현되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우라가 있는 공간이라 해야 할지, 만약 이러한 환경이 구현되어있지 않았다면 잠시 들어와 앉았다가 금세 공간을 빠져나갔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못 나가겠더라. 극장엔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싶었다.

해당 전술이 하나의 기획 아래 묶여있지만, 한편으론 이 공간만 단독적으로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극장이란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무섭고 또 놀라웠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아직 많은 작품을 연출하진 않았지만, 항상 작품을 만든 후에서야 발견하게 되거나 생각하게되는 바가 있다고 느낀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도 전혀 의식하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 또한 이후에 발견한 것들 중 하나였다.

박지선

영화 작업할 때 리서치 작업을 많이 하지 않나. 로케이션을 어떤 식으로 가져가야할지, 즉 옛 사진 속에 있는 장소를 영화에 담기 위해 어떻게 촬영을 시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처음 전시를 보러 왔을 때, 그 과정에서 맡았던 냄새와 공기, 나에게만 크게 부각되었던 장소의 아주 작은 레이어와 조각이 이곳에 펼쳐져있어 아주 놀랐다. 나의 경험과 비슷한 것부터 내 경험과는 달라진 것, 심지어 내가 본 것과 정말 똑같은 것도 있었다. '이 작가님도 이걸 보셨다고?' 하면서 흥분이 됐고, 그래서 어떤 전시보다 공감되는 요소가 많았다. 그 작가와 나는 서로를 모르지만, 모종의 연결 지점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신기했다.

'극장 을숙'에 영화를 보러 들어오기 전에 그런 레이어들을 훑고 들어온 건데, 관람객 분들이 영상이란 매체로 이러한 느낌을 재차 받을 때 어떨지 궁금해져서 미술관 측에 관람객의 반응을 묻고 싶기도 했다. 부산에 바다가 많잖나.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서 마치 시원한 바닷바람 사이로 조각보가 여기저기 휘날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다른 관객에게도 나의 영화가 그런 풍경 중 하나로 느껴질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함윤정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부산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며 특정한 로케이션이 각기 다른 작품에서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비록 이번 전시에서는 상영되고 있진 않지만, 오민욱 감독의 <유령의 해>(2022)와 윤지혜 감독의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는 부산진구 좌천동 인근의 같은 골목길이 등장한다. 조금 다른 예로는, 작품 내부적인 차원을 넘어서 작품과 창작자의 실제 삶 간에 중첩되는 공간적 맥락의 이야기도 있다. 이를테면 박지선 감독의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 되다>에서 인터뷰 장면을 통해 '삼화고무' 공장이 계속해서 환기되지 않나. 최근 오민욱 감독이 진행한 <흐르고 흘러-서신교환>이라는 프로젝트를 보면, 해당 공장 부지에 세워진 아파트에 오민욱 감독이 살고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이러한 공간적 겹침, 혹은 어쩌면 어긋남이라 할 수 있는 미묘한 지점을 발견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오민욱

감성적인 접근을 통과하며, 때로는 어떤 것을 대비하고자 하지만 대비할 수 없는 요인들이 많을 때 소위 징후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윤지혜 감독이 언급한 것처럼 '이후'에서야 알게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각 작품에서 해당 지점을 발견하고 나도 많이 놀랐다. 박지선 감독이 연출한 영화와의 접점의 경우엔,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되다>라는 작업이 나의 상황보다 선행된 것이고, 박지선 감독님의 기준으로는 여공들이 시간이 작품의 시간보다 이미 선행된 것이다. 이처럼 선행된 시간들이 '이후'를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오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모든 일은 의식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뒤섞인 채 벌어진다.

'유실물 보관소'라는 텍스트를 발췌해놓고 보니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것을 알고자 했는지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지와 우리가 유실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이 보관되어있는 유무형의 장소로 접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가끔 공항에 들를 일이 있다. 가까운 김해국제공항 내부에 유실물 보관소라는 공간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있는지 보면 굉장히 흥미로울 거다.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의 정서는 되찾으려는 것이지 않나. 그런데 이처럼 되찾고자 하는 정서를 구현해주는 건축적 디자인, 즉 거대한 공항이라는 설계 내에서 유실물 보관소의 위치는 매우 접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미술이나 영화작업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유실물 보관소라는 장소와 은유적으로 공명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지선, 윤지혜 감독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의 경험이 뒤늦게 도착하는 것을 발견하며, 문득 예술가로서의 이 일을 계속 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두 감독의 작품을 보고난 직후가 아니라, 수일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작품과 내가 경험했던 바를 이어붙일 수 있었다. 이 경험이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이 갖게되는 실천의 파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계속 이 일을 사랑하며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이것이 내가 기획한 전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내가 살고있는 도시에 대한 단상을 전하는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윤지혜

나 또한 그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는데, 서로 다른 창작자들과 작품을 공유하다보면 어쩌다가 촬영한 장소가 같은 경우가 많더라. 이때 연결의 기점이 무엇일지 오늘 행사장에 오면서도 생각하게 됐다. 그것이 대상과 장소를 기점으로 이어져있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소급해가는 과정인 걸까. 이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박지선

내 작업은 외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보니,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의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집한 여러 조각들을 모아 작품으로 엮어내면서 결국 우리가 뭘 유실했는가를 모른 채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작업을 하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 혹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들의 결락을 누군가는 지탱하고 있었음을, 누군가는 허물어진 것 위에 무언가를 덧입히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을 포착한 나는 어떤 위치에서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나의 의도보다는 영화에 나오는 분들의 목소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위치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윤지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함윤정

부산의 로케이션 활용과 작품을 통해 이어지는 공간의 맥락에 대해 질문을 해봤다. 부산에서 살아가며 영화 작업을 이어가는 일에 관한 저마다의 생각이 궁금하다.

오민욱

이전 질문에서 작품이 미술관 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산시민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의 어떤 시설(하야리아 부대)을 찍은 적이 있고, 지금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원이 된 그곳을 나 또한 찾곤 하며 드는 생각인데, 공원이든 극장이든, 미술관이나 박물관, 학교와 교도소 등 '박스'로 이뤄진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모두가 거의 동일한 기능을 하는 장소 같다. 물론 목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모두가 결박과 통제라는 동일한 제스처를 취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오늘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전시를 본다는 것과 영화를 본다는 것이 참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앞선 생각과 이를 이어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부산이 참 실체가 없는 도시구나'싶은데, 과연 우리는 부산 안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사는가 묻게 된다. 다들 마찬가지이겠지만 그저 이런저런, 그때그때의 물음들을 가져보는 중이다.

박지선

부산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일에 대해 크게 의식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든 영화 작업을 했을 것 같다. 다만, 앞으로의 작업과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화두와 연결지어서 이야기를 한다면 부산이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연출한 두 작품 모두에는 부산으로 이주한 여성, 부산에서 태어난 여성, 부산을 곧 떠날 예정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나에게는 '부산'이라는 곳이 갖고 있는 로컬리티가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많이들 오기도 하지만, 또 많이들 나가는 곳이라는 것. 특히 여성들에게 말이다. 그래서 이 도시는 이들의 노동과 삶을 어떻게 기록하고 또 기억하고 있는지의 측면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일단 기록 자체가 없다. 지금은 여성 서사의 작품이 많지만, 언론과 미디어에서 지역의 여성에 대한 이전의 기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더라.

다큐멘터리 작업 과정이 사실 이런 것에 대한 의문을 품는 과정과도 같았다. 내가 기록해둔 것이 정말 전부라면 이 기록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됐다. 이를 누군가와 꼭 나누고 싶고,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하고자하는 분들에게 이 기록들이 잘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게 된 거다. 그래서 기록학에 대한 공부를 하며 이를 예술적인 작업과 연결짓는 것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있다.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 중 일부는 계속 그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고, 세월이 흐르고 연령대가 올라감에 따라 또다른 자리에서 활동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나의 작업이 곧 지역 여성의 인권운동에 대한 프롤로그 같단 생각을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다 담으려 하기보단, 가장 우선적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역사부터 찾아나서야겠단 고민을 하는 중이다.

윤지혜

조금 우매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선 이야기와 접목해서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단순히 그랬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나서 발견되는 바가 있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를 촬영할 때 카메라에 부산의 허물어져가는 장소들을 많이 담았다. 로케이션 답사를 하면서도 알게된 바가 있지만, 그 이후에도 영화의 촬영 장소가 과거에 무엇을 위한 공간이었는지 알게 되기도 했다. 알고보니 시멘트 공장이었던 곳도 있었다. 금방 박지선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번 서로의 작업 방식이 완전히 반대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음 작품을 만들게되면 순서를 바꿔볼 수도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함윤정

끝으로 역사와 기억의 관계 속에서 영화가 가지는 임무의 측면에서 예술의 실천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 창작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다.

오민욱

내가 들은 게 맞다면, 오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미술관 건물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라. 아마 그 소리를 들으신 분들도 있고 듣지 못하신 분도 있을 거다. (*토크 자리를 마치고 극장을 빠져나오며, 이 소리가 극장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작품 <바다에서 온 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모두는 주변에 실제로 놓여져있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다. 촬영이든, 녹음이든,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든,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수집해서 어떤 작품으로 전달하는 작업이 곧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 여기는데, 요즘은 그것 밖에 없는 걸까 생각을 한다. 영화를, 더 넓게는 예술이라는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필요한 시대이지 않나 싶다.

영화는 영화의 자리를 잃은지 굉장히 오래 되었고 예술 역시 예술의 자리를 잃고있지 않나. 물론 나는 창작자 입장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지금 영화와 예술의 자리는 어디인지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영화와 예술이 우리가 보거나 듣지 못한, 경험의 취약성을 충분히 메워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제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자리와 같이 '유실물 보관소'에 아카이브로 쌓이고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언급한 공항의 사례를 떠올릴 때, 유실물을 보관하는 구석진 곳이 아니라 보딩패스를 구입하는 매표소나 생수를 구입하는 편의점처럼 경험의 취약성들을 열람하고 구입하는 일이 좀 더 열린 자리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방식으로 나름의 창작을 이어가는 게 좋을지 거대한 산을 계속 마주하는 느낌인데, 그 와중에 영화와 예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박지선

늘 어떤 비장한 각오를 갖고 작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를 살아왔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내일도 살아갈 분들이다. 그들의 타임라인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며, 나 또한 나대로의 타임라인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분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나는 지점이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의 행사처럼 다양한 작업을 엮어보는 기획, 즉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더욱 입체적으로 만나는 계기를 만드는 게 하나의 전술이자 방법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실천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고 뭘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을 때, 사실 내가 지금껏 해온 것을 유지하는 일도 어려울 것 같다. 향후 몇 년은 특히 더 그럴 텐데, 나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자리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처할 거라 생각한다. 본연의 예술적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생태적 기반이 다져질 필요성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

윤지혜

두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확실히 '유실물 보관소'란 제목을 참 잘 지었단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런 이야기가 조금 낯간지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늘 대화를 통해 내린 소기의 결론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인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런데 많은 방법 중 나는 왜 영화 작업을 할까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영화라는 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박지선 감독의 작품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누군가가 평생 간직하기만 했던, 그동안 세상에 내보여지지 않았던 마음과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게 구현되어 관객인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나. 영화가 이런 마법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이 내게는 영화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그 이유에 대한 물음처럼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라성같은 감독님들의 인터뷰를 가끔 찾아보는데, 이 물음에 대해 자신있게 답하는 분들이 많더라. 나 또한 그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보겠다고 답하고 싶다.

 

ⓒ 오민욱 <해협>

관객1

다행히 오늘 행사에 참여한 감독님들의 작품을 다 보았다. 이번 행사 제목이 '유실물 보관소'이지 않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을 유실하고 또 습득할 수 있다. 박지선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잊고있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딱 내 시절의 이야기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대적인 정신을 새롭게 찾을 수 있었다. 윤지혜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는 정서적인 것을 다시 찾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내 딸이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나이대인데, 딸이 지금 잃고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중에 습득할 것은 무엇일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그리고 오민욱 감독의 영화를 본 후에는 내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죄의식이 밀려왔다. 대만 해협과 대한 해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시대적으로만 본다면 내게 굉장히 가깝게 다가와야 할 것임에도 그 모두가 내게 전혀 낯설었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된 거지. 그래서 만약 이 전시를 통해 네 번째 전술을 만나지 않고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내게 그 장소들은 영원히 습득해야할 무언가도, 잃어버린 무언가도 아니었을 거라 생각도 했다. 네 번째 전술을 기획한 오민욱 감독에게 질문하고 싶다. 첫 번째 전술 '요충지: 소문의 곳'에서부터 두 번째 전술 '체화된 기억'을 지나, 세 번째인 '미래로의 연결망'까지의 맥락은 나름대로 이해를 했는데, '그 풍경은 늘 습관적으로 하듯이'가 네 번째 전술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전의 전술에서 표현된 것들이 늘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풍경이라는 뜻인지, 이와 다른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민욱

우선 작품들을 다 봐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몽타주'를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몽타주에는 기계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이 있지 않나. 사실 나도 이것이 어떻게 네 번째 전술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답을 드리자면,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엔 그것을 통과하거나 접하는 일이 동반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게 영화이자 예술의 원리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신체를 통과하거나 반사된 빛이나 소리를 보거나 듣는다. 이 모든 게 독자적인 의미만으로는 다 읽혀지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번 전시의 전술들 역시 서로가 공명하는 상황들 속에서 수용자가 저마다의 의미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시 제목 또한 '이것은 부산이다'가 아니라,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이기 때문에 각자가 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관객2

어느새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 서른이 되면 인생이 무엇인지 가닥을 잡을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이 되어도 모르겠더라. 마흔에는 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십이 넘은 지금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세 분의 감독이 용감하다 생각한다. 나는 일반 직장에 다니는 소시민에 불과한데, 앞에 계시는 분들은 영화라는 예술을 하고 계시니까. 이처럼 젊은 분들이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을지, 계속해서 영화를 하는 이유와 그 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박지선

영화감독이 되는 데 있어서 어떤 비장한 각오가 있진 않았다. 물론 영화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학창시절 수업도 거르고 영화제에 다녔던 일화는 있었지만, 실제로 영화감독이 꼭 되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대학 시절, 우리 학교에 전국에서 마지막 남은 국가보안법 수배자 선배님이 계셨다. 그를 학교 정문 밖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여정이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었다. 기록이 필요했고, '평상필름'이라는 독립영화 단체에 문을 두드려 선배님들께 기록을 함께해달라 요청드렸는데, 당시 평상필름도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영상 작업을 기획 중이셨던 상황이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국가보안법 수배자가 어떻게 교문 밖을 나서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더라. 그리고 졸업 후엔 어느새 그 단체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큰 고민 없이 흘러온 것 같다. 단순히 예술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민들의 미디어 작업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예술 안팎을 오가는 여정도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소통의 측면에서 가장 편안했던 것 같다.

윤지혜

나도 뚜렷한 혹은 거대한 포부가 있어서 영화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둘이서 극장에 가곤 했다. 갈 때마다 정말 단순하게, 뭐라 표현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재밌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를 봤는데, 그때는 '재밌다'를 넘어 '만들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기억이 참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렇다고 20대 초중반이었던 대학 시절까지 스스로 '시네필'이라 하기엔 정말 영화에 열심인 친구들만큼 많은 작품을 보진 않았다. 다만 앞서 말한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이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민욱

2008년에 한미 FTA로 사회가 굉장히 시끄러웠지 않나. 그때 부산 시내에서 시민들을 찍어볼 기회가 생겨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계기가 있다. 광복동이나 대청동 쪽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택시 기사님에게 '미문화원(현 부산근대역사관)' 앞으로 가자고 말씀하시더라. 이곳은 미문화원이 아닌데 왜 거기로 가자고 하시는지,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는 마치 몇 개의 차원을 초월하는 듯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내가 영화를 하게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출발 지점을 떠올리면 늘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함윤정

질문 주신 관객분께서 본인을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라 소개하셨지만, 이러한 수용자가 없다면 어떤 예술 작품에도 의미가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참여 감사드린다.

 

ⓒ 윤지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김소슬(학예연구사)

누군가 미술의 조건이 뭐냐 묻는다면 나 또한 답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그럼에도 감독님들께 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조건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미술과 영화의 어법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최근 들어 미술관에서도 '필름 앤 비디오'라는 섹션이 생겨나는 추세이고 영상 작업이 여타의 미술 작업과 함께 매우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흐름을 조우하다보니 영화라는 매체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생겼다.

오민욱

영화의 조건이란 게 마치 수학의 필요충분조건처럼 딱 떨어지듯 명확하게 설명되진 않는 것 같다. 작품을 둘러싼 상황과 창작자들의 입장, 또한 이론가들과 비평가들의 입장 등이 복잡하게 관계되어 있을 테다. 이처럼 많은 관점들을 견주면서 '어쩌면 이런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영화와 미술, 극장과 미술관 사이의 담론 중 흥미롭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지난 전시 중에서도 '차이밍량'의 작품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마침 올해 차이밍량이 전주국제영화제에 방문해서 그가 한 이야기를 읽어보게 됐다. 영화의 자리를 떠나 미술의 자리로 이동하게된 까닭은 결국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타이완 내의 신생 미술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화 등의 시청각적 형식의 작품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창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미술관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거다. 미술관에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자신의 작품을 극장이란 넓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큰 스크린으로, 한정된 시간에 약속처럼 보아야 그것이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에 가까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느리고 지루하기만 한 자신의 영화를 예술로서 수용한 미술관과 자신 사이에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기긴 했지만, 거대한 스크린의 효과와 관객의 존재 때문에 다시 영화가 극장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 일화를 통해 결국 '사람'과 '공간'이 영화의 조건인 것 같다고 느꼈다. 이 공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양한 작품들을 경유한다. 여기서 생각을 확장시켜, 우리가 지금 극장에 영화를 보러갈 때 스치는 건 무엇일지에 대해 묻게된다. 그것은 바람이나 구름이 아니라, 쇼핑몰이다. 이러한 조건이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단 생각이 들고, 그게 현재 영화의 자리이자 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지금의 환경적 조건이 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내가 만든 영화는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하길 원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 서있다.

박지선

오민욱 감독과 비슷한 생각이다. 나 역시 영화의 조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시대에 영화는 뭘까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처음 탄생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스크린에 기차 한 대만 지나가도 "와!"하고 외치며 마치 기차가 내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꼈지 않나. 이처럼 매체의 존재론적 조건만으로도 영화가 미학적으로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차가 정말 눈 앞에 다가오게끔 테크놀로지로 재현한다. 영화가 기술과 자본에 자리를 많이 내어준 상황에서, 예술로서의 자리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앞서 오민욱 감독이 '사람'에 대해 말했지만,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 즉 사람이 두루 모여 만들어내는 '장소'의 의미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영화만의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오늘 우리가 모인 이곳은 미술관이지만, 이처럼 매우 의미있는 소통이 오고가기 때문에 영화가 가진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단순히 감상하고 퇴장하는, 과거에 극장을 방문하던 경험과 조금 다른 의미였으면 좋겠다. 오늘의 기획과 경험이 그래서 많이 와닿는 듯하다.

윤지혜

살면서 들어본 질문 중에 가장 어렵다. 항상 이런 질문을 들으면 괴롭다. 나는 너무 순수하고 허무맹랑하게 영화에 대해 생각해왔다. 정말 단순하게, 영화란 시간을 사려깊게 담는 예술이 아닐까 항상 생각해온 거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과연 그 말로 영화라는 것을 온전히 포섭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두 감독님이 사람과 장소성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무척 어려운 물음이다.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함윤정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매체의 존재론적인 조건에 대해 질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어렵게 느껴질 만하다. 마치 이 전시를 통해 부산은 무엇이고, 로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되듯이 말이다. 질문 주신 김소슬 학예연구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소슬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또 감독님 몇 분과 통화나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미술의 영역과 몇 가지 다른 관점들을 알게 됐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장소성'의 측면이다. 당연히 미술 작품도 관람객과의 만남과 그들의 해석이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 미술 작가들은 자신이 작품을 대표한다고 여기지 않으며, 미완성의 상태로 창작의 과정 중에 있어도 그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영화 감독들에게는 완성된 것으로서의 작품과 이것이 스크리닝되는 방식과 절차, 무엇보다 '장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술 전시를 할 때는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자체가 기획 전체의 결이나 정의를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스크린과 장소가 아주 중요하더라.

더불어 '자막'에 대해서도 알게된 바가 있는데, 상영관이 멀티플렉스인지 단관인지, 총 상영 회차가 몇 번인지에 따라 자막에 대한 계약이 달라지더라고. 이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미술관 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것이 소화되는 방식은 여전히 미술의 영역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측면은 전시 준비를 위한 과정적인 부분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느낀 점은 따로 있다. 작품을 검수하면서 영화를 작은 모니터로 봤다. 그러다 전시가 개막한 후 각 작품의 첫 상영마다 '극장 을숙'을 찾았는데, 작은 모니터와 큰 스크린에서의 감상이 너무나 다른 것을 확인하고 무척 놀랐다. 물론 일반적인 미술 작품 역시 작가의 화실과 전시장에서 본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가 스크리닝되는 순간은 굉장히 특별하고 고유한 시간적 감각을 갖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러한 경험이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오늘의 물음을 만들었다.

함윤정

전시를 준비하며 겪은 실무적 과정에 대해 얘기해주었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장소성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이 마치 한 줄기의 맥락처럼 맞닿아있는 듯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세 분의 감독께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부탁드린다.

박지선

당분간은 지난 십여 년 동안 기록했던 것들을 컬렉션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게될 것 같다. 그 과정이 곧 새로운 작품 구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텐데, 우선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이며 그 와중에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놓친 부분은 없는지 기록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오늘 다른 영화제나 상영회의 gv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런 자리가 있다면 주변에 미디어 작업을 하는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긴 시간동안 기억에 남을 자리를 마련해주어서 감사하다.

윤지혜

오늘 '수집'과 '발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요즘 스스로 자신에 대해 정의하며 '구경꾼'이나 '방랑자' 등의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주변에 있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기 위해, 즉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발판을 쌓는 중이다. 오늘 이 자리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게 남을 것 같다. 영화관인데 미술관이기도 한, 내가 지금 있는 이 장소가 어딘지 굉장히 몽롱하거든. 여러모로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되어 감사했다. 와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오민욱

새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 더 남쪽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획이 있다. 전시와 상영 프로그램이 올해 7월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저마다 질문들을 안고 남은 전시와 상영을 봐주시면 좋겠다. 끝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취재 및 글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

 

ⓒ 부산현대미술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This Is Not Just Local: Tactical Practices

 

일시 2024.2.24.(토) ~ 07.07.(일)
장소 부산현대미술관

함윤정
함윤정
부산 가덕도에서 생활하며 영화와 바다에 대해 생각하고, 극장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미학을 공부하러 간 대학에서 영화를 찍은 후로 좋은 관객이 되면 나은 삶을 살게 되리란 이상한 믿음을 갖게 됐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일까? 나의 글과 말은 늘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관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영화를 더 아끼게 되고, 지난밤 꿈에서 본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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