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답이 나오지 않은 장면일수록 재미있다."
[Interview] "답이 나오지 않은 장면일수록 재미있다."
  • 홍상현
  • 승인 2024.06.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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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초창작 <렌탈 파파> 호나카 료스케 감독 인터뷰
「렌탈 파파」는 ‘아버지 대행업’이라는 한국 관객에게 생경한 소재도 그렇지만, 표현과 서사의 면에서 수많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렌탈 파파」는 '아버지 대행업'이라는 한국 관객에게 생경한 소재도 그렇지만, 표현과 서사의 면에서 수많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웹 브라우저에 주소를 입력하면 일단 제목부터 생소한 홈페이지가 열린다.

이름 하여 "아재 렌탈" 인기 개그맨도 멤버였단다. 창업 12주년. 총 2만 건의 실적 보유. 무슨 소리일까. 스크롤을 내려 보면 제품 리스트처럼 보이는 남성 사진들과 함께 시간당 1천 엔의 '대여료'가 눈에 들어온다. 봉사료와 좀 다른 느낌이라는 건 알겠지만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인기"마크가 붙어있는 제법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아버지 같은 느낌'의 멤버를 클릭했다.

"보기완"이라는 별명의 이 '아재'는 1968년 생으로 아이치 현에서 태어나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에 살고 있다. IT계열 회사에 다니며 아내와 아이도 있고 영화감상을 좋아하며 육아에 적극적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스타일.

어떤 '일'을 해줄 수 있는지 적어놓은 부분이 흥미롭다. 비대면 혹은 대면의 대화상대, 내용은 그냥 푸념이라도 좋고, 고민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도 괜찮으며 잡담도 대환영. 평소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왠지 들어가기 망설여졌던 가게에 같이 가는 것도 가능하다. 술에 잘 취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간 대작도 할 수 있다. 차로 어딘가 바래다주거나 마중을 나가는 익숙한 풍경도 연출할 수 있다. 영락없는 아버지다.

다만, 모든 일에서 다 '응석'을 받아주지는 않겠다는 점 또한 명확히 하고 있다. 대신 줄을 서거나 운동회 같은 이벤트에 먼저 가 자리를 잡아주는 일, 누군가를 미행하거나 위험을 수반하는 행위. 공서양속에 반하거나 성적인 행위, 고객의 영리를 위해 기여하는 등 업체가 제한해놓은 모든 행위는 금지다. 또한 앞서 언급된 시간당 1천 엔의 대여료 외에 교통비와 기타경비 등에 관한 부분도 말썽을 예방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세워놓았는데, 자택을 오가는 교통비나 입장료, 식대 등은 모두 의뢰자 부담이지만 최소한으로 소요되도록 협조하겠노라는 첨언도 달려있다.

 

GV에서의 호나카 료스케 감독(오른쪽) 마흔 셋의 그는 이번 작품이 장편데뷔작이나, 실은 20년 이상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준비된 신인’이다. ⓒ JIFF
GV에서의 호나카 료스케 감독(오른쪽) 마흔 셋의 그는 이번 작품이 장편데뷔작이나, 실은 20년 이상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준비된 신인'이다. ⓒ JIFF

이상은 《문예춘추》온라인에 2022년 12월 3일 두 번으로 나뉘어 대표 인터뷰까지 게재되었던 대표적 아버지 대행업체의 서비스를 필자가 취재한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이 현상과 본질, 어느 면에서든 변화 내지 해체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든, 혹은 '이성애적 가족'에 대한 미련을 상품화한 영리한 기획이든,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행간을 수없이 파고들어오는 드라마성이다. 살짝 익살스럽게 표현해 보면 "소재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이야기. "허나 영화현장 경력만 20년 이상. 나카가와 류타로의 <비가 그친 후>(2019) 등 수많은 작품에서 라인프로듀서를 맡았던 준비된 신인감독 호나카 료스케는 여기에 그 어떤 클리셰도 용납하지 않는 영민한 연출을 더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 <렌탈 파파>(2023)를 내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 렌탈 업체에서 일하는 나카무라(사이가 마사카즈 분)는 다양한 의뢰인들의 임대 아버지로 활동하며 나름의 위안을 얻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대생 리카(우츠미 세이코 분)를 만나게 되고 드로잉 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림의 주제는 아버지의 얼굴이다.

 

사이가 마사카즈 배우는 개인적인 상처를 포함, 이런저런 애환을 안고 ‘렌탈 파파’로 일하는 나카무라로 분해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사이가 마사카즈 배우는 개인적인 상처를 포함, 이런저런 애환을 안고 '렌탈 파파'로 일하는 나카무라로 분해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홍상현

장편 데뷔작으로 국제영화제까지 초청되셨습니다. 일단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항상 드리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은데요. 한국영화 좋아하세요?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감독, 혹은 배우가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호나카 료스케

한국영화, 너무 좋아하죠! (웃음)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영화도 바뀌었는데 초기에 깊은 인상을 준 영화들은 <친구>(2001), <엽기적인 그녀>(2001), <오아시스>(2002), 그리고 <실미도>(2003) 등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시네콰논이라는 영화사가 <쉬리>(1999)를 수입해 히트시킨 이후, 수많은 작품들이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했죠. 특히, <살인의 추억>(2003)의 경우는 일본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연출스타일이 큰 자극이 되어주었어요. 지금 제 나이가 마흔 셋인데 그렇게 20대 시절부터 한국영화를 보면서 '영화 뇌'를 성장시켜 왔던 겁니다.

 

홍상현

마흔 세 살의 신인감독이라. (웃음) 하지만 정작 필모그래피를 보면 현장경력이 상당하고 특히 라인프로듀서로서의 활약이 두드러지십니다.

호나카 료스케

다들 그렇겠지만 감독이 되고 싶어서 현장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단은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떤 팀에든 합류해서 일을 거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제작부 쪽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전체적인 예산의 편성이나 운용 같은 것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점점 영화제작 전반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와중에 마흔이 되면 제작품을 찍어보자는 목표도 세웠고요.

 

홍상현

그런데,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 잠깐 취재를 하면서 실감했지만, 소재 자체가 정말 '신의 한수' 아니었나 싶어요. (웃음)

호나카 료스케

감사합니다. 다만, 그 소재를 영화로 가공해내면서 제가 세워두었던 대전제가 있는데요. 절대로 가벼운 상업영화 같은 느낌의 작품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거였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더러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그것은 또 그것대로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다만 어떤 작품을 만들든 그 하나만으로 영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킬러 컷(killer cut)'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렌탈 파파>을 찍으면서도 이런 킬러 컷들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레드카펫 행사에서의 호나카 감독과 우츠미 세이코 배우(오른쪽). ⓒ JIFF
레드카펫 행사에서의 호나카 감독과 우츠미 세이코 배우(오른쪽). ⓒ JIFF

홍상현

영화제에서 소개된 한국어 타이틀은 <렌탈 파파>, 그리고 영어 타이틀이 <Gap Father>였는데, 영어 타이틀에 더 가까운 원어 타이틀이 뭔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호나카 료스케

타이틀을 정할 때 처음 후보에 올랐던 게 한국어 제목처럼 이해가 쉬운 '렌탈 파파'나 '렌탈 가족'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주인공 나카무라든, 리카든 마음속에 뭔가 틈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렌탈 업체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바로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존재인 거죠. 실은 지적하신 네이밍(naming)과 관련한 킬러 컷이 작품의 거의 끝부분에 나옵니다. 리카의 친구 사라가 아버지를 아틀리에에 데려오는 신에서인데요. 거기서 두 사람이 마주보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호명하며 대화를 나눠 본 게 사라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이후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하죠. <렌탈 파파>의 주인공들도 그렇지만 우리들도 이 사람들처럼 마음속에 각자의 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틈을 어둠으로 채울 것인가, 빛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매번 직면하게 되고.

 

홍상현

등장인물이 많거나 규모가 큰 작품은 아니지만 일단 초반에 다양한 서사의 줄기들을 보여주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의 흐름으로 포괄해 가는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호나카 료스케

시나리오를 쓰면서 전체적인 구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다만, 각 장면마다 반드시 어떤 답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니, 때로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장면이 더 재미있는 거거든요, 예컨대 어느 날 새벽에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신나게 써놓은 장면이 있다고 해보죠. 이걸 한 사흘쯤 지난 뒤에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렌탈 파파>의 시나리오를 약 1년 반에 걸쳐, 다른 현장 일을 해 나가는 사이사이에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타임라인을 정해놓고 거기 맞추기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형태로 완성을 한 거죠. 촬영도 마찬가지였고요. 말씀하신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던 건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홍상현

"답이 나오지 않는 장면일수록 재미있다." 멋진데요? (웃음)

호나카 료스케

감사합니다. 다만, 그 재미가 저만의 개인적인 느낌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죠. 관객들과 공유하고 납득시키는 게 중요할 텐데요. 이거야말로 영화 만들기의 과제 아닐까 싶어요. 각 컷과 신, 그리고 대사나 그 외에 여러 가지 표현을 가지고 다양한 궁리를 해보는 거죠.

 

GV에 참석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우츠미 배우. 「렌탈 파파」는 그녀가 첫 번째로 주연을 맡은 작품.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GV에 참석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우츠미 배우. 「렌탈 파파」는 그녀가 첫 번째로 주연을 맡은 작품.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은 영화외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질문이 되겠는데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성비'가 무척 좋은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호나카 료스케

아시겠지만 일본에는 독립영화 제작 지원제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의 제 사비로 예산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략 2백만 엔에서 3백만 엔 사이의 비용이 소요됐어요.

다만, 이 금액을 집행하면서 제가 특별히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식비였습니다. 일본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보통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금방 나온 음식을,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먹는 걸 더 선호하거든요. 캐스트와 스태프가 한데 모여 많은 내용들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능률도 그렇고 현장분위기가 좋아지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이건 제가 오랫동안 라인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바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렌탈 파파>를 찍으면서 적어도 점심 한 끼만큼은 누구라도 일을 중단하고 같이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홍상현

지금 하시는 말씀에서도 충분히 느껴지지만 호나카 감독은 특유의 엄청난 적극성도 그렇고,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개성이 강하신 분 아닌가 싶어요. (웃음) 새삼스럽지만 한국 관객을 위해서 잠깐 자기소개를 좀 해주실 수 없을까요?

호나카 료스케

제 캐릭터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이번 전주 방문이 제 첫 해외여행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만난 분들에게 '해외여행을 자주 가시는 분 같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아마도 쭈뼛거리지 않고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려고 노력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원래 잘 웃고 매사에 긍정적인 면들을 보고요. 또, 낯선 곳에 가면 중심가보다는 오히려 여행자들이 즐겨 찾지 않는 곳에 가서 현지의 공기를 느껴보려 애쓰는 편입니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데 있어서도 이런 습관들이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 믿거든요.

이번에 전주에 와서도 이런 제 스타일대로 어제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고 다시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서 마시는데 전주에 살고계시는 분들의 평범한 일상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홍상현

실제로 존재하는 아버지 대행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시다 보니 사전 취재에도 무척 공을 들이셔야 했을 것 같은데요.

호나카 료스케

<렌탈 파파>는 원래 단편영화로 기획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나카무라가 의뢰인의 집에 찾아가서 아버지를 잃은 딸이 데려온 남자친구와 상견례를 하는 처음 10분 분량의 시퀀스가 그 내용이었죠. 이걸 장편으로 개발한 건데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네요.

 

「렌탈 파파」의 영어 타이틀은 「Gap Father」. 필자로서는 이쪽이 영화의 내용을 좀 더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렌탈 파파」의 영어 타이틀은 「Gap Father」. 필자로서는 이쪽이 영화의 내용을 좀 더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홍상현

한편, 나카무라 역시 리카와 마찬가지로 틈, 그러니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아픔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음식 설정해놓으신 게 기억에 남고요.

호나카 료스케

(미소) 이제는 세상에 없는 딸, 미사키가 즐겨먹던 음식. 물론 한국에서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오므라이스는 일본인들에게 소울 푸드 같은 음식이거든요.

 

홍상현

다른 작품에서 얼굴을 잘 볼 수 없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연기력이 무척 뛰어나셔서 놀랐습니다. 특히 리카 역의 우츠미 세이코 배우는 이번이 첫 주연 작품이시라고 들었는데요.

호나카 료스케

오디션을 통해 리카를 연기할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제가 요구했던 연기의 테마는 '아이'였습니다. 일단 틀에 박힌 자기소개는 생략하고 준비해온 연기부터 선보이는 형식으로 진행했죠. 그리고 감정의 전이(transfer)라는 면에서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에 주목했습니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해주거든요. 우츠미 배우의 경우 특유의 자연스러우면서도 보는 이마저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미소가 좋았습니다. 캐스팅 때문에 검토했던 프로필만 200건 정도인데 단연 눈에 띠더라고요.

 

홍상현

물론 배우들 각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관계자들의 귀띔에 따르면 작품의 디렉션 자체가 대단히 독특했다고 하던데요.

호나카 료스케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면, 리카와 의뢰를 받고 온 나카라무라 아틀리에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건 실제 두 사람의 첫 대면이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대본을 드리기는 했지만 서로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고, 촬영을 준비하기 위한 메이크업 장소까지 달랐거든요. 내용 면에서도 일단 다섯 페이지 정도의 대본 분량 가운데 나중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을 애드리브로 채웠습니다. 그렇게 서로 편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어떤 타이밍에 손을 올리면 다시 대본에 있는 대사로 돌아가고, 이런 과정을 두세 번 정도 반복했어요.

 

“각 장면마다 반드시 어떤 답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니, 때로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장면이 더 재미있는 거거든요,” 호나카 감독의 말이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각 장면마다 반드시 어떤 답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니, 때로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장면이 더 재미있는 거거든요," 호나카 감독의 말이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홍상현

재미있네요. 그리고 보면 정말 그 신에서 두 사람의 표정이나 대사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했죠. 그 외에도 같은 방식으로 촬영한 장면이 있었나요?

호나카 료스케

앞에서도 화제로 등장했었는데요. 나카무라가 남자친구를 데려온 의뢰인의 딸을 만나는 도입부의 시퀀스도 같은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이가 배우를 방에서 기다리도록 했지요. 이 세 사람도 극중에서 만나는 부분이 첫 대면이었어요.

 

홍상현

이렇게 사실적으로 촬영된 장면들이 있는 한편 브리지처럼 삽입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죠. 뭔가를 암시하는 것 같은.

호나카 료스케

아, 리카가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거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리카의 악몽을 표현한 장면이죠. 목표가 사라져버린, 길고 어두운 동굴, 혹은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가은 인생. 그 장면에서 리카가 하얀 의상을 입고 있는데 화면의 콘트라스트(contrast)를 강조해서 복잡다단한 감정을 묘사했어요.

 

홍상현

작품의 촬영을 준비하면서 세워두셨던 비주얼 플랜 같은 게 따로 있으셨는지요.

호나카 료스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무계획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웃음) 일단 미술과 관련해서는, 제 아내가 미술감독이라 작품제작의 전 단계를 꿰고 있다 보니, 여러 가지를 미리미리 착실하게 준비할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촬영현장에서는 늘 스태프를 최소인원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저와 촬영감독 두 사람이 거의 한 팀처럼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장면에 따라서는 촬영감독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의뢰인인 리카와 렌탈 파파 나카무라의 첫 만남 장면. 이는 실제로 두 배우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기도 했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의뢰인인 리카와 렌탈 파파 나카무라의 첫 만남 장면. 이는 실제로 두 배우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기도 했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홍상현

그밖에도 보통의 극영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이 꽤 많이 등장하지 않나요? 예컨대 조금 전에 언급된 리카와 나카무라의 아틀리에 장면에서 컷 분할에 변화를 주시기도 했고, 경찰서로 호출된 나카무라가 동료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는 경찰관의 질문이 묵음 처리돼서 자막으로 나왔잖아요.

호나카 료스케

일단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편집기사에게 '이런 느낌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주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편집기사가 제게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하고는 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내용이던 처음에 구체적인 주문을 피했다는 겁니다. 이건 <렌탈 파파>를 만들면서 제가 전반적으로 취했던 자세와도 통하는데요. 감독이 이런저런 것들을 너무 세세하게 지시하면 스태프나 캐스트는 절대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 상상의 영역이 제한되어버리니까요.

 

홍상현

극단적인 사건들도 몇 가지 등장하다 보니 혹시 영화가 어두운 결말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돼서 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너무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지는 않아서 더 여운이 남던데요.

호나카 료스케

성급하게 갈등의 해소를 그리기보다 변화의 여지가 생겼다는 것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이를테면 리카의 경우, 어둠 속에서 지내다 나카무라라는, 아버지 같은 존재를 만나면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느낌을 받게 되죠. 나카무라 역시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여전히 재판이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리카를 만나면서 오랜만에 '진짜 아버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요.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다시 힘을 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건데요. 이건 두 사람의 마지막을 같이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래도 뭔가 마음이 놓이고 가슴이 따듯해지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아마도 매사에 긍정적이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제 정서가 반영되었기 때문 아닐까 해요. (웃음)

 

굳이 표현하자면 해피엔딩이지만 열린 결말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 「렌탈 파파」의 결말부. 호나카 감독의 연출력이 새삼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굳이 표현하자면 해피엔딩이지만 열린 결말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 「렌탈 파파」의 결말부. 호나카 감독의 연출력이 새삼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2023 Gap Father Film Partners

"<렌탈 파파>에 정답이 없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좀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나카무라의 시선에서 보시든, 리카의 시선에서 보시든 결국 '아버지'라는 키워드로 수렴되는, 많은 공감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대행업체까지 등장한다는 건, 역으로 말하면 아버지가 그만큼 모두에게 절실한 존재이기 때문일 테니까요. 어머니도 마찬가지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처음 한국에 왔는데요. 며칠의 시간을 보내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언어장벽을 경험하다 끝내는 한국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공부에서 다음에 뵐 때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영화에 대한 감상도 좀 더 생생하게 듣고 싶고요."

필자로서는 어서 작품이 수입되어 하루빨리 특유의 적극성을 발휘하며 수많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를 먹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로서는 힘들게 만든 데뷔작인 만큼 좀 더 많은 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관객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까. 물론 그래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시 한국 땅을 밟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다림의 시간을 얼마든지 상쇄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따듯함과 밝은 표정으로 우리 앞에 서있는 그를 만나게 될 테니까.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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