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토크쇼' 시대를 반추하는 호러 미디어 비평이란
'악마와의 토크쇼' 시대를 반추하는 호러 미디어 비평이란
  • 이현동
  • 승인 2024.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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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뒤에 전파되는 자본 바이러스"

'호러 무비'가 관성적으로 추구하는 플롯은 이제는 도식화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자극에 의해 견인되는 호러가 인물, 장소적 특성, 잔인함의 강도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남녀 관계를 삽입할 때 발생하는 묘한 아우라는 또 하나의 장르를 포섭하면서 대중의 정서 안에 깊게 안착하는 형식으로 대두했다. 슬래셔(slasher)의 원조격이자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던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같은 작품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아직도 공포 영화 감독에게 거쳐야 할 산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저예산이라는 점에서 호러 영화는 어떻게 하면 적은 예산으로 더 큰 자극을 배출할 수 있을지가 큰 관건이 되기도 했다.

 

ⓒ <100 블러디 에이커스>(2013)

이번에 국내 개봉한 <악마와의 토크쇼>(2023)의 감독인 '캐머런 카이네스'와 '콜린 카이네스' 형제의 첫 장편 <100 블러디 에이커스>(2013)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유기농 비료 사업을 운영하는 형제는 '비밀 재료'인 시체를 분쇄하여 비료를 제조하는 자들이다. 뮤직 페스티벌로 유희를 즐기려던 한 일행이 자기들의 차량이 고장 나 동생의 차량을 빌려 타고 공장으로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급박하게 진행된다. 이 영화는 기존의 호러 무비 클리셰를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시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동생이 일행 중 한 여자와 쌓아 올렸던 유대를 환멸적으로 체감하는 장면과 사람을 갈아서라도 비료를 제조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형의 모습은, 그의 영화가 공통으로 담론화하고 있는 반-자본주의적 코드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 번째 장편 <스퀘어 캠폐인>(2016)도 마찬가지다. TV에 방영되는 공포 몰카 프로그램인 '스퀘어 캠폐인'이 실재인지 비실재인지 모를 한 잔혹한 영상이 업로드되는 인터넷 사이트보다 화제성이 떨어지면서 사장은 더 강도 높은 자극을 직원에게 주문한다. 이때 영화는 광범위하게 자신의 모습을 은폐하고 있던 자본과 자극에 굶주린 구독자를 강조한다. 감시체계를 넘어 살인이라는 극적 카타르시스를 관망하는 이들은 결국 자본에 의해 형성된 동맹으로 여겨진다. 끊임없는 반전이 개입하는 이 영화에서 이 쇼를 제작하는 구성원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마스크를 쓰고 활동하는 그룹에 의해 파멸에 이를 때 완성된다는 이 묘한 이야기는 영화와도 연관을 맺는다. 더 큰 자본에 의해 프로그램이 사멸되는 이 먹이사슬은 장르는 다를지언정 다수의 감독이 영화의 종말 이유를 플랫폼의 변용이라 여겼던 루브나 플레이우스트의 <룸 999>(2022)과 흡사해 보인다.

 

ⓒ <악마와의 토크쇼>(2023)

그런 의미에서 <악마와의 토크쇼>는 이러한 관심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극적인 흥행과 자극을 위해서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악마마저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60, 70년대 텔레비전 쇼의 제왕이었던 그레이엄 케네디를 모델로 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리듬감은 전작들의 추격전과 같은 동적인 것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명시적으로 과거를 상기하는 카메라의 재질과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서스펜스를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양식은 다르지만 파운드 푸티지인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가 한 공간의 차이와 반복을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말의 유희 속에 잠재하고 있는 이미지의 서스펜스를 관객들에게 설파한다.

더 나아가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제기할 수 있는 주요한 물음은 '왜 과거의 문물을 다시 꺼냈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일종의 테크닉이거나 이전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선택이었다면, 이 영화는 전략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각인될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신속한 전파력을 지닌 매체의 특성이다.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보급되던 시기에 이러한 쇼의 흥행은 전작 <스퀘어 캠폐인>에서 직언했던 것처럼 과거에도 무차별적으로 이를 목격하는 시청자들을 향한 최면술로 일환으로 자본주의가 틈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여기서 호러무비가 갖고 있는 불안이란 곧 영화가 끝난 뒤 남는 잔상일 뿐만은 아니다. 특히나 악마라는 영적 존재가 모든 매체로 전파될 수 있다는 불안은 시공간을 넘어선 어쩌면 본질적인 것이다.

또한 영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초는 텔레비전을 통해 무엇이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겨졌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이 매일 밤 미국인 1억 가구에 생중계되고 뉴스 앵커와 토크쇼 진행자를 향한 신뢰 상승은 더 큰 시청률과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을 필요로 했다. 토크쇼를 진행하는 잭 델로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그 자장 안에서 혼돈을 경험했던 인물로 그의 전반적인 행보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보이스오버와 전반적인 상황을 소개하는 과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내용은 잭에 대한 의문점을 온전히 해소해 주지 못하면서 관객은 악마의 존재를 서서히 추궁하면서 진행된다. 여기서 아내와 매들린(조지나 헤이그)와 애정을 보여주는 시간이 길게 할애되는데, 이상하게 비흡연자였던 그녀가 갑작스레 폐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를 단순하게 로맨티스트 정도로 여기고 넘어간다. 이후에 잭은 시청률이 종합되는 핼러윈 데이를 노려 호러쇼를 기획한다.

 

ⓒ <악마와의 토크쇼>(2023)
ⓒ <악마와의 토크쇼>(2023)

잭이 초대하는 사람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유하고 있다. 심령술사, 귀신 들린 10대, 마술사에서 회의론자로 변신한 사람을 불러 서로를 시험하거나 의심하며 대치한다.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악마에 사로잡힌 10대 소녀 릴리(잉그리드 토렐리)는 악마 숭배 사이비 종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다. 봉인된 악마가 소환되어 영화는 폭주하기 시작하고, 결국 잭은 이전에 아내를 제물로 바쳤던 것과 같이 이번엔 릴리를 죽임으로 영화가 끝난다. 흥미롭게도 전작 <스퀘어 캠폐인>에서 복면을 쓴 이들 중에 유일하게 희생당한 사람은 어린아이였다. 이 쇼의 가해자이자 희생자가 되는 어린아이의 등장은 감독의 문제의식과 밀접해 있다. 악마, 마술, 저주, 어린 아이, 종교, 전쟁, 정치 등은 시청률 보장이 완비된 요소다.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 영화는 미성년마저도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비평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마술사이자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불리었던 제임스 랜디를 모티브로 한 카마이클 헤이그(이안 블리스)다. 헤이그는 회의론자로서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는다. 그는 심령술사인 크리스투에게 이를 증명해 보인다면 50달러를 주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무도 연주하지 않았던 테레민이 울리자, 코드를 뽑아 그저 하울링 현상이라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악마로 빙의된 릴리가 스튜디오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시작하고 전에 최면을 걸어 자기의 능력을 발휘했던 헤이그마저 무릎을 꿇고 '당신의 충실한 종이 되겠다'며 초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번외로 이야기하자면 제임스 랜디는 악마에 대해서 논한 바가 없으며, 그는 초현실이 그저 사기꾼의 농간이라 생각했다. 즉 영화, 미디어란 존재는 회의주의자의 강직한 정신마저도 강탈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릴리를 죽이기 이전에 잭은 올빼미 가면을 쓰고 있는 사교클럽 '그로브'에서 '아브락사스'를 섬기는 교주 앞에서 제의 의식을 통해 거래를 맺는 장면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공통적으로 이 가면은 타자의 얼굴, 정체와는 관계없이 자극의 표면만을 위해 존재하는 익명성이라는 지점에서 자본의 질주는 감독의 주제 의식에 토대가 된다.

한편, 신기하게도 <악마와의 토크쇼>는 미국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666,666달러를 벌어들이며 배급사 IFC Films는 역대 최고 오프닝 수입이라고 자축했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악마의 숫자라 불리는 이 숫자를 환호하며 '어둠의 군주(Dark lord)를 찬양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지 홍보를 위한 수단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 도움을 주었던 건 정녕 악마는 아니었을까. 매체의 신속성이 진정한 공포라면 공포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공포의 전장 속에 관객을 감금하며 공포감을 채굴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악마와의 토크쇼>(2023)

악마와의 토크쇼
Late Night with the Devil
감독
캐머런 카이네스
Cameron Cairnes
콜린 카이네스Colin Cairnes

 

출연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David Dastmalchian
이안 블리스Ian Bliss
잉그리트 토렐리Ingrid Torelli
파이살 바지Fayssal Bazzi
로라 고든Laura Gordon
리스 오테리Rhys Auteri
조지나 헤이그Georgina Haig

 

배급 올랄라스토리
제작연도 2024
상영시간 9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4.05.0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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