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JIFF] '섬' 밤의 해변을 거닐면서
[25th JIFF] '섬' 밤의 해변을 거닐면서
  • 김민세
  • 승인 2024.05.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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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앙 매니블의 밤과 낮"

프랑스 감독 '다미앙 매니블'은 무용수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만큼 그의 영화 속에 드러나는 배우의 연기는 종종 무용에 가까운 형상이 된다. 특히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며 로카르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사도라의 아이들>(2019)에서 그는 현대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의 무용 '엄마'(Mother)를 다양한 인물의 몸을 빌려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무용은 개인이 지닌 감정을 무대에서 펼치는 것을 넘어서 일상에 녹아든 몸짓으로 표현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전직 무용수로서 무용의 영상화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 초기작인 <공원의 연인>(2016)에서 공원에 놓인 연인들이 하는 행위는 물구나무를 서거나 뛰어다니는 등의 무용을 연상시키는 몸짓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 숲과 동굴에서 은둔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따라가는 최근작 <막달라>(2023)에서는 <이사도라의 아이들>에서 등장했던 무용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몸을 오롯이 지켜본다.

다미앙 매니블이 그의 영화에서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은 서사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나, 역사의 작은 한 페이지 같은 미니멀한 설정 아래서 단순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공원이나 숲, 동굴 같은 특징적인 공간을 무대 삼아 그곳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몸의 활력'을 기록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으로 초청된 <섬>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다미앙 매니블이 지금까지 주목해 왔던 '몸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가면서도 재현의 측면에서 영화가 가닿을 수 있는 리얼리즘에 대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도발적인 영화다.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비교적 명확히 구분할 수 있던 전작들과 달리 <섬>은 픽션과 논픽션의 영역을 과감하게 넘나든다.

 

<섬>의 서사는 단순하다. 몬트리올의 대학으로 떠날 때를 하루 남기고 있는 날, 로자와 친구들은 그들이 '섬'이라고 부르는 해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와 대마초를 쉬지 않고 피워대며, 해변을 뒹굴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한다. 바다에 몸을 담은 채 장난을 치던 그들은 사소한 몸싸움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고, 로자는 친구들에게 욕설을 뱉으며 해변을 떠나려 한다. 아쉬움과 후회에 혼자 해변을 거닐던 로자는 친구들과 다시 화해하고 다가오는 아침을 기다린다. 아침이 오면 로자는 해변을 떠난다. 해변을 떠난다는 것은 나아가 친구들과 함께 해온 시공간을 떠난다는 말일 것이다.

다미앙 매니블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이 짧고 단순한 픽션의 이야기에 논픽션의 감각을 불러오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표면적으로 흐르는 픽션의 이미지 사이에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이 블로킹을 구성하고, 리허설을 진행하는 과정의 메이킹 필름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허설을 담은 숏들이 픽션의 이미지에 끼어들 때마다, 컨티뉴이티는 파괴되고 영화는 교란된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시작된다. 이때 로자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은 이미지와 일치 혹은 불일치하면서도 영화의 논리를 따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이정표가 된다. 이를테면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은 낮 중에 해변에 도착한 로자와 친구들이다.

반면 내레이션이 지목하는 시간은 밤중이다. 해변에서의 장면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는 실내 공간으로 들어온다. 로자와 친구들은 이전 숏의 연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들이 들고 있던 술병은 물이 담겨 있는 병이 되고 타오르던 담배는 어느샌가 불이 꺼져있다. 또한 이들은 더 이상 '섬'에 있지 않다. 실내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리허설을 위해 시늉을 할 뿐이고 그들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소품들은 앞선 숏보다 리얼에서 한 발짝 물러난 껍데기가 된다.

<섬>은 이렇게 연기의 연속성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혹은 시공간의 층위를 갑작스레 뛰어넘는 두 씬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계속 흘러가다 보면, 그제야 우리는 밤중에 해변에 도착한 로자와 친구들을 보게 된다. <섬>은 실제 영화의 배경이 될 시공간(밤의 해변), 즉 로자의 내레이션이 진행하고 있는 픽션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때를 지연시킨 채, 촬영을 위한 리허설의 과정에서 한참을 맴돈다. 낮의 해변에서 진행되는 첫 번째 씬은 그것을 영화처럼 믿게 하는 씬이고, 갑작스레 침투하는 실내 공간의 두 번째 씬은 픽션을 발가벗기는 씬이다. 그리고 영화는 돌림노래처럼 다시 섬으로 하루를 지내는 이들에게로 돌아온다.

이렇듯 <섬>은 촬영이 목표로 하는 픽션의 이미지 주위를 서성이고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실제와 가까운 이미지로서의 영화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성' 혹은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것은 특정한 몸짓을 반복하는 이들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리가 '사실적'이라 믿는 어떠한 몸짓 또한 '반복적으로 훈련된 몸'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미앙 매니블은 영화 속에서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몸짓'이 픽션의 이미지와 합치되는 과정을 보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는 이들의 행위에 특정한 목적이나 인과, 눈에 띄는 관계의 역학을 지우고 투명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물의 몸과 카메라를 움직인다. 그런 면에서 인물과 카메라는 서사를 벗어던진 몸으로써 무용(舞踊)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가령 해변의 바위 뒤에서 벌어지는 로자와 쥴의 정사씬, 즉 몸과 몸의 교환은 그것이 하나의 사건이 되어 서사적 동력이나 관계의 변화로 나타나기보다는, 오로지 그 끝나가는 밤의 감각을 담아내기 위한 몸의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표현으로 다가온다. 알다시피 그 이미지의 인과는 서사가 아니라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때 해가 저물고 어스름이 찾아오는 밤의 풍경은 그 정서를 대변하는 최적의 이미지가 된다.

<섬>의 이미지가 낮의 해변이나 실내 공간을 거쳐 밤의 해변으로 끝내 진입했을 때의 감각의 진폭은 극대화된다. 이런 면에서 '밤'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니라, 정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로자가 결국 떠날 때 혹은 떠나야 하는 사실을 불현듯 의식할 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보다는 밤의 풍경을 채우는 푸르스름한 빛과 어둠, 그 사이세서 작게 반짝이는 담뱃불, 그리고 이들을 비추고 있는 하늘 위의 달인 것처럼 보인다. <공원의 연인>에서도 보았듯이,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는, 즉 프레임을 채우는 광량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액팅과 정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공원의 연인>의 연인은 밤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잃어가고, <섬>의 로자는 밤이 끝나간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들과 다투며, 아침이 찾아오자 해변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섬>은 진실을 획득하기 위해 반복되는 무용의 몸짓을 오롯이 지켜보며 영화 이미지가 지니는 사실성에 대한 탐구와 회의 사이에서 진동한다.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수없이 다시 돌아오는 밤과 낮의 감각을 유려하게 포착하면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다미앙 매니블의 낮과 밤은 우리의 삶이 결국 반복이며 그 안에서 희로애락의 시간은 되풀이된다는 자연의 섭리를 그만의 영상 언어로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섬>은 전작에서 더 나아가 진실과 재현의 영역을 건드는 과감한 실험으로서 다미앙 매니블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minsemunji@ccoart.com]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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