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ABOUT] 제77회 칸 영화제 : 회고되고 소환하는 이야기
[TALK ABOUT] 제77회 칸 영화제 : 회고되고 소환하는 이야기
  • 이현동
  • 승인 2024.05.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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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 여름의 송가를 부르기 이전에"

베를린영화제가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칸 영화제는 조금 이른 여름을 알릴 때쯤 개최된다. 전적으로 으스스한 날씨 때문은 아니겠지만, 베를린은 칸에 오른 작품들보다는 실험적이고, 상대적으로 비주류의 영화가 경쟁부문에서 경합을 겨룬다. 작년 칸에서는 마르코 벨로키오, 켄 로치, 빔 벤더스와 같은 노장 감독이 이름을 올리면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고, 15년 만에 다큐멘터리인 왕빙의 <청춘>(2023)이 경쟁에 진출하면서 장르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제77회 칸 영화제에서도 네임드 거장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폴 슈레이더'가 출석하며 영화제를 빛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션 베이커', '안드레아 아놀드', '파올로 소렌티노', '미겔 고메스'와 같은 자국을 대표하며 고유의 미학을 쌓아 올린 작가들에게 더욱더 관심이 간다.

이번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은 배우이자 최근 <바비>(2023)를 통해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감독인 '그레타 거웍'이 선정됐는데, 그 이유로 칸 영화제측은 "세계 영화의 쇄신을 대담하게 구현해 냈으며 장르를 혼합하여 지성과 휴머니즘의 가치를 고양하는 작가"라고 밝혔다. 그레타 거윅은 미국 여성감독 최초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1965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이후 두 번째 미국 여성 심사위원장이란 기록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번 경쟁부문을 심사하는 위원에는 배우가 많은데, 특히 '릴리 글래드스턴'이 이름을 올린 건 출신과 관계없이 동시대에 필요한 선정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자비에 돌란'이 위원장으로 자리한 것도 흥미롭다. 영화 제작을 중단하고 돌연 은퇴하겠다는 인터뷰와 보도를 정정하며 향후 영화에 대한 선택지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던 그가 공식적으로 얼굴을 비춘 건 바로 이번 칸 영화제다.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에서 5번이나 초청을 받은 촉망 받는 슈퍼 루키인 그가 어떤 감식안을 발동하여 작품을 선정할지 사뭇 기대된다.

이번 칸 영화제의 포스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8월의 광시곡>(1991)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일본 열도를 흔들었던 폭격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여러 세대에 걸쳐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경쟁작에 일본 작품이 없다는 것은 약간 어색한 느낌을 초래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번 포스터는 현재까지도 전쟁의 공포에 노출된 이들을 향한 굳은 희망과 의지를 반영한다. 이처럼 영화는 동시대를 겨냥하면서 계속해서 갱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티스트의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나 지난 제7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황금곰상으로 마티 디옵의 <다호메이>(2024)가 수상한 것은 칸 영화제 포스터의 주제와 우연히도 중첩된다. 이전의 역사가 현재로 돌아올 때 발생하는 영화의 파괴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지 몰라도 이번 영화제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영화들이 흔하게 보인다.

 

ⓒ <아노라>(2024)

빛나는 거장들, 움트는 영화들

'파얄 카파디아'의 <우리가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2024) 거의 30년 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도전하는 최초의 인도영화다. 마지막 진출한 영화는 사지 N 카룬의 <스와힘>(1994)이었다. 인도와 프랑스의 합작인 이 작품은 간호사 프라바가 남편과의 소홀한 관계 속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룸메이트인 아누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거주하려 하지만, 대도시의 장벽은 그들을 가로막는다. 어느 날 두 간호사는 신비로운 숲을 넘어 꿈이 실현되는 해변마을로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질 를르슈의 <사랑의 탄식>(2024)은 마약 밀매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로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프랑수아 시빌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알랭 샤바, 베누아 포엘부르데와 같이 명성이 자자한 배우가 포진된 것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그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컨셉인 뮤지컬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예정이다. 또한 컬트 음악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트랙을 작업하는 음악집단 라 호르드(La Horde)가 참여함으로 차가운 스릴러와 로맨스와 유머가 적절히 조합된 스타일의 이 영화는 이제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션 베이커는 <레드 로켓>(2022)을 시작으로 이번 작품 <아노라>(2024) 또한 칸의 부름을 받았다. 미국 독립 영화의 신성으로 자리매김하던 그가 능숙하고 활력있게 다루는 사회 사각지대에서의 삶은 절대 공허하지만은 않다. 그와 유사한 안드레아 아놀드가 이들을 냉기어린 시선으로 조명했다면 션 베이커는 이들에게 희망을 부여하며 전진한다. <아노라>는 브루클린 출신의 젊은 성 노동자의 이야기로 러시아의 과두 정치인 아들과 결혼하면서 전개된다. 이 결혼에 불만을 품은 남자의 부모가 혼인 무효를 위해 뉴욕에 찾아온다. 이때 이 영화는 현실과 루머가 적절히 조합된 반영의 드라마가 된다. 성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던 <스타렛>(2012)이나 <탠저린>(2015) 같은 작품이 묘한 익살스러움과 우정에 대한 따뜻함을 보여준 것을 사뭇 연결되는 지점들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어프렌티스>(2024)
ⓒ <풍류일대>(2024)

<경계선>(2018)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수상하며 칸에 이름표를 단 이란 감독 '알라 압바시'는 국가의 경계를 피해 수위 높은 영화를 만들어 비판받았다. 전작 <성스러운 거미>(2022)가 이란 사회와 종교의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영화인 것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그가 앞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자파르 파나히와 같이 국경 밖일 것이다. 이번 경쟁에 오른 작품 <어프렌티스>(2024)는 독특하게도 젊은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와 우파 변호사이자 정치 해결사인 로이 콘의 전기를 다룬다. 주로 소수자를 다뤘던 그의 영화가 범위를 확장하여 어떤 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신작 <버드>(2024)를 통해 그 전작 <카우>(2021)에 이어 동물을 매개로 삼는 작품을 선보인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보여주는 동물은 변두리나 사각지대에 있는 인간을 은유한다. 가령 단편 <개>(2001), <말벌>(2003)이 상기시킨 것은 동물이 아니라 위기에 사로잡힌 인간이었다. <버드>는 12살 베일리가 홀아비인 아버지와 오빠와 단칸방에서 살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고, 베일리는 다른 곳에서 관심과 모험을 찾는다.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와 같이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십대를 다룬 이 작품처럼 베일리가 찾아나서는 자유란 <버드>란 제목처럼 구속된 상황에서 벗어나 새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지아장커'는 인민을 향한 애정을 남녀관계로 투영하며 이별과 회귀를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자기만의 고유의 형식을 창작해 왔다. 이번 경쟁에 오른 <풍류일대>(2024)는 그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품으로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커플 중 한 명이 다른 지방으로 떠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아 장커의 페르소나인 지오 타오가 다시금 등장한다. 이 여정의 대부분은 중국 곳곳을 탐색하는데, 이때 실제 아카이브와 픽션, 비디오 이미지가 유동적으로 결합하면서 영화의 내러티브는 창의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중국을 관통하는 물줄기가 된다.

 

ⓒ <에밀리아 페레즈>
ⓒ <바늘을 든 소녀>

성실하게 칸의 간택을 받은 '자크 오디아르'는 <파리, 13구>(2021)에 이어 다시금 칸에 입성했다. <에밀리아 페레즈>(2024)은 이번 칸 영화제에선 이례적으로 영어가 아닌 오로지 스페인어로 제작된 영화이자 뮤지컬 영화다. 배우이자 가수, 그리고 샐럽이기도 한 셀레나 고메즈를 캐스팅한 오디아르는 전작에 이어 사운드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범죄자 세탁에 더 관심이 많은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결국 범죄에 연루되고 카르텔 리더에 도움을 받아 여자가 되는 꿈을 이루는 이야기다. 캐스팅만큼이나 매력적인 이 스토리가 오디아르의 손을 거쳐 어떤 작품으로 탄생했을 지가 주목된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젊은 감독 중 하나인 '매그너스 본 호른'은 한국에선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단편으로부터 시작하여 첫 번째 장편인 <히어 에프터>(2015)를 칸 영화제 감독 주간 섹션에 선보이면서, 비평가와 관객의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작 <스웨트>(2020)는 시카고 국제 영화제 공식 선정작으로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번 작품 <바늘을 든 소녀>(2024)는 1차 세계대전 후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임신한 젊은 공장 노동자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리스마 넘치는 산파 일을 맡게 되면서 펼쳐진다. 신파는 가짜 가게를 입양 기관으로 운영하여 가난한 산모들이 원치 않는 아기를 위탁할 가정을 찾도록 돕지만, 젊은 이 노동자가 받아들일 악몽과 같은 운명은 영화 속에서 새겨진 시대의 불안처럼 닥쳐온다. 영화는 그 시대의 느낌과 결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을 사용했으며 감독은 시대를 초월하여 낙태처럼 중요한 문제를 함께 다루기를 희망했다.

포르투갈 감독 '미겔 고메스'는 페드로 코스타,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 마뇰 드 올리베이라 등과 같은 선배들의 명상적인 정서를 연결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발산하는 작가이다. <그랜드투어>(2024)는 1917년 버마의 랭군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대영제군의 공무원이었던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가 결혼을 위해 도착한 날 그녀를 피해 도망치면서 본격화된다. 여러 나라를 탐색하며 탄생한 이번 작품은 미얀마,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7개국을 돌며 16mm로 촬영했다. 현대 영상과 서로 결합하면서 묘한 몽타주를 창출하는 이 영화는 그동안 다루었던 식민주의가 아닌 새로운 주제와 톤으로 관객을 찾아 나선다.

 

ⓒ <마르첼로 미오>(2024)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작년 베니스를 정복하고 이번 새로운 작품으로 칸에 다시금 출사표를 낸다. <더 페어버릿: 여왕의 여자>(2018)부터 페르소나로 활동하는 엠마스톤이 이번 영화에도 참여하면서 <가여운 것들>(2023)에서 보여주었던 어떤 미학적 결기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세 편의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인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2024)는 <가여운 것들>에 참여했던 윌렘 데포, 마거릿 퀄리 등이 배우 라인으로 합류하며 연기 앙상블 펼칠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과연 란티모스 영화의 진화일지 퇴화일 것인지 한편으로 우려되면서도, 그의 짧은 호흡의 이야기가 얼마나 임팩트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리모노프>(2024)로 4번째로 칸경쟁 부문에 입성했다. 러시아의 유명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 다룬 이 영화는 그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혁명가, 깡패, 지하 작가, 맨해튼 백만장자의 집사, 칼날을 휘두르는 시인,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하는 연인, 전쟁광, 정치 선동가와 같은 그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반정부 발언을 하면서 연금형을 당하기도 했던 그가 좌파주의를 옹호한 리모노프를 소환한 것은 그가 영화로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1924년 출생하여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배우 중 한 명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를 다룬 '크리스토프 오노레'의 <마르첼로 미오>(2024)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되었다. 감독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출신으로 누벨바그를 계승하는 작가이자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반경을 넓혀 무대에서 오페라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멀티플레이어로 예술적 기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 이번 영화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아내인 카트린느 드뇌브의 딸이자 배우인 키아라의 서사를 다룬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경험하면서 아버지의 삶을 살아야겠다며 다짐한다. 아버지처럼 옷을 입고, 말하고, 추임새를 흉내 내면서 주변 사람은 그녀를 “마르첼로”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결말이 무엇인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 <메갈로폴리스>(2024)
ⓒ <오, 캐나다>(2024)

70, 80년대 대부 신드롬을 일으켰던 노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2024)가 이번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주연인 애덤 드라이버와 나탈리 엠마뉴엘이 출연하여 화제를 끌기도 했고, 그의 작품성을 의심하게 하던 후기 작품의 흥행 참패와 맞물려 마지막 장인 정신을 보여줄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는 대재앙으로 파괴된 후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도시를 이전보다 더 위대한 도시로 재건하려는 이상주의자와 예전 모습을 유지하려는 부패한 시장과의 이념 전쟁이란 주제는 감독이 다양한 역사적 주제를 스크랩하다 탄생하였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공화국이었던 고대 '로마'를 토대로 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인스타그램에 밝히며, 이 영화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9.11 테러 사건 이후에 제작이 멈췄던 이 영화가 현대에 이르러 어떤 의미로 발화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광범위한 작품 활동을 하는 '카림 아이노우즈'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그리고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다. 이러한 경계 없는 활동에는 그가 50년 넘게 규정되지 않은 소속과 비소속에서 불확실하게 살았던 경험이 연결되어 있다. 모계는 브라질인이고, 이름과 우연한 계기로 알제리인이 된 그는 어떤 문화적 틈새 속에서 살아왔다. 브라질과 알제리를 오가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이번에 연출한 <모텔 데스티노>(2024)의 장소는 브라질이다. 반항과 폭력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청년들은 엘리트에 의해 미래를 도둑맞고 그사이에 가부장제에 희생당하는 여성을 다룬다. 그의 영화적 주제가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즈, 브레송, 드레이어를 연구하는 책을 내며 비평계에서 이름을 떨친 '폴 슈레이더'는 탐미주의를 극대한 영화 <미시마 그의 인생>(1985)을 통해 어떤 경지에 이른 듯 보였다. 성공 가도를 가다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던 그를 세워준 <퍼스트 리폼드>(2017)에 이어 <카드 카운터>(2021), <마스터 가드너>(2022)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과 비경쟁에 오르며 다시금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2년 만에 선보인 <오, 캐나다>(2024)는 그와 친구였던 소설가 러셀 뱅크스의 소설을 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망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레너드 파이프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신화화되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드러내면서 예술의 정체와 삶의 의미와 궤적을 동시에 관통한 작품이다.

 

ⓒ <파르테노페>
ⓒ <더 슈라우즈>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폴리에서 시작하는 '파올로 소렌티노'의 신작 <파르테노페>(2024)는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조 괴물 파르테노페를 현대로 소환한 작품이다. 주로 로마에서 진행되던 이야기가 나폴리로 이주한 그의 첫 작품 <신의 손>(2021)을 넘어 본격적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거의 이번에 처음이다. 가령 남성중심주의의 문화를 내세운 <영 포프>(2016)같은 드라마와 빼어난 외모와 몸매를 가진 여성이 아름다움으로 소비되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더 이례적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미학과 로베르트 로셀리니의 장소성을 전승하는 소렌티노의 이번 영화는 영웅주의와는 무관하게 사랑의 열광하는 한 여인의 서사를 다채롭게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자국보단 유럽에 인정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스타일은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작품 <크래시>(1996)을 연상시키는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2022)은 칸 영화제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양한 담론을 양산하는 신작 <더 슈라우즈>(2024)은 이번에도 역시 신선한 재료로 우릴 찾아온다. 유명한 사업가인 50세 카르쉬는 아내의 죽음 이후 슬픔에 잠긴다. 그는 죽은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계인 그레이브 테크를 발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아내의 무덤을 포함한 여러 무덤이 파손되는 것을 발견하고 범인을 찾으면서 자신의 사업과 결혼 생활, 기억을 돌아보게 된다. 이번 작품에도 기계가 등장하는 만큼 고어와 호러와 같은 시각적 스타일이 발현될 수 있는 이번 작품은 과연 어떤 차별성을 지닐 수 있을까.

'코랄리 파르쟈'는 두 편의 단편 <Le Telegramme>(2003), <리얼리티+>(2014)로 드문드문 작품 활동을 하다 장편 데뷔작인 <리벤지>(2017)으로 호평을 받았다. 군대, 대기업, 가부장적 사회의 제도적 불평등, 학대, 배제에 대한 도전이 주제가 되었던 그녀의 세계관은 신작 <더 서브스턴스>(2024)에서 어떤 파괴력을 지닐까. 이번 작품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서브스탠스라는 기계를 이용해 인간이 더 젊고, 아름다우며, 완벽하게 변모할 수 있을 때 발생하는 욕망에 대해 다룬다. 이런 내용을 가장 잘 다루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경쟁하고 있다는 이 부담스러운 사실과는 무관하게 그녀의 장점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드러날 것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

'아가테 라딩거'는 처음 <와일드 다이아몬드>(2024)를 통해 칸 영화제에 입성한 신예다. 영화의 스토리는 프랑스 남부 프레주에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19세 여자아이로부터 시작된다. '미라클 아일랜드'라는 리얼리티 쇼의 오디션에 응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아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성장물인 이 영화가 감독의 성장판이 될까. 첫 작품을 칸이 조명한 만큼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중간에 경쟁 대열에 합류하게 된 세 편의 영화가 있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의 <모스트 프레셔스 오브 카고스>(2022), 에마누엘 파르부의 <세상의 끝까지 3km>(2024), 무함마드 라술로프의 <성스러운 돼지의 씨앗>(2024)가 그 주인공이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는 영화 <아티스트>(2011)로 아카데미 감독상, 세자르상 감독상, 영국 아카데미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한 감독이다. 그의 작품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2022)는 75회 칸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과거의 인물과 서사를 드러내는 몇몇의 영화가 강조하는 특징을 가진다. 러시아 체젠 침공을 배경으로 한 <더 서치>(2014), 그리고 장 뤽 고다르를 조명한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2017)는 이를 잘 드러낸다. 이번 경쟁작인 <모스트 프레셔스 오브 카고스>는 애니메이션으로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배경을 배경으로 폐허가 된 시대에 나무꾼과 아내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던 유대인 부모가 쌍둥이 중 한 아이를 발견하고 구출하면서 변화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미셀 하자나비시우스가 보여 줄 윤리적 가능성이 동시대와 어떻게 접합할 수 있을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칸 영화제 포스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감독 '에마누엘 파브루'는 감독이 아닌 배우로 영화를 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크리스티안 문쥬의 영화에서 배역을 맡기도 했으며 전공인 연극을 통해 여러 수상 경력이 있다. 이번 경쟁에 오른 <세상의 끝까지 3km>(2024)은 동성애를 경험하고 있는 청소년과 부모의 관계를 풀어내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Meda>(2016)와 (2021)에 이어 청소년기를 동일하게 다루는 세 번째 프로젝트다. 과연 그의 영화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사회구조의 변형 혹은 규범화된 인식의 관통은 풋풋한 자아를 가진 청소년이 어떤 실존에 처하며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를 주목해 보자.

이란 감독 '무함마드 라술로프'는 여행 금지 조치로 작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2022년 7월 정부가 시위대를 상대로 한 폭력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체포되었고 곧이어 이란 출국이 금지되었다. 이를 보면 사형제도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흥미롭게 해석해 낸 전작 <사탄은 없다>(202)에서 사회구조의 포위망은 여전히 그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사뭇 고양된 의지였다. 2023년에 풀려난 그가 발표한 <성스러운 무화과 씨앗>(2024)은 이를 은연중에 은유하는 작품으로 테헤란의 판사가 정치적 불안 속에서 편집증과 씨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순간 총이 사라지자, 그는 아내와 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가족 관계는 점차 무너지면서 전개된다.

 

ⓒ <그건 내가 아니야>(2024)
ⓒ <용서>(2024)

그 외에도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켕탱 뒤피외의 영화 <세컨드 액트>(2024)는 레아 세두가 열연하며 괴걸스러운 유머와 초현실적 이미지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 예정이다. 작년 여름 프랑스에서 약 40만 명 관객을 동원했던 <야닉>(2023)에 이어 2024년 1월에는 <다아아알리!>(2023)로 관객을 찾기도 했다. 빠른 속도로 작품을 만드는 그의 특별함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지 주목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2>(2024)로 비경쟁부문 심야상영에 이름을 올렸다. 다시 주연을 맡은 황정민이 연쇄살인범을 쫓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어떤 쾌감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기대해 보자. 아쉽게도 경쟁 부문에 오르지 못한 레오 카락스의 <그건 내가 아니야>(2024)와 알랭 기로디의 <용서>(2024)와 같은 작품도 영화제의 별미 중 하나다.

또한 이번 칸 영화제에서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섹션인 몰입형 경쟁(immersive Competition)을 신설했다. 기존 영화 관람에 대한 패러다임의 교체와 더불어 스토리텔링의 변화,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를 개척하는 아티스트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영화, 새로운 감독, 새로운 형식을 체험한다. 한편으로 영화제를 보며 시대를 독해하고, 다양한 국가에 산포되어 있는 작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끽하게 되는 셈이다. 작가를 선별하고 영화의 의미를 찾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은 비단 비평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주어진다. 영화 매체를 통해 경험하게 될 감격의 순간이 전염되기를 고대하고 희망해 본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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