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필요'와 조건에 대한 홍상수의 해답
'여행자의 필요'와 조건에 대한 홍상수의 해답
  • 이현동
  • 승인 2024.04.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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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요구되는 최선의 준비물"
ⓒ 영화제작전원사

이자벨 위페르와 홍상수의 첫 합작 영화인 <다른 나라에서>(2012)에서는 '여행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시나리오 작가인 정유미로부터 얻는 이 호칭을 통해, 이자벨 위페르는 전주영화제에서 본 프랑스에서 온 여자 감독이란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 여행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카메라 구도 변환 속에서 다른 옷을 입는다. 홍상수 영화의 초기 혹은 중기로 입성하는 이 영화에서 짙게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의 반복은 온통 허구의 공간을 양산하며 차이만을 지정한다. 이때 이자벨 위페르는 시나리오로부터 인공적으로 구성된 인물처럼 보이지만, <여행자의 필요>에서 그녀는 어떠한 것도 설정되어 있지 않는 여행자의 목적 그 자체로 영화 속을 부랑한다. 또한 이 영화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녹색 색채는 최근 나왔던 <물안에서>(2023)에서 활용하던 콘트라스트(contrast)와 같이 영화를 추동하는 주요한 형식과 같이 보인다. 예를 들어 영화 전체에 가해지는 흑백영화가 가지는 고전성, 즉 시간과 기억의 소환하는 속성과는 별개로 <여행자의 필요>(2024)가 녹색영화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색감이 소유한 활력 때문이다. 녹색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주장을 한 괴테는 우리의 눈이 녹색에 노출되면 내면에서 균형감을 완성하기 위해 보색인 붉은 색을 만들어 활동적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물론, 홍상수가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여행자의 활동성에 관해 묻게 된다. 초록 가디건과 꽃을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 이리스(이자벨 위페르)는 시놉시스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이 사람은 불란서에서 왔다고 하고, 어린애 피리를 근린공원에서 열심히 불고 있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사람, 이리스는 불란서라는 도시에서 왔다고 하지만 그녀의 기원에 대해서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영화를 본 이후에도 시놉에 있는 이 문장뿐이다. 한편으로 이리스라는 이름은 단서를 제공한다. 이리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무지개 여신이다. 고대 그리스에선 하늘과 지상의 경계선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특별하게 생각했고, 폭풍우 이후 아름다움 무지개가 나타나면 선한 신이 하늘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고 믿었다. 이는 신들의 전령으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영화로 보면 감독의 영화 언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리스의 이미지와 행동양식은 영화를 결정하는 수사적 능력을 소지한다. 거기엔 녹색과 언어, 그리고 감각을 촉발하는 여러 도구가 있다. 공통으로 홍상수 영화에서 발견되는 길고 긴 대화에서의 어색한 음조와 리듬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로 사용되는데, 이것은 관객이 영화에 온전히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데 목적으로 가동된다. 이것은 극 안에 그려진 인물이 감독이 설계한 운명에 맡겨진 형태가 아니라 여러 사유를 발휘할 수 있음을 모색하게 한다는 것에서 유효하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다른 언어를 공유한다는 이 낯선 감각은 인물을 가공한다기보다 느낌과 제스처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 영화제작전원사

구조보다는 느낌으로

시간의 뫼비우스 띠를 탈주한 <여행자의 필요>에서는 시간을 가늠하게 하는 도구들이 기능적으로 나타난다. 이리스가 과외를 통해 얻은 돈을 남자 친구인 인국(하성국)에게 전달해 주는 모습과 마지막 장면에서 저녁을 암시하듯 어두워지는 화면은 전작 <우리의 하루>(2023)보다 더욱 시간의 경과를 면밀히 묘사한다. 전작이 '하루'가 아닌 '우리'를 묘사하기 위해 대동했던 프레임의 유사성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판별이 아닌 실제로 각인시키는 구조 영화라면,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순전히 여행자가 갖는 느낌에 치중한다. 여행자는 깊고 넓은 감정을 표면으로부터 추출한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처음 목격하게 되는 건 언어 교환 속에서 느낌을 공유하는 인물과의 관계다. 언어의 한계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는 느낌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 속에서 꿈틀거리며 포개어지는 감정은 추상적이지만 명확해지는 말로 도래한다. 처음 어떤 동기로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이송(김승윤)과의 만남에서 언어 교환과 피아노 연주 후에 그녀를 향한 이리스의 질문은 이 영화의 첫인상으로 주어진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며 무엇을 느꼈냐"고 묻고 "행복을 느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원주(이혜영)가 기타를 치고 난 후에도 동일하게 내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냐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를 상기하는 방식도 이송과 원주는 꽤 다르다. 이송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혜영은 아버지가 집을 버리고 떠났다고 차갑게 이야기한다. 그 감정을 메모하고 심지어 습득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행자 이리스는 구조가 아닌 느낌을 저장한다. 그리고 이리스는 그들의 감정을 메모한 뒤 다음 주까지 읽어 오라는 숙제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는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형이라는 점에서 여행의 지속성을 함의한다. 여행자가 소유한 이 유연한 감각은 프레임에서도 느낌으로 맺힌다. 특히 영화의 등장하는 묘한 숏이 있는데, 상당히 위쪽에서 찍은 전경 숏이다. 하늘과 나뭇잎이 프레임에 그림처럼 배열되어 움직이는 총 3번의 숏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길이의 숏이다. 더욱이 3번째 숏은 <물안에서>처럼 카메라의 촛점이 잘 맞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가중하는 윤동주의 시, 남자친구 인국이 '시'를 작업하고 있다는 이 교차지점에서 우리는 구조를 마주하지 않고 시의 특성인 느낌과 감각을 매칭하게 된다.

 

ⓒ 영화제작전원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 모나미펜 위에 녹색 테이프, 식당에서 전통 음식인 비빔밥과 막걸리를 음료처럼 마시며, 인국으로부터 들은 샐러드를 잘 만든다는 칭찬까지. 이리스를 공동으로 형성하는 이 녹색의 재료들은 홍상수 영화가 그동안 지속해 왔던 구조의 특성을 다른 것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편으로 그녀를 관찰의 대상으로 보았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온전히 이리스가 영화를 지휘함으로 <여행자의 필요>는 구조로는 파훼될 수 없는 투명한 상태로 존재한다. 인국의 집에 배치된 어싱(earthing)매트도 그녀의 자연주의 속성을 드러낸다. 이 매트는 전자파에 노출된 인간의 몸 속에 축적된 음이온을 체크하거나 중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이리스는 음이온이 없는 것으로 측정되지만, 인국은 음이온이 0.1, 0.2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엄마에게 둘의 관계가 들킨 뒤에 한탄하는 엄마에게 인국은 '진지한 사람, 속세에서 도를 닦는 사람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어떤 욕망에도 희석되지 않는 여행자는 어디에 속박되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을 자발적으로 습득하는 자들이다.

어떤 재료는 묘하게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가령 2번째 언급되는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은 홍상수의 영화가 가고자 하는 여행자의 세계를 은연중에 전망하게 해주며 이리스가 공원에서 부는 리코더의 괴상한 음조는 규정될 수 없는 자연의 움직임처럼 영화에 공명한다. 생각해보면 이송과 인국의 피아노, 원주와 해순(권해효)의 기타가 규칙적인 멜로디로 곡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행자의 자유로움은 구조에서 해탈하려는 홍상수의 또 다른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영화에서 홍상수는 여행의 필요와 조건을 외부인으로부터 찾았다. 마치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2017)에서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도둑질하는 것처럼 감독은 결국 외부로부터 침입한 여행자이며 영화를 도둑질하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영화란 개념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관음하고 기록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방하려는 여행자들로 운집된 느낌의 세계다. 이전에 <우리의 하루>에서 필자가 말했듯 이 영화가 화면 밖으로 나와 실제가 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여행자의 필요>의 장르는 화면 안에서 오롯이 잠재력을 분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영화제작전원사

여행자의 필요
A traveler’s needs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자르
이혜영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김승윤


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제작연도 2024
상영시간 9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4.04.24.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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