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유산으로 주어진 영화의 모양
'키메라' 유산으로 주어진 영화의 모양
  • 이현동
  • 승인 2024.04.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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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와 성자의 사이의 굴절된 공간을 탐구하면서"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세상이 관성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자본주의로부터 일탈을 초현실적으로 드러내는 시네아스트다. 그 범람 속에 파묻힌 망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거꾸로 매달아 그 척력을 동력으로 삼은 성자들은 무력한 환경 속에 노출되면서도 각각의 비전을 수행하는 데 정체되어 있지 않는다. 가령 <더 원더스>(2014)는 급진적이며 종말론적인 환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집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열두 살 젤소미나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행복한 리짜로>(2018)에서는 물질과 정신을 착취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년 라짜로가 기적을 일으키는 성자로 변화하여 희미하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을 야기한다. 토리노 대학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로르바케르는 신화와 우화를 동원하여 현실주의를 영화라는 마법으로 격퇴해 낸다.

이번 신작인 <키메라>에서 무덤은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소환하는 장치이며, 망자의 죽음을 새롭게 하는 공간으로 배치한다. 역사학자 토마스 W. 라쿠르에 의하면, 시신을 돌보는 일은 "우리가 자연의 질서에서 문화로 등장했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이는 지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비용을 지불했다는 오랜 역사 기록에서 도굴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한다. 한편으로 고고학의 발전은 고유한 유물이 어떻게 타 국가로부터 약탈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한데, 아프리카 국가가 다호메이 왕국이라 불렸을 당시 프랑스 지배자들에게 예술품이 도난당한 후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린 마티 디옵의 <다호메이>(2024)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약탈과 회귀의 역사는 대부분 국가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역사이자 공간의 서사가 어떤 감응을 촉발하는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 M&M 인터내셔널

이처럼 영화에서 시간을 횡단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보다 '공간'이다. 시간이 한정된 영화 매체에서 공간은 시간 앞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켈리 라이카트 <퍼스트 카우>에서는 한 소년이 땅을 파다 오래된 뼈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영화는 시간을 명시하지도 않고 공간의 주인인 캐릭터를 땅의 표면에 배열한다. <키메라>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아르투(조쉬 오코너)가 무덤에서 지상으로 도약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시간이 아닌 공간을 견인한다. 초현실적인 이 영화가 구원하는 요소는 결국, 시간이라기보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서사다.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의 역사는 시간의 흔적을 선별적으로 가늠하게 할 뿐만 아니라 침식된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있다. 

다른 예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23」 후보에 오른 작가 갈라포라스-김은 유적과 유물이 보존하고 있는 소리, 언어 역사와 같은 무형의 유산이 장소를 어떤 방식으로 맥락화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제도화된 장소와 이전의 흔적을 채취할 수 있을 때의 특정 공간은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그가 자료를 이해하는 방식이 주변부인 삶과 관계한다고 지적할 때,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키메라>(2023)는 개인의 서사가 무덤이란 공간에 접촉할 때 발현되는 시간을 공간으로써 이주시킨다. 영화가 수미상관으로 표시하고 있는 한 여성은 아르투의 죽은 여자친구 베니아미나(일 비아넬로)로 그의 삶을 쫓아오고 있는 아련한 기억의 단면이다. <키메라>의 포스터가 타로 카드 ‘매달린 남자’이며 양옆에 금화를 탐닉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 해보자. 이야기의 목적지가 죽음이란 시간의 관성을 탈주하여 현실이 역전된 형태임을 고려할 때 공간은 가장 고귀한 기억과 접합한다.

 

ⓒ M&M 인터내셔널

무덤을 보는 시선

주인공인 아르투는 발굴에 실패하여 체포된 후 수감 생활을 하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여자 친구의 어머니 플로라(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자신의 딸이 여행을 떠난 것이라며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돌아온 아르투를 환영한다. 플로라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이탈리아(캐롤 두아르테)는 집에서 몰래 자녀를 키우며 답답한 상황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르투는 그녀와의 인연 이상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 가운데 방황하기도 한다. 그는 배금주의에 사로잡힌 친구들에 이끌려 도굴 현장에 다시 투입된다. 여기서 아르투는 죽은 자들의 공간인 무덤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의 영혼 세계가 침입받는 듯한 강력한 어지럼증을 호소하게 되는데, 이는 신화나 성서에서 등장하는 영웅이자 성자로서 그 길을 홀로 고군분투하며 앞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이때 로르바케트는 이미지를 반대로 굴절하여 아르투가 마치 땅속에 머리를 박고 땅 밑바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필름 포맷으로 사용하는데, 무덤은 35mm, 대화 장면은 슈퍼 16mm, 아마추어 16mm에서는 높은 원근감을 위해 채도가 높은 이미지를 사용한다. 폐허와 숲, 새의 비행이 공존하는 여러 이미지는 에트루리아인들에게 신성과 미래를 암시하는 여러 현상들이 뒤섞인 장소이자 영적인 세계로의 비행으로 표시된다. 지하와 지상, 과거와 현재라는 영화의 물질성도 이런 역전 관계에 포섭되어 함축적이지만 유기적인 발상 아래 운용된다.

 

ⓒ M&M 인터내셔널

성공적인 도굴로 돈을 번 그와 친구들이 자축하며 파티를 즐기는 도중 쓰레기가 널브러진 밤 해변에서 우연히 무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덤 안에는 작은 봉헌상을 비롯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던 프레스코화로 이뤄진 아름다운 공간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르투를 제외한 친구들은 부자가 될 것이라며 환호하고 무거운 조각품을 운반하기 위해 목을 잘라 분해한다. 이때 아르투는 격노하지만,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경찰로 위장한 또 다른 도굴꾼들에게 속아 목을 자른 여인의 머리만 들고 도주한 친구들은 이제는 그 무덤에서 어떠한 유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르투와 친구들은 유물을 찾아 경매 현장이 이뤄지는 요트에서 박물관 큐레이터인 스파르타코(알바 로르바케르)를 만난다. 목이 잘려져 있음에도 그 작품을 온전한 작품이라 믿고 있는 그녀에게 아르투의 친구들은 우리에게 목이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파편은 배금주의와 더불어 역사를 위조하거나 훼손시킬 여지가 있음을 규명한다. 아르투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바다 아래로 던져버린다. 도리어 물질의 권능을 포기하고 그가 돌아간 곳은 어디일까. 친구들의 비난을 뒤로한 채 아르투는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갱도를 찾아낸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발견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것이 룰이라며 아르투를 진입시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갱이 붕괴하고 아르투의 생사는 잠깐 암전되는 순간과 함께 그 존망이 의문에 휩싸인다. 다시 촛불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아르투에게 주어진 홍색 실 위로 희미한 빛이 보인다. 홍색 실을 잡은 순간 그는 베니아미나와 마침내 조우한다.

이 역전은 그가 하강을 통해 상승하게 되는 기억의 역설에 기인한다. 인터뷰에서 이것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참고로 했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는 시인이었던 오르페우스의 아내인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가 뱀에게 물려 죽고 난 후 그가 저승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 방법을 자문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지상세계에 이르기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겨 결국 다시 에우리디케가 지하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지하 세계와 지상이라는 두 종류의 공간이 극적 장치로 활용하는 이 이야기는 아벨 강스가 모든 신화와 우화 등이 영화화될 것이라는 예고와 잘 맞아떨어진다. 마치 이전에 이 신화를 시적으로 복구한 장 콕토의 <오르페>(1950)처럼 말이다. 아르투와 죽은 여자 친구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부활시키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우리에게 공언한다. 이처럼 ‘키메라’가 갖고 있는 다채로운 모양은 영화적 세계를 잘 모색하고 있다. 무덤은 가장 죽음을 선명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스파르타코가 유물을 경매할 때 말했던 것처럼 ‘살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매기는’ 괴상한 물질주의를 동반한다. 필름 재질의 변화는 결코 시간을 과거로 치환할 수 없기 때문에 유추할 수 없고 그저 시간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영화에 대한 자기 고백을 플래시백을 통해 표현한 데미안 셔젤의 <바빌론>(2023)의 마지막 장면이 과도하게 관객들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일순간 영화적 현상에 주목하게 되는 건 바로 그 장면이 한편의 전시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메라>에서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대사는 결국 로르바케르 감독이 전시하는 영화의 세계가 과거와 현재가 신화와 우화로 혼합된 기반 아래 조율되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제스처일 것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M&M 인터내셔널

키메라
LA CHIMERA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
Alice Rohrwacher

 

출연
조쉬 오코너
Josh O'Connor
알바 로르와처Alba Rohrwacher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
캐롤 두아르테Carol Duarte

 

수입|배급 M&M 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32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4.04.0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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