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
수목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밝던 때엔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안개가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리하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정말 현명하다 할 수가 없다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요즘은 해외관광객의 취향에 맞춘 색다른 가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한국전쟁 직후 , 1950년대 당시 명동일대의 풍경은 지금과 무척 달랐던 모양이다.
당시를 회고하는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문예살롱"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짙은 문화의 향기가 배어나는 다방. 이곳은 모두에 전문을 인용한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의 번역자인 송영택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기도 했다. 시인이자 독문학자로 헤세를 비롯해 릴케, 레마르크는 물론 괴테에 이르는 대문호들의 한국어판 표지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이름.
이후 "읽히지 않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로 대표되는 수용미학 등의 문학이론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기는 했지만 그들의 작품을 탐독하던 끝에 독문학을 전공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까지 있었던 필자의 청년시절을 회고하면, 언어 자체로서만 놓고 볼 때 그 유려함과 표현의 다양함이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말을 회화의 물감처럼 사용하던 그의 필력에는 스무 권을 넘는 책들을 내놓은 중견번역가로 살고 있는 오늘에도 경외심이 차오른다.
특히, 그의 문장을 통해 접한 "안개 속에서"는 영화적이다. 단지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대표작(1988년 작 <안개 속의 풍경>)이 떠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만가지 상념이 간결하지만 깊이 있게 나열되며 행간을 메우고 있는 다양한 심상은 각각의 시퀀스로 나뉠 만큼 상상력의 공간을 담고 있다. 이야기가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견고한 짜임새까지 돋보인다.
넓은 호수로 유명한 일본 시가현 출신으로 교토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부터 첫 단편영화가 칸영화제 단편부문에서 상영되고, 졸업 작품이 2020년 가와세 나오미가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나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 온 청년감독 무라세 다이치의 두 번째 작품으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안개 너머>(2023)는 마치 헤세의 "안개 속에서"를 모티브로 한 오프닝이 지나간 뒤의 이야기 같다.
배경은 한때 상점과 여관이 늘어서 등산객들로 붐비던 나라현 남동부 산골마을. 주인공은 이곳에서 대대로 여관을 운영해 온 집에서 태어난 12세 소녀(이하카, 미야케 슈리 분)다. 몇 년 전부터 아버지(료지, 미우라 마사키 분)와 별거중임에도 꿋꿋하게 시아버지(시게, 홋타 신조 분)와 함께 여관을 운영 중인 그녀의 어머니(사키, 미즈카와 아사미)는 어떻게든 여관을 지키려 하지만 어느 날 산책을 나간 줄 알았던 시게가 실종되면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장면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홍상현
산세바스티안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두 번째 장편으로 부산에 오셨습니다. 감상이 어떠신가요.
무라세 다이치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렇지만 한국 방문 자체가 처음입니다. 제 어머니와 주변 분들이 한국드라마의 팬이셔서 다들 부러워하고 계세요! (웃음) 저로서는 무엇보다 매 끼니 한국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기쁘네요. 실은 제가 살고 있는 시가에서 오키나와보다 한국이 훨씬 가까운데 왜 이렇게 가까운데 있는 멋진 여행지를 진작 와보지 못했는지 후회가 될 정도입니다.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게 매번 드리는 질문입니다. 혹시 한국영화를 즐겨보시나요? 인상깊은 작품이 있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무라세 다이치
일단 <올드보이>(2003)를 무척 인상 깊게 봤고 <곡성>(2012)도 재미있었습니다. <곡성>의 경우는 호러를 싫어하는 친구와 '호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러갔었는데 도리어 호러보다 무서웠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기생충>(2019)은 칸에서 수상했던 해 현지에서 봤는데 제가 영어를 잘 몰라서 자막을 읽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표현만으로도 스토리가 이해되더라고요. 영화라는 매체의 원점에 대해 실감하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홍상현
기억에 남는 한국영화로 꼽아주신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안개 너머>와는 분위기에서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 듭니다. (웃음)
무라세 다이치
맞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쭉 그랬던 것 같아요. 미국영화를 예로 들자면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를 좋아하니까요.
제가 살던 곳은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에 옆 마을에 가야 영화관이 있었어요. 게다가 그곳이 또 멀티플렉스이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죠. 영화관에 갈 때 외에는 비디오대여점을 주로 이용했는데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 장르를 정해놓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게 되면서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판타지나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하긴 프로들로서도 만들기가 쉽지 않은 영화들이니까요. (웃음)
홍상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친구이자 감독의 은사인 야마모토 타츠야 교토예술대 교수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대단히 재능있는 학생이셨다고 하더군요. (웃음)
무라세 다이치
야마모토 선생님은 1학년 때 담당교수셨는데, 다큐멘터리 분야에서의 경력도 상당하신 분이라 일단 촬영지와 지역 분들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것부터 엄격하게 가르치셨어요. 당시에는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안개 너머>를 찍으면서 그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지역에 파고들어 그 고장 분들과 어울리면서 그곳의 모든 것을 작품에 녹여내려고 했거든요. 애초의 의도가 제대로 실현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상현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나라의 산골마을인데요. 말씀처럼 그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신 것을 보면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지조사나 로케이션 헌팅이 무척 치밀하게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요.
무라세 다이치
촬영준비에 들인 시간이 2년 정도 됩니다. 2주에 한 번 정도는 무조건 갔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마을 주민 분들께서도 저를 영화감독이 아니라 그냥 동네청년으로 생각하셨던 분들이 많았지요. 그곳에서 실제로 여관을 경영하는 가족에게 신세를 지면서 휴일에는 감농사라든가 양식장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그 집의 친적 쯤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웃음)
홍상현
말씀을 듣다 보니 단순히 촬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그러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무라세 다이치
최우선적인 목표가 마을을 찍어보자는 데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인구가 대단히 적어 정부가 몇 정부가 향후 몇 년 이내에 소멸될 가능성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마을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이거든요. 때문에 저로서는 예컨대 한 30년쯤 후를 생각했을 때, 이미 사라져 있을 지도 모르는 이 지역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최대한 기록하고 싶었어요.
홍상현
후반부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반해 기획 자체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네요.
무라세 다이치
아, 제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달라진 면이 있습니다.
애초에 저도 시가의 시골 출신이라 시골 특유의 정서에 대해선 다른 사람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일단은 그와 관련된 사실적인 묘사를 해보돼, 눈에 띠는 부분보다는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한국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시골이 그저 유토피아이기만 할 걸로 믿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버라이어티프로와 차이가 있죠. 지역 분들의 입장에서는 익숙히 않은 모습이기도 하고.
홍상현
이건 도입부에서부터 실감한 점인데, 카메라의 움직임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아서 놀라웠어요. 그밖에도 <안개 너머>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특별히 정해놓으신 콘셉트나 비주얼플랜이 있었나요?
무라세 다이치
도도 타케시 촬영감독이 원래 사진작가시거든요. 영화에서 촬영을 맡은 건 처음이지만 로케지인 마을에 살았던 적도 있어요. 현지에서 지내면서는 내내 주민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왔고요. 촬영과정에서 이게 큰 도움이 됐는데요. <안개 너머>에는 주민들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신이 많거든요. 그런데 늘 보던 사람이 (당연히 양해는 구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사람들이 긴장을 하지 않죠. 다만, 그렇다고 해서 클로즈업으로 모습을 잡은 건 아니에요.
홍상현
그렇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느낌이 오히려 더 좋던데요.
무라세 다이치
네. 제가 도도 감독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그는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바라봐요. 그 점이 사진에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요. 저는 <안개 너머>의 배경이 되는 마음을 너무 연민을 자아내는 모습으로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도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주민들에게는 그저 삶의 터전일 뿐이니까.
그리고 비주얼플랜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해 보면, 뭔가를 찍을 때 일단 선택을 하자는 원칙을 세워뒀습니다. 우리세대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다 하더라도 필름으로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없어요. 따라서 촬영을 할 때도 보통은 많은 것들을 찍어두죠. 선택지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고, 맘에 안 드는 건 나중에 지워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저는 125분의 1초, 260분의 1초의 세계에 살고계신 도도 감독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마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결코 방금 전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실 수 없거든요. 그런 조건 하에서 재가 내린 결론은 무엇을 찍을지 보다 무엇을 찍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일이었어요.
하나 더, 프레임은 줄곧 스탠다드로 유지했습니다. 제게 영화를 본다는 건 창문을 응시하는 일에 가깝거든요. 누구에게도 초점을 맞추지 않죠. 보통은 프레임에 누군가 들어왔다가 나가면 당연히 쫓아가보고 싶어지겠지만 저는 도도 감독에게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습니다. 프레임에 담기는 풍경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어차피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즉 '영화 속 카메라 너머의 공간'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서 관객 여러분께 상상의 여지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홍상현
<안개 너머>의 일본어 원제가 <안개의 못>인데요. 저는 이쪽이 작품을 훨씬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라세 다이치
정확하십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오미네산에 둘러싸고 있는 이 마을이 꼭 못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큰 비가 내리면 못의 물고기들은 대번에 떠내려 가버리죠.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와 있지만요. 때로는 엄혹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자연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생명도, 그 장소에 관한 기억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불씨처럼 다시 활기를 띠며 퍼져나갈 수도 있죠. 저는 <안개 너머>의 배경이 되는 마을도 이와 같은 순환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붐비는 마을이 될지 모른다는. 못의 물고기들처럼.
홍상현
다소 거친 비약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세계를 '대립'과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죠. 서양철학과 무척 대조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요. 말씀해주신 <안개 너머>의 세계관에서도 같은 맥락에서의 특징이 엿보입니다. 또한 흥미로운 게요. 원래 할리우드영화를 즐겨보셨다고 하셨는데. (웃음) 작품에서 오즈 같은 일본의 고전영화작가들의 영향이 느껴지는 점이에요.
무라세 다이치
오즈는 화면비율을 4:3으로 설정하고 렌즈는 거의 50mm를 사용해서 영화를 만들었죠. 말씀처럼 저도 정확히 그런 시선으로 로케지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있습니다. 관객으로서의 제 취향과 창작스타일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한다는 일본영화들을 봐도 그의 작품과는 꽤 차이가 있는 것처럼. (웃음)
홍상현
스타일 면에서 보더라도 <안개 너머>에는 대단히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초반부에서 애초의 기획의도 대로 마을의 풍경을 리얼리즘적으로 그려가다가 뒤로 갈수록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끼어들면서 표현주의적으로 바뀌어버리는데요.
무라세 다이치
<안개 너머>이라는 영화의 기저에는 마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저널리즘에 입각한 의도와, 그럼에도 유토피아 같은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제 두 개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충하는 요소인 건 사실이지만 '일단 좋아하는 걸 다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봤어요.
홍상현
그렇죠. 오히려 방금 말씀하신 '두 개의 마음'이 도리어 롤러코스터처럼 영화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준 거 아닐까 싶어요. 각본을 쓰실 당시부터 계산하셨던 건지 궁금해지는데요.
무라세 다이치
말씀하시는 장면들은 현지취재를 하던 당시 영화관이 있었던 곳에 가 보거나 '예전엔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을이었다'는 지역 할머니의 말씀을 듣기도 하면서 구상한 것들인데요. 후반부에 배치한 이유는 의외로 심플합니다. 전반에 뒤섞어서 관객들을 산만하게 만들기보다 클라이맥스로 편성해서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였어요.
시와 같은 운율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비슷한 장면이나 프레임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변주를 더해서 우리의 사는 모습에서 느끼는 감상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말부에 가서는 처음 10분 동안의 쓸쓸한 느낌이 또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있더군요. 쉽게 예측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즐거웠던 여행이었습니다.
홍상현
그래요. 게다가 '시간'의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운, 다시 말해 '영화적 시간'이 잘 묘사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기와 관련해서는 캐스트에게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요.
무라세 다이치
일단 할아버지에 관한 부분은 처음부터 미우라 마사키 배우의 캐스팅을 상정해 놓은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써놓았기 때문에 촬영은 그저 제가 촬영이 진행되기 1년 전에 미리 작성해 둔 '예상답안'을 맞춰보는 과정이었어요. 주변에 고정되어있는 캐릭터들이 마을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프레임 안에 잡히는 동네 주민 여러분들이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죠. 물론 전문적인 연기자들이 아니라 같은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 달라는 주문은 할 수 없었죠. 그런데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사무실 장면에 등장하는 여성도 실제 주민인데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이미 <안개 너머>를 보신 관객 여러분들이라면 느끼셨을 테지만 그대로 촬영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죠. 촬영 당일에 잠깐 같이 산책을 하면서 장면의 설정이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 현장에서는 어떤 디렉션도 하지 않았습니다.
홍상현
"그간 옆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영화가 있었나" 싶을 만큼 아름다운 옆모습 컷이 많이 나오면서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라세 다이치
기본적으로 컷워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옆모습이 인상적인 컷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야 쭉 하고 있었지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의 얼굴모습이 점점 변하는 것을 보면서 적절한 포인트가 포착될 때마다 매번 찍어뒀죠.
홍상현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모든 캐스트와 스태프가 마을에서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무라세 다이치
다 같이 촬영이 진행되던 여관에서 묵었습니다. 제 은사이시기도 한 시이 유키코 프로듀서를 비롯해서 제게 영화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은 늘 '영화 일을 하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무척 의미 깊게 다가오는 말씀이었기에 영화인으로서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일단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간 거죠. 그렇게 그 지역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주민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촬영을 준비했습니다.
홍상현
한편 <안개 너머>는 어르신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영화이기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극중의 할아버지고요.
무라세 다이치
저를 무척 귀여워해주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런 느낌을 받으셨던 건 아마도 시게라는 등장인물에게 그런 제 감정을 투영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밭일을 도와드리는 등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어르신들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안개 너머>의 할아버지는, 다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거짓말'같은 인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레이존에 서 있는 인물 말이죠. 한 가족이 어떻게 될 지를 담당하게 관찰하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관찰하는 손녀. 그렇게 상징적인 느낌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앞 세대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아울러 아들과 며느리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유대를 손녀와 유지하는 모습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잘난 척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영화 일을 한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뿐더러 영화 말고도 좋아하는 게 많은 까닭에 영화 외에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연출자가 되고 싶습니다. 누구를 감동시키기보다 공감을 얻고, 그로인해 조금이나마 삶이 풍요해지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 같네요.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는 대부분이 고령층인 지역주민 분들이 많이 영화를 보러 오셔서 좋았는데, 부산에 오니 젊은, 저와 같은 세대의 관객 분들이 많고 또 다른 열기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안개 너머>를 함께 보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제가 살고 있는 일본과 아주 가깝지만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닮은 면이나 공감대역시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동세대를 중심으로 영화를 통해 교류하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경험에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꼭 한국에 다시 와서 여러분과 재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3월 24일, 일요일.
올해 다카사키영화제 시상식 겸 개막식의 수상자 대기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무대에 오르는 그들을 배웅한 뒤 오픈을 대략 10분 정도 남겨두었을 즈음, 라인메시지 하나가 바다를 건너 날아왔다.
"시상식에서 특별 언급되었어요!"
소피아국제영화제에 참석중인 무라세 감독으로부터. 교사(그는 지역 학교에서 기간제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주) 특유의 차분함을 유지하지만, 끝까지 기쁨과 흥분까지 감추지는 못했던 마지막 문장. 일본 현지개봉(4월 6일)에 즈음한 시점에 더 없이 반가운 소식. 부디 전국 30여 개 스크린(대부분 미니시어터)에서 공개중인 이 작고 소중한 영화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지기를. 그리고 다시 한국 관객들을 찾아오기를.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