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12월 말 스물한 번째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았다. 직함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해 영화제 프로그램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래머를 거드는 역할. 업무는 상황에 따라 다른데, 그중 하나가 국제영화제나 필름마켓 등에 노출되지 않은 수작을 찾아내 추천하는 일.
마침 타이밍도 절묘하게 막 제작이 끝난 괜찮은 영화 한 편을 건졌다. 그것도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을 거쳐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의 영예를 거머쥔 <친애하는 우리 아이>,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자천(self-recommendation)으로.
10억이 채 되지 않는 저예산임에도 작품의 매력 때문에 츠마부키 사토시와 카호가 출연을 자청해 화제가 된 <레드>(2020)였다. 인터내셔널프리미어. 다른 영화제에는 딱히 관심이 없단다. 가와세 나오미로 대표되는 동세대 감독들이 유럽의 영화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례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다. 원래 NHK 프로듀서(1992년 입사)로 <NHK 스페셜>에서 화제의 휴먼다큐를 잇달아 제작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승진을 앞 둔 어느 날 돌연 사표를 내고 전도유망하던 '국원'생활을 접는다. 더 이상 조직생활을 이어가면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던 영화감독과는 평생 무관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도에이교토촬영소에서 현장조감독 생활을 시작, 지상파방송국 프로듀서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온갖 고생을 사서하다 장편감독 데뷔의 꿈을 이룬 2009년, 작품과 무관하게 써둔 또 하나의 시나리오 <세계가 너를 부르지 않는다면>으로 선댄스ㆍNHK국제영상문화상을 수상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시아의 선댄스영화제'라 불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갖는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평소 '구미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아시아영화인들이 연대해 그에 못잖은 국제영화제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참이었으니까.
미시마 감독의 전주사랑은 그간의 행보를 보더라도 유별나다. 장편감독 데뷔 이후 영화자체의 흥행성공은 물론 직접 쓴 동명타이틀 원작소설까지 출간 10개월 만에 17만 부나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운 <해피 해피 브레드>(2011)의 한국 개봉 이후,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2015)의 월드프리미어를 진행한 곳도 전주국제영화제였고, NHK시절 가족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다진 기량을 발휘해 재혼가족의 갈등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친애하는 우리 아이>를 만들었을 때도 비슷한 시기 개최되는 구미의 영화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허나 전주를 향한 이처럼 뜨거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그녀의 한국행은 이뤄질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레드>의 현지 개봉 19일 만에 발표된 팬데믹 선언 때문이다. 여성의 욕망이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파격적인 스타일로 그려내 1년 뒤 프랑스 개봉까지 하게 되는 야심작은 영화계를 덮친 역병의 공포로 서둘러 극장에서 내려졌고, 같은 해 하반기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상영이벤트인 '폴링 인 전주'의 GV가 취소되면서 늘 그리워하던 한국의 관객들과 온라인으로조차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도 잠시, 미시마 감독은 코로나19가 대유행을 시작하던 2020년 4월22일 새벽,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소리라고 생각한 그녀는 비상사태선언으로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이던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신작을 기획한다. 함께하기를 원하는 캐스트에게 각자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필요할 경우 연출을 곁들인 영상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 이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의 배우들이 크리에이터로 제작에 참여하는 실험적인 형태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동아시아영화특별전 초청작 <따로 또 같이>(2023)가 태어났다.
홍상현
코로나19 사태로 침잠해가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에서 기획한 단편 프로젝트 <DIVOC-12>(2021) 이후 1년 만에 발표한 신작 <따로 또 같이>로 전주국제영화제에 돌아오셨습니다.
미시마 유키코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2020년에 <레드>를 초청해주셨을 당시, 영화제에 참가해 한국 관객 여러분의 감상을 직접 들어보고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거든요. 코로나19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 속에서 어떤 것을 느끼고 바라보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그 결과 말씀하신 <DIVOC-12> 프로젝트에 <환희의 송가>라는 단편으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지난해 <따로 또 같이>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팬데믹 3년째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대면 참가를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홍상현
이번 <따로 또 같이>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를 진행했지만 그간 '전주가 사랑하는 감독'이라 불리실 만큼 깊은 인연을 이어오셨는데요.
미시마 유키코
처음 전주에 오게 된 건 2015년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때였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제 작품을 주목해주시고, GV를 진행할 때도 매번 관객 여러분께서도 진지하고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주셨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감독으로서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어느새 전주국제영화제는 제게 가장 의미 있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홍상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해도 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미시마 감독의 경우, 데뷔 이후 제작하신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에 수입되어 영화제뿐만 아니라 일반관객의 사랑 또한 듬뿍 받아오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시마 유키코
제가 감히 넘겨짚을 수 있는 문제일까 모르겠네요. 무척 쑥스럽기도 하고. (웃음) 말씀처럼 <해피 해피 브레드>, <해피 해피 와이너리>,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친애하는 우리 아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2018)을 거쳐 <레드>에 이르기까지, 제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는데요, 아마 전주국제영화제의 관객 여러분께서 늘 응원해주시고, 붐업을 해 주셨기 때문 아닐는지요. 그밖에 혹시 평론가님께서 생각하는 다른 요인이 있을까요? (웃음)
홍상현
'보편성' 아닐까요? 일본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지만, 배경을 어느 나라로 바꾸더라도 서사의 전개가 가능하다는.
미시마 유키코
그렇게 봐주시다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100년 뒤, 어느 나라의 관객이 보더라도 공감대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가능한 한 지금의 시대ㆍ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죠. 이런 과정에서 평론가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성'도 담보되었던 거 아닐까 싶네요.
홍상현
슬슬 본격적으로 올해 초청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타이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영어 타이틀은 "Alone Together," 원어로는 <도쿄조곡 2020>, 즉 'suite'예요. 작품을 만드실 때마다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볼 수 있는데(<레드>에서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나 <DIVOC-12>의 "환희의 송가"처럼), <따로 또 같이>도 연장선상에 있는 걸까요?
미시마 유키코
신작을 중심으로 말씀드려 보면, 일단 <DIVOC-12>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단편 <환희의 송가>는 코로나19라는 인류적 재난 가운데서 기쁨이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입니다. "도쿄조곡 2020"은 기존에 존재하는 악곡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게 아니라 음악적 형식에서 영감을 얻은 경우죠. 조곡은 하나의 틀 안에 여러 가지 짧은 곡들을 끼워 넣어서 만들잖아요. 일단 모양새에 있어서는 그렇고, 구성 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유사해요. 각각의 시퀀스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그게 합쳐지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작품은 아닙니다.
홍상현
뭔가 흥미로운 관점이 제시될 것 같은데요? (웃음)
미시마 유키코
예컨대 "호두까기 인형"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꽃의 왈츠"인데 대단히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전체적인 흐름과 대비되는 '광기'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요. 저는 이른바 "뉴 노멀"이라고도 불렸던 코로나19도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의미를 갖는 시간 아니었을까 합니다.
제 나름대로 무척 신경을 썼지만 다른 평론가 분들은 좀처럼 언급해주시지 않아 섭섭했는데 무척 기쁘네요. (웃음)
홍상현
이야기가 나 온 김에 좀 더 들어가 보면, 모처럼 야심작인 <레드>를 완성하셨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전주국제영화제 이외의 영화제에는 거의 출품을 하지 못하셨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후 일관되게 '역병에 지지말자,' '희망을 가지자'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필사적으로 만들어 오셨는데요.
미시마 유키코
팬데믹 기간 동안 저 자신 코로나19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큰 두려움을 느꼈고, 사람들의 불안해하는 모습 역시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 역설적이게도 희미한 빛이나마 찾아내 보고 싶고, 또한 그것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 또한 생기더라고요. 거기에 영화를 팬데믹 상황에서 '불요불급'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삶에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단정해버린 관련당국의 태도가 도리어 창작의 욕구를 자극한 면도 있었습니다.
홍상현
하긴 그리고 보면 <레드>도 코로나19 초기 패닉이 확산되던 분위기에서 직격탄을 맞았었죠.
미시마 유키코
NHK 시절 한신ㆍ아와지대지진 관련 다큐멘터리 취재를 할 때였는데요. 이재민 대피소를 만드는데 가장 먼저 식량, 다음으로 수면과 생활을 위한 공간, 그리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는 공간 등이 준비돼야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모든 설비들이 다 갖춰지고 나면 필요해지는 게 바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한편,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잠시 잊고 있던 감정들을 일깨워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내내 침울한 얼굴로 지내시던 분들도 책을 읽거나, 만담을 듣거나, 영화를 보시면서 표정이 달라지는 걸 봤어요. 이번에 저 역시도 피해자, 일종의 이재민이라 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가라앉아있던 마음을 끌어올리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결코 '불요불급'한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홍상현
NHK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약하시면서, 일찍부터 '발군의 신예'라 불리셨습니다. 이른바 '전통적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라면 얼마든지 쉽게 만드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굳이 시네마베리테(일본에서는 생소해서 반, 다시 말해 '하프' 다큐멘터리라는 명칭을 사용하셨지만)에 도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시마 유키코
제 NHK 시절 커리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가 휴먼다큐입니다. 펜팔을 하는 노인과 소년이 주인공인 <NHK 스페셜>이 데뷔작이었죠. 그러다 퇴사 후에는 줄곧 극영화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특성상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중심에 둘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울러,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지낸 경험뿐만 아니라 극영화 감독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배운 것들까지 작품에서 함께 풀어내보고 싶었습니다. 시네마베리테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결합되어있으니까 이런 제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장르였지요.
홍상현
영화의 도입부에 크림치즈의 제작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는 시퀀스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하루키적 시퀀스'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고독감을 잊기 위해 어떤 행동에 몰두하지만 결국 독자(관객)은 그것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더욱 커져있는 고독감과 마주하게 되는. 하루키처럼 반드시 파스타나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울러 <환희의 송가>에 나오는 독거노인 주인공의 체조장면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미시마 유키코
정말 너무 기쁜 질문입니다! 지적하신 시퀀스들을 표현하면서 저도 무리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떠올렸거든요. (웃음)
말씀하신 크림치즈에 관한 시퀀스도, <환희의 송가>의 체조장면도 육체적인 삶과 직결되는 행위를 보여주죠. 이 두 행위는 모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고독감을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서 비롯되는데, 결과는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요.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크림치즈를 만드는 과정은 짧게 보여줘도 전체적인 흐름상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난히 길게 편집되어있습니다. 그럴수록 뒤따라오는 고독감이 더 강조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홍상현
<미세스 노이지>(2019)에서 외모 때문에 '빌런'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는 주인공으로 출연해 열연을 펼친 오타카 요코 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시마 유키코
오타카 배우한테 '요즘 들어 뭐가 가장 불안하냐'고 물었더니 언급하신 바로 그 <미세스 노이지>의 개봉이 불투명해져서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심리상태를 찍어 보내달라고 했지요. 나중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 왔는데 잘 표현돼있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까 속내를 털어놓는다기보다 연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셀카 형식 말고 다른 사람이 촬영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감정표현이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져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홍상현
말씀처럼 <따로 또 같이>의 제작은 출연하는 캐스트가 각자 영상을 만들어 보내는, 대단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조곡에도 창작자가 있듯이, 캐스트 분들이 보내온 영상을 하나의 작품으로 재가공해내기 위한 메인아이디어가 존재했을 것 같은데요.
미시마 유키코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발표한 게 2020년 4월 6일의 일인데, 그로부터 약 보름 뒤인 4월 22일이 제 생일이었어요. 당시 저는 5월로 예정되어있던 새 작품 촬영이 취소돼서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있었죠. 이제 세상이 어떻게 될까, 영화는 만들 수 있을까,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런데, 새벽녘에 어딘가에서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근처에 살고 계시는 분인가 했는데 울음소리가 한 10분 정도 계속되면서 마치 팬데믹의 세계에 살고 있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나아가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지구의 울음소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밝자마자 '작가가 어느 날 새벽,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는 시퀀스를 중심으로 새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아는 배우들한테 연락을 해서 요즘 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물어보고, 긴급사태선언 하에서의 일상을 자유롭게 찍어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시퀀스만은 꼭 기록해 달라고 요청한 게 있었는데, 따로 녹음해 둔 마츠모토 마리카 배우의 울음소리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영상에 담아 달라는 거였습니다. 4월 22일 새벽녘의 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라스트신에 이걸 모두다 편집해 넣기로 했죠.
홍상현
<따로 또 같이>를 만드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시마 유키코
캐스트들이 처음 찍어서 보내준 영상을 보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지 않을 때 생계를 위해서 무척 다양한 일을 하지요. 상황도, 사는 환경도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다들 참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구나 싶어서 한 컷 한 컷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따로 또 같이>를 만들면서 인간이란 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실감했습니다. 아울러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모종의, '광기의 상자'에 갇혀버린 인간은 실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가기 위해 희미한 빛이나마 찾아보려 발버둥치는 노력이야말로 그의 고귀함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과 한국영화, 그리고 관객 여러분에 대해서는, 한국영화를 너무 좋아한다거나, 언젠가 한국에서 한국의 캐스트ㆍ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드리는 것 이상의 감정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제 작품을 봐주셨는데, 거기엔 제 인생이 담겨있거든요. 그런 작품들을 봐주셨으니 저와 함께 살아와 주신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들까지 '따로 또 같이' 겪었죠.
그 시간동안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셨나요. 단지 일방적으로 제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언젠가, 좀 더 가까이에서, 우리가 놓쳤던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최근 미시마 감독은 새 영화 <보이스>의 개봉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따로 또 같이>가 공개되자마자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제작에 매달렸던 극영화. 어떤 작품인지 물어보니 '성별도 나이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죄와 상처를 바라보면서 분노와 슬픔에 가려진 빛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인물의 표현이나 구성 면에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또 다를 것'이란다.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시도를 했을까. 순간 '그녀가 새로운 시도를 조금만 자제하고 일정한 스타일을 구축했던들 지금보다 훨씬 나은 흥행감독이 되었을 것'이라던 한 프로듀서의 말이 떠올랐다.
일리는 있을지 모르나 동의하진 않는다. 아홉 편의 장편 중 그 어느 것도 비슷한 느낌인 것이 없는 변화무쌍함이야말로, 진정한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믿으니까.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