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맘은 알라와 코란의 대리인으로서 무슬림 사회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갖는다. 신에 필적하는 이맘의 정신, 그러나 인간인 이상 육체는 불완전하고 유한하다. 그렇기에 이맘은 코란의 신성한 의미를 자기 사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계승자를 지목한다. <보이 프롬 헤븐>에서 이맘의 후계자 지명은 '나스'라는 단어로 불리는데, 영화는 나스를 둘러싼 무수한 이해관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보이 프롬 헤븐>을 연출한 타릭 살레'는 1972년 스톡홀름 태생의 스웨덴의 영화감독이다. 스웨덴인 어머니와 이집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양자의 영향을 영화에 고루 반영한다. 일례로 유럽의 미래를 비관한 <메트로피아>(2009)는 모계에 가깝고, 이집트 정치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까발린 <더 나일 힐튼 인시던트>(2017)는 부계와 밀접하다. 이렇게 소재는 각기 다른 문화권에 속한 부모에 따라 달라지지만, 소재에 내재한 살레의 주제 의식은 늘 일관되어 있다. <메트로피아>에서는 '빅브라더'에 의한 획일화, <더 나일 힐튼 인시던트>에서는 부패한 권력의 민주주의 방해 등, '전체주의'에 의한 '자유의 좌절'을 꾸준하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보이 프롬 헤븐>에서도 전체주의와 같은 장애물들이 나스를 방해하고 오염시킨다.
그 장애물 중 하나는 물질이다. 관념으로 완전한 '이데아' 내지는 '천상'과 달리 인간의 육체는 물질로, 이로써 물리로 이어지는 '지상'에 얽매여있다. 그래서 코란의 '정신'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나스를, 코란을 읽고 쥐고 있는 손, 곧 '육체'가 방해한다. 영화는 물리적인 떨림이 느껴지는 '핸드헬드'로 나스에 뻗쳐오는 물질성을 반영한다. 살레는 핸드 헬드를 이용하여 주인공 아담(타우픽 바롬)이 무수한 신학생들로 빼곡한 알-아자하라를 헤집고 들어가는 모습을 비춘다. 서로 부딪치고 밀어내며 발생하는 흔들림을 핸드 헬드에 반영하여, 현장 바깥의 감상자가 힘의 유혹과 방해를 느껴보게 만든다. 물질성은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에도 반영된다. 영화 초반의 전개는 아주 신속해서 감상자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다. 아담이 알-아자하르에 합격하여 카이로에 입성했더니 대이맘이 사망한다. 직후엔 지조(메흐디 데흐비)가 죽고, 네그엠(마크람 코우리)이 거짓 자백으로 자진 체포되며, 아담은 이브라힘(페레스 파레스)이 심은 첩보 요원이 되는데, 이 사건들이 주인공이나 감상자가 생각할 틈을 안 주고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육체를 좌우하는 여러 사건들이 방어할 겨를 없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 과연 정신은 신념과 사명을 올곧게 지켜갈 수 있을까?
촬영이나 편집뿐만이 아니다. 내용에도 물질의 방해가 빼곡하다. 천상의 지도자가 지성의 정점에 도달한 신이라면, 지상의 권력자인 대통령의 힘은 사크란 장군(모하메드 바크리), 곧 '무력'이 보장한다. 그들 산하 국가정보원 소속의 이브라힘은 아담에게 그의 아버지의 병마를 치료해주겠다며 유혹한다. 유한한 물질로 가득 찬 지상에선 다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이브라힘의 덫에 쉽게 걸려든다. 아담 또한 영화 후반, 존경하는 이맘 네그엠에게 죽음이 두렵다고, 신념을 위해 죽음이라는 공포를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냐고 질문한다. 또 솔리만(셰르완 하지)은 이브라힘이 살해 협박을 하자 맞서기는커녕, 신념을 꺾고 바로 자퇴 후 사라진다. 즉 나약하고 불완전한 육체를 어떻게든 보존하고자 정신은 후퇴한다.
육체를 고통과 죽음으로 이끄는 부정적인 힘뿐만 아니라, 쾌락을 자극하는 호의적인 물리력 때문에도 신념은 쉽게 흔들린다. 지조는 아담에게 카이로의 '시장'과 '클럽'을 구경시켜 준다.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갖가지 달콤한 음식들, 내 몸을 즐겁게 해주는 클럽의 감각 때문에 지조는 이브라힘과 공모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맘 두라니(람지 초우카이르)가 타락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두라니는 아담에게 '맛있는 햄버거'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고, 또 남근의 '쾌락'에 잠식되어 신앙을 저버렸다. 그렇기에 위대하고 현명한 이맘 네그엠은 시각장애인이다. 시력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눈을 '감거나' '선글라스'를 이용하여 물질이 조금도 안 보이게끔 원천 봉쇄한다. 자신의 육체에 미치는 모든 물리적 파장을 차단해야지만 코란의 순수한 관념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물리적 파장을 받아들이면 네그엠이 인정할 정도로 현명한 아담마저 휘둘린다.
물질 다음의 장애물은 살레의 일관된 관심, 바로 전체주의다. 살레는 클로즈업과 롱숏을 교차한 연출에 이를 반영한다. '클로즈업'으로는 주로 아담 개인의 얼굴을 담고, 반면 '롱숏'에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나 '건물', 거대한 '세계'가 주인공처럼 포착된다.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아담은 몰래 '공부'하거나, 알-아자하르에서 보내온 '합격 편지'를 은밀하게 읽는다. 개인의 자유가 클로즈업되며 부각된다. 그러나 아버지에 의한 롱숏에선 '집단'으로 '체벌'을 당한다. 체벌의 원인이 된 흡연은 둘째가 저지른 잘못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막내와 첫째도 똑같이 혼낸다. 개인은 없다. 개인은 전체를 위해서 행동해야 하고, 개인의 탓이 곧 전체의 탓이다. 즉 롱숏은 전체를, 클로즈업은 개인을 반영한다. 아담이 카이로에 간 이후도 마찬가지다. 카이로는 정치적 세계/종교적 세계가 나뉘고, 종교적 세계 내에서도 순수한 이맘 네그엠/무슬림 원리주의자 두라니/정치인의 끄나풀 오미르의 입장이 각기 다르다. 이 중 네그엠의 강의는 종교적 세계 그 자체로 독립적이기에 클로즈업되는 반면, 오미르가 대이맘으로 선출된 당시 널따란 카이로를 익스트림 롱숏으로 웅장하게 포착한다. 그 카이로 전체를 지배하는 대통령의 손아귀 아래서 종교적 세계는 정치라는 전체 중 일부에 복속될 것임을 암시하듯 말이다.
그 롱숏 내에서 개인은 희미해진다. 이브라힘은 상사 소브히(유네스 메다트)의 지조 살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아담까지 팽하려는 전략에 반항한다. 즉 정치라는 거대한 전체의 일원으로서 사유하지 아니하고, 독립적인 개인의 인간성을 지향한다. 아담을 몰래 빼돌린 이브라힘은 소브히에게 그가 실종되었다고 말하거나, 아담 대신 '라에드'를 미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 나서 이브라힘은 국가정보원에 불려간다. 본래 개인적인 일탈을 저지른 이브라힘은 카메라 가까이 있었다. 미디엄숏 수준으로 이브라힘 자신에게 가까웠다. 그런데 국가정보요원에게 다가간 그는 카메라와 멀어진다. 풀숏을 넘어서 롱숏 수준으로 까마득해진다. 이후 국가정보원을 포착하는 롱숏의 일부에 이브라힘은 편입된다. 그 롱숏은 무수한 개인들의 개성을 지워내어 전체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그들을 착취하는 소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서 전체주의는 유지된다. 아담의 아버지는 세 형제 모두 다 자기 말을 고분고분 따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담은 알-아자하르에 합격했을 때 불안에 떤다. 아버지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어머니가 바라는 장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알라의 뜻'이라며 아담을 앞날을 응원하지만, 아내가 살아서 아들을 알-아자하르에 가도록 독려했다면 가장의 체면을 구겼다며 다른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가장, 권력자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가족이나 공동체를 마음대로 부리기 때문이다. 이브라힘이 아담에게 '정보'를 요구하고, 두라니는 아담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제 욕망을 충족시키듯 말이다. 개인은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따라야만 한다. 권력자에게 더는 쓸모가 없거나, 전체에 속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개인들은 버림당하기 때문이다. 살해당하지 않고자 개인은 거짓을 자처한다.
살레는 그 희생을 강렬한 색채 대비로 보여준다. 지조는 살해될 당시, 신학생들이 입는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다. 당시 그는 첩보 행위에 회의감을 느껴 회개를 바랐다. 순백의 의상은 순수하고도 청빈한 개인이자, 티끌 없는 관념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를 죽인 살인청부업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모든 원색이 뒤섞여 혼탁해진 '끝'의 색채로서 검정은 곧 무수한 개인들이 아울러져 착취되는 전체를 상징하며, 그것이 하양을 살해한다. 이후 검은 집단은 지조의 사인이 살해가 아니라 '사고'라고 위장한다. 보이는 것을 안 보이게 만드는 검정은 진실을 은폐한다. 알-아자하르 내의 원리주의자 무리 또한 색채가 혼탁하다. 즉 소수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진실을 훼손하고 은닉할 때, 색채는 거무튀튀하고 흉흉해진다. 이 검정이 가리키는 원리주의의 득세와 무슬림 세계의 타락은 물질적 탐욕과 전체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살레는 거대한 두 장애물에 좌절하지 않는다. 순수한 관념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어떻게든 연출로 표상한다. 대이맘 선출 투표가 열릴 당시, 정치에 굴복당한 평의회장은 지상의 구도인 '아이 레벨 뷰'로 포착되었다. 이와 교차 편집되는, 대지를 걸은 발을 '씻는' 아담은 '하이 앵글 구도'로 포착되었다가, 이후 세속적인 오미르가 선출된 이후 아이 레벨 뷰로 내려온다. 천상의 구도로 포착되어, 천국에서 온 소년임이 형식으로 암시되는 아담은 저 하늘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맘은 강의를 하는 '화자', 다수의 무슬림들은 수동적인 '청자'인 것이 강제되는 롱숏에서 아담의 얼굴이 개인으로서 클로즈업된다. 클로즈업된 아담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어 두라니의 부패를 폭로하고, 전체에 균열을 내며 살레는 이 개인의 저력을 긍정한다.
아담이 네그엠을 설득하는 후반부에서, 카메라는 둘이 머무는 '공간'을 포착한다. 공간의 딱딱하고도 폐쇄적인 물질성이 도드라진다. 이후 네그엠 앞에서 아담이 진리를 깨우치며 그를 감동시킨다. 아담에게 감회된 네그엠의 얼굴이 롱숏에서 '클로즈업'으로 좁혀온다. 그들을 가두는 공간의 물질이 아니라, 그들이 깨우친 관념과 진리를 부각한다. 이후 네그엠은 눈꺼풀을 연다. 물론 그의 하얀 눈동자는 여전히 무언가를 응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력을 잃었더라도 네그엠은 지금껏 유혹으로 가득한 속세를 향해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진리가 현현했나니, 이제 눈을 떠서 봐도 좋다! 그 깨우친 자의 이름은 '첫 번째 선지자'를 의미하는 아담이다. 지금껏 무수한 사람들이 거부하지 못했던 속세, 눈을 감아야만 거부할 수 있었던 속세, 그러나 아담은 눈을 뜨고도 속세의 유혹을 물리친 첫 번째 현인이 되었다. 또 코란에서 선지자들을 '연결'하는 인물인 이브라힘 또한 아담 살해를 어떻게든 막아 천국에서 온 소년을 지상과 이어내는 사명을 완수한다. 이렇게 거세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 속에서 정신적인 평정을, 무자비한 롱숏 가운데서도 꿋꿋한 신념을 클로즈업을 하며 본래의 '이름'을 회복할 때, 이맘은 코란을 따라 무슬림을 인도하고, 원리주의와 당파성으로 얼룩진 세계는 평화를 찾을 것이다. 모계와 연결된 백인 사회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던 살레, 하지만 전체주의는 모계 문화에만 있지 않았다. 부계인 아랍 세계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아들은 전체주의에 의한 롱숏의 전환을 양쪽 모두에서 간절히 꿈꾸고 있다.
[글 박정수 영화평론가, green1022@ccoart.com]
보이 프롬 헤븐
Boy from Heaven
감독
타릭 살레Tarik Saleh
출연
타우픽 바롬Tawfeek Barhom
파레스 파레스Fares Fares
메흐디 데흐비Mehdi Dehbi
모하메드 바크리Mohammed Bakri
마크람 코우리Makram Khoury
셰르완 하이Sherwan Haji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6분
공개 제12회 스웨덴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