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과 함께 사는 집
악당과 함께 사는 집
  • 오세준
  • 승인 2019.05.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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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린 의뢰인', '더 보이'

최근 개봉한 영화들을 다 보지 못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본 영화 두 편이 내게는 이상한 공통분모가 있다고 느껴졌다. '한 가정 안을 파고든 외부인'이라고 나름 두 편이 가지는 공통점을 묶어봤다. 어쩌면 이 공통점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어떤 영화랑 함께 놓아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흔한 특징이다. 그러나 칠곡 계모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어린 의뢰인'(장규성)과 슈퍼히어로 공포물이라는 신선함을 선보인 '더 보이'(데이비드 야로베스키)가 같은 시기에 개봉한 것은 물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선보이는 듯하지만 결국 '한 가족의 몰락'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내게는 두 영화의 장르가 전혀 다름에도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꽤 매력적이다.

 

# 결핍을 채우는 공포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잔뜩 어질러진 집 10살 소녀 '다빈'(최명빈)은 손수 빨래 중이다. 7살 동생 '민준'(이주원)은 엄마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누나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나마 집에 보관된 엄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이상하게도 얼굴이 잘려 있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그들에게 새엄마 '지숙'(유선)이 등장한다. 잘 정리된 방과 따뜻한 밥. 그러나 그들에게 행복은 찰나에 불과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곧바로 남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지숙은 전과자이며,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이런저런 보조금인 돈이 목적이다. 결국, 남매는 변호사 '정엽'(이동휘)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진 ⓒ 소니 픽쳐스

 

미국 남부 캔자스 브라이트번 한 농장. 난임 부부 '토리'(엘리자베스 뱅크스)와 '카일'(데이비드 덴맨)은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하늘에서 우주선이 떨어진다. 그 안에는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아기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부부는 이 아기를 축복이라 여기며 자신들이 키우기 시작한다.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 자란 '브랜든'(잭슨 A. 던)은 점차 그가 남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사악한 본성이 깨어나면서 친구, 이웃 심지어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게까지 강력한 힘을 사용해 위협을 가한다. 부부가 브랜든에게 오랜 시간 줬던 사랑은 그의 잔인한 폭력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린 의뢰인의 남매와 더 보이의 부부는 불안전한 인물들이다. 완전한 가족의 형태로 불리기는 어렵다. 물론 반드시 부모가 모두 있거나 아이가 있어야 완전한 가족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은 극 안에서 결핍을 느끼고 있는 인물들이다. 본 적 없는 엄마를 그리고 싶어 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남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부부. 이들을 충족시켜줄 '무언가'는 마치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처럼 처음에 등장하지만, 두 영화는 되려 외부로부터 온 그 무언가로 인해 비극적인 상황에 부닥친다. 그리고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외부인은 '공포' 그 자체다.

 

# 집, 더는 안전하지 못한 공간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두 영화가 초반에 보이는 양상은 꽤 비슷하다. 신기할 정도다. 외부인, 즉 악당이라고 불릴 인물들이 주인공들 주변을 맴돌며 천천히 등장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주인공이 사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시작한다. 어린 의뢰인의 경우에는 엄마가 없는 남매의 집에 '새엄마'로, 더 보이의 경우에는 자식이 없는 집에 '아들'로. 재밌게 생각해 볼 지점은 영화를 다 보지 않더라도 새엄마와 아들은 분명 영화에서 나쁜 짓을 벌이는 인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다. 아니 누가 봐도 이 인물들로 인해서 좋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해 나아가기 위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쯤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사진 ⓒ 소니 픽쳐스
사진 ⓒ 소니 픽쳐스

 

그런데 '집'이라는 우리에게 '보호'와 '안정'을 주는 공간이 초반부터 너무 쉽게 악당에게 내어주며 곧바로 '공포'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러다 보니 두 영화 안에는 '안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의뢰인의 등장하는 남매의 집은 중반을 넘어서면 새엄마의 폭력으로 동생 '민준'이 죽는 공간이 되며, '더 보이'의 집 또한 부부가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도 되려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는 이유는 '악당과 함께 사는 집'이라는 형태를 유지한 채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 또 다른 외부인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다 보면 남매와 부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의뢰인의 등장하는 새엄마 지숙은 "너희 엄마한테 젓가락질도 안 배웠니?", 경찰은 "엄마가 한 대 쥐어박았다고 신고나 하고 요즘 애들 무섭다", 복지사는 "우리는 상담사지 부모가 아니다", 이웃(남매의 학대를 아는)은 "또 시작이다. 우리 애한테나 잘해야지" 등 남매를 둘러싼 외부인들의 대사를 통해서 건강한 사회가 아닌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보호가 상실한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전할 온기가 사라진 사회 속 외부인들을 통해 남매가 처한 상황이 더 씁쓸하고 안타깝게 한다.

 

사진 ⓒ 소니 픽쳐스

 

"애들은 다 괴물이야"라는 대사는 '더 보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사이다. 브랜든을 키우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되려 아이를 낳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브랜든의 이모 부부. 강력한 힘으로 브랜든이 자신의 친구와 이웃 심지어 이모 부부까지 살해했음을 직감한 순간 부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기를 결심한다. 자신의 자식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믿음이 주변 외부인들의 죽음을 통해서 분명 잘못됐음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극 속에 등장하는 외부인들, 그들이 동네 안에서 서로가 다 친하며 가족의 형태로 있는 사람들의 죽음은 끊임없이 부정해왔던 자식의 잘못된 변화를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 당연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나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실 '어린 의뢰인'은 극적 긴장감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영화다. 이를테면 '미쓰백'(이지원)이나 '아무도 모른다'(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이 현대 사회에 아이들이 처한 힘든 상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은 재미보다는 영화를 보며 느끼는 외면하기 어려운 '죄책감' 내지는 반성하는 태도가 우선시 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당연함이 내재돼 있다. 영화를 본 이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과정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태에서 작품과 마주하기에 형식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논할 수 있어도 쉽게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필자의 경우에는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지하는 편이다.

'덴마크의 자식들'을 만든 덴마크 감독 '울라 살림'은 "영화는 사회에 매우 크게 공헌할 수 있다 생각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어느 정도 차이를 좁혀나가고 고민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영화가 우리 사회의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나아가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어린 의뢰인'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탁월하지 않을지언정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영화는 아동을 상대로 한 폭력, 우리 사회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결말이 더욱더 의미가 있는 건 이동휘가 연기한 정엽처럼 아이들의 학대를 외면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구해줘야 하는 어른이 모습이 필요함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반면에 '더 보이'는 오히려 슈퍼히어로 공포물이라는 점에서 꽤 참신하다. 코믹스에서는 여러 번 다뤄진 슈퍼맨이 악당이 되는 이야기를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통해 풀어냈다는 점이 재밌다. 아들이 아빠를 죽이는 과정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상당히 닮았으며, 아이가 가진 초능력이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 쓰이는 점도 꽤 신선하다. 한편으로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가 느끼는 일종의 '육아 스트레스'가 공포로 형상화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는 부부와 그렇지 않고 싱글로 살거나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지면서 자녀 없이 키우는 가족의 형태인 '딩크족'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진 ⓒ 소니 픽쳐스

 

이뿐만 아니라 과한 모성애로 인한 부부의 갈등까지. 마치 영화는 '통제 불가능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관해 묻고 있는 듯하다. 또 영화는 단순히 초능력이 올바르게 쓰일 거라는 기존의 생각을 전복시킨다.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브랜든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슈퍼 파워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쓰일 것'이라는 당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감독 '제임스 건'은 "<더 보이>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완전히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동안 본 적 없는 새로운 작품이라 확신한다. 완벽하게 공포 영화적 관점에서 만든 슈퍼히어로 영화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슈퍼 히어로 영화라는 점에서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사진 ⓒ 소니 픽쳐스

[코아르 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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