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와 세계' 에도의 똥은 어디로 가는가
'오키쿠와 세계' 에도의 똥은 어디로 가는가
  • 이현동
  • 승인 2024.02.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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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찾아가며 보는 영화"

영화의 제목('오키쿠와 세계')에서 일본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중 여자 이름을 내세운 대표작 <오하루의 일생>(1952)을 반사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는 너무나 빈번한 일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자를 전반에 내세운 영화가 흔치 않았다. 그중 미조구치 겐지는 가장 탁월하게 여성과 일본의 역사, 지역적 특성을 은유적 표현한 아티스트였다. 특히나 지역성과 섬세한 인물들의 감정 묘사는 네오리얼리즘의 창시자 중 하나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와도 필적한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일본'이란 공간과 '에도'라는 시대적 배경, 그리고 비련의 사건을 겪는 여주인공을 대상으로 한다는 서사의 톤은 제법 유사하다.

그러나 <오키쿠와 세계>(2022)는 혼란스러운 에도 시대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쟁이나 약탈극과 같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무라이가 등장하지만, 칼을 휘두르는 일도 없다. 영화는 1858년 여름부터 1861년 봄까지 서구의 압력, 일본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시대를 명시하면서도 '오키쿠'(쿠로키 하루)가 마주하는 단 한 번의 극적 사건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다분히 벌어질 법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 짐작하기론 영화의 제목 오카쿠와 세계에서 '세계'란 상호 작용하는 인물인 거름 업자인 '추지'(사토 카니치로)와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세계란 단어의 의미는 실상 '추지'를 통해서 추동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제목에는 추지와 야스케의 세계인 '똥'이 생략됐다.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볼 수 있지만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러나 우스꽝스럽기도 한 '똥'.

<오키쿠와 세계>는 마치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영화다. 미디엄 숏과 와이드로 구성된 몇몇 화면 구성이나 롱테이크는 미조구치 겐지의 작법을 떠올리게 하고, 일상의 모습을 담은 대화와 곳곳마다 등장하는 필로우 숏은 자연주의, 즉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이미지로 적절히 사용된다. 또한, 이 영화가 흑백으로 구성된 것도 가시적으로 고전 일본 영화를 상기할 수 있음을 연상할 수 있다.

 

ⓒ 엣나인필름

얼굴보다 '세계'를 다루기

<얼굴>(2000), <어둠의 아이들>(2008) 등 '사카모토 준지'하면 떠올릴 수 있는 영화는 논쟁적인 주제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주로 '인물의 얼굴'을 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반대로 <오키쿠와 세계>는 코믹하기도 하면서도 '배경'을 더욱 고려하고 강조하는 영화다.

특히, 각각의 장으로 구성된 말미에 흑백에서 컬러로 변용될 때 마주하는 효과는 의아하면서도 흥미롭다. 영화가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현재와 동일하다는 것을 주지하기 위한 요소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이질적인 감각은 생경한 것이기도 하지만 해석을 요청하는 잠재적인 형상이기도 하다. 또한 변용된 장면 대부분이 오키쿠의 얼굴을 제외하고 배경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인물보단 세계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런 비슷한 시도를 보여주었던 한국 영화 <아워 미드나잇>(2021)이 있었다. 계속 흑백이었던 이 영화가 맨 마지막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주인공의 배경이 컬러로 변화한다. 이 장면에서 느끼는 감각은 아까 말했듯이 잠재적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색감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실제 세계의 감각을 표출한 것이기도 하다. <오키쿠와 세계>도 그렇다. 일본의 풍광과 일상이 컬러로 점멸할 때 영화는 인물과 사물, 즉 배경의 특수한 색감을 통해 보편적인 것에서 탈주한다. 이는 "세계는 저쪽으로 갔다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라 말한 영화 속 승려의 설명과도 부합하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오키쿠와 세계>는 이러한 종류의 감각을 제시하면서도 카메라 앵글의 비중을 클로즈업보다 미디엄 숏을 사용한다. 이는 인물이 배경 아래 있음을 계속 주지시킬 뿐만 아니라 얼마나 이 숏의 반복이 영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은연중에 암시하는 '에도'의 지역성과 시대성은 그 분란 속에서도 하류층인 형제의 이야기를 희망적으로 나타내기에 거리낌이 없다. 이 이야기는 마치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최근 영화 <이니셰린의 밴쉬>(2022)과 같이 지역성과 그들이 겪는 이야기를 매칭시키는 은유로서 기능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이 영화를 대표하는 '똥'은 계급 사회를 나타내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풍자의 역할도 수행한다. 부유한 계층도 배설을 하면서도 똥을 치우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피하고, 심지어 똥값의 가격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는다고 때리기도 한다. 계급을 똥은 아닐지언정 변기로 풍자한 예시가 있었던 루이스 부뉴엘의 <자유의 환영>(1974)과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유난히 클로즈업하는 똥은 이 영화의 연결된 계급, 사랑, 지형이라는 세계관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 엣나인필름

똥이 운반되는 경로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에도의 똥은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의 기능이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영화를 이끌고 가는 양식이 '똥'인 것과 이 영화의 각각의 시퀀스가 장으로 구성되리라는 것 말이다.

처음 장면은 물가에 오리 한 마리와 잎들, 그리고 저장된 분뇨를 양동이에 옮기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찍는다. 우린 최초에 이 장면이 왜 삽입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 '오키쿠'가 아니고, '똥'일까. 이것은 두 가지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 플롯이 에도 시대의 '똥'에 대한 이야기라면 서브플롯은 오키쿠의 사랑 이야기임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똥'은 말 그대로 인간의 배설물이다. 사회가 인식하는 똥을 취급하는 직종은 계급이 낮을 수밖에 없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똥을 수거하고 시골 농부에게 재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추지와 야스케 형제는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이 공용 변소에 똥을 푸고 비를 피하고 있던 형제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네는 건 오키쿠 뿐이다. 오키쿠는 형인 야스케에겐 살갑게 굴지만 동생 추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추지 역시 그녀를 향한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어서 똥이 운송되는 경로에 대해 표시한다. 똥은 육지와 해상을 넘나들며 운송된다. 험준한 지형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수레를 이용하고, 배를 타고 농부에게 운송한다. 농부들은 똥을 거름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하층민의 공동시설의 변소에 물이 들어가 배설물이 범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수리하는 야스케에게 사람들은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당하는 건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구타당하기도 한다. 가난한 집안인 사무라이 출신의 아버지와 살고 있던 오키쿠는 어느날 큰 봉변을 당한다. 누군가로부터 아버지는 암살당하고 오키쿠는 목에 상처를 입고 목소리를 잃게 된 것이다. 처음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방에서 숨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절에서 글자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캐릭터들이 극복해야 하는 특정한 사건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일상을 똥이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비추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굴절된 렌즈를 통해 평온하게 산책하는 세 명의 인물을 보여준다. 이는 흥미롭게도 영화가 투영하고 있는 불우한 배경과 역설적으로 변용된 렌즈는 외부의 개입에도 무관한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제작 시기를 반영한 시퀀스이기도 하다. 우린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면서 왜곡된 세계를 보았다. 평범한 일상이 삭제되었고, 서로를 대면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결국 <오키쿠와 세계>가 함의하고 있는 건 감독의 말처럼 희망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에도'가 현재의 '도쿄'라는 점에서 교차하고 있는 건 지역성뿐만 아니다. 그와 무관하게 여전히 사회적 연대를 무감각하게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Okiku and the World
감독
사카모토 준지
Sakamoto Junji

 

출연
쿠로키 하루
Kuroki Haru
칸이치로Kanichiro
이케마츠 소스케Ikematsu Sosuke
마키 쿠로우도Maki Kuroudo
사토 코이치Sato Koichi

 

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4.02.2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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