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것은 여기에 없다" ['물안에서' #1]
"기대하는 것은 여기에 없다" ['물안에서' #1]
  • 박정수
  • 승인 2023.04.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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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현실과 어떻게 차별화할까

'지형'은 예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가령 내륙지역과 해안지역은 각기 다른 특징의 미술을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왔다. 피렌체, 독일, 중국 등이 해당하는 내륙지역의 예술은 항구적이고 조각적이며, 변화가 더디고 견고하다. 반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로 둘러싸인 해안지역의 예술은 불확정적이다. 확고한 윤곽선보다는 경계가 불분명한 색 뭉텅이, 색면 등을 이용하여 모호함, 신비로움, 유동성을 부각하였다.

이러한 두 지역의 차이는 '물'에 있다. 물은 대체로 불변하는 대지보다 여지가 무한정 열려있고, 그렇기 때문에 감상자가 보고 접하는 것에 확신보단 '의심'을 불러온다. 물로 가득한 풍경은 현재에 이러해 보이지만 과거에 분명 달랐고, 미래에 역시나 달리 보여질 것이다. 홍상수는 이러한 물의 불확정성을 자신의 신작에 투영한다.

 

ⓒ 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의 영화는 언뜻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의 최근 작품들의 배역들은 실재 홍상수와 김민희의 관계를 깊이 반영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이지 않나. 과연 그 배역들이 과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실인지 비교하고 검증할만한 정보도 우리는 모른다. 그럴듯하지만 수면 위에 비친 풍경처럼 의심과 균열이 인다.

홍상수는 애초에 자신의 작품을 연출로써 단단히 붙잡아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숏에서 발생한 음향적 요소, 행위들은 그 이후 이어질 숏을 잠재한다. 그러나 홍상수는 그 예측을 항상 비껴간다. 예상과 전혀 다른 숏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불연속적이지는 않다. 전과 후는 이어지긴 하지만, 이르고 짧은 시간이 아니라 꽤 먼 시간이 지난 이후로 연결되기에 친밀함과 동시에 낯설다. 

더욱이 홍상수의 작품 속 인물들은 여러 시간을 산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나 미래로 한 개인은 빠져나가고, 구체적으로 계획했던 시간도 미끄러지듯 변화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시야로 유연하게 빠져나간다. 이처럼 홍상수의 영화는 불변하며 연속하는 대지가 아닌 가변적으로 연속하는 물로 존재한다. 

 

뻔하지 않은 이미지 그리고 유령

홍상수의 영화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 시간, 시선, 삶을 가변적으로 변형하고 녹여내기에 '물'과 같다. 신작 <물안에서>는 이러한 유동성을 더욱 급진적으로 실험한다. 그리고 이 여파를 영화를 보기 전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물안에서>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서 매표를 하는 도중, 직원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영화가 흐린 것은 영사사고가 아니라, 감독의 의도이니 참고 바랍니다." 이 작품은 대다수의 숏들이 '아웃 포커싱'으로 촬영되어 혼탁하고 흐리다. 얼굴이며 풍경이며 정확히 보이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감상자가 당황할까봐 직원은 안내를 전하였다. 그렇다면 감상자에게 이런 화면은 왜 당혹스러운가. 그 이유는 감상자가 '기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홍상수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란 언제나 '기대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 영화제작전원사

<물안에서>에는 '무엇을 찍고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 제주도에 왔다. 그러나 청년 감독은 그가 계획한 모든 소재들이 기존에 봤던 작품들의 짜깁기 같다며,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한다. 이 청년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뻔하지 않은 이미지', '새로운 이미지'다. 여기서 기대를 벗어나는, 뻔하지 않은 이미지란 곧 영화 속 아웃포커싱으로 촬영된 '흐린 숏'이다. 보통의 감상자는 과거의 일반적인 영화 관람 경험에 비추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화면을 기대한다.

그러나 홍상수는 그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현실'과 차별화되는 예술이라고 영화 속 흐린 숏으로 답한다. 청년 감독도 마찬가지로 각본도 뭣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 봤거나 알고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낯설고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들어찬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홍상수는 이런 예술이 곧 '유령'과 같다고 상징으로써 말한다. 영화 속 유령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에서 깨어난 배우를 경악시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이자, 그 이야기를 들은 촬영감독이 보고 싶어 하지만 정작 '보고 싶어도 나타나지 않는 이미지'다.

배우에게 불현듯 나타난 유령처럼, <물안에서>에서 홍상수가 보여주는 숏들 또한 조금씩 예상을 빗겨나가며 이어진다. 작품 후반부,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시퀀스에서 세 사람은 지금까지 촬영한 숏들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해본다. 이때, 관객은 다음 이어질 숏에서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홍상수는 감상자가 기대한 것을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촬영된 것에 더해서 무엇을 새롭게 첨가할지 얘기하는 장면을 이어낸다. 이후 태연하게 촬영을 재개한다. 촬영을 재개했으니 촬영장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마저도 홍상수는 촬영장이 아니라, 촬영지를 촬영하는 촬영감독과 배우를 비춘다. 이어 청년 감독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는 합의된 연기이기에 컷이 외쳐져야 하고, 그는 다시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청년 감독은 물속으로 사라지고 '컷'은 그 누구도 외치지 않는 채로 영화는 끝난다. 역시나 이 장면에서도 관객이 예측한 영화 촬영 장면은 곤혹스럽게 빗겨나간다. 심지어 이 장면에서 삽입되는 전 여자 친구를 위해 청년 감독이 작곡한 노래 또한 본래의 용도인 '생일 축하'가 아닌 '장송곡'으로 뒤바뀐다.

 

홍상수가 고안한 장치들

예상을 벗어나며 나타나는 '유령'은 촬영감독이 유령의 정체를 밝히고자 할 땐 다시 꼭꼭 숨는다. 흡사 영화 속 신원과 구체적인 지명을 희미하고도 뿌옇게 뭉뚱그려놓는 아웃 포커싱처럼 말이다. 홍상수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란 현실을 흐리게 만들고 심지어 죽여야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여러 형식을 동원한다.

가장 먼저 '아웃 포커싱'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다들 제주도가 너무 예쁘다고 찬미한다. 골목길이 영화 촬영하기에 너무 적합하고, 담벼락에 핀 이름 모를 꽃이 너무 예쁘며, 관광객들도 해변을 하하호호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답고 예쁜 구체적인 제주도를 아웃 포커싱으로 흐리고 지운다. 제주도라 말하지 않는다면 제주도인지 겨우 가늠만 할 수 있는 만큼. 이로써 영화는 현실의 제주도가 아닌, 현실과 차별화된 영화에 도달한다. 청년 감독의 영화도 분명 현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는 재현하고자 하는 사건에 골똘히 얽매이지 않고, 촬영 현장에 있는 '즐거운 관광객'들을 즉흥적으로 촬영한다. 현실 속 그가 겪은 사건은 더 풍성한 맥락 속에 위치하며 차별화된다.

 

ⓒ 영화제작전원사

다른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속 사람들의 '이름'은 불분명하다. 기존 현실이나 일상에선 분명 이들에게 구체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단어로 지칭했다. 본래 청년 감독은 '배우'였고, 촬영감독은 '직장인'이였으며,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 현실을 흐리게 만들어 '수정'하고 '덧칠'해야지 현실과 다른 영화 속 얼굴이 탄생한다. 이후 촬영감독은 배우가 청년 감독과 이토록 친했는지 전혀 예상조차 못 했다고 말한다. 또 촬영감독과 배우는 청년 감독이 주민과 만난 경험, 죽고 싶어질 정도로 절망적이었던 심경을 알게 된다. 이들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알게 된 서로, 관계가 너무나도 새롭다. 이 세 사람은 영화 내내 주로 하나의 프레임에 함께 머문다.

그러나 세 사람이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가까우며 유사하더라도, 실상 서로가 까마득하게 멀고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촬영지를 조사하기 위해서 해변이 펼쳐진 어느 언덕을 올라가기로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청년 감독은 더 머물고 싶은 반면, 촬영감독과 배우는 추워서 내려가고 싶다. 또 촬영감독은 청년 감독이 본래 계획에 두던 여배우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본다. 배우는 모르고, 오직 촬영감독과 청년 감독 두 남자만 안다. 함께 있어도 아는 것이 다르다. 심지어 소재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청년 감독은 영 별로라고 말하는 반면, 촬영감독은 괜찮은 눈치다.

홍상수는 이렇게 기대와 달리 무척이나 다른 세 사람을 '롱테이크'로 비춘다. 이들이 담긴 롱테이크는 언뜻 보기엔 따분하고 진부하다. 이들의 행동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포착된 상태에서 마냥 가만히 머물러있지 않는다. 수면 위에 비친 얼굴 마냥 같이 서서히 일렁이고 흘러가며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얼굴을 본다. 하나의 숏이 가진 물과 같은 변형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홍상수는 긴 시간을 담아내는 롱테이크로 흐름 속 변화에 집중한다.

 

ⓒ 영화제작전원사

아웃 포커싱에 의해서 흐리고, 롱테이크 내에서 가변적인 이미지들은 불명확한 속성과 달리, 연결은 기대에서 조금씩 엇나가긴 하지만 비교적 명료하게 이어진다. 청년 감독은 동료들이 라면을 사 오길 기다리고, 이후 그들이 라면을 사 온 숏이 연결된다. 또 숙소 인근을 이곳저곳 더 둘러보자고 말하니, 그다음 숏에서 인근을 쏘다닌다. 

그런데 영화에서 단 두 숏뿐인, 포커싱이 아주 뚜렷한 시퀀스는 다르다. 일행은 묵고 있는 숙소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그렇다면 이후 안에 들어간 숏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실내로 들어가긴 한다, 그러나 곧장 '피자'를 먹는다. 안에 들어가서 피자를 주문하는 과정이 생략되어서 어딘지 낯설고 미심쩍다. 영화 후반부, 회를 먹는 시퀀스에서는 분명 과정이 있었다. 청년 감독이 회를 사주겠다고 했으니, 다음 숏의 연결에 별 의심이 안 든다. 그런데 피자 먹는 숏엔 그런 과정이 없으니 그사이가 자꾸 궁금하다. 혹 양 숏의 시간대가 까마득하게 멀거나 전후가 뒤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샘솟는다. 

이미지가 불명확하면 비교적 편집이 유기적인 반면, 이미지가 확고하다면 편집이 낯설고 생경하다. 전자의 경우 불명확함을 앎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편집으로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너무나 상투적인 이미지들의 맥락을 재설정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랴. 해당 숏들은 포커싱이 회복된 것뿐만 아니라, 단 하나의 해답인 비밀번호를 풀고, 세 사람이 있는데 피자가 한 조각이 남았으니 이를 삼등분하는 등 이미지의 내용까지도 매우 단순했으니 말이다.

 

ⓒ 영화제작전원사

이렇듯 단순하고 확고한 것들을 물처럼, 유령처럼 뒤바꾸면 감각이 더해진다고 홍상수는 말한다.

청년 감독은 식사 계획을 미리 짰다. 피자를 먹고 이후에는 촬영에 용이하도록 빵을 먹자,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촬영감독은 약하게 불만을 피력한다. 빵만 먹으니 느끼해서 이젠 밥을 먹고 싶다고, 청년 감독의 예상과 다른 반응이다. 또 익히 아는 것들, 계획한 것들이 반복되니 질리고 물린다. 이후 영화 후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도처에 즐비한 횟집이 눈에 띈다. 그래서 청년 감독은 즉흥적으로 회를 사서 회식하자고 제안한다. 이후 회를 먹으며 두 남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귀신 이야기를 배우에게 듣는다. 그리고 영화 결말, 청년 감독은 예상을 빗겨나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기대 이상이거나, 기대를 배반하는 새로움이 모두 다 감정을 자극한다. 그 참신함과 다른 것들을 느끼고자 우린 예술과 조우한다. 그 새로움을 위해서 홍상수는 그간 지속하던 '물의 방법론'을 더욱 급진적으로 밀고 나간다. 이젠 흡사 지우개로 그림을 지우듯, 이미지를 흐려보기로 작정한다. 또 기대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편집으로 새로움을 전달하고, 때로는 긴 흐름을 담아낸 롱테이크로 구성된 숏에서 기존을 벗겨내며 새로움을 드러낸다. 그렇게 연결된 새로움은 단순 앎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몰랐던 서로 또한 연결된다.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나의 시선을 뛰어넘어서 만난 타인은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달랐고, 더 많이 새로웠다.

[글 박정수 영화전문기자, green1022@ccoart.com]

 

ⓒ 영화제작전원사

물안에서
in water
감독
홍상수

 

출연
신석호
하성국
김승윤
김민희
김소령

 

제작|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61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4.12

박정수
박정수
예술은 현실과 차별화된 고유하고도 독립적인 차원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타 예술 매체와 구분되는 고유한 시각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만의, 오직 영화만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현실에서 비롯되고, 인간에게 이바지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예술, 인간-영화를 이어내는 교두보와 같은 글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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