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ney+] '보스턴 교살자'의 두려움이 말하는 것
[Disney+] '보스턴 교살자'의 두려움이 말하는 것
  • 변해빈
  • 승인 2023.04.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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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부에서 멀어진 주인공의 위치와 거리감에 대하여"

<보스턴 교살자>는 옆집 이웃의 비명을 듣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얼마 뒤 형사가 방문한 이웃집에선 어느 젊은 여성의 주검이 발견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보스턴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강간 및 교살 사건의 일부를 담고 있다. 장면은 범행 현장 외곽의 다른 인물(특히 여성 아닌 남성), 비명이 중단된 다음의 적막한 공간을 비롯해 간접 화법을 활용한 장치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3년 전, 범죄의 연쇄적 패턴을 발견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왜 <보스턴 교살자>는 3년 전으로 이동할까. 범죄의 중심부로부터 한발 물러서며 시작되는 이유가 뭘까.

이를테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첫 번째 살인이 벌어진 뒤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맞춰 연쇄적인 패턴을 제시해도 됐었다. 하지만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기자 로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스크랩해둔 신문 조각들 사이에서 최초로 범행 패턴을 발견하던 시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무엇보다 나이 든 여성에서 젊은 여성으로, 범죄 피해자의 연령대가 달라지는 사건의 중반부의 변화를 고려하면, 시기적으로 이른 시점이다. 관객들은 아직 연쇄 살인 사건의 패턴이 깨진다는 것과 여기에 또 다른 가해 세력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문제는 영화를 모두 본 후 다시 돌이켰을 때, 해당 시퀀스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희생자의 나이가 젊다는 점이다. 다른 건 간접적으로 전하되, 주검의 성별과 연령만큼은 정확히 드러낸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일단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사가 지지부진했음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효과. 시기적으로 오프닝 시퀀스의 살인이 벌어질 당시, 로레타는 사건을 취재하는 중이며, 그 과정에서 N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음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시점에는 무엇이든 간에 사건에 관한 정보와 기록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스턴 교살자>가 3년 전으로 돌아감으로 인해서, 앞서 제시된 단서와 정보는 파편적이고 느슨한 형태로 로레타의 시야에 들어온다.

이 영화의 원작인 1968년 영화 <보스톤 교살자>가 경찰과 범죄자를 중심으로 서술됨을 굳이 비교해서 나열하지 않더라도, <보스턴 교살자>는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통로로 전해지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 인물의 시선과 관점으로부터 패턴을 다시 쌓아 올리기, 그리고 사건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로레타'는 누구인가, 이는 무척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살 만한,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관객의 시선을 책임지는 캐릭터는 그럴듯한 능력을 갖췄거나 특정 사건과 유사한 사연을 지닌 채 등장해 수사든 취재든 몰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기저에 깔린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중심인물이 영웅이 되는 구조다. 그런데 로레타는 생활부 소속에서 겨우 범죄부의 일을 맡게 되었을 뿐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진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 주인공의 사투를 그릴 때 대개는 동일한 성별을 지닌 캐릭터들의 연대를 강조하곤 하지만, <보스턴 교살자>에서 로레타와 함께 취재를 이어갈 동료 기자 '진'(캐리 쿤)은 오히려 로레타와 다른 성향을 지닌 존재로서 세워진다. 이들의 연대보다는 피해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 요소에 힘을 준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론, 궁극적으로는 로레타와 진이 가진 차이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는 식이지만, <보스턴 교살자>는 그런 상황으로부터의 감흥으로 들끓게 만들기보단 로레타의 서투름, 거기서 오는 소외감과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예컨대 진이 취재에 합류하게 된 소식을 들을 때, 진은 그녀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아는 상태이며, 카메라는 여기에 반응하는 로레타의 얼굴을 비춘다. 기본적으로 나아질 상황을 떠올리기보다 당황했고 근심에 빠진다. '일은 달라고 하는 것'이며 이성과 직관에 근거해 움직이는 진이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일을 사정사정해서 받'고 본능과 직감에 흔들리는 로레타의 입장에 더 밀착되어 영화를 보게 된다.

<보스턴 교살자>는 60년대 당시의 젠더의식과 이와 관련한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로레타와 진, 두 여성 사이에 간극을 마련한다. 이를 개인의 자격과 그로 인한 두 여성 간의 격차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건 현장에서 로레타가 보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은 다른 이의 죽음이 아니다. 그녀는 폴리스라인 너머 현관 옆에 놓인 우유병 두 개를 본다. 액자에 걸린 가족사진을 본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린 누군가의 과거는 그녀 앞의 현실이다. 로레타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자신이 지체한 시간과 거듭 발생하는 피해자들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기 무능력이 괴롭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이 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가, 그녀를 통해서 느낄 수밖에 없는가, 질문은 더해져야 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보스턴 교살자>의 초반부는 로레타가 아는 유일한 사실, 여성의 목을 조른 교살의 흔적에 관한 대화로 지나칠 만큼 반복적으로 채워져 있다. 연쇄 살인의 주요 단서인 패턴을 강조하는 방식이지만, 한편으론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 그녀가 아는 진실이 그뿐이라면 그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는 사실 또한 같이 읽힌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각 장면은 취재를 이어가며 로레타가 알아낸 정보들로 구성되는데, 그녀뿐 아니라 영화 또한 해당 범죄 사건에 대해 아는 만큼만 재현한다.

그러니까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현재 시점으로, 현장성을 살려 피해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하는 범죄 행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은 로레타가 취재하며 수집하는 증거 사진과 기록된 자료, 보존된 현장 안에 없으며, 따라서 이 영화 안에도 없다. 로레타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함부로 침투하지 못하는 그녀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간접적인 위치와 거리감이 더 실체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선택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프랑소와 오종의 <신의 은총으로>(2018)는 구체적인 성폭력 가해 장면을 배제하고, 피해 당사자들 스스로가 겪은 일에 대해 자발적으로 발언하는 행위에 집중했다. 마리아 슈라더 감독의 <그녀가 말했다>(2022)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의혹을 보도한 두 여성 기자 메건 투히와 조디 캔더의 취재기를 담으면서 무인의 프레임만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으로써 목소리를 사운드로만 들려준다. 목소리는 두 기자를 필두로 한 뉴욕타임즈 보도 기사 속 인용구로 반영된다.

<보스턴 교살자>를 포함해 세 편의 영화가 시도한 재현 방식의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놓치기도 쉽고 굳이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영화들은 그 작은 차이를 위해 고민한다. 그렇다면 이 작은 차이조차 고민하지 않는 영화가 얼마나 게으른가. 새삼스럽게 되새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963, <보스턴 교살자>의 시대적 배경을 알리는 표시다. 놀랍게도 이 자막은 영화가 시작되고 30여 분 지난 뒤 떠오른다. 이보다 앞선 장면에서도 극 속 배경이 현재가 아님은 충분히 설명되었지만, 맷 러스킨 감독은 굳이 짚고 넘어가야 했다.

로레타가 또다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은 후 남편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나선 때이다. 노부인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의 패턴이 깨지는 대목일 뿐만 아니라 이제 해당 살인사건은 로레타에게 더 긴밀한 차원으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1963년. 그녀가 일을 하느라 가정에 소홀하다는 걸 짚어내는 풍경이 1963년에 해당한다는 걸까. 진과 로레타를 두고 중첩되는 차별 구조를 논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위의 자막이 '새삼스럽게' 나타났다는 데서 오는 이 직감을 믿고 싶다. 자막은 '저기는 1963년이다'로 읽히지 않고, '여기는 1963년인데 거기는?'하는 물음으로 들린다.

   

<보스턴 교살자>에서 드러난 저널리즘의 힘, 저널리스트의 사투가 보여준 성과는 범죄에 대한 사적인 여성들의 두려움을 공적인 문제로 이야기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성과는, 엄밀하게는 영화 안의 사적인 성과이지 영화 바깥의 현재이자 현실 전체의 성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1963년도의 성과다.

<보스턴 교살자>는 결말에 이르러 "안전한 세상은 착각에 불과"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이 극 안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 극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그런 의미에서 로레타가 실제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하고서도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1963년도의 풍경이라면, 지금은 그녀가 마지막까지 무기력을 체감하는 이유가 이 영화의 봉합되지 않은 결말에 있음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 '목숨을 건 보도'가 '같은 여성이기에 가능했다'는 표현은 영화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두려움은 포장해도 두려움이다. 영화가 보여준 이 분명한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그들이 불가피하게, 목숨을 걸기까지 해야만 했다고 말해야 한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보스턴 교살자 
Boston Strangler
감독
맷 러스킨
Matt Ruskin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
캐리 쿤Carrie Coon
알렉산드로 니볼라Alessandro Nivola
크리스 쿠퍼Chris Cooper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12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3월 17일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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