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4' 20세기 모든 액션영화에 헌정하는 레퀴엠
'존 윅 4' 20세기 모든 액션영화에 헌정하는 레퀴엠
  • 김경수
  • 승인 2023.04.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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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지금 이 글의 제목을 짓는 동안에도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아마도 50명을 지옥으로 보냈을 거다. 이는 <존 윅>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유행하는 댓글 놀이이자 밈이다. 이 밈이야말로 <존 윅> 시리즈의 미학인 '킬 카운트'(주인공이 몇을 죽이는지 세는 행위)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액션영화 팬 사이에서 '킬 카운트'는 놀이이자 문화다. 사실 킬 카운트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그친다. 반면 <존 윅> 시리즈는 킬 카운트만을 위한 영화로 보인다. 기존의 액션영화가 액션과 감정을 강하게 연결하려는 데에 비해, 이 시리즈에서의 살인은 기계적이기까지 하다. 존 윅은 1편에서는 101분 동안 77명을, 2편에서는 122분 동안 128명을, 3편에서는 130분 동안 85명을 죽인다. 존 윅은 평균 분당 한 명을 죽인 셈이다. <존 윅 4>(2023)는 시리즈 중 가장 긴 169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존 윅4>에서도 존 윅은 14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존 윅의 킬 카운트는 단거리 육상선수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며, 그는 매번 신기록을 경신하는 게임의 플레이어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게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빛나는 영화인 셈이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4>는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그간 시리즈의 미학을 한 데에 총집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서부극부터 절권도까지 20세기의 액션영화를 하나로 모으려는 야심까지 돋보이는 걸작이다. 존 윅은 전작에서 윈스턴(이안 맥쉐인)에게 죽을 위기를 당하고도 살아남는다. 그는 그를 파문하고 죽이려 하는 최고 회의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사막에서 최고 회의의 측근인 장로를 살해한다. 최고 회의에서는 그를 처리하고자 잔악무도한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에게 황제의 권한을 위임하며, 그라몽은 존 윅을 죽이고자 온갖 수를 다 쓴다. 그는 존 윅의 오랜 친구인 케인(견자단)을 협박해서 존 윅을 처리하도록 한다. 여기에다가 정체 모를 현상금 사냥꾼(셰이머 앤더슨)이 개입하면서 존 윅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윈스턴은 존 윅에게 최고 회의의 오래된 규칙 중 하나인 결투로 그라몽과 일대일로 승부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라몽은 케인이 존 윅과 결투를 대신하게끔 하고, 둘은 사크르쾨르 성당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견자단은 <엽문> 등으로 유명해진 동양의 액션스타다. 견자단과 키아누 리브스의 콤비는 동서양의 액션을 한데에 모으려고 하는 시도로 보인다. 물론 전작에서부터 동서양의 액션을 한 데에 합하려는 야심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존 윅은 건푸(총과 쿵푸를 합한 신조어로, <존 윅>의 제작진이 영화의 액션을 설명하는 데에 쓴 단어다.)에서 시작한 영화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절권도까지 동서양의 무술과 검술까지 아우른다. 1편에서는 총기 액션을 중심으로 했고, 2편과 3편에서는 근거리 무기와 맨손 격투까지 익힌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의 육체'는 마치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건 존 윅이 '게임적 캐릭터'이어서다. 그는 어떠한 죽을 위기에 마주해도 살아남는 캐릭터다. 1편에서 2편으로, 2편에서 3편으로 가는 사이에 그는 언제나 죽음에 이르지만, 속편에서 살아나고 만다. 오히려 더 강해지기까지 한다. <존 윅4>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액션을 버거워하는 것이 관객의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노쇠해도, 키아누 리브스의 육체만큼은 살아남는다. 그의 육체는 죽음에 처하고도 죽지 않고 계속해 리셋되는 게임적 리얼리즘에 기반해 있다. 그의 육체가 살아날수록 더 강해지는 이유도 그의 육체가 게임이나 만화의 문법으로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의 육체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아놀드 슈왈제네거, 마동석과 같은 마초적인 근육질 몸매인 하드바디는 아니다.

반대로 '존 윅'은 <매트릭스>(2000)나 <콘스탄틴>(2006)에서의 육체를 계승한 것에 가깝다. <매트릭스>에서의 키아누 리브스는 디지털 세계 안에서만 완전한 육체를 지니는 구원자가 된다. <콘스탄틴>에서는 존 윅을 연상하게끔 하는 존 콘스탄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존 콘스탄틴은 폐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뒤 속죄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원죄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최고회의에서 파문을 선고받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 윅>의 설정과 유사하다. 또한 그가 천사와 악마의 혼혈을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시퀀스는 <존 윅>과도 유사하다. (나아가 중립을 유지하는 콘티넨탈 호텔 등등 <존 윅>의 여러 설정은 <콘스탄틴>의 설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매트릭스>와 <콘스탄틴>의 종합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존 윅인 셈이다.

   

'키아누 리브스'는―육체는 성장하지 않되 내공은 성장하는―신에 가까운 힘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계속 그려졌다. 나아가 데뷔한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며, 그를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인터넷 유행어는 영화 외적으로 그가 게임 캐릭터의 신체를 지닐 수 있도록 이미지를 형성했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 시리즈와 게임과의 유사성은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존 윅> 시리즈의 서사는 은퇴한 킬러인 존 윅이 움직이게끔 동기를 만드는 선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에서 서사를 논한다는 것은 허울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관마저도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최고 회의와 패밀리와 같은 여러 설정은 일루미나티 등의 비밀결사와 비슷하다. 최고 회의는 오컬트 장르 속의 사탄과 같으므로 그 정체를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다. 최고 회의는 존 윅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극한 상황으로 이끄는 최소한의 핑계에 불과하다.

<존 윅>의 세계관에서 존 윅이 상대하는 킬러들은 각각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 오히려 현상금을 노리는 좀비나 오컬트 영화 속 사탄으로 보인다. 존 윅이 이들을 죽이는 것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에 가깝다. 존 윅의 시그니처 액션 중 하나인 고환 걷어차기가 만화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 윅이 살해하는 대상은 자동적으로 존 윅을 인식하는 유닛이지 인간이 아니어서다. 더욱이 이들을 그려낼 때도 살인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되려 과잉된 폭력으로 살인의 생생함을 제거한다. 또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존 윅의 퍼포먼스가 죽은 이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것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존 윅4>는 존 윅의 게임적인 육체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정교한 액션 연출을 버거워하는 키아누 리브스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래서인지 결말에 이르러서는 20세기의 모든 액션영화에 헌정하는 레퀴엠으로 느껴졌다.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2022)에서 한 액션 스타의 종언과 또 다른 종언이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4>의 오프닝은 당돌하고 뻔뻔하다. 존 윅이 성냥불을 끄자마자 급작스레 사막 한가운데로 화면이 전환되는 연출은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편집을 오마주했다.(물론, <존 윅4>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키아누 리브스가 만화적 육체에, 카포에라에 절권도와 검도까지 동서양의 액션을 기워낸 존재이듯 이 영화도 20세기의 영화의 스타일을 짜깁기해 제작한 영화라는 것을 드러내는 연출이다.

존 윅이 가는 공간에 따라서 새로운 적이 등장하는 방식은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1927)을 닮아있다. <라스트 사무라이>(2003)에 출연하기도 한 사다나 히로유키의 사무라이의 검술은 <자토이치>와 같은 사무라이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또 존 윅과 케인이 함께 하는 계단 액션 시퀀스는 <엑소시스트>(1973)을 연상하게 한다. 심지어 '존 윅'은 장 피에르 멜빌의 캐릭터와 닮아 있으며, 그의 권총 액션은 홍콩 느와르의 진화형으로 보인다.

나아가 <존 윅4>의 하이라이트인 사크르쾨르 성당 시퀀스는 케인과 존 윅이 프랑스 한가운데에서 스파게티 웨스턴―가령 세르지오 레오니의 <석양의 무법자>(1969)―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존 윅4>는 존 윅의 육체를 빌려다가 20세기의 액션영화를 총집합하고자 한다. 전작과 달리 창의성이 넘치는 액션을 자제하고, 아날로그 액션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영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바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킬러와 같은 요소에서 드러나듯 전작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존 윅4>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급작스레 존 윅이 있는 공간을 부감으로 찍는 숏이다. 이때 모든 것이 세트에서 생기는 일에 불과하다는 충격을 느꼈다. <존 윅4>는 죽을힘을 다해서 살고자 하는 존 윅은 세트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 공간은 블루스크린이 아니라 스턴트맨과 싸우는 아날로그의 공간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존 윅> 이전에는 블루스크린에서의 액션을 극한화한 액션 스타다. 이제는 블루스크린 바깥에서 극한에 가까운 액션을 소화하며, 아날로그 액션의 화신으로 거듭나고 있다. 존 윅은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한 명언을 통해서 아날로그 액션 스타의 진퇴양난을 드러낸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존 윅의 말은 아날로그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액션영화에 외치는 마지막 단말마로 들린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 4
John Wick: Chapter 4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Chad Stahelski

 

출연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

견자단Donnie Yen
빌 스카스가드Bill Skarsgard
로렌스 피쉬번Laurence Fishburne
이안 맥쉐인Ian McShane
사나다 히로유키Sanada Hiroyuki
셰미어 앤더슨Shamier Anderson
랜스 레드딕Lance Reddick
리나 사와야마Rina Sawayama
스캇 애드킨스Scott Adkins
마르코 자로Marko Zaror
나탈리아 테나Natalia Tena
클랜시 브라운Clancy Brown

 

수입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조이앤시네마
배급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69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3.04.12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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