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진정성과 열정으로 담아내는 감동의 한 그릇
[Interview] 진정성과 열정으로 담아내는 감동의 한 그릇
  • 홍상현
  • 승인 2023.04.24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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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라멘 피버>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 인터뷰
15년간 영화평론가로 활동해 온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의 두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라멘’이다. (C)MK Film
15년간 영화평론가로 활동해 온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의 두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라멘'이다. (C)MK Film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카운터파트(counterpart)를 꼽으면 짜장면이려나.

싸고,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가게를 찾을 수 있으며, 호불호 없이 누구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니까. 게다가 기원이 대륙이라는 것마저 닮았다. 뿐인가? 개항지에서 등장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루트까지.

하지만 엄밀히 보면 또 다르다. 거의 핵심이랄 수 있는 '국물'이 없잖은가. 짜장면의 원형은 볶은 춘장에 채소 등 온갖 고명을 올려 먹는 비빔국수다. 해서, 일본에 있는 가족ㆍ친지들이 서울을 방문하면 필자가 소개하는 메뉴는 따로 있다. 바로 설렁탕. 이제는 국가 간 갈등조차 넘어설 만큼 음식의 국경이 희미해져 이름조차 한국말로 발음하지만 공통점을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면 이보다 '딱'인 게 없다.

“돼지 뼈를 고아 만든 육수 있지? 푹 고면 흰색이 돼, 거기 가는 면을 말아먹고 하잖아. 하카타 돈코츠? 서울에서는 그런 국물에 소면하고 밥을 말아 먹어. 육수 색깔이 얼추 비슷하긴 한데 맛이 다르지. 느끼하지 않고 냄새도 없거든. 소뼈를 고아 만드니까. 굳이 일본말로 바꿔보면 '큐코츠 스프' 정도가 되겠는데 이게 아주 기가 막히거든? 어때? 한국 온 김에 한 번 먹어볼래?”

물론 반응은 단 한 번도 심드렁했던 적이 없다. 아니, 실은 매번 대성공이었다. 가게에 도착해 삼십 분 내지 한 시간 뒤면 다들 설렁탕 마니아가 되었으니까.

이처럼 아무 전문성 없이, 심지어 다소 장황하게까지 늘어놓은 '짜장면 론'과 '설렁탕 론'의 반대편에 있는 대체재는 무얼까. 시나소바, 혹은 주카소바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라멘이다.

 

늘 할 말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유쾌한 사내,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에게 ‘피버’란 단지 라멘에 관한 키워드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C)MK Film
늘 할 말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유쾌한 사내,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에게 '피버(fever)'란 단지 라멘에 관한 키워드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C)MK Film

모두에서 말했듯 대륙에서 온 이민자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장 처음 팔기 시작한 점포 역시 이름부터 인천의 공화춘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라이라이켄이다. 라이라이켄이 있는 곳은 도쿄지만 또 다른 일설에서 라멘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일본의 인천, 요코하마다. 다만, 널리 알려진 국물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을 생각하면 설렁탕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도쿄나 가나가와(요코하마는 이곳의 현청소재지다. ※ 주) 말고도 아오모리, 야마가타, 후쿠시마, 도치기, 기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규슈 등의 향토색이 덧씌워진 수많은 버전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육수에도 돼지나 소의 뼈뿐만 아니라 닭, 가다랑어, 심지어 멸치를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15년간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던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의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라멘 피버>의 주인공도 (타이틀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바로 이 음식이다.

내용은 이렇다. 나카무라 형제로 말하자면 현재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라멘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천재 셰프'라 불리며 2000년대 세계적인 라멘 붐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는 동생 시게토시는 뉴욕에 있는 명점 '나카무라'의 오너 셰프, 형 히로토는 전설적인 라멘 체인점 '아후리'의 대표다. 아후리는 일본 내 16개 체인점 외에도 미국, 포르투갈, 싱가포르 등 해외 진출을 이어가는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라멘 체인. '라멘'이라는 음식을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려 세계인의 음식으로 만든 것이 나카무라 형제라고 하지만, 막상 두 사람은 주먹다짐을 하면서 한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바야시 감독은 그런 팽팽한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21개 도시를 배경으로 라멘 열풍과 그 중심에 서 있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천재 셰프’라 불리며 2000년대 세계적인 라멘 붐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는 나카무라 시게토시는 뉴욕에 있는 명점 ‘나카무라’의 오너 셰프다, (C)MK Film
'천재 셰프'라 불리며 2000년대 세계적인 라멘 붐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는 나카무라 시게토시는 뉴욕에 있는 명점 '나카무라'의 오너 셰프다, (C)MK Film

홍상현

이제 두 번째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셨을 뿐인데, 그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 초청까지 되셨습니다.

고바야시 마사토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의 하나로써, 특히 독립ㆍ예술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에서는 선댄스영화제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런 권위 있는 영화제가 <라멘 피버>의 첫 세계진출 무대가 되어 영광이에요. 제 영화를 발견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멘 피버>는 애초부터 세계시장을 의식해 만든 작품인데요. 이번 초청을 계기로 더 많은 나라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요 한 분 한 분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에게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한국영화,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바야시 마사토

초등학생시절 영화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일본영화를 포함, 아시아영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4, 5년 전부터 한국영화를 무척 즐겨보고 있습니다. TV 시리즈도 거의 한국 작품밖에 보지 않아요. 한국은 훌륭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나 배우들이 정말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복수는 나의 것>(2002), <하녀>(1960), <벌새>(2018), <살인의 추억>(2003) 등이 있습니다. 감독으로는 김기영을 꼽고 싶은데요. 볼 때마다 파워풀하고 다양한 형태의 오리지널 작품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에요.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다 봤습니다. 3월(2022년)에 나고야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하녀>의 특별 상영회가 있었는데요. 거기 게스트로 초대받아 GV도 했었답니다. 나고야는 <하녀>의 타이틀 롤 이은심 배우의 출생지이자 김기영 감독의 1961년 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무대였던 도시이기도 한지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그밖에 한국이 자랑하는 귀재, 박찬욱 감독도 진심으로 경애하고 <벌새>를 만드신 김보라 감독의 차기작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배우로는 언젠가 이지은(아이유) 배우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물론 뮤지션으로서도 유례없이 훌륭한 재능을 가진 분이지만 배우로서의 실력도 세계정상급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페르소나>(2018)에서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캐릭터를 능숙하게 연기해 내신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 보여주신 압도적인 표현력과 끝없는 재능에 감복했습니다. 진정한 천재 아티스트예요. 존경합니다. 배두나 배우도 늘 다음 작품이 기대되고, 김기영 감독이 발굴하신 윤여정 배우의 연기도 압권이지요. <벌새>의 박지후 배우도 대단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지금 우리 학교는>(2022)에서의 열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성연기자 중 송강호 배우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 그것도 정상급이시죠. 황정민 배우도 좋아하고, 한국 배우들은 주ㆍ조연급 막론하고 실력파가 너무 많아요.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말한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라멘의 인기와 심오한 매력, 그리고 천재 라멘 장인의 삶과 철학 등을 가지고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만 거기에 나카무라 형제의 드라마를 더하고 싶었습니다.”(C)MK Film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말한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라멘의 인기와 심오한 매력, 그리고 천재 라멘 장인의 삶과 철학 등을 가지고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만 거기에 나카무라 형제의 드라마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C)MK Film

홍상현

안 여쭤봤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웃음) 그럼 이제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먼저 기획의 배경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고바야시 마사토

2015년 11월 뉴욕에 가서 2005년부터 2년 남짓 살았던 이스트빌리지를 걷고 있는데 라멘집이 눈에 띨 정도로 늘어나 있더라고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일종의 문화적 현상 아닐까?'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라멘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어떤 계시처럼 머릿속을 메웠습니다. 라멘을 그렇게까지 좋아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영화 만들기를 배운 적도,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 '번뜩임'을 믿고 돌진하기로 했죠. 다큐멘터리영화라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혼자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밖에 15년 이상 영화평론가로 일해온지라 인터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좋은 상대만 만나면 꽤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홍상현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런 구상에 딱 맞는 나카무라 형제를 만나셨고요. (웃음)

고바야시 마사토

어차피 영화를 만들자고 결정한 거, 기왕이면 세계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리서치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메이저체인이나 국내외에서 유명한 가게 등을 찾아가 제안을 해봤는데 반응이 탐탁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2016년에 일단 기획부터 마켓에 내놔볼 생각으로 2016년 칸영화제를 방문했죠. 그런데 칸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도쿄에 있던 어시스트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아후리가 제가 보낸 메일에 긍정적인 답을 해왔다고.

 

라멘 피버」를 제작하면서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프로듀서에 촬영, 각본, 편집까지 사실상 모든 역할을 혼자 해냈다. (C)MK Film
「라멘 피버」를 제작하면서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프로듀서에 촬영, 각본, 편집까지의 모든 역할을 혼자서 해냈다. (C)MK Film

홍상현

완전 신나셨을 것 같은데요? (웃음)

고바야시 마사토

그럼요. (웃음) 귀국하자마자 달려갔습니다. 그게 나카무라 히로토 사장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그리고 라멘업계의 슈퍼스타인 동생 시게토시 씨를 소개해 주셔서 바로 뉴욕으로 날아갔어요. 당시 포틀랜드에 아후리의 입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착지점을 그곳으로 설정했습니다. 두 형제분 말고도 전통적인 라멘 장인 분들이나 그 밖에 유명 셰프분들도 섭외해 보고 싶었는데, 그 문제도 시게토시 씨가 해결해 주셨고요.

 

홍상현

말 그대로 '노다지'였던 셈이네요. (웃음) 그런데, <라멘 피버>는 감독에 프로듀서, 촬영, 각본, 편집까지의 모든 역할을 혼자서 해내신 작품이죠?

고바야시 마사토

맞습니다. 동시에 제작하던 프렌치 호러 무브먼트 다큐멘터리 <비욘드 블러드>(2018)가 먼저 세상에 나왔지만, 크랭크인은 <라멘 피버>가 먼저였으니까요. 원래 미국인 촬영감독을 부르기로 했었는데 첫 촬영 전날 갑자기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직접 카메라를 잡았죠. 그런데 인터뷰 부분은 베스트 컷을 잡아내기 위해 친밀한 분위기에서, 더러는 단둘이 찍고 싶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첫 촬영 직후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찍을 때도 흥미진진했지만 마치고 나니까 또 얼마나 만족감이 드는지 소름이 다 돋더라고요. (웃음)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감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21개 도시를 배경으로 라멘 열풍과 그 중심에 서 있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C)MK Film
고바야시 마사토 감독은 감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21개 도시를 배경으로 라멘 열풍과 그 중심에 서 있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C)MK Film

홍상현

미처 깨닫지 못하던 본인의 재능을 발견하신 거군요. (웃음)

고바야시 마사토

개인적으로 문필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창작의 기쁨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여러 분야에 도전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기쁨도 컸습니다. 다음 작품은 재작년부터 준비 중인 극영화가 될 텐데 어서 제작을 시작하고 싶어요.

 

홍상현

분명 잘 해내실 겁니다. 지금처럼. (웃음) 이제 작품의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라멘의 매력과 해외에서의 인기에 대해 주로 다루던 영화의 초점이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나카무라 형제의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고바야시 마사토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라멘의 인기와 심오한 매력, 그리고 천재 라멘 장인의 삶과 철학 등을 가지고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만, 저는 거기에 나카무라 형제의 드라마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좀 산만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관객의 예상을 넘어서는 재미를 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거기에 <라멘 피버>가 극영화는 아니지만 나카무라 시게토시라는 중심인물을 일관되게 등장시키는 게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중요할 거라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홍상현

바람직한 생각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시도로 해서 차고 넘치는 푸드 다큐멘터리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라멘 피버>라는 작품은 또 하나의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록 음악이 메인인 OST가 너무 훌륭한데요.

고바야시 마사토

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웃음)

<라멘 피버>는 라멘에 대한 영화인 한편으로 록 다큐멘터리를 의식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록은 제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원래부터 음악 다큐멘터리를 좋아했거든요. <라멘 피버>를 기획ㆍ개발하면서도 '라멘은 엔터테인먼트이며, 하모니이고, 록'이라는 슬로건을 작품에 어떤 형태로든 풀어내보고 싶었습니다. 나카무라 시게토시라는 인물에게서도 스스로의 길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척하는 펑크뮤지션 같은 면이 보였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카무라 씨도 어린 시절 기타를 좋아해서 뮤지션을 꿈꿨던 경험이 있으시더라고요. 다른 라멘 장인 분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과거를 가진 분들이 계셨고. 결과적으로 '라멘을 통해 인생을 그린, 록 영화'에 착지한 거 아닐까 합니다. (웃음)

 

라멘의 매력과 해외에서의 인기에 대해 주로 다루던 「라멘 피버」의 초점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나카무라 형제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C)MK Film
라멘의 매력과 해외에서의 인기에 대해 주로 다루던 「라멘 피버」의 초점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나카무라 형제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C)MK Film

홍상현

크로스오버인가요? 좋네요. (웃음)

어느새 인터뷰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에 비슷한 두 분의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혹시?

고바야시 마사토

네, 우리 부모님입니다.

다큐멘터리영화의 제작비라는 게 극영화와 비교할 때 예산이 그리 크진 않지만 제가 신인감독이라 보니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큰맘 먹고 부친께 의논을 드렸는데 뜻밖에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면서 흔쾌히 제작비를 출자해 주셨어요. 덕분에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모친께서도 헌신적으로 지원해 주셨고요. <라멘 피버>의 가장 큰 팬들이셨죠. 수십 번을 되풀이해서 보셨으면서도 정말 멋지다고 칭찬해 주시고.

 

홍상현

그런데, 두 분에 대한 이야기가 왜 과거시제인지요?

고바야시 마사토

2018년 갑자기 두 분 모두 연이어 돌아가셨거든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만, 평생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살고 싶어요. 당신들이 안 계셨던들 <라멘 피버>는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홍상현

네... 참 멋진 분들이셨네요.

<라멘 피버>를 보고 나카무리 시게토시 씨 페이스북에 찾아가 봤는데 <라멘 피버> 영상을 몇 개나 업데이트 해놓으셨더라고요. (웃음) 형제분 모두 무척 만족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바야시 마사토

그럼요. (웃음) 주인공인 나카무라 히로토, 시게토시 두 분 모두 영화를 좋아해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라멘 피버>는 저와 제 어머니, 아버지 세 사람의 고바야시 가족이 만든 나카무라 가족에 관한 영화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카무라 형제는 현재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라멘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 동생 시게토시(왼쪽)는 뉴욕에 있는 명점 ‘나카무라’의 오너 셰프이며, 형 히로토(오른쪽)는 전설적인 라멘 체인점 ‘아후리’의 대표다. (C)MK Film
나카무라 형제는 현재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라멘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 동생 시게토시(왼쪽)는 뉴욕에 있는 명점 '나카무라'의 오너 셰프이며, 형 히로토(오른쪽)는 전설적인 라멘 체인점 '아후리'의 대표다. (C)MK Film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또박또박한 발음의 한국말)

사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방문한 외국이 한국이었습니다. 고교 시절에 수학여행을 갔었어요. 벌써 오래전 일이네요. 뉴욕에 살던 시절 많은 한국인 친구도 사귀었고요.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가려고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많은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한국은 꼭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이 아니더라도 저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나라인 거죠.

한식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순두부찌개를 특히 좋아해요. 한국 식재료를 사러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에도 자주 가고, 한국 '라면'도 일상적으로 먹고 있습니다. 영화나 TV시리즈 음식뿐만 아니라 문학에 음악까지, 한국은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한국말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고요.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더 배워보고 싶네요. 항상 머릿속이 한국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라멘 피버>의 한국 개봉이 성사되어 극장에서 한국 관객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한국의 국제영화제에서 좀 더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재차 '깨알 같은' 한국 사랑을 피력한 고바야시 감독은 최근 <라멘 피버>의 후속편인 <비욘드 라멘>의 제작을 마무리했다. <라멘 피버>의 핵심 등장인물이었던 나카무라 시게토시 셰프를 주인공으로 뉴욕에서의 활약상이 주 내용이란다. 그 외에도 원래 프랑스에서 촬영할 예정이던 20분짜리 단편 극영화의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며, 오랜 꿈이던 장편극영화 감독 데뷔를 위한 시나리오도 탈고했다.

그가 쉴 새 없이 쏟아놓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새삼 실감한다.

늘 할 말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이 유쾌한 사내, 고바야시 마사토에게 '피버'란 단지 라멘에 관한 키워드가 아닌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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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혜 2023-04-25 14:32:06
일본의 특징이랄까... 영화나 문학, 또는 만화를 통해서도 고유문화나 본토의 음식등을 소개하곤 하더군요.
깊이 있는 접근이랄지... 다큐멘터리 속에 이야기를 녹여내어 진담을 이야기하지만, 어찌됐든 '라멘'에 대한 소개와 그에 따른 호시김을 유발시키는 문화 매개체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겠더라구요.
철도원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명란젓이 그리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GA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