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사람을 미워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Interview] "사람을 미워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 홍상현
  • 승인 2023.04.10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디셈버> 주연배우 쇼겐 인터뷰
「디셈버」의 아버지는 낙천적이며 사람을 좋아해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자연인 쇼겐’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디셈버」의 아버지는 낙천적이며 사람을 좋아해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자연인 쇼겐'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c) 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인간한테 찾아와 주신 거지요."

"그래요? 하나님을 알게 됐다니 다행이네요."

"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리 편합니다. 내 마음이. 요새는 기도로 눈 뜨고 기도로 눈 감습니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항상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그런데 앉아 이리 직접 만나고 보니 하나님이 역시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가리는 게 많은 성격이고, 영화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한 까닭에 피할 수 있었던, 숨쉬기조차 버거운 분노에 휩싸여 이를 악물던 시간이 지나갔다. 링 위에서 스파링 파트너에게 정신없이 얻어맞을 때보다 길게 느껴지던 1분 23초.

모두에 인용한 대화는 맥락 없이 보면 지극히 평화롭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영화 <밀양>(2007)의 한 장면이며, 지극히 선량하고 평온한 얼굴의 자칭 '죄 많은 놈'은 서른셋에 남편, 피아니스트의 꿈까지 잃고 생면부지의 지방중소도시에 내려와 살던 이신애(전도연 분)의 아들 준이를 살해한 박도섭(조영진 분)이라는 것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면. 면회실을 걸어 나와 비튿 대며 걸어가던 신애는 결국 쓰러져 혼절한다. 전도연에게 대한민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주어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그 무서울 정도의 설득력은 이를 지켜보며 머릿속에서 화이트아웃을 일으키던 수많은 관객의 숫자에 비례하지 않을까.

 

쇼겐 배우가 주연에 제작까지를 겸했던 작품 「젠산 펀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장 모범적인 국제공동제작의 선례를 남긴 작품 중 하나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쇼겐 배우가 주연에 제작까지를 겸했던 <젠산 펀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장 모범적인 국제공동제작의 선례를 남긴 작품 중 하나다. (C) 2021 GENSAN PUNCH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로마서 12장 19절), "용서하라"(마가복음 11장 25절)는 말이 결국 신의(혹은 그가 말했다고 믿어지는) 영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평범한 우리에게 너무나 힘겨운 일이어서다. 하여, 적어도 이 면에서 서양 윤리 사상을 구성하는 한 축, 헤브라이즘의 핵심인 '용서하지 않는 악덕'에 관한 전제란 무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용케 사라지지 않았는지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담은 작품을 1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밀양>을 보았던 바로 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영화를 전공한 뒤 고향을 떠나 국적은 물론 인종조차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인도출신 감독, 안슐 차우한의 지석상 노미네이트작 <디셈버>(2022)가 그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7년 전, 고등학생이던 딸이 친구의 손에 살해당했다. 딸을 잃은 부모는 이혼하고 아버지(쇼겐 분)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채 남은 삶을 분노와 슬픔에 빠져 보낸다. 어느 날, 살인을 저질렀던 딸의 동급생(마츠우라 료 분)이 주어진 형량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낸다. 아버지는 지금은 재혼한 어머니(메구미 분)를 만나 '딸을 죽인 살인자를 사회로 복귀시켜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둘은 법정에서 딸을 죽인 그녀와 대면한다. 그리고 딸의 죽음으로 무너져 버린 가족의 폐허를 뒤로한 채 살인자의 사연을 들으며 용서와 구원을 향한 힘겨운 걸음을 내디딘다.

2021년 자신이 제작까지를 겸한 지석상 수상작 <젠산 펀치>에 이어, 지석상 후보작 <디셈버>의 기획자의 한사람이자 주인공으로 부산에 돌아온 쇼겐 배우를 만났다.

 

《마리끌레르》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최하고 샤넬이 후원하는 아시아 스타 어워즈에서 아시아 스타상을 수상한 쇼겐 배우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C)BIFF
《마리끌레르》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최하고 샤넬이 후원하는 아시아 스타 어워즈에서 아시아 스타상을 수상한 쇼겐 배우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c)2022 BIFF

홍상현

지난해 아시아영화 가운데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젠산 펀치>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셨습니다.

쇼겐

한국의 부산영화제는 국제적으로 굉장히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영화 자체도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핫한 영화제에 2년 연속, 게다가 지석상이라는 권위 있는 상에 작품을 노미네이트 해 주시니 그저 영광일 따름입니다.

 

홍상현

부산국제영화제가 특별히 사랑받는 스타이시기도 하지만 본인께서 원래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걸로 유명하신데요. 이즈음에서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 뵙는 분을 위한 '시그니처 질문'을 드려봐야겠어요. (웃음) 한국영화,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 등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쇼겐

작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이창동 감독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답했거든요? 그랬더니 딱 그 대답을 한 직후에 아시아 필름 어워즈에서 뵙게 되서 엄청나게 놀랐어요. 평소 누군가와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이지만 이창동 감독께는 뵙자마자 좀 같이 찍어주십사 부탁을 드렸죠. (웃음)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 영화는 다 좋아하고요. 그 중에서도 특히 <오아시스>(2002)를 좋아해요. 그리고 설경구 배우를 좋아하는데 최근 출연하신 <킹메이커>(2021)가 공을 참 많이 들인 작품이더라고요.

 

인도 출신 감독 안슐 차우한 감독은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대학에 진학, 영화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인도 출신 감독 안슐 차우한 감독은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대학에 진학, 영화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c)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마리끌레르》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최하고 샤넬이 후원하는 아시아 스타 어워즈에서 바로 아시아 스타상을 받으셨죠. 앞으로 영화, OTT 드라마 등 많은 한국 작품에서 뵙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쇼겐

뉴욕에서 연기를 공부한 것을 계기로 연기활동을 시작했고, 그렇게 미국, 영국을 거쳐 요즘에는 아시아 작품에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에서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 연이어 초대받으면서 내년에야말로 한국영화에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홍상현

커리어 말씀인데요. '원래 아시아와 구미 사이, 그 어디쯤의 느낌'이라는 유니크한 이미지의 모델로 활약하시다 돌연 배우, 그것도 영화를 메인으로 방향을 전환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쇼겐

대학에 다니던 열여덟 살 무렵에 모델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원래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꿈이었습니다. 아니, 꼭 연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해서 정말 열심히 봤고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진 거죠. 그런 이유로 지금도 영화를 메인 활동영역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해자 역으로 열연한 마츠우라 료 배우. 출연작이 한국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왔던 「잠자는 벌레」(2019) 이후 두 번째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가해자 역으로 열연한 마츠우라 료 배우. 출연작이 한국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왔던 <잠자는 벌레>(2019) 이후 두 번째다. (c)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연기활동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사소한 행동까지 간섭받는 형태가 아니라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때로는 직접 작품의 기획에 관여하고 계시잖아요. 예컨대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처럼. 아시아에서는 드문 사례 아닌가요?

쇼겐

어휴,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 같은 분들의 이름까지 언급해주시다니 너무 황송하네요. (웃음) 아무튼 배우가 직접 영화를 기획하고 직접 주연을 맞는 게 일본에서 그리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든 점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젠산 펀치>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석상을 받으면서 주변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번에도 <디셈버>에 기획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었어요. 물론 의뢰에 따른 출연도 이어가겠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기획을 발굴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홍상현

<디셈버>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참가하셨군요.

쇼겐

개인적으로 감독인 안슐과는 친구 사이에요. 그의 팬이기도 하고요. 안슐이 준비하던 세 번째 장편 오디션에 지원했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었죠. 그래서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같이 고민하던 참에 안슐이 다른 작품들의 기획안을 보여주었는데. <디셈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내면에 대해 고려하면 대단한 도전이고, 연기하기도 만만찮은 영화였지만 용기를 냈죠.

 

어머니 역의 메구미 배우. 가수로 활동했던 이력에 걸맞게 윤기 있는 보이스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어머니 역의 메구미 배우. 가수로 활동했던 이력에 걸맞게 윤기 있는 보이스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c)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메소드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몇 안 되는 일본의 배우 중 한 분이신데요. 희생자의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신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쇼겐

첫 번째 관건은 제게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부재하다는 거였어요. 아이를 잃은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많이 고민해야 했죠. 그래서 심리적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제 소중한 사람(그는 2022년 6월 10년 연하의 여성을 배우자로 맞았다. ※ 주)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고 가정했어요. 다음으로 중요한 게 시나리오상의 가해자에게 살의를 품는 일이었는데, 이 부분이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여러 가지 가정을 거듭해 가다 보니 점점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었지만요.

 

홍상현

역시, 작업을 대단히 체계적으로 진행하셨군요. 역할창조와 관련해서 안슐 감독과는 어떤 과정을 거쳐 소통하셨는지요.

쇼겐

첫 미팅에서 안슐이 '관객들이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당신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이미지를 연출했으면 좋겠다'면서 포토샵을 한 제 사진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물리적 한계여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저로서는 최대한 그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어서 우선 체중부터 늘렸습니다. 제가 <젠산 펀치> 촬영이 끝난 후에도 계속 복싱을 했었거든요. 10킬로그램 정도 살을 찌운 뒤에 딸을 잃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을 만한 나쁜 습관을 하나둘씩 만들어갔습니다.

 

안슐 차우한 감독은 전작인 「콘토라」에서처럼 드라마의 사이사이에 독특한 미장센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안슐 차우한 감독은 전작인 「콘토라」에서처럼 드라마의 사이사이에 독특한 미장센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c)2023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상대역, 다시 말해 가해자 역의 마츠우라 료 배우나, 전 배우자 역의 메구미 배우와 접하는 방식도 무척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쇼겐

배우자 역으로 출연한 메구미 배우와는 이번 작품이 처음이었는데요. <디셈버>는 아이가 살해된 뒤 이혼을 하고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역시 이혼 전에 함께했던 시간도 소중하기 때문에 메구미 배우와 소통하면서 이전에 둘 사이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벤트를 설정했습니다. 예컨대 어디서 만났고, 어떻게 첫 데이트를 했으며, 프로로즈의 말은 또 어땠는지. 여기에 다시 딸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경찰의 연락을 통해 사건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같은. 그리고 장례식 분위기가 어땠는지 등을 하나하나 의논하면서 공유했습니다.

 

홍상현

그만큼 가해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크셨을 것 같습니다.

쇼겐

그렇죠. 마츠우라 배우에게 살의를 느껴야 했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접근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걸 들어보자면, 현장에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인사를 해도 무시를 한다든가.

 

한때 콤비 “오리엔탈 라디오”로 유명했던 개그맨 후지모리 신고도 조연으로 나와 중량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한때 콤비 "오리엔탈 라디오"로 유명했던 개그맨 후지모리 신고도 조연으로 나와 중량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c)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오해를 샀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쇼겐

그렇죠. (웃음) 마지막 날 마츠우라 배우의 촬영이 끝나고 제가 가서 수고했다고 포옹을 하니까 문자 그대로 '통곡'을 하더라고요. 저한테 정말로 미움받고 있는 줄 알았다면서. 실은 인사를 무시하는 것도 제 나름대로는 뭔가 더 큰 상처를 주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면서 취한 행동이었는데.

그 밖에도 법원에 가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법원을 찾아가서 예컨대 경비원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 건지, 눈앞에 있는 그에게 제가 덤벼드는 일이 가능할지 등의 리서치를 진행했습니다.

 

홍상현

촬영준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을 것 같습니다.

쇼겐

그렇지는 않아요. 이 기획이 완성된 게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때고 넉 달 뒤인 2월에는 벌써 촬영에 들어갔으니까요. 전반적으로 스케줄이 조금 빠듯하기는 했죠.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홍상현

그래도 결과가 성공적이었잖아요. (웃음) 모든 장면에서의 연기가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좀 근본적인 질문이 되겠는데요. <디셈버>의 테마이자 국내용 타이틀이기도 한 <용서>, 그리고 구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쇼겐

저 자신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사람마다 차이야 있지만 하나같이 인간관계에 불편한 점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컨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 같이 SNS로 몰려가서 공격하는. 그러면 또 누군가가 마치 희생양처럼 뭇매를 맞고 말이죠.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픈데 만약 제 아이가 살해당했다면 그 가해자를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어떤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없다고 할까요? 그래서 일단 한 가지 바람을 떠올렸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마음 앞에 있는 무엇, 그걸 보고 싶다는. 이런 제 생각이 연기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부디 <디셈버>의 관객 여러분께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젠산 펀치」 이후에도 복싱을 계속하며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던 쇼겐 배우는 「디셈버」에 캐스팅되면서 10킬로나 체중을 늘렸다고. (C)2023 December Film Partners
<젠산 펀치> 이후에도 복싱을 계속하며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던 쇼겐 배우는 「디셈버」에 캐스팅되면서 10킬로나 체중을 늘렸다고. (c)2022 December Production Committee. All rights reserved

홍상현

배우로서 당연히 혼신의 힘을 기울이셨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촬영할 때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쇼겐

앞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미워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촬영 준비 기간 동안 감정이 쌓여 가는데 정말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버거워지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술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리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거든요. 마시면 다음 날 얼굴이 붓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역할 만들기에는 필요 불가결했다고 생각합니다.

 

홍상현

마지막 질문인데, '배우' 쇼겐이 보는 안슐 차우한은 어떤 감독인가요.

쇼겐

정말 재능 덩어리인 것 같아요. 모든 면에서 강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친구인 까닭에 <디셈버>를 만들 때도 재능 있는 스태프, 캐스트가 모여들었고, 온 힘을 다해 그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그런 의지가 작품에서도 엿보였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지석상 후보로 불러주셨던 거 아닌가 싶어요.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디셈버」의 캐스트ㆍ스태프와 함께한 쇼겐 배우. (C)BIFF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디셈버」의 캐스트ㆍ스태프와 함께한 쇼겐 배우. (c)2022 BIFF

"주연배우이긴 하지만 저도 부산에 와서 처음 <디셈버>를 봤는데요. 그렇다 보니 매장면 촬영 당시가 플래시백 되어서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리듬감 있고 몰입도가 높은 법정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 출신 감독의 눈에 비친 일본 사회라는 관점도 재미있고요. 대단히 독특한 작품인 만큼 많은 관객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한국 관객 여러분께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면,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제게 역시 배우 일을 계속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물론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시기도 하지만 창작자를 제대로 키워내려는 마음이 대단히 강한 영화제라는 걸 매번 느껴요. 그래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요. 아울러 관객 여러분들로부터도 매번 진심으로 영화를 좋아하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던 까닭에 존경심이 듭니다. 앞으로도 배우로서 열심히 활동할 테니 꼭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뮤지션으로도 유명한 한노 요시히로 감독의 <라이팅 오버 더 비욘드>(2022)로 다시 한번 도쿄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쇼겐은 말레이시아 출신 림카웨이 감독의 코미디영화 <당신의 미소>(2022) 등 그간 출연한 작품이 잇달아 개봉하고, 이내 유로스페이스를 비롯한 각지를 대표하는 독립예술영화관에서 <디셈버>가 개봉하면서 완전히 코로나19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역시 이 사내, 이런저런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무대 인사를 다니는 '배우 쇼겐'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다재다능한 것일까. 메신저로 안부를 물을 때마다 새로운 작품의 아이디어들을 쏟아놓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확신한다. 가을, 해운대 어디에선가 동료들에 둘러싸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디셈버>에서와 달리 평소에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 어쩔 줄 모르는 오키나와 사람, 쇼겐을 분명 볼 수 있을 거라고.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