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빈 평론가와 여러 일로 전화 통화를 가졌다. 일에 관한 대화가 얼추 끝나갈 때쯤, 끝나질 않을 통화를 하도록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말'이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요즘 멜로가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나"
오세준 편집장
최근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았어요. '수영'(문가영)을 향한 '상수'(유연석)의 솔직하지 못한 모습에서 찌질했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상수를 향한 '미경'(금새록)의 짝사랑을 보며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했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영과 '종현'(정가람)의 사랑을 보면서는 '불행하게도 서로가 행복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꼈던 감정이지만, 끝나고 나서 더 커진 감정은 '허탈함'이었어요. 수영이 자신을 향해 오던 상수의 머뭇거림에 마음의 문을 닫는 순간이나, 상수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음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미경의 모습이나, 심지어 종현이 수영에게 보여준 모든 모습들, 이야기에 끝에 이르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 수영과 상수의 모습까지도.
인물들이 서로에게 계속해서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의 이해>의 이야기는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 마냥, 사랑에 전염이라도 되면 안 되는 듯 매화가 애처롭기만 할 뿐이었어요. 이 감정이 꽤 오래 가기도 하여, 남은 감정과 생각을 덜어내려고 최근 글에 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만으로 멜로가 재밌었다고 해야 할지 스스로 의문이기도 하네요.
변해빈 영화평론가
음, 편집장님의 글에는 <사랑의 이해>의 엔딩에서 수영과 상수가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글쎄요, 저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걸 다 '해냈다'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하는 상상은 후회를 남기는 아쉬운 결말이라기보다 후회되는 순간들을 과거로 밀어 넣는 것이란 점에서도요. 또 이 드라마가 대다수 회차를 할애해서 사랑을 지속할 것인가, 정리할 것인가의 (어쩌면 한순간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건 만남 자체가 어려워진 요즘 연애의 풍경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아닐까요.
전 각자의 사랑이 두 사람의 연애로 진행된 이후의 서사보다, 만남과 그 이전의 형태를 고민한 장르적 변주를 생각하며, 소개팅 어플을 통한 취향 기반의 만남 사례를 함께 떠올렸어요. 불필요한 대화, 시간 낭비, 감정적인 소모를 줄이고 최소한의 실패를 추구하는 흐름 속에서 '만남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치열하게 필요한 시대'인가 하고요.
2030 세대의 사랑, 연애담을 말할 때면, '요즘 연애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에 가까운 무언가를 목격하게 돼요. <사랑의 이해>의 수영, 종현 사이의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이 걷히면 드러나는 '연민'은 (채무 관계에 불과한) 경제적 계급의 문제를, <그 겨울, 나는>(2022) 속 경제적 위기와 꿈의 실패는 사랑하는 한 연인의 사랑에 균열을 만들고야 말죠.
그러니 '요즘의 로맨스 장르 영화의 입체성'은 사랑과 연애를 일로 이해할 때 가능해지고 있다 생각해요. '어긋나고 머뭇거리며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줌에 있어서, 이젠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경제적 생활력, 사회적 지위, 꿈의 성취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지요. 건강하고 원만한 연애를 '잘'하는 것이 위의 요소에 관한 판단 근거가 되는 현실이 장르의 선명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봐요.
오세준 편집장
'어긋나고 머뭇거리며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라는 해빈 평론가의 말에서 문득 한소희 배우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이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알고있지만,>(2021), <사운드트랙 #1>(2022)은 말 그대로 사랑의 어려움을 처연하게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 앞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한소희 배우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복잡미묘함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비교적 긴 호흡에 드라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이 화제를 끌지 못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야기' 탓이 크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작품들은 '정말 어긋나고 머뭇거리며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만을 다루는 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더는 매력적이지 않구나 싶어요.
글에도 썼지만, '자만추'가 다른 의미로 바뀌었을 때 든 생각은 '오늘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가지는 한계'의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에요. 가속화되는 개인화는 단순히 생활의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에서 취향까지, 한 개인의 삶이 나노화되는 시대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 '외로움'이 커지는 데,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는 없지 않나. 그러니 데이팅 어플은 가장 최적의 도구가 아닌가 싶어요. "동네친구가 필요할 때", "요새 20대가 쓰는 힙한", "썸타고 싶을 때" 등등 문구로 소개되는 여러 어플들의 맞춤형 서비스는 분명 효율적이에요. 더군다나 SNS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이니 예전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볼 수 있기도 하죠.
그런데 최근 멜로는 과연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고 있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이야기'가 없어요. 지금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죠. <사랑의 이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사랑'이 있었나 싶어요.
변해빈 영화평론가
저는 데이팅 어플에서의 나노화된 취향의 문제에 '지성적', '통계적'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어요.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한 지성적 접근, 그러나 관계의 실패와 감정적 소모를 최소화하는 간편하고 간단한 방식이란 점에서 외려 한 사람에 대한 통계적인 정보가 중요해지는 시대. 예를 들어 <연애 빠진 로맨스>와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볼 수 있는 데이팅 어플의 쓰임새를 뜯어보면, 목표지향적인 유형의 관계에 있어 만남의 방법,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까?'에 있어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중시됨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두 작품 모두 만남은 편리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이후의 연애, 사랑의 지속적인 과정에선 무언가 어긋나고 딱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인정하며 균열을 경험하게 된다, 혹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복합장르인 <썸바디>에서 어플은 스릴러·범죄의 맥락에서 말해지는 반면, 두 남녀가 연필에 대해 나눈 대화 그리고 함께 오르간을 치는 장면처럼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부각된 요소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그려냅니다. 혹은 뜻밖의 상황에서 맞춰지는 두 사람의 호흡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서사적 맥락의 중심을 (여전히) 잡고 있습니다.
데이팅 어플이라는 도구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특징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랑의 이해>만 해도 '상수'라는 캐릭터의 이름처럼 인물들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풀어냈으니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나 모호하고, 그걸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갈래가 여럿으로 나눠지는 해석보다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무언가를 원한다.'
오세준 편집장
멜로를 보며 느끼는 여러 감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감정이라 한다면 '설렘'일 것인데, 이 설렘을 영화가 아니라 《하트시그널》(2017 ~)과 같은 예능에서 가장 많이 느꼈어요. '누가 요즘 사랑 이야기만 하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 이야기>(2019)와 프란시스 리 감독의 <암모나이트>(2021),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러브>(2021)는 정말 잘 만든 멜로드라마였어요. 재밌게도 <사랑할 땐 누가나 최악이 된다>(2022)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2)는 좋은 흥행 성적과 함께 지난해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멜로드라마였죠.
한국멜로의 경우에는 '마치 짜기라도 한듯' 비슷한 작품들이 나오는 분위기이에요. 하나는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한국멜로의 전성기를 다시 일으켜 보기라도 하려는 듯 당시의 시대를 불러와요. 아주 게으르게. 당장 생각나는 작품은 <유열의 음악앨범>(2019), <비와 당신의 이야기>(2021), <20세기 소녀>(2022), <동감>(2022), <창밖은 겨울>(2022) 정도네요. 또 하나는 사랑을 그리는 듯하면서 N포 세대의 고달픈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는 작품들(<그 겨울, 나는>(2022), <평평남녀>(2022), <조제>(2020)), 다른 하나는 여전한 옴니버스 작품들( <새해전야>(2021)와 <해피 뉴 이어>(2022)).
생각해보니 <시맨틱 에러: 더 무비>(2022)나 <메이드 인 루프탑>(2021)과 같은 BL영화도 있고, BDSM를 소재로 한 <모럴센스>(2022)나 여성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연애 빠진 로맨스>(2021), 갑자기 떠오른 <윤희에게>(2019)는 괜찮은 작품이었네요.
제가 언급한 영화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영화들이 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특히나 옛이야기를 다루는 멜로에는 '옛 것'만 있을뿐 정작 '이야기'가 없어요. 스크린에 지금의 1020은 모를 'MP3 플레이어'가 툭 나올 뿐입니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 분명 인물들의 사랑은 있지만, '이야기'는 없어요. 서사가 없는 사랑이라니.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없는 멜로가 아닐까요. 소재만을 강조한 나머지 남녀 관계에 있어 기인하는 여러 요인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지 못하는 듯해요. 도대체 언제까지 과거만 붙잡고 시간을 회귀할 것인지... 그래서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새콤달콤>(2021)이 보여준 마지막 반전은 과거에 머무르는 영화들과는 다른 선택이라 썩 나쁘지 않았어요.
변해빈 영화평론가
저는 요즘의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사라졌거나 표지만 남은 문학(적 감성)의 자리를 2010년 이전의 영화(<봄날은 간다>(2001),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엽기적인 그녀>(2001), <클래식>(2003), <건축학개론>(2012))에서 겨우 찾을 따름이에요. 누군가는 최근의 영화, 예컨대 <동감>, <20세기 소녀>, <유열의 음악앨범> 등을 떠올리며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강조하건대, 이 작품들은 성공한 옛 로맨스·멜로 영화의 표지만 겉핥기식으로 가지고 왔을 뿐이죠. 만남, 연애, 이별, 실연, 재회 등의 과정에서 캐릭터와 서사적 개연성, 대화(대사)와 장면 구성, 미장센 요소에 대한 고민이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요.
여타의 감정이 특정 사건에 의해 촉발된다면,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에요. 견고한 두 세계가 부딪히고 파괴되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맞물려져 가는 그 자체가 엄연한 사건.
그런데 요즘의 영화들은 이 복잡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또는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는 식으로 게으름을 피워요(비교하면, 한 인물이 분노하는 데에 '사건'의 구체성이 없다면 그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혹은 2010년도 이전 영화들의 껍데기(라디오와 편지라는 매체, 90년대 음악, 시대적인 배경 설정 등)를 '따라' 하죠. 모순적이지 않은가요? 지금, 이토록 사랑과 연애가 어려운 시대에 이토록 게으르고 형태 없는 사랑이라니.
예컨대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흐르는 90년대의 음악은 (제목이 '음악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서사적 맥락과 달라붙지 못할뿐더러 영화 속에서 헛돌고 있다는 느낌에 그쳐요. 그저 배경음악으로 틈틈이 삽입될 뿐이니까요. 아마 과거의 음악을 통해 관객들을 추억에 물들게 할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접근은 실패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죠.
이는 <건축학개론>이 '기억의 습작'을 활용한 방법과 비교하면 선명해져요. '기억의 습작'은 단순히 가수 김동률의 유명한 노래여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의 스토리에 대한 분석, 두 남녀가 이어폰을 나눠서 듣던 장면과 그 속의 구체적인 대화, 사운드가 퍼져나가는 효과, 옥상이라는 장소, 인물과 과거-현재를 잇는 CD라는 사물, 비로소 완성된 집을 배경으로 이 음악이 흐르던 엔딩과 두 남녀가 다시는 함께 들을 수 없는 노래를 관객인 우리는 들을 때의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오래 기억되죠. 한 곡의 음악을 작품 속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치열하고 구체적이어야 해요.
구체성이 사라진 곳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의 풍경'이기도 해요. 이제 연인들은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두려워해요. 이미 상대에 대해 (데이팅 어플 등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저는 취향의 다름, 어긋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의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대화의 풍경을 소홀히 여기는 이 시대가 씁쓸하게 느껴져요. 한편으론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실 우리는 그런 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간절히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오세준 편집장
해빈 평론가는 최근 인상적으로 본 멜로가 있을까요.
변해빈 영화평론가
<나의 해방일지>를 멜로 장르로만 보긴 어렵지만, 최근 봤던 좋은 연애 혹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조금 빗나간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자면, 이 작품에 대한 숱한 반응 중 개인적으로 장벽이 있던 부분은 인물들의 대화가 ‘비일상적’이라는 지점이었어요. 비일상적인 대화를 일상적으로 연기하고, 연출해서 좋다는 건데... 저는 이들의 대화가 일상적이라 좋았어요. "이 차이가 뭘까? 만약 이것이 실질적으론 비일상적이라면 그럼 대체 대화할 때 무슨 말을 하나?" 궁금했어요.
물론, '추앙'이라는 표현은 낯설어요.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정 반대 세계에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의 연애도 낯설죠. 그러고 보니 <사랑의 이해>의 이어지지 않은 관계에 비하면, <나의 해방일지>는 거의 판타지 격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머리보단 마음으로 와닿는 부분에 기울었단 증거이겠지만, <나의 해방일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든, 연애관에 관한 생각이든, 결국은 이것이 자기 삶의 근본적인 문제의 맨얼굴을 보게 만들고 변화하게 만드는 대화의 풍경이 있어요.
특히나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서로 너무 달라요. 미정과 구씨도 그렇고, 기정은 다른 사람이라면 흉봤을 조건을 가졌어도 또 태훈은 좋고. 정반대, 너무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극 안의 조건은 현실에서라면 어려워야만 하는 것들이 드라마 안에선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 사이를 가능케 만드는 것 역시 대화라서 좋아요. 닮아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는가 하면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는 관계로 그려져서도 그렇죠.
현재 제 기준에서 좋은 멜로는 <나의 해방일지>처럼 과거의 기억을 자극하는 요소보다, 아니 차라리 과거가 지워져 있더라도, 미래의 내 삶을 다르게 대해보게 만들 때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하지 않았을 법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누구에게나 하지 않을 법한 그런 말을 꺼내게 만들 때. 그래서 이 드라마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였죠. 그러고 보면 박해영 작가의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2006)의 마지막 대사도 "갑자기 최미자 내 인생이 너무 사랑스러워졌다"였어요.
말의 뉘앙스와 같이 언어적인 표현 안에 담기지 않은 비언어적인 요소를 잘 그린 영화로는 김종관의 <최악의 하루>(2015)과 <더 테이블>(2016)이 떠올라요. 김종관은 좋은 대사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걸 주고받을 때의 미묘한 표정과 제스처, 말과 말 사이의 텀을 가지고 인물들 관계를 형성해요. 솔직해야 이뤄지는 관계도 있고 솔직해서 엇나가는 경우도 있죠. 특히 <더 테이블>은 관객은 완전히 몰입될 수 없는 상태, 옆 테이블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시점을 활용해요. 조금은 두 쪽을 공평하게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어느 연인, 이들의 인연을 그려내요.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관계. 그 안에서 어렵게 풀어가는 대화. 오히려 이런 영화에 마음이 기울죠.
그리고 과거 영화에서 얘기할 수 있다면, 저는 곽재용 영화의 유치함이 좋아요. 요즘 멜로 영화의 유치함은 내용이 어설프고 오글거리는 차원으로 잘못 이해되고 그려지는데, 좋은 유치함은 외부의 존재인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없어서 오는 유의 무엇이랄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우리가 보기에 유치하게 느껴지는 연인의 장난은 지금까지도 패러디되고 두고두고 회자가 되죠. 사랑은 두 사람에게는 너무 큰 일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까진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이해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또 곽재용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외부의 이야기를 끌고 와요. 이 역시 때로 유치하게 느껴지는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들려주는 동화(로미오와 줄리엣 서사의 뻔하디뻔한), <엽기적인 그녀>는 탈영병의 실연 이야기가 두 남녀 사이의 사랑을 강화하는 데 쓰여요. <클래식>에선 아예 딸이 알게 된 엄마의 연애 이야기로 확장되죠. 다소 유치한 듯 보이는 외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는 개성 짙은 캐릭터 혹은 당대에 흔치 않은 인간상(주로 여성상)을 관객이 덜 낯설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기본 뼈대를 익숙하게, 그 안을 채우는 자잘한 대사와 행위에선 개성을 살리는 선택이었죠. 그리고 이건 곽재용의 특정한 영화 한 편, 특정한 두 남녀 사이에서만 그려지는 것이지 똑같은 형태를 그대로 반복해서가 아니에요. 그의 유치함은 무척 정교해요.
오세준 편집장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지만, 멜로는 가장 오래된 장르이면서 늘 위기였죠. 멜로가 메인이 아닌 서브로 플롯에서의 위치가 바뀐 건 꽤 오래 전 일이기도 해요. 뻔한 말이지만, 멜로가 더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집 오세준 편집장, yey12345@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