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죽어있는 이미지들의 밤
[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죽어있는 이미지들의 밤
  • 김경수
  • 승인 2023.03.23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살토끼』, <아톰> 그리고 <데스노트>

겨우 책 하나, 영화 하나를 보고서는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꾸었다는 고백은 그리 믿음직하진 않다. 영화나 책 따위를 보고는 인생이 망했다는 말도 황당하지만, 구원받았다는 고백도 마찬가지다. 본 것이 성경이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든, 고다르의 영화든 말이다.

인간의 자아는 예술 따위로 인해서 달라지기에는 복잡다단하다. 예술에 대한 신앙고백은 성경을 제멋대로 읽고 진리를 깨우쳤다는 사이비 종교 신도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차라리 예술이 삶의 궤도를 1도쯤 왼쪽으로 어긋나게끔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열 살쯤 우연히 읽은 영국 만화가 앤리 라일리의 『자살토끼』가 내게는 신앙고백의 대상이다. 지금의 나는 이 책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본 순간 종교적인 열광을 느낀 적도 없다. 단지 그것이 안기는 위로가 지금의 내가 '짤방'(짤림 방지용 사진)을 보고 사랑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 기획출판 거름

『자살토끼』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해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때 난 담임선생님이 방학 숙제로 내준 필독서의 독후감을 써야만 했다. 필독서 중 한 권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동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리려 한 시간 가까이 동화책 한 무더기가 있는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이미 누군가가 빌린 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나중에는 제목을 하나하나 보기도 지쳐서 연두색 책이란 책은 다 끄집어냈다. 이때 발견한 책이 앤디 라일리의 『돌아온 자살토끼』다. 사실은 아직 그 아이러니가 웃기기만 하다. 나무로 아가페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동화책과 신성모독에 가까운 만화를 헷갈리다니.

책을 펼친 순간부터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필독서는 제쳐두고 저녁때까지 단 두 권뿐인 『자살토끼』 시리즈를 여러 번이나 보았다. 제목만 보고 짐작할 수 있듯 이 시리즈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토끼를 그린 성인용 블랙코미디다. 피가 막 흘러나오는 등등 잔혹한 연출은 없이, 보통 자살 직전의 순간까지만 그려낸다. 책 속 토끼는 머리를 치즈를 가는 강판으로 간다든지, 에일리언을 정면에서 도발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무조건 자살한다. 온갖 패러디 요소가 가득한 책이었기에 그때는 이해하기 힘든 에피소드도 있기는 했다.

책은 왜 토끼가 자살해야만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되려 인생의 의미 따윈 그 어디에도 없고, 자살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 기획출판 거름

『자살토끼』는 내가 인생 처음 사랑한 짤방이었다. 디지털 이미지에 이르러서 더욱 활성화된 인터넷 밈의 형식을 예언한 책이기도 하다. 자살토끼라는 합성 소스로 자살을 무한히 변주하는 놀이가 밈이 아니면 무엇일까. 『몬티 파이튼』과 같은 옛날 영국 개그의 정수가 담긴 이 만화가 그때도 현대적이라 느껴진 이유다.

『자살토끼』를 그날 처음 접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교실 맨 뒤편 창가, 쓰레받기와 빗자루, 대걸레가 세로로 걸려 있는 청소함 앞에 있는 자리에서 유행을 관찰하는 편이었다. 그곳은 왕따이거나 내향적이거나 성적이 어느 정도는 나오는 아이에게만 허락된 자리이다. 거기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말라는 보호구역이기도 했다.

짝꿍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거기서 거리를 두었다. 나는 이 셋 모두에 속했기에 초등학생 시절 대부분을 거기서 보냈다. 아직은 덜 마른 걸레짝에서 흘러나오는 찌든 냄새와 쓰레받기에 묻은 흙먼지가 코를 막히게 했다. 그런데도 햇볕을 쐬며 나른히 잠든다든지, 바깥을 볼 수 있다든지, 창문을 살짝 열고는 탁 트인 공기를 마신다든지 하는 일은 꽉 막힌 교실 한가운데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곳은 또래와 멀찍한 거리를 유지하게끔 했다. 거기서 유행의 흥망성쇠를 보고 자랐다. 그 당시 『자살토끼』는 또래 초등학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반마다 한 명씩은 그 책을 교실에 몰래 챙겨가서는 애들끼리 돌려보았다. 담임에게 책을 압수당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용돈을 모아서 그 책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유행은 겨우 한두 달 만에 끝났다. 『자살토끼』는 (선생의 언어로는) 교육상 해로운 자료이기에 암묵적인 금서로 지정되었다. 볼 만한 애들은 이미 다 본 데다가 금서를 보고 있다는 쾌감이 사라진 순간에 유행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 극장판 원피스 스탬피드(2019)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즈음 투니버스에서는 <원피스>와 <이누야샤>, <달빛천사>와 <슈가슈가룬>, 챔프에서는 <유희왕> 등의 애니메이션이 방영하기 시작했다. 게임으로는 한게임과 《메이플스토리》와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고무고무로 시작하는 루피의 기술을 따라 했고, 연필을 양손에다가 들고는 바람의 상처와 이도류 사자의 노래를 외쳤다. 문구점에서 500원에 팔던 유희왕 카드 덱을 모은다든지 했다. 잘 노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맨 뒷줄에 있는 책상을 앞으로 쭉 밀어두고는 저들끼리 놀거나 무언가를 함께 보았다.

그때 유행했던 모든 이미지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소년점프지에 연재된 여러 소년만화를 재밌게는 보았어도 푹 빠져 살만큼은 아니었다.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넘어진다든지 또래랑 주먹다짐하는 순간 곧장 몸이 바스러졌기에 불멸의 신체를 지닌 그들을 질투한 것일지도 모른다. 뚱뚱하고 검고, 못생긴 데다가, 정신이 불안정하고 몸이 약하기까지 한 나는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싸워야 하는 순간을 항상 두려워했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개로 여기고 피하도록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미는 것만이 내가 상대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스스로 짐승이라 생각한 내게 소년만화는 그저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 애니메이션 <아톰>

나중에야 알았지만, 일본 소년만화 계보의 꼭대기에는 테츠카 오사무의 <아톰>이 있었다. 아톰은 로봇으로 제작된 아이지만 성장하기를 간구한다. 그의 육체는 상처를 입거나 절단될 수도, 성장할 수 없다. 또 여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하나 더 끼어 있다. 인물이 성장하는 순간에 독자가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독자에게는 아톰의 성장하지 않는 육체가 그의 정체성을 인식하게끔 하는 기호인 셈이다.

<아톰>의 육체는 훼손될 수가 없는 기호가 된다. 기호로 전환된 소년의 신체가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일본의 서브컬처 비평가 우노 츠네히로는 아톰의 명제라고도 부른다. 루피라든지 그 위의 손오공 등의 소년은 절대 죽지 않는다. 만화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한 소년이나 주인공이 죽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루피는 심지어 고무이기까지 해서 이는 지금의 마동석까지 이어지는 계보다.

소년만화의 또 다른 계보에는 <호빵맨>이 있는데, 캐릭터가 과자라는 설정으로 만화 속의 소년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상처받고 부서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아톰의 명제를 영리하게 돌파한 경우로, 이 만화를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이미지는 인간이 불멸을 바라며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 있다. 원피스는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안 끝나고 있고, 루피는 사황이 되었는데도 겨우 2년밖에 안 자랐다. <명탐정 코난>의 코난은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있다. 다행히<포켓몬스터>의 지우는 포켓몬 마스터로 성장했다.

예술과 불멸에 대한 전설은 낭만주의의 단골 레퍼런스이기도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우리 세대는 죽거나 훼손되지 않는 이미지를 보고서는 성장을 꿈꾸었다. 학벌주의의 지옥 한가운데에서 학원 순례길을 오가야 하는 세대에게 아니메가 유행한 것은 슬픈 일이다. 성장이 오로지 성적에서만 가능했던 시대이기에 우리는 한치도 자라지 못했다. 꿈과 희망은 물론, 사랑과 성장까지 아니메에다가 위탁한 세대이기도 했다.

 『자살토끼』는 성장을 목표로 하는 소년만화와는 분명 달랐다. 책에는 어떤 꿈도 희망도 안기지 않고 불멸의 육체도 없다. 오히려 이미지가 자살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토끼는 얼마든 죽고 파괴당할 수 있는 이미지다. 꿈과 희망, 사랑과 성장은 거기에 없다. 그것이 내게 해방감을 준 듯했다.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살토끼』에게 외주를 주어서 삶을 버티고는 했다.

 

ⓒ 애니메이션 <데스노트>

『자살토끼』가 유행했던 시기는 유달리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한 시기다. 5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담이 생긴 <팥죽송>, 빨간 마스크, <스폰지밥>에서 파생된 징징이의 자살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팥죽송>은 플래시 뮤비 형식으로 유행했다. 뮤비에서 오소리가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반복되는 춤을 추는 것 외엔 별 기괴한 것이 없다. 오후 7시부터 등장한다던 빨간 마스크 괴담은 오후 7시 이후를 공포로 뒤덮곤 했다. 징징이의 자살은 실체가 불분명한데도 징징이가 피눈물 흘리는 사진 하나만으로 숱한 공포를 자아냈다.

죽음에의 충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왜 유년기의 이미지에 그토록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빨간 마스크 괴담이 유행한 이유에는 아마 오후 7시 이후에 학원에 끌려가기 싫었던 아이의 무의식적 저항이 있을 수 있다. <팥죽송>, 징징이의 자살과 같은 괴담이 유행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가장 죽음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차마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으면서도 성장하지 못한 세대의 공포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상대방을 전교 1등이라는 이미지로, 찐따나 아싸라는 이미지로 대상화하고 그 이미지로 나와 상대를 무한히 계급화하는 데에 익숙해 있기에,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온갖 이미지를 희생양 삼아서 나, 혹은 타인의 죽음을 모면하는 악몽을 꾸는 셈이다.

몇 년 뒤에 유행한 <데스노트>는 그 죽음충동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데스노트>는 상대방이름을 적는 것이 곧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데스노트>에서는 라이토의 아버지가 잘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사회에서는 우등생으로 살아가기에 심판자로의 자격을 얻는다. 데스노트로 처음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상상한 것은 순전히 장난으로 이루어진 것일 터다. 라이토는 첫 살인에서 눈앞에서 상대방을 살해하지 않는다. TV로 본 상대방을 죽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는 상대방의 이미지를 살인하는 것이 곧 상대방을 살해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지금의 캔슬 컬처의 가장 파괴적인 형상을 <데스노트>가 예언한 셈이다. (어쩌면<데스노트>의 전도된 양상으로 웹툰인 <참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거슬리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혹은 그러할 힘이 없으므로 이미지를 살인하는 것을 상대방에의 살인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데스노트>과 <배틀로얄>등의 유행은 당시 개인화되기 시작한 일본 청년의 생존주의를 드러냈기에 생긴 것이다.

 

ⓒ 애니메이션 <데스노트>

<데스노트>는 라이토라는 사회에서 공인된 능력을 지닌 한 개인의 도덕이 계속 승리하는, 뒤틀린 능력주의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키배가 그러하듯 도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검토 없이 그럴듯한 도덕이 우승한다. <데스노트>는 상대의 이미지와 도덕을 살해함으로 내 도덕이 떳떳하다고 증명하되, 그 도덕이 옳은지 그른지 증명할 수가 없는 세대의 표상이다.

우리는 죽어있는 이미지들의 밤에 산다. 우리는 서로 삭제할 수 있는 이미지인, 희생 제물로 삼는 종교적 세계에 살고 있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지구야 미안해", "고양이만 남고 인간은 모두 죽기를 바란다"는 말은 (환경오염을 핑계로) 인간이 서로를 죽이기를 바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살 토끼』는 가장 무해한 이미지일지 모른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