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웅' 보기 싫은 진실과 직면하기
'어떤 영웅' 보기 싫은 진실과 직면하기
  • 박정수
  • 승인 2023.03.21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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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닌 카메라에 주목하라"

"진실은 평균 온도, 평균의 시선, 평균의 언어를 지향해야 하는 모양이다."―잉게보르크 바하만

아내에게 지참금을 지불하지 못해 5년 7개월간 교도소에 복역한 이란의 쇼크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귀휴하던 어느 날 쇼크리는 한 여성이 떨어트린 막대한 돈을 우연히 줍는다. 만약 쇼크리가 이를 숨겼다면 빚을 탕감하여 출소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양심에 따라 주인을 찾아 돌려준다. 이후 쇼크리의 영웅담이 널리 퍼지면서 교도소와 은행 등의 후원을 받아 빚을 청산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일단 쇼크리가 주장하는 그날의 행적이 석연치 않다. 그래서 그를 의심하는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그는 떳떳하지 못한 태도로 거부한다. 더욱이 돈을 잃어버린 여성으로 지목된 자흐라 야쿠비는 돈을 분실한 적도, 돌려받은 것도 없다고 폭로한다. 과연 쇼크리가 돈을 돌려준 미담은 진실이었을까. 그와 언론, 교도소가 꾸며낸 허구였을까.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이란에서 발행한 이 기상천외하고 미스테리한 사건을 영상화한다. 

1972년 콤이니 쉐이 태생의 '아쉬가르 파라디'는 동시대 이란을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다. 국내에도 다수의 작품이 소개되어 팬층이 꽤나 두터운 그는 영화를 통해 종교 및 제도, 구조에 의해 거짓이 범람하고, 삶이 소외당하는 현장을 고발한다. 이를 심리 스릴러로 버무리는 그는 '진실한 개인'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딜레마, 균열에 주목하고, 그 사이에서 진실을 끄집어낸다.

아쉬가르 파라디가 모국인 이란에서 영화를 작업할 때는 자신의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이슬람교, 가부장제의 해악에 주목하였고, 최근 국제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보편적인 인류 다수가 처할 수 있는 딜레마를 고찰했다. 그리고 <어떤 영웅>으로 다시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왔다.

 

ⓒ 영화사 진진

오르내림의 차이

<어떤 영웅>의 도입부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전혀 상반된 두 시퀀스가 등장한다.

앞서 이야기한 쇼크리 사건의 쇼크리에 해당하는 <어떤 영웅> 속 '라힘'은 이틀간 귀휴를 받아 매형이 일하는 유적지로 향한다. 그가 구불구불한 계단을 올라 높디높은 유적지 위로 올라가는 이 과정이, 계단을 오르는 첫 번째 시퀀스다. 파라디는 그 과정을 원테이크에 담아낸다. 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어떤 잘림도 없다. 매형과 만난 이후 라힘은 연인 '파르크하데'와 만난다. 파르크하데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데, 이 과정이 계단을 내려오는 두 번째 시퀀스다. 그런데 라힘이 계단을 오르던 시퀀스와 달리, 파르크하데가 계단을 한 층씩 내려올 때마다 '컷'(잘림)이 발생한다. 

또한, 라힘이 계단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담은 원테이크에서 카메라는 적극적으로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파르크하데가 계단을 내려오는 시퀀스에서는 기둥에 가려 멀어진 그녀를 자르고, 항상 가까이 보이는 그녀를 포착한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두 시퀀스는 왜 차이가 있을까. 특히, 특히 효율적으로 따진다면 불필요하고, 단지 탐미적일 뿐인 잘림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다시 도입부로 돌아와, 유적지의 누구도 라힘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힘은 타인이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유리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연인인 파르크하데는 그의 귀휴를 미리 알고 약속했다. 즉, 두 연인에게 서로는 '보고 싶은 이미지'다. 그래서 파르크하데가 라힘을 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시퀀스는 컷을 이용해서 그녀가 기둥에 가려 안 보이는 순간을 잘라내고, 오직 라힘이 보고 싶은 그녀의 얼굴만 이어낸다. 반면에 라힘이 파르크하데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시퀀스는 잘림이 없다. 전혀 다른 숏이 이어지며 몽타주될 가능성이 전무하다.

   

이때, 파르크하데가 계단을 내려오는 시퀀스는 컷으로 진실을 자르고, '보고 싶은 이미지'만을 그럴듯하게 이어 붙일 조작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영화의 컷은 보고 싶은 이미지만을 위한 강조이자 조작 가능성을 명시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라힘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약 3번가량의 컷을 거친 파르크하데의 시퀀스가 보여주듯, 파르크하데가 라힘을 위해서 진실을 잘라내고 '거짓을 만드는 장면'을 3회가량 이어 붙인다. 우선, 파르크하데는 맨 처음 돈 가방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임을 숨긴다. 이어 그녀가 가방을 돌려받은 여인으로 위장한 것뿐만 아니라 라힘과의 관계를 은폐하고, 또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을 감춘다. 즉, 파르크하데는 (라힘 또는 사회의) '보고 싶은 이미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진실을 거짓으로 대체한다.

 

ⓒ 영화사 진진

라힘을 위해 돈을 모으는 재단의 모금회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이 시퀀스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장르 영화를 연상케 하리만큼 컷이 잦아 지루할 틈이 없이 이미 본 숏을 재빨리 잘라내고, 새로운 숏을 다급하게 이어 붙인다. 동공에 매번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자극적인 이미지를 다들 보고 싶어 하리라. 여기서 보고 싶은 이미지는 '라힘에게 이어질 기부금', '기부자들의 선량함을 드높이는 손'이다.

영화는 오직 보고 싶은 이미지만을 위해서 보고 싶지 않거나 불필요한 이미지를 잘라낸다. 그러나 파르크하데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보다 더 많은 컷이 발생하기에, 진실은 더 많이 잘려나가고 그만큼의 거짓은 더 침투한다. 영화가 이 기부 시퀀스에 이르기까지 라힘의 거짓말이나 결혼 생활 등은 모두 잘려 나가고 좋은 것들만 연결된 것처처럼.

'아쉬가르 파라디'는 도입부의 컷이 도드라지는 시퀀스를 통해 '보고 싶은 이미지'와 이를 위해 희생되는 진실을 가시화한다.

 

'보고 싶은 이미지'(들)

영화 속 '보고 싶은 이미지'는 안정적이다. 영화에선 핸드 헬드가 주를 이루는데, 숏마다 핸드 헬드의 흔들림에 차이가 있다. 가령 라힘과 파르크하데가 금은방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금값을 접할 때, 또 라힘과 택시기사가 가방을 돌려받은 여성을 수소문할 때, 자선단체에서 바람에게 빚 탕감을 요구하는데 그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뛰쳐나갈 때 흔들림은 많아지는데, 즉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현실에서 핸드 헬드는 극심하다.

반면에 영화 후반부 타헤리가 시아바시에게 대사를 주고 이를 외우게 하며, 소년의 말더듬증을 평소보다 더 심하게 부각할 때, 즉 현실이 보고 싶은 이미지에 의해 잠식당할 때, 핸드 헬드는 약화된다. 영화 속 시아바시는 그 정도로 불쌍하거나 유약한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교도소나 재단에서 기대한 이미지라는 듯, 오히려 핸드 헬드가 약해져서 아주 안정적으로 보기 좋은 상태가 된다.

여기서 보고 싶은 이미지들이 왜 안정적인지는 영화 속 이미지에 따른 힘의 무게를 살펴봐야 한다. 이는 롱테이크로 담긴 라힘이 전단지를 붙이는 장면에 주목할 법하다.

보고 싶은 것은 가까워져야 한다. 라힘과 파르크하데, 서로가 기대하는 연인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프레임에 꽉 들어차는 것처럼. 그래서 라힘이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서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라면, 파라디는 그렇게 멀리서 그가 잘 보이지 않게 선행을 포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파르크하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 양심을 따라 행동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부풀리고 떠벌린 것은 인터뷰에서 라힘 대신 '본인들의 얼굴'을 내세우던 교도소와 언론이다.

 

ⓒ 영화사 진진

교도소는 선한 영웅을 내세워 본인들의 교정 능력을 증명하고 실적을 쌓게 되리라. 언론이 라힘 사건을 부풀리는 것은 밝고 희망찬 것을 보고 싶은 대중들의 기대를 응집하며 권력이나 이익을 얻기 위함이랴. 라힘 또한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증명서와 평판으로 이득을 얻는다. 재단의 증명서를 금은방에 들이밀자 경찰의 수색영장 없이도 CCTV를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나 곳곳에서 라힘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각 기관들은 꼬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라힘의 선행을 부각해야 본인들의 이익으로 이어졌다면, 영화 후반부에는 라힘이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야지만 기관들이 손실을 면하기 때문이다.  모두 거짓말이 가져다주는 크나큰 이익을 위해 진실을 희생하여 보고 싶은 이미지를 허위로 만들어낸다. 더욱이 제도와 체계를 이루며 국가의 구조를 형성하는 교도소, 언론, 재단 등의 권력 기관이 나서서 이를 부추긴다. 사회는 진실을 원치 않는다. 

 

영화에는 주목할 만한 장면이 하나 더 있다. 가방을 분실했던 여성은 집안 남성들이 금화를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현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방을 분실했다. 만약 라힘에게 협조하여 금화가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고, 끝끝내 집안 남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남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금화를 위해서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 남성들은 금화를 통해 우월한 남성성을 바랄 것이며, 그런 그녀를 사회는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녀로 위장한 파르크하데에게 의회의 담당자가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몰아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 진실 중에서도 여성의 진실이 박탈당하고 보호받지 못하며, 이를 희생하여 이란에서 숭상하는 우월한 남성이 거짓으로 만들어지는데, 파르크하데와 라힘, 그녀의 오빠와의 관계가 이를 보여준다. 파르크하데의 오빠는 아이가 딸린 이혼남인 라힘과 결혼하려는 여동생을 반대한다. 그래서 오빠의 기대에 부합하는 남성으로 라힘을 꾸미고, 이를 위해서 파르크하데가 가방을 주운 공을 스스로 낮추어 연인에게 전가하고, 거짓말도 자처한다. 가부장적인 이란 사회에서 여성의 진실은 허위의 남성성을 위해 희생되고, 구조는 이에 일조한다.

 

ⓒ 영화사 진진

교도소로 돌아가기 전에 라힘은 '삭발'했다. 보기 좋은 머리칼이 포장하지 않는 맨살의 진실, 곧 빚을 갚지 못한 자신의 맨살을 감당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복귀 직전의 라힘과 가족은 도로의 자동차 소음이 교차되는 정신 산만한 롱테이크에, 즉 그들만 보고 싶을 감상자의 기대에서 벗어난 채로 매개된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 그래서 보기 싫은 진실을 봐야만 한다.

거짓이 팽배한 세상에서 진실은 선뜻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반적인 삶은 설령 그것이 거짓일지언정 평온하고 온화한 반면, 진실은 일상의 평정을 무너뜨리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영화를 통해 진실을 비추며 허위의 시대를 반성한다. 진실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사라져버린, 가방을 돌려받은 여인의 시간을 롱테이크로 생생히 보존하며 말이다. 다만, 영화에서 파라디 본인이 말하는 바처럼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선 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많은 '의심'을 거쳐야하랴.

[글 박정수 영화전문기자, green1022@ccoart.com]

 

ⓒ 영화사 진진

어떤 영웅
A Hero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Asghar Farhadi

 

출연
아미르 자디디
Amir Jadidi
모흐센 타나반데흐Mohsen Tanabandeh
사하르 골두스트Sahar Goldust
페레슈테 사드레 오라파이Fereshteh Sadre Orafaiy
에산 구다르지Ehsan Goudarzi
사리나 파르허디Sarina Farhadi

 

배급|수입 영화사 진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3.15

박정수
박정수
예술은 현실과 차별화된 고유하고도 독립적인 차원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타 예술 매체와 구분되는 고유한 시각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만의, 오직 영화만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현실에서 비롯되고, 인간에게 이바지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예술, 인간-영화를 이어내는 교두보와 같은 글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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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song 2023-04-03 20:02:07
오프닝의 계단'들의 이분법적 관계에 대한 응시에서 영화미학적인 통찰을 발견합니다.
기존의 글들과 달리 감독의 전작 계보를 모두 소환하지 않는 쓰기가 외려 간략하여 좋았습니다.
초반부의 고고학, 아들의 언어 장애, 보여지지 않는 허위의 존재감 등이 다른 글에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