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O] "손가락 하나면 충분해요!"
[편집자O] "손가락 하나면 충분해요!"
  • 오세준
  • 승인 2023.03.18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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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소개팅 앱'을 깔았을 뿐인데

"야, 너 깔았냐? 뭐 역시나 안 깔았겠지. 그래, 언제는 뭐 네가 내 말을 듣기나 했냐. 됐다. 수고해라." M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한가득했다.

M은 며칠 전부터 내게 모 소개팅 앱(App)을 계속 권했다. 가족보다도 날 잘 아는 그는 일과 집을 반복하는 내게 나름 신경을 써서 말했겠지만(실제로 그는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졸업증‧재직증명서‧명함 등 요구사항이 많은 이 어플의 가입 과정이 무척이나 번거로웠다. 거기다 내 매력, 관심사, 이상형, 데이트 스타일 등을 고르고, 100~200자 정도 자기소개까지 써야 한다니. 글은 둘째치더라도, 사진은 셀카가 어색한 내게 무척이나 곤욕스럽다. 요즘이 아무리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는 시대라 하지만, 셀카를 찍는 일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그리고 '외로움'은 이러한 일을 기꺼이 하게 만든다.(물론, 여전히 난 솔로다.)

그러나 정작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앱이 매일 추천하는 이성들의 사진보다 그들이 쓴 '글'이었다.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직업인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이상형, 취미, MBTI 등 그들의 글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꾸밈없이 솔직하게 써놓았다. 이상하게도 난 그들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그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만남을 기대하기보다는, 이 어플을 통해서 좋은 인연을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들의 설렘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의 그 짧은 글에 좋은 문장은 없었다.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단 몇 줄의 문장에 어째서 더 마음이 쓰였는지. 어쩌면 그들에게서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개팅 앱을 통한 만남은 꽤 선입견이 있었는데,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에 올라온 여러 소캐팅 앱들이 기본 5만 회 이상 다운로드를 한 수치를 보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듯하다. 여기에는 가격, 편리함, 이벤트, 안정성 등 앱이 과거보다 개선되고 좋아진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남과 연애(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진심'이지 않을까. 모든 글의 첫 문장에는 하나같이 '인연을 찾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다.' '일 특성상 잦은 야근으로 만남의 기회가 부족하다.'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가 없다.'라는 앱에 가입한 동기가 적혀 있는데, 그들은 결국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만남의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앱을 사용하는 대부분은 '누군가를 어떻게 만나는지'보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마음에 맞는)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주변인들로부터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보다 손가락 몇 번으로 상대의 사진과 성격‧취향 심지어 MBTI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낭만이라 불러도 무방한―수고로움을 기꺼이 포기하고, 심지어 다른 의미가 채워지기까지 하는 요즘.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만남을 이어가고자 하는 건, 운명적인 누군가를 계속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정치, 종교, 취미, 성격, 가족, 직업, 재산 등 개인적 가치관과 취향이 점점 나노화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5년 전 일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 알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 솔직히 난 그 두 주인공들처럼 아직도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고 믿어! 오늘도 여기 오면서 어떤 여자와 역까지 가는 버스, 기차 옆자리까지 함께 했어! 심지어 천안‧아산역에서 같이 내렸다니깐! 아니 이 정도면 진짜 우연이 아니고 운명 아니야?"

"그래서 그 여자 번호 물어봤어?"

"물어봤으면 지금 여기에 있겠어!? 집들이고 나발이고 그녀랑 영화처럼 천안을 돌아다니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겠지."

모두 크게 웃었다. 단순한 우연을 운명으로 가장해 그 여자를 묘사한 내가 웃겼던 것인지 아니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번호조차 못 물어본 내가 한심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민망함보다도 집들이치고 이 정도 사람들을 웃겼다고 생각한 내게 뿌듯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그 여자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분명 '운명'인데. 에단 호크처럼 수염을 길러봐야 했을까? 아니면 <비포 선라이즈>의 여운에서 그만 벗어나야 했을까? 그냥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없었던 나를 원망하기로 했다. 결국, 난 그해 운명을 운운하며 청승맞게 보냈다.

이제 난 기차에서 운명을 찾지 않는다. 더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랑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에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팅 앱에서 나를 기꺼이 좋아해 줄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대한다. 《하트 시그널》, 《환승연애》와 같은 리얼리티 예능을 보며 달콤한 연애를 꿈꾼다. 어느덧 환상은 환상 그 자체로 남았다. 이 안에서 보여주는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오히려 온갖 결점으로 가득 찬 나와 같은 자들의 미숙한 사랑에 마음이 떨린다.

<이터널 선샤인>(2005), <500일의 썸머>(2010), <어바웃 타임>(2013), <캐롤>(2016), , <라라랜드>(2016) 등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영화들.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영화들 속 주인공의 고통과 고뇌를 보며 도리어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지. 그건 어쩌면 현실보다 덜 씁쓸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들은 더는 주인공들과 같은 사랑을 꿈꾸게 하지 못한다. 이젠 영화는 현실에서 꿈꾸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채워줄 수 없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2023)에서 주인공 '수영'(문가영)과 '상수'(유연석)는 계속해서 만남이 어긋난 채로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원작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진심을 끝내 확인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끝나버렸다. 그러니 두 사람이 이야기 끝에서 망각의 언덕이라 불리는 길을 걸으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만약에'라는 후회를 망각하는 일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 아니라, 무엇도 시작하지 못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드라마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은 건 수영과 상수의 사랑이 아니다. 머뭇거린 채 서로 망설이기만 한 두 사람의 '엇갈림'이다. 반복되는 엇갈림 속에서 느꼈을 피로감이 불편함보단 익숙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영에 입장에서, 또 누군가는 상수에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에 공감했을 것이다.

수영과 상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상상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당장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누르는 일이 그들이 반복하는 후회보다 덜 씁쓸하고 달콤할 수 있다. 

[글 오세준 편집장,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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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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