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어렴풋해서 귀해지는 사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어렴풋해서 귀해지는 사실
  • 변해빈
  • 승인 2023.03.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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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은 응답, 새겨지는 말,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하 '그녀를 보기만 해도')의 5부 끝자락, 앞을 볼 수 없는 '캐롤'(카메론 디아즈)이 턱을 괴고 앉아 있다. 당신은 그녀의 손목 위 아날로그 시계에 눈길을 보내본 적 있나.(혹은 그럴 수 있을까)

캐롤은 시간을 알아내는 일보다 민감함이 요구되는, 깨어진 약속 뒤에 몰려오는 덧없음의 여파를 홀로 떠안아 온 자다. 그녀의 아날로그 시계는 볼 수 없어 커지는 공허 대신 영원히 알아낼 수 없는 사실 곁을 기웃거리는, 혹은 결핍된 무언가의 자리를 채워내는 원치 않은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소속감을 얻는, 한쪽 귀퉁이가 콱 막힌 그녀의 일생을 암시하는 표식이다. 누군가는 이 시계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영화에서 담담한 듯하면서 실은 은근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작은 요소들은 인식하면 할수록 감흥을 더하는 구석이 있다.

물론, 여기서 아날로그 시계보다 큰 울림을 안기는 요소는 화면 속 '캐롤의 얼굴'이다. 어스름한 집의 조명,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 아래로 떨군 시선, 얼굴 위로 절묘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합작. 그렇다, 그녀는 직전에 짧게 울었다. 늘 특정한 자세 위에 고정되어 있던 캐롤의 얼굴은, 지금 맞은편에서 그녀를 보고 있을 상대이자 자매 캐시(에이미 브랜너먼)를 의식한 의도된 숨김의 제스처를 취한다. 왜냐하면, 캐롤은 이미 깨져버린 약속을 쉽사리 단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단념이 습관처럼 굳어진 처지를 실감하는 중일 수도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과정과 정처 없는 마음을 처리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매번 낯선 슬픔을 데려온다.' 현재로서는 아마 이런 생각이 그녀의 표정, 몸짓,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일 것이다.

 

ⓒ MGM

캐롤은 자신의 과거를 모조리 지운 채 자살했다는 한 여자(카르멘)의 비통한 일생을 경유해 하소연한다. 독백처럼 길게 이어지는 캐롤의 대사는 "어쩌면 운명의 상대를 만나 아이를 가졌을 거야"로 시작돼서 "당연하지.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데"하고 종결된다.

그녀의 말을 통해 카르멘(엘피디아 칼리로)의 알려지지 않은 삶의 궤적은 '어쩌면'하는 추측으로 열려서 '당연한' 선언으로 닫힌다. 애초에 그녀(캐롤)에게 또 다른 그녀(카르멘)의 사인을 고심해야 할 일말의 연고조차 없을뿐더러 빈약한 사실로 추측을 확실시할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프닝에 배치된 카르멘의 혼탁한 눈동자, 눈도 제대로 못 감고 죽어간 비애는 영화의 끝,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캐롤에 의해 풀린다. 그녀가 속내를 감추려 진짜 표정 위에 덧씌운 '숨김의 제스처'와 정황에 그치는 지어낸 몇 마디 '이야기'에 부응함으로써 말이다. 무엇보다 캐롤의 추측은 마치 오래된 전언이 각 세계 안을 누비듯, 영화 속 인물들(그녀들)의 이야기 사이 빈틈을 엮어냄으로써 <그녀를 보기만 해도>의 다섯 에피소드를 농축해 정돈한 문장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자욱한 추측이 도리어 연속성·연관성을 형성하는 거대한 울림으로 기능하는 이같은 '가르시아의 방식'은 이를테면 캐시가 캐롤의 눈물을 이미 본 시점이라는 무심하게 넘기기 쉬운 순서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을 그친 뒤 돌린 고개. 가르시아는 (대사를 빌리자면)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을 부조한 뒤 진작 소용없어진 제스처를 생략하지 않고 기어이 표시한다. 그의 인물들이 처한 막다른 상황이란 우선 다섯 에피소드의 끝을 매듭짓지 않고, 중단하는 질서에서부터 비롯되는데(이는 아홉 에피소드를 이어 붙인 <나인 라이브즈>(2006)에서 더욱 강조된다), 인물들이 독자적 이름을 지닌 개별자일 뿐 아니라 그들로 다시금 귀결되는 구조를 위한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속사정을 고뇌하고, 무방비 상태로 뭉개질 수도 있던 한 일생의 윤곽을 붙잡아 세우는 그들의 자기 투영식 드러내기-감추기의 양가적 태도로 하여금 누군가의 삶은 연결되고 연속된다.

 

ⓒ MGM

이러한 태도는 <그녀를 보기만 해도>의 에피소드 사이를 잇는 각 인물의 침투에 그치지 않고,  각 에피소드의 세계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기도 하다.

두 번째 에피소드, 은행원 레베카(홀리 헌터)는 노숙인 낸시(페네로프 엘렌)의 엉터리 추측에 시달린다. 어느 정도로 엉터리이냐 하면 "창녀"라는 막말을 듣고도 실언이겠거니, 넘기는 게 차라리 상황을 유연하게 모면하는 방식인 정도다. 그러나 레베카는 함정인 걸 알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려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마주하자 낸시의 추측이 엉터리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쩌면 그녀는 안락한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사실이 무너졌을 때 당연하게도 무척 깊이 상처받을 수 있다.' (레베카 스스로마저 제외되고) 낸시의 다그침만이 그 중요한 사실을 자각시켜 온 것이다.

가르시아의 '막다른 골목'은 늦을지언정 잊지 않고 전한 응답처럼 어김없이 눈앞에 나타난다. 북받치는 감정을 고르며 당면한 문제에 다르게 접근하게 만들고(에피소드 1), 냉정하게 줄어드는 시간이 되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도록 하며(에피소드 4), 때로 그것은 너무 이르게 체념해버린 비운으로 밝혀져 '그녀 자신'을 상실하게 하거나(에피소드 2), 뜻밖에도 최대한의 정성을 쏟아야 할 최소한의 대상으로서 '그녀 자신'과 대면하게도 한다(에피소드 3).

 

<그녀를 보기만 해도>는 어떠한 가능성을 거머쥘 수 없는 무력감과 불투명하게 무너진 형편이 엄습해오더라도, 그 순간을 헤아리는 눈빛 하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이르거나 늦어버린 눈물, 상대의 심리를 관통하는 응시와 속절없이 투명한 얼굴의 합, 상대와의 거리감을 조정하는 신비롭거나 가혹한 눈맞춤으로 나타나며, 낌새만으로 가능한 사유의 폭과 보이는 현상을 넘어 박제되는 기억의 주범으로서.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죽어가는 릴리(발레리아 골리노)와 그녀의 연인 크리스틴(칼리스타 플록하트)에게 남은 건 어쩌면 그들의 과거뿐일지 모른다. 그녀들은 틈만 나면 서로가 기억하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영화는 별다른 예고 없이 이미지를 틉입시켜 인물의 말을 보완한다. 머지않은 미래이면서 끝을 암시하는 애달픈 분위기 안에서 공전하는 기억을 구성하는 조각들은 비정하게도 세밀하고 선명하다. 심지어 어느 때인지 모를 상대방의 자세와 행동, 냄새와 복장, 교묘하게 변화되는 목소리의 억양하며, "오, 아니야. 아니야"하고 더듬거리던 무규칙적인 순간에 대한 정동으로 들끓는다.

그러나 이들이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그다음')이 있는데, 결국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뒤돌아 눕는 이(크리스틴)와 초라하게 웅크린 연인의 뒷모습을 영영 잊을 수 없는 이(릴리)의 '엇갈린 시선'이다. 카메라로 촬영된 눈빛은 당시에 아무리 선명하게 살아 움직인다 한들, 그 깊이와 파동의 실제를 채 알아내기란 다른 이의 일생을 체험하기에 비견되지만, 가르시아는 이 불확실성을 감행하는 자다.

영화 속 인물들의 눈빛은 카메라(이자 관객과 상대)와 정교하게 맞춰져서가 아니라 정교하게 빗나가 있음으로써 확실해지는 무엇이다. 적어도 영화 속 인물들의 눈빛은 저마다의 하소연에 동조하기를 호소하고 해명하기보다, 다음의 중요한 사실 하나만을 되뇌고 퍼트리려는 것 같다. "(천지간의 어떠한 운명도) 당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여기에 '삶이 미궁으로 빠질 때 어느 한 방향으로는 반드시 길이 뚫려있을 것'이란 가정 또한 그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 MGM

이렇듯 영화 속 인물들은 불가피하게 알아차리고야 말던 쪽이 미처 다 알 수 없는 위치로, 무엇 하나 마음껏 숨길 수 없던 쪽이 티 내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표할 수 있게 되기까지 대극을 넘어서는 두려움과 용기를 거치며 스크린 위로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한들 이미 드러난 슬픔이 뒤늦게 고개를 돌린다고 하여 가려질 수 없고, 들켜버린 눈물이 마음 구석진 곳에 눌어붙은 상념 전부를 말한다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가르시아 영화 속 죽음, 미몽, 불운은 살아가는 동안 알 수 없어 비워둔 근원적인 빈틈을 처리할 방법을 알게 하고, 여생을 지배하는 고통으로 지속되기 전에 삶, 현실, 길운 속을 뚫고 걸어보게 만든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는 '앎'과 '알 수 없음'의 절반씩의 무게를 균등하게 짊어지는 정성, 곧 둘 사이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묘한 선을 알고, 알기 위해 애쓰고, 이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일의 고달픔을 욕심내지 않고 전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그녀'들이 하는 말은 그저 그런 넋두리처럼 잊을 수가 없고 마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긴다. 

크리스틴은 어릴 적 즉사한 카나리아가 으깨어지던 그 느낌마저 생생하지만 정작 쌍을 잃은 남은 카나리아의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기원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쯤의 슬픔을 감수하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다른 차원, 낌새, 시선으로 생동하는 크리스틴 '그녀 자신'의 다음 삶이 가로막힌 길을 뚫어주는 이야기로 말해져야 한다는 것을. 상대가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길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마음 써보는 일, 일렁이는 자기 안의 울림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일생을 살기. 끊임없이 파동을 일으키는 감정의 근원을 의식하면서 휘청이고 염려하고 다시 의지를 바로 세우기. 이러한 영화의 움직임이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또 당신의 일생을 누군가와 너그러이 나눌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어렴풋하지만 그래서 귀해지는 사실을 생생하게 믿고 싶다, 믿는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Things You Can Tell Just By Looking At Her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Rodrigo Garcia

 

출연
글렌 클로즈
Glenn Close
카메론 디아즈Cameron Diaz
칼리스타 플록하트Calista Flockhart
케시 베이커Kathy Baker
에이미 브렌너먼Amy Brenneman
발레리아 골리노Valeria Golino
홀리 헌터Holly Hunter
맷 크레이븐Matt Craven

 

제작연도 2000
상영시간 109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00.05.27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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