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on Prime] '북쪽 하늘 아래' 서부극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기
[Amazon Prime] '북쪽 하늘 아래' 서부극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기
  • 이현동
  • 승인 2023.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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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배반하려 하는가"

'알레한드라 마르케즈 아벨라'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북쪽 하늘 아래>(2022)는 그녀가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멕시코 감독의 영화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대담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현존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나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미셸 프랑코 그리고 아벨라가 영향을 받았다 말하는 루크레시아 마르텔 등이 그 사례들이다.

젠더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낸 지난 작품과 달리, <북쪽 하늘 아래>에서 아벨라가 펼쳐낸 서부극은 장르적인 한계를 넘어 과거와 현대의 모호한 시선 한가운데 있다. 그녀가 선택한 공간, 가족주의, 가부장제도, 노예제도 등의 여러 코드는 극 안에서 전부 소거되는 방식으로써, 결국 장르마저 해체된다.

 

무엇을 배반하려 하는가

<북쪽 하늘 아래>는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멀지 않은 장소 타미울리파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미국 텍사스와 경계하고 있는 이 양가적인 장소는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것일까. 이 장소가 명시적으로 언급되거나 강조되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명증하게 프레임을 통해 발견되는 건조하고 척박한 풍광을 우리는 유심히 보게 된다.

여기서 '사막의 풍광'은 서부극을 떠올리는 오브제다. 이 장소에서 소몰이꾼들은 영국 정착민들에게 목장을 운영하는 기술을 가르쳤고, 카우보이의 탄생을 응시했다. 서부극과 목장이 혼재된 이 장소는 침범당할 위기와 복수극이 행해지는 순환적 구조 안에서 서사가 이루어져 왔음을 상기시킨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서부극의 대표적 서사로 분류할 수 있는 영웅과 복수 서사는 사막 한가운데서 오로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남성들을 위한 스포츠와 같았다. 하지만 점차 그 주위를 맴돌고 있던 여성들이 점차 객체에서 주체로 변환하여 관여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니콜라스 케이의 영화 <쟈니 기타>(1954)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남성과 남성이 아닌 여성과 여성의 대립 관계를 다루므로 서부극의 성별 구조를 뒤바꿔 놓은 문제작이 되기도 했다.

서부극을 젠더의 양식으로 담은 최근 영화를 떠올려보면, 켈리 라이카트의 <믹의 지름길>(2010)이나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2021)가 이런 풍광에 대한 또 다른 각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여성 감독들이 기민한 감각을 대동하여 대중들에게 되새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 인종과 성별, 그리고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고자 하는 의의가 클 것이다. 이는 액션이 없는 서부극, 남성의 마초적인 성향, 몽타주의 리듬감 등의 관습을 다시금 재해석하려는 것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현대 수정주의 웨스턴이라 부를 수 있는 <북쪽 하늘 아래>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모호하게 배열된 몽타주의 부호가 여기저기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관객들에게 감각을 개방하라는 요청과도 같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북쪽 하늘 아래>가 독특한 점은 마르텔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남성을 주연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사냥꾼인 레이날도(헤라르도 트레졸루나)는 힘도 없고 온전히 사냥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 비루한 남성으로 그려진다. 하녀인 로사(팔로마 페트라)가 대신 사냥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의 전체 스케치가 들어가 있다. 레이와 죽은 사슴과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로사의 모습은 남성의 형상에 대한 보고다. 곧이어 바닥에 뿌려진 피를 따라 아래로 끊임없이 틸 다운되는 초반 시퀀스가 최고의 사냥꾼이라 칭송받는 레이의 모습을 교차함으로 반향적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북쪽 하늘 아래'라는 제목처럼 아래를 향한 앵글은 남성의 허영을 들추어내는 형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북쪽 하늘 아래>는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목장에 모인 대가족의 이야기와 목장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 침입자들을 지켜내려는 가부장 레이에 대한 희생의 이야기로 압축된다. 레이는 가족의 단결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목장과 국경 지대에서 탈피하려는 자녀들과 세대 격차 속에서 갈등한다. 심지어 아내인 목장을 세운 레이와 아버지의 ‘퓨마’를 쏜 무용담에도 거침없이 그를 조롱한다. 이는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환상을 폭로하는 기제로 대응된다. 또한 염소가 죽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울며 달려오는 레이의 손자에게 "남자답게 행동해, 울지마 그게 약육강식이야"라며 아버지는 말한다. 이는 남성 중심의 서부극을 규정짓는 대사로 그가 목장을 떠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또 다른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는 상황에서 하인들은 월급 체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이 목장의 불편한 기류가 점차 확장된다.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는 장소인 이 땅은 서부극이 들어설 여유조차 없다. 돼지를 키우고 도축해서 먹어야 하며, 채식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무한하고 무제한적인 폭력의 일상은 결국 선과 악의 구분조차도 차단하는 것이다. 레이 홀로 침입자들과 사투를 벌이게 되는 과정에서 로사의 등장은 여성 영웅에 대한 전복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애석하게도 죽음을 마주한다. 마지막 레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벽에 박제해 놓은 사슴이 있고, 이어지는 방으로 떨어진 수류탄과 각각 동물의 몽타주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그렇다면 몽타주의 흐름을 차단하는 이 존재들은 결과적으로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가. 대표적으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인 <인간 곤충기>(1963), <신들의 깊은 욕망>(1968), <나라야마 부시코>(1983) 등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동물이 카메라가 집권하고 있었던 인간 중심적 시선을 탈각하거나 동시에 대입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었다는 점을 유념해보자. 자연에 속한 인간이 지속적으로 욕망을 대상화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자연은 행위의 근거를 계속해서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다.

서부극이란 공간의 요소를 갖고 있는 <북쪽 하늘 아래>는 독개구리, 뱀, 사슴, 소 등을 등장시키며, 이것들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역사의 맥락을 관찰해 온 시선임을 상기시킨다. 곧 시선의 역사는 자연의 구조 앞에서 인류의 반복적인 역사로 구술되고 있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자마>(2017) 또한 주인공인 자마(다니엘 히메네스 카초 분)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탈출구를 모색하려다 결국 원시인의 습격을 받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형국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이처럼 자연은 서사를 섣불리 규정짓기 어렵도록 만드는 모호한 도구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해석의 가능성을 추출하는 주요한 매개가 된다.

<북쪽 하늘 아래>는 모든 인류가 그 자연 아래 있음을 고찰하는 한편, 서부극을 소환해 그 이전에 대중들에게 선별되었던 남성 위주의 형태를 환원하는 갱신의 요소를 더한다.

 

'카메라' 아래 서부극

특히, 아벨라 감독의 '카메라 사용'이나 '사운드의 운용'은 루크레시아 마르텔을 연상하게 한다. 카메라 워크는 무던한 속력과 방향으로 인물의 행방을 뒤쫓는데 그것은 대부분 롱테이크로 진행된다. 앙드레 바쟁이 이야기했듯이 '롱테이크의 사용은 현실재현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리얼리즘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척도가 되는데, 감독은 이를 잘 활용한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북쪽 하늘 아래>가 내포한 '서부극'이라는 장르적 요소를 배반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종종 시각을 혼동시키는 '반사 이미지'는 영화가 내재하고 있는 남성우월주의, 서부극 장르, 경제적 위기 등에 대한 현상학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의 문제는 몽타주와 미장센, 프레임과 공간이 어떤 관계를 서로 맺고 있는가일 것이다.

<북쪽 하늘 아래>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그러한 관계를 붕괴하는 숏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동물의 시점숏'이다. 이 숏에서 발각되는 건 '시선의 문제'다. 가령 자연으로 치환할 수 있는 한 생명체가 주체인 인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반대로 인간이 객체인 자연으로부터 바라봄을 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이 기이한 양식으로부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허술하게 끝나버린다.

어떤 심원한 주제 의식이나 장르적 쾌감도 없는 <북쪽 하늘 아래>는 인륜성을 소거하고 자연의 맥락 속에 있는 인간관을 제시한다.

또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운드도 불안의 형태를 계속해서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작곡가인 토마스 바레이로와 일렉트로닉 이펙트를 주입함으로 자연의 소리와 인공적인 사운드를 조합하여 마치 우주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는 우주 아래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동원되는 것이다.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하지만 <북쪽 하늘 아래>는 단순히 어떤 불온한 징후를 포착하려는 시도에만 안착하지 않는다. 장르적으로 이 영화는 대중을 의도적으로 배신한다. 세심하고도 밀도 있는 작품으로 구축될 수 있는 조건이 장르의 일관적인 특징을 고수하는 것이라 믿어왔고, 믿고 믿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은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요소다.

비슷한 주제이기도 한 클레버 멘돈사 필로의 <바쿠라우>(2019)가 외부인의 침범에 대처하는 마을 주민들의 협력은 장르영화로 꽤 성공적인 모습을 획득하고 있지만, 아벨라에게 있어서는 이 영화는 부정해야 할 영화다. 그녀에게 있어 가족이란 가장 끈끈한 집단 또한 해체되고, 양식화된 서부극의 서사는 치환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죽음은 그러기에 작품이 담으려는 서부극의 또 다른 종말이자 재생성과 같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없는 서부는 누구든 그 양식을 개척할 수 있는 토대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북쪽 하늘 아래>는 카메라 아래 있는 모든 세계에서 점차 균일한 세계는 없어지고 있음을 목도하게 한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북쪽 하늘 아래
노던 스카이스 오버 엠티 스페이스

Northern Skies Over Empty Space
감독
알레한드라 마르케즈 아벨라
Alejandra Marquez Abella

 

출연
제라르도 트레홀루나Gerardo Trejoluna
팔로마 페트라Paloma Petra
돌로레스 헤레디아Dolores Heredia
후안 다니엘 가르시아 트리비뇨Juan Daniel Garcia Trevino
라울 브리오네스Raul Briones

 

제공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4분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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