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거미' 성(性)스러운 인간
'성스러운 거미' 성(性)스러운 인간
  • 이현동
  • 승인 2023.02.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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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과 정면, 살인마의 그 얼굴"

촬영 감독인 나딤 칼슨은 <경계선>(2018)에 이어 2.39:1 와이드스크린 화면비를 <성스러운 거미>(2022)에서도 도입하였다. 이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와이드스크린은 눈앞에 보이는 사실감과 대비되는 와이드 포맷의 스타일링의 조화와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가령 <경계선>에선 채도에 대한 부분에 비중을 높여 인물들의 밀착과 분리에 따라 선명도를 조절했다면, <성스러운 거미>에선 명암이 그 원료로 부각된다. 여기서 '명암'은 영화의 구동 원리와 주제 의식을 총체하기 이전에 여성성을 남성의 도구로 지적하는데 거침이 없다.

<성스러운 거미>의 오프닝 장면은 이를 설명하는데 충분하고 충만한 설계 도면으로 제시된다. 처음 등장하는 여자는 담배를 태우고 가슴을 드러낸 상태로 차츰 옷매무새를 단장한다. 이때 시꺼먼 명암도와 집의 미장센은 난잡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데도 아이에게 건네는 "일어나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한마디는 친족 성에 대한 의무를 대언하며, 곧장 행위를 이어 나간다. 여기서 그녀가 피우는 궐련 담배(얇은 종이로 말아놓은 담배)는 여성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위상에 관한 인식을 진술한다.

길거리로 나온 이 여성을 잡는 '영화의 앵글'을 유심히 보면, 인물의 정면을 잡지 않고 후면을 먼저 잡는다. 각각의 시퀀스가 넘어갈 때 이 앵글은 일관적으로 추적을 감행하는 듯 보인다. 자신의 위치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서서히 먹잇감을 포획하기 위해 뒤를 쫓는 거미처럼 '영화의 앵글'은 이후, 종교 혹은 명예라는 의무를 진 '한 남성'에게 그 정면쇼트를 부여한다.

 

ⓒ 판씨네마

다시, 이 여성은 화장실에서 화장을 마무리하고, 구두를 갈아 신고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남성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대기한다. 흘끔흘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눈길은 <성스러운 거미>가 초상하는 그림자로 거리에 지속된다. 그리고 곧이어 영화의 몽타주는 신음으로 덧칠된 성매매 모습, 합리적인 가격에 마약을 공유하는 노년 여성과 자위행위를 도와줬지만 사정을 안 했다며 적은 돈을 주는 남성을 조합한다. 여기서 여성은 남성에게 욕망의 객체로 존립하지만, 물질과 물리적인 룰에선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욱 파격적인 서사를 모색한다. 한 남성이 다가올 때 "돈부터 보여달라"는 이 여성의 사인과 "이웃들이 보면 곤란하니 빨리 오라"고 말하는 남성은 이분화된 사유방식의 이질적인 양상을 예고한다.

이 여성은 남성의 위험성을 감지하지만, 강력한 손길을 회피하지 못하고 목을 졸라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그녀의 몸을 검은 천으로 묶어 식별이 불능한 상태로 어디론가 유기하는 남자를 점차 부감 쇼트로 잡는다. <성스러운 거미>의 오프닝이 마지막으로 당도하고 있는 여성의 죽음은 다름 아닌 이 도시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남성성을 매개로 한 인식의 지층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 인식의 그물망은 얼마나 쉽게 여성을 살해하고, 유기할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매번 유기한 장소를 기자에게 보고하며 흔적을 남긴다는 불문율에 대한 이야기, 살인마의 이웃 사람이 여자를 데리고 집에 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 목요일 밤마다 동일한 장소에서 나타나 여자를 데리고 간다는 이 모든 증언은 사회가 범죄행위를 암묵적으로 은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판씨네마

'여성 차별하는 사회의 견고한 프로세스'는 <성스러운 거미>를 규정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알리 압바시 감독은 이 코드에 깊게 개입하는 남성성을 배제하고 강한 여성상인 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를 배치함으로 그 형식을 타파하려 한다.

그러나 '거미'라는 별명을 가진 연쇄 살인마를 취재하기 위해 마슈하드에 도착한 라히미가 최초로 마주하는 건 '차별'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예약했음에도 오늘은 만석이라는 호텔 지배인의 심드렁한 태도에 그녀는 기자증을 보여주며 대응한다. 기자증을 보여주자 잘 처리되었다는 답변과 머리를 잘 가려달라는 요구는 이란이 가진 차별을 처음부터 공언한다. 경찰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가 진전되지만, 이 와중에도 라히미는 여성이란 이유로 위협을 받기도 한다. 정보를 제공했던 경찰서장 로스타미(시나 파르바네흐)는 저녁을 함께 보내자고 라히미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거절하는 동시에 돌변하여 남자와 맞담배를 하는 쓰레기라며 소리친다.

   

이 차별의 행간 속에서도 영화는 계속된 거미의 살인 행적을 추적한다.

라히미가 성매매를 하는 임산부 여성과의 잠시 잠깐의 조우와 이어지는 죽음은 분명 근접해 있는 거미줄에 대한 불안을 가중한다. 차별과 살인이 연동되며 여성의 뒷모습과 살해되는 그 순간 여성이 마주하는 살인마의 얼굴을 향하는 로우 앵글(Low angle)은 영화가 표식으로 삼아놓은 이란을 규정하는 클로즈업인 것이다. 그것은 사이드의 거미줄에 걸린 라히미도 마찬가지다. 불안함과 공포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견고하게 묶인 실타래는 표적을 사냥하기까지 멈추지 않는다.

 

ⓒ 판씨네마

<성스러운 거미> 에서 연쇄되는 살인과 대비를 이루는 건 '가족과의 관계'다.

건축 기사인 살인마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는 가족과 있을 때는 가정에 성실하고 친절한 아버지로 변모한다. 또한 아내와 장모, 장인어른에게 꿈쩍도 못 하는 사이드는 그들이 없는 집에선 살인을 사회 정화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며 종교에 귀의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맹신하는 사회 정화는 단순히 신과의 연대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영화에선 어떤 신과의 신비로운 합일이나 신의 목소리 같은 것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사이드가 라히미의 기지로 체포될 때 그는 강제로 끌고 가려는 경찰에게 "이웃들이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를 정화하기 위한 행동의 의무와 당위를 다시금 자신의 명예로 회전한다.

이를 상기시켜주는 건 오프닝에서 그가 자기 집으로 데려왔던 그녀에게 했던 말과 동일하다. 집이란 공간을 들어오는 순간이나 나가는 순간 들려지는 이 말은 그의 주체를 담보하는 형식이 명예였음을 수미상관한다. 그는 재판의 심의 과정에서 범행 순간에 심신 미약이라고 변호하라는 변호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이드는 심신이 미친 것이 아닌 사명에 미쳤다고 호소한다. "나를 믿는 '지지자'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남는 건 신의 뜻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기 전 그가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근거는, 신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이 축적해놓은 사회적 연대였다.

사형을 받기 전 기도하고 있던 사이드를 찾아와 판사와의 인맥을 자랑하며 죽지 않을 것이라는 웃으며 말하는 지인의 발언은 올 곳이 시행되지 못한다. 일말의 희망조차 소멸한 사형대 앞에서 그는 당황하며 자신을 이송해줄 차를 찾지만, 끝내 그가 살해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죽게 된다. 그의 죽음은 그를 지지해왔던 지지자들의 목소리와 더 이상 공명하지 않는다.

 

ⓒ 판씨네마

그러나 사회가 공통으로 합의한 법의 체계 안에서 사형이라는 표백과정을 거치는 동안 카메라는 날카롭게도 그 범위를 친족으로 이행한다. 사이드의 아들 알리(마스바 탈레브)가 촬영해놓은 영상에서는 아버지의 살인을 재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선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던 과정까지 포착하는 알리의 행위와 설명은, 이런 위험한 연대가 사회적 연대로 전이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계승되고 있음을 피력한다. 여기서 라히미가 캠코더로 다시금 이 사건이 유발될 가능성인 알리의 영상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불안과 위협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장면으로 독해되기도 한다.

'성스러운'(Holy)이란 낱말에 함의하고 있는 부조화는 다시금 현재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이란 출신 감독인 알리 압바시의 주체와도 맞물린다. 본국에서 상영 불가 판정을 받은 <성스러운 거미>가 이란의 국가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한 방침이었다면 알리 압바시는 그 승부를 회피하지 않는다. 2000년에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성(聖)스러움'을 '성(性)스러움'으로 변용하여 그 종교의 형질을 비신화한 논란의 작품임은 분명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판씨네마

성스러운 거미
Holy Spider
감독
알리 아바시
Ali Abbasi

 

출연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
Zar Amir Ebrahimi
메흐디 바제스타니Mehdi Bajestani
아라쉬 아쉬티아니Arash Ashtiani
포로우잔 잠시드네자드Forouzan Jamshidnejad
마스바 탈레브Mesbah Taleb
사라 파칠라트Sara Fazilat

 

배급|수입 판씨네마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3.02.0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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