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한국에서는 고객이 욕설을 한다고 통화하기를 중단합니까?
'다음 소희' 한국에서는 고객이 욕설을 한다고 통화하기를 중단합니까?
  • 이지영
  • 승인 2023.02.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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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를 해체하다"

<다음 소희>(2022)는 <도희야>(2014)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차기작으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로 제75회 칸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할리우드 리포트 등 외신으로부터 "칸 영화제의 숨겨진 보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정주리 감독이 <다음 소희>를 만든 발단은, 2017년 2월 18일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1068회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로 알려져 있다. 방송에서는 취업률 제고를 목적으로 '불법 파견업체'가 되어버린 특성화 고등학교,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는 콜센터 하청 업체, 이를 방관하는 지방 교육청과 상부에서 서로 관리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부와 노동부까지, 아이들의 죽음의 원인이 사회 각 층위에 암처럼 퍼져 있음을 고발했다.

방송과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볼 때, 명백히 갈리는 지점들이 있다. 먼저, 방송의 경우, '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라는 제목은, 청소년들의 연쇄 사망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스토리텔링을 예고한다. 먼저 저수지에 몸을 던진 여고생의 죽음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그 죽음의 인과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다.

<다음 소희>는 오히려 이렇게 재구성된 미스터리를 해체하며, 단 한 번의 플래시백도 사용하지 않고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 영화는 중간의 가장 큰 사건인 소희(김시은)의 죽음을 기점으로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소희가 살았던 삶에 대해 줌인(zoom in)하고, 2부는 소희가 살아간 사회를 줌아웃(zoom out)하여 바라본다.

 

중단할 자유

1부는 소희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법의 사각지대에 들어가고, 끝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때로는 소희의 시점 샷으로, 즉 소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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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혼자 사는 사람들>(2021)에서 전면적으로 그러나 덜 고발적인 톤으로 다룬 바 있지만, 콜센터 노동자들이 극한의 감정 노동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통화를 끊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인 장치가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다음 소희>에서 콜 센터로 파견된 어린 학생들은 성인들보다 이러한 환경에 훨씬 더 취약하고, 이직이나 퇴사의 자율성 또한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어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이러한 특성화고의 문제는 그동안 다른 청소년 문제에 비해 비가시적이고 주변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살아간 환경과 출구 없는 절망을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 1부의 주목적처럼 느껴진다.

자신에게 위해가 되는 상황을 스스로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소희는 마음에 들 때까지 춤을 추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영상을 어느 순간 중지한다. 먹방 라이브 방송을 하는 친구 쭈니(정회린)를 비하하는 남자들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거칠게 항의하기도 한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의 통화를 스스로 끊어버리고, 때로는 참지 못하고 같이 욕을 퍼붓기도 한다. 실적을 쌓아도 합법적인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팀장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무급 휴가를 자초한다.

하지만 이전 팀장의 내부고발, 그리고 자살처럼 숱한 개인의 희생을 치르고도,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 유가족조차 진실로부터 소외되고 고인의 명예는 실추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은 여전히, 언제나 있다. 이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소희의 자기결정권은 결국 자신의 하나뿐인 삶을 중단한다는 비극적인 선택으로 귀결된다.

 

보이지 않는 괴물

2부는, 1부에서 소희와 잠시 스쳐 지나간 형사 유진(배두나)이 소희의 죽음을 수사한다. 위에서 거듭 강조했듯 관객은 이미 소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기에 이것은 미스터리를 역추적하는 작업이 아니다. 유진은 3인칭 관찰자의 눈 혹은 관객의 눈이 되어, 소희를 죽음을 내몰리도록 한 사회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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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야>에서 도희(김새론)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영남(배두나)과 같은 존재는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전작에서 영남이 상대해야 했던 불의나 억압적인 구조는 작은 마을에 국한되었기에, 구체적이고 명백했다. 아동 학대, 마을 주민들의 방관, 학교 폭력이라는 투쟁의 대상이 있었고, 도희는 임시방편이라도 영남의 집으로 물리적으로 피신하면 되었다.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건 아주 나쁜 거야."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어른인 영남은 모든 사건의 현장에 있었고 투쟁 대상, 이를테면 도희의 새아버지(송새벽)을 제압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58명의 아이들을 다치거나 죽음으로 내몰게 하는 착취적인 사회는 보호색을 띤 거대한 괴물과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그것은 특별한 것 없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위장한다. 마치 깔끔하게 정돈된 소희의 방이나, 긍정적인 응대 멘트를 붙여 놓은 콜센터 자리에서 부모조차도 죽음의 전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비밀의 숲》, 영화 <도희야>, <브로커>에 이어 이번에도 정의를 표방하는 경찰이나 형사 역할을 계속해서 맡은 배두나의 유진은, 투쟁할 대상과 갈 방향을 잃어서 어느 때보다도 수척하고 무력하다. 한직으로 좌천된 여자 형사의 수사를 가로막고 호통치는,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형사 조직에 대한 묘사는 자기 복제처럼 느껴져서 새롭지 않다. 오히려, "적당히 합시다. 일개 지방 교육청 장학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다음에는 교육부 가실 겁니까? "라는 여자 장학사의 날 선 말을 들을 때 유진의 무력감은 정점에 이른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실제로 교육부 관계자를 찾아가 인터뷰했고, 노동부와 교육부가 서로 핑퐁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을 우리는 이미 목도했다. 유진은 그런 시청자이자 관객인 우리의 무력감과 분노를 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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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산업 전선으로 부르는 호명

그 사이에,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다른 '소희'들이 죽음을 맞고 있다. 폭설 중에도 야근을 하다 공장이 무너져 죽음을 맞이한 故김대환 군과, 일주일에 70시간이 넘는 도장 작업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김민재 군 등 아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연쇄적으로 다치거나 죽는다. 이 연쇄적인 죽음을 이제 사회적 타살이라 명명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대와 장르가 다르지만, <다음 소희>를 보면서 묘하게 넷플릭스작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가 연상되었다. 이 작품 속 독일 청년들이 전장의 최전선에 보병으로 소집되는 것처럼, 한국의 특성화고 학생들은 혹독한 산업 전선에 투입된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입대를 할 때, 죽은 병사의 이름표가 아직 남아 있는 사이즈 다른 군복을 받는 것처럼, <다음 소희>에서는 콜센터에 막 입사한 소희가 다른 사람 명패가 적힌 자리에 앉아서, 헤드폰이라는 '총'을 물려받고 일을 배운다. 그리고 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최전선을 방어한다. '방어팀'에서 한다는 일은,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고객의 가입 해지를 만류하고, 새로운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일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요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소희'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죽은 이의 군복을 받아 입고 최전선을 방어할 다음 보병을 찾는 호명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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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無言)의 유언(遺言)

영화의 처음과 끝은, 모두 소희의 춤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수미상관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암전된 화면에서 주인공 소희가 가쁜 숨을 내쉬는 사운드만으로 시작된다. 뒤이어 한 소녀가, 땀을 흘려가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시퀀스가 나온다. 노래를 크게 틀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숨소리와 발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저수지에 빠진 시신의 차갑고 하얀 발과 대비되는, 생의 의지와 생명력으로 가득 찬 장면이다. 이 시퀀스에서 소희는 자꾸 넘어지면서도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어쩌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충 장치가 없어도 잘 넘어지는 것을 연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이 잘 넘어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는 지를 되묻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저수지에서 되찾은 소희의 핸드폰에 남아있는 춤 영상을 유진이 보고 있다. 이 영상은, 앞서 유진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하나씩 발견했던, 소희가 찍힌 영상들과 다르게 기능한다. 라이브 방송 중에도 불의한 상황에는 감정 표현을 참지 않는 모습, 다른 사람의 춤 연습을 맨 뒤에 앉아 멍하니 보다 나가는 모습 등은, 살아생전에 소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파편화된 영상들이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은 이렇게 외부에 비춰진 면면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며, 사회적 타살을 소위 '의지박약'이나 '감정 조절 실패', '정신적인 문제'라고 폄훼하면서 개인의 원인으로 돌린다. 그저 모든 이해관계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찍힌 위의 흔적들과 달리, 핸드폰에 남아있는 춤 영상은, 소희가 혼자서 찍고 자발적으로 남긴 유일한 영상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아이의 유언장이다. 소희는 그 영상의 마지막에 스스로 동영상을 정지한다. 마치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중단한 것처럼. 이 유언장에는 어떤 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청춘의 들끓는 에너지와 앞날에 대한 기대로 부푼 이 영상은,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
Next Sohee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시은
송요셉
박윤희
박우영

 

제작|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38분
등급 138분
개봉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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