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뭉뚝한 가족이란 선
'라인' 뭉뚝한 가족이란 선
  • 이현동
  • 승인 2023.02.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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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운동성, 선이 선을 잇을 때 형성하는 형상에 관하여"

'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라고 설파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말은, 단순히 '본질주의'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기하학과 연계된 선의 질료가 '점'임을 측정할 때, 이는 세계의 구성 원리가 모나드(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실체)라 규정한 철학자들의 논의를 경유한 것처럼 보인다. 칸딘스키는 '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무한한 운동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역동성을 지닌 매개체라 말한다.

영화에서 '선'이란 매개는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계성에 묻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선이 계급을 구분하는 장치로서 풍자한 영화 <기생충>(2019)의 한 장면을 보면 이는 선명해진다. 야외에서 낮잠을 자는 연교(조여정)와 그녀를 깨우려는 가정부 문광(이정은) 사이의 창과 창이 만나는 지점에는 수직선이 그어져 있다. 또한, 박사장(이선균)이 기택(송강호)의 냄새를 맡고 "냄새가 선을 넘지"라는 대사는 일종의 (계급) 경계에 관한 명시적 장치이다.

 

ⓒ M&M 인터내셔널

인과관계를 디자인하는 방식에 있어서 '선'이란 언어적 발화, 그리고 프레임 안에 기밀하게 잠식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무엇인가를 잘라낼 수 있는 날카로운 칼로 일종의 구분을 시각화하거나 분절하는 도구인 셈이다. 그러나 선의 마찰은 공격성만을 담고 있지 않다. <라인>(2023)에서의 선은 '특정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벌어진 거리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동시에 이를 봉합하기 위한 장치로 배치된다.

<라인>의 감독인 '우르슬라 마이어'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보이는 선과 보이지 않는 선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때때로 우리와 누군가 또는 무언가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중략) 우리는 선이 필요하지만, 선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은 선이란 제목이 가진 이미지의 힘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려 한다.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혈연이 명료하게 끊어질 수 없는 증표라는 점을 인식하기 위해 감독은 몽타주 깊숙이 '두 가지의 선'을 구상한다.

 

직선과 곡선

꽃과 병, 종이 등이 비발디의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벽에 부딪혀 깨진다. 곧이어 엄마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를 공격하는 딸 '마르가레트'(스테파니 블렁슈)와 이를 저지하는 남자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응시하는 늦둥이 동생 마리옹(엘리 스파그놀로)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나는 피아노에 얼굴을 부딪치고 한 쪽 귀가 손상을 입게 된다. 그로 인해 3개월 동안 100m라는 접근 금지 명령을 받게 된 마르가레트는 계속해서 그 집 주위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낸다.

<라인>에서 '직선'의 성질을 지닌 이가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라는 점은, 둘이 가진 고유한 음악성으로 덧입혀진다. 클래식 연주가인 크리스티나와 락 음악가인 마르가레트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더불어 매번 서로 다른 생활방식 때문에 다투어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몇몇 대사는 둘의 성향이 이 영화에서 직선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은 대부분 직선의 연결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이 거주하는 집과 건물, 심지어 피아노를 비롯한 사각형 구조물의 등장은 <라인>에서의 감정을 구성하는 방식이 정서적으로 편향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초반 몽타주의 조합은 영화의 제목과 같이 가족이란 관계, 그리고 선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암시하고 있다.

 

ⓒ M&M 인터내셔널

그러나 접근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할 말이 있다며 찾아가는 마르가레트를 단호하게 저지하는, 가족 중 그에게 유일하게 애정을 갖고 접근하는 인물이 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막내 동생 '마리옹'이다.

사춘기 소녀 마리옹은 영화에서 둘의 관계를 화해시키기 위해 도입된 인물이다. 종교적 믿음과 자신에게 부여된 가족이 이탈한 모순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용기도 갖고 있다. 마리옹은 계속해서 선을 넘으려는 마르게레트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100m 반경에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길이를 재고 점을 찍어 선을 그리곤 '선을 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는 마리옹의 말을 마르게레트는 수용한다.

   

여기서 그려지는 마리옹의 '선'은 반듯한 '직선'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반듯하면서도 꾸불꾸불한 '곡선'으로 그어진 선은 직선적인 성향인 모녀의 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직선으로 묘사되는 모녀의 병렬 관계의 연결되는 지점이 마리옹의 곡선이라는 점은 내러티브 형태를 이미지로 구현하려는 감독의 모범적 시도로 보인다. 아울러 평지가 아닌 주로 언덕에서 마리옹이 부르는 찬송가에 기타로 반주를 입히는 마르게레트와의 합주는, 클래식으로 묘사되는 엄마와 대중음악 장르인 언니가 함께 가동될 수 있다는 일말의 연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M&M 인터내셔널

이러한 마리옹의 역할 외에도 영화에서 모녀는 각기 다른 관계 속에서 점차 다듬어지기도 한다. 

집에서 쫓겨난 마르게레트가 이전에 음악을 함께했던 남자 동료에게 신세를 지고자 문을 두드릴 때 그는 늘 상 다툼이 있었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그녀를 맞이한다. 침대가 아닌 소파에서 겨우 몸을 뉠 수 있는 비좁은 장소다. 그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공유하면서 스킨십을 나누는 둘의 관계에서 그녀는 직선이라기보다 점차 곡선에 가까워진다. 딸 마르게 레트로 때문에 청력 절반을 잃고 만 크리스티나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피아노를 판매한다.

그 빈 곳이 후련하다고 말하는 엄마는 점차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도 벗어난다. 자녀들을 향해 "피아노로 너희를 다 먹여 살렸다"는 하소연은 이제 가벼운 넋두리에 불과하고, 젊은 남자를 만나 다시금 일렁이는 사랑을 하는 그녀의 모든 행위는 곡선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음악성이 지닌 고유한 선율보다 관계의 선율을 부각된다. 이 선율의 배합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주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보이지 않는 선이 점차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메시지의 균형을 배합하는 일을 담당하는 셈이다.

 

ⓒ M&M 인터내셔널

<라인>은 그 희박해 보이는 순수성을 다시 찾는 데, 후반부의 시퀀스를 더욱 극적으로 할애한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가진 종교적 의미는, 신과 인과의 관계가 다시금 재설정됨을 말한다. 마리옹과 둘째 딸 루이즈의 성화에 못 이겨 언덕에서 크리스티나를 기다리는 마르게레트와 조우하게 된다. 여기서 관계의 분열은 청각에 문제가 생긴 크리스티나의 소식을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므로 발생한다. 여기서 분개하는 마르게레트는 결국 선을 넘게 되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다시 그어진다.

언덕에 묻은 피의 흔적, 그리고 언덕 위에 올려지는 마르게레트의 짐들은 아이들의 놀이감이자 조롱의 대상이 된다. 마치 이 이미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간 골고다 언덕과 조롱, 죽음을 상징하는 시퀀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후 마리옹은 그 자리에 남아 금식하며 기도한다. 가족의 만류에도 '신이랑만 말하겠다'는 마리옹은 예수의 죽음을 위해 애타게 기도하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닮았다. (의도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마리아의 이름과 유사한 마리옹이란 이름은 흥미롭게도 그 과정에 접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후 마르게레트는 자신의 정서적 고향인 클럽에 가서 공연한다. 가족과 만나기 전 중간의 이 시퀀스는 사실 그가 곡선의 완성인 '원'의 형상으로 가족에게 돌아갈 것임을 예고한다.

 

ⓒ M&M 인터내셔널

<라인>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둘이 화해했다는 긍정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접근 금지 명령이 끝나고 재판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법적 책임을 빌미로 집으로 돌아온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의 투 숏에는 위화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크리스티나는 마리옹이 그린 선이 소멸된 근처 언덕배기를 응시하며 곧 건물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는 곡선이란 이미지가 제거되는 동시에 다시금 직선의 이미지가 둘의 관계에 틈입하고 있음을 부연 설명한다.

<라인>은 이처럼 끝까지 가족의 관계를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 않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결말 없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연장하려 하는 메시지는 결국 가족주의도 아닌 우리의 삶의 형태가 회귀하는 방식으로서의 곡선이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 목적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활용한 영화의 모든 사례는 가끔은 빈곤한 도구로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이 가진 특징을 적절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앞으로도 우르슬라 마이어의 작품 중에서 함의하는 바가 클 것이라 예상해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M&M 인터내셔널

라인
The Line
감독
위르실라 메이에
Ursula Meier

 

출연
스테파니 블렁슈
Stephanie Blanchoud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Valeria Bruni Tedeschi
엘리 스파그놀로Elli Spagnolo

 

수입|배급 M&M 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01.25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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