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하모니카를 통해 만난 '연기'라는 신세계
[Interview] 하모니카를 통해 만난 '연기'라는 신세계
  • 홍상현
  • 승인 2023.03.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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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미증유> 배우 오구라 아야노 인터뷰
「미증유」에서는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지만, 사실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트레이드 마크는 ‘유쾌한 웃음’이다. 제공: Ayano Ogura
「미증유」에서는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지만, 사실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트레이드 마크는 '유쾌한 웃음'이다. 제공: Ayano Ogura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일단 시작하시고 디테일을 맞춰 가면 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바로 말씀드리죠."

상냥함이 묻어나는 어조의 무대감독이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넨다. 빠르기도 하지. 조금 전에 장비를 설치하는 것 같더니 그 새 셋업까지 끝냈단다. 주상복합건물 상가 2층, 연회장이라지만 무대에 연단 하나 달랑 놓여있는 상황. 배선은 어떻게 해야 하며 스피커는 어디에 둬야 할지, 모든 게 백지상태일 텐데 전혀 막힘이 없다. 무대감독이 말을 건네는 동안에도 내내 멀티비전 영상의 체크가 이뤄지고 있었다. 과연 프로페셔널. 이미 현장에 도착해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공연자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 해 보자고 하네요. 준비해 오신 USB도 전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필자의 목소리에 눈을 뜬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갔다. 손에 들려있는 하모니카 두 개. '하나는 반주용이고 다른 하나는 멜로디용인가?' '부슈만(Christian Friedrich Ludwig Buschmann)이 오르간 조율용으로 철제 리드를 붙인 하모니카의 원형을 만든 게 딱 두 세기하고도 1년 전이었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동안, 강렬한 붉은 색 원피스를 입은 공연자가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서머타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략 2분쯤 지났을까.

"오늘 '일본영화의 밤'은 이걸로 끝났네요."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곧장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음향밸런스를 조절하던 엔지니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해 BIFAN 파티 최고의 축하공연은 단연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하모니카 연주였다. (C)BIFAN
지난해 BIFAN 파티 최고의 축하공연은 단연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하모니카 연주였다. (C)BIFAN

이 공연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측이 따로 초청한 뮤지션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청은 했으되 뮤지션으로 섭외하지 않았다. 원래 영화 관계자들이 게스트 뷰(GV)의 깜짝 이벤트로 준비했던 연주가 필자의 제안에 따라 축하공연으로 바뀐 것이다. 그녀는 BIFAN 메탈 누아르 섹션 초청작 <미증유>(2021)의 히로인, 오구라 아야노 배우였다.

사실 BIFAN이 그녀의 하모니카 연주를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에어터널 등의 획기적인 방역장비를 도입, 직전의 전주국제영화제가 포기했던 오프라인 상영을 해내 주목받았던 제24회 당시 월드 판타스틱 블루 부문에 초청, 넷팩상 특별언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사리: 순간의 영원>(2020)의 관객들은 황량한 구마모토 현 중소도시 상가 풍경에 극적인 아우라를 더해주는 오구라 배우의 하모니카 버스킹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조연인 '쿠미코' 역과 함께 음악을 맡았다. 그렇다. 원래 프로페셔널 음악인이다. (연기자 데뷔는 2015년) 유튜브 채널까지 따로 운영하는 하모니카 신동 출신 연주자. 글자도 배우기 전에 하모니카부터 불었고 공연장을 누비며 성장기를 보냈다. 만 18세 때는 관련분야 최고ㆍ최대의 내셔널 컴페티션인 FIH 하모니카콘테스트에 도전, 블루스 부문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면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그녀가 첫 주연 영화로, 그것도 이전 소속사와의 계약종료 후 보통의 연기자들이라면 공백기를 가질 타이밍에 파격에 파격을 더한 문제작 <미증유>에 출연했던 자체가 이미 '일대사건'이라 할만하다. 영화제 기간 바쁜 스케줄 때문에 미뤄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도쿄에서 오구라 배우를 만났다.

 

첫 주연작인 「미증유」 출연은 코로나 19로 벼랑 끝에 몰려있던 오구라 아야노 배우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C)allen
첫 주연작인 「미증유」 출연은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몰려있던 오구라 아야노 배우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고. (C)allen

홍상현

<미증유>로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를 거쳐 BIFAN에 오셨습니다. 첫 주연 작품인 만큼 감회가 깊으실 것 같은데요.

오구라 아야노

애초에 연기 경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설마 제가 영화제에 가서 레드카펫을 걷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와서 무척 놀랍고 기뻐요. 아울러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홍상현

부천에서도 정말 즐겁게 지내시는 것 같더라고요. (웃음)

오구라 아야노

그럼요. 즐거웠지요! 하루에 영화를 네 편씩이나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최고였어요. 일본에서는 공개되지 못 할 수도 있는 작품도 많으니까요. 프로그램 북을 보면서 그날그날의 관람스케줄을 짜는 일 자체가 엄청나게 기뻤습니다. (웃음)

 

북유럽 최대 장르영화제인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C)PÖFF
북유럽 최대 장르영화제인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C)PÖFF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항상 드리는 질문입니다.

평소에 한국영화를 즐겨보시나요. 좋아하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구라 아야노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입니다.

맨 처음 보았던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밀양>(2007)이었고요. DVD를 선물 받았는데 스페셜 피처로 수록돼있던 메이킹 필름에서 주연배우가 힘들어하니까 감독이 "하루 쉬도록 하자"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저런 환경에서 연기를 할 수도 있구나'싶었습니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오아시스>를 보고 난 후에는 곧장 연인을 만나 포옹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어요. 영화를 좋아하지만 보고 나서 그렇게까지 격정에 휩싸이는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새삼 이창동 감독에게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홍상현

한국 관객들과는 이번이 첫 만남이신데.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구라 아야노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오구라 아야노입니다. 1998년 4월 25일생, O형이고요. 오카야마 현 출신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로 내셔널 컴페티션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고요. 영화와 만나게 된 것도 음악을 통해서였어요. 음악 이외의 매개체를 통해 저를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최근에는 연기 이외에도 연출이나 음향 등의 영역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는 중이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홍상현

마침 화제가 나오기도 했지만 오구라 배우 이야기를 할 때는 역시 음악, 하모니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오구라 아야노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머니 말로는 어느 날 제가 장난감 나팔이 아니라 집에 있던 하모니카를 주워들고 불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점점 소리가 그럴 듯 해 지니까 내친김에 전문가한테 배우게 해보면 어떨까 싶어 인근에 살던 피아노 선생님한테 데려간 거죠.

그러다 실력이 더 좋아지고, 피아노 선생님에게도 더 배울 게 없어지면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동네까지 차를 타고 가 블루스밴드 멤버로 활동하던 전문 연주자로부터 사사하게 된 겁니다.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10대 시절 관련분야 최고ㆍ최대 내셔널 컴페티션인 FIH 하모니카콘테스트 블루스 부분에서 우승한 뒤 연일 공연과 이벤트는 물론, TV, 라디오 방송에도 단골 출연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위치를 굳혀왔다. 제공: Ayano Ogura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10대 시절 관련분야 최고ㆍ최대 내셔널 컴페티션인 FIH 하모니카콘테스트 블루스 부분에서 우승한 뒤 연일 공연과 이벤트는 물론, TV, 라디오 방송에도 단골 출연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위치를 굳혀왔다. 제공: Ayano Ogura

홍상현

그리고는 쭉 하모니카의 신동으로 활약하시다 일본최대의 내셔널 컴페티션 FIH 하모니카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셨죠.

오구라 아야노

그 중간에 과정이 좀 있는데요. (웃음) 시간이 걸릴 테지만 좀 자세하게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홍상현

물론입니다. 오구라 배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오구라 아야노

음악교육기관이나 관련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게 아니다 보니 개인 공연보다 기업이나 지자체 등의 이벤트 등에 섭외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좋아하는 하모니카를 불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죠. 그런데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려고 하는 면이 있다 보니까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서 고민이 시작된 거죠. 둘 다 잘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홍상현

그런데 그 지점에서 좀 파격적인 선택을 하셨어요.

오구라 아야노

그렇습니다. 제가 포기한 건 학교였죠.

태어나는 순간부터 저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말자는 원칙을 갖고 계시던 부모님께서는 제 의사를 흔쾌히 수용해주셨어요. 걱정이야 되셨겠죠. 단, 검정고시로 고졸자격 취득만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뜻에 따랐습니다.

 

홍상현

그럼 영화와는 FIH 하모니카 콘테스트 이전에 만나게 되신 거죠?

오구라 아야노

네. 어느 날 지역의 국립대학인 오카야마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왔어요. 졸업 작품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제 음악을 쓰고 싶다면서, 그때 처음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그게 영화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내셔널 컴페지션에 나간 건 그 이후고요.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미증유」에서 함께했던 다카하시 유스케 배우(오른쪽)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영화를 보는 시네필로 유명하다. (C)BIFAN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미증유」에서 함께했던 다카하시 유스케 배우(오른쪽)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영화를 보는 시네필로 유명하다. (C)BIFAN

홍상현

작곡을 하신 것도 대단한데 내셔널 컴페지션에서 우승까지 하셨네요.

오구라 아야노

공식적으로 '국내 최고'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니까 또 다른 생활이 시작되더라고요. 원래 제 활동 기반은 지역이었는데 범위가 확대돼서 다른 지역에도 가게 되고, 라디오나 TV 프로에도 출연했어요. 그런데 전문분야가 블루스고, 블루스나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에게 소구력이 그렇게까지 강한 건 아니다 보니까 조금씩 다른 장르에도 손을 대게 되었죠.

 

홍상현

이를테면 어떤?

오구라 아야노

대표적으로 엔카카 있습니다. (웃음) 양로원에 가게 되었는데 '혹시 미소라 히바리의 곡을 연주해 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레퍼토리에 집어넣었더니 듣다가 다들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제 연주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실감한 계기였습니다. 이때부터 노래를 부르는 느낌으로 하모니카를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도 연기도 결국에는 퍼포먼스에 해당하니까 연기에 대한 열망도 그 시절부터 커진 거라고 볼 수 있겠죠.

 

2020년 BIFAN 넷팩상 특별언급 작품인 「노사리: 순간의 영원」에서는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C)2020 Kitashirakawaha
2020년 BIFAN 넷팩상 특별언급 작품인 「노사리: 순간의 영원」에서는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C)2020 Kitashirakawaha

홍상현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 주셨습니다. 결국 뮤지션이든 배우든 표현자라는 점에서는 공통되니까요. 다만, 그 안에서도 차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요.

오구라 아야노

일단 연기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니까요.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하모니카를 연주하듯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사고를 전개해 나가다 보면 그게 하나의 자연스런 흐름을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중에 출연한 <미증유>의 라스트신 촬영을 준비하면서 이런 제 생각을 쿠도 마사아키 감독에게 말했더니 '정확하다'면서 그렇게 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감'이 나름 쓸모가 있었던 거죠.

 

홍상현

놀랍네요! 이번 질문은 이야기를 좀 앞으로 되돌리게 될 지도 모르겠는데요. 연기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뭐였나요?

오구라 아야노

'연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예회 공연이 떠오릅니다. 학급에서 연극을 준비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몸이 아파 쉬시게 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연출을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뜻밖에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표현의 즐거움'을 만끽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하모니카 연주를 하러 다니기는 했지만 왜 사람들 앞에서 제 특기를 내보여야 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때 막연하게 '배우가 되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그 이후 딱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오카야마대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보신 <노사리: 순간의 영원>의 감독님이 저를 만나보고 싶어 하셨어요.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제가 연주를 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었거든요.

 

사쿠라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오구라 아야노 배우가 잡은 정서적인 포인트는 ‘현재형의 고독’이었다. (C)allen
사쿠라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오구라 아야노 배우가 잡은 정서적인 포인트는 '현재형의 고독'이었다. (C)allen

홍상현

음악을 통해서 영화, 연기와도 만나게 되신 거군요.

오구라 아야노

저를 만난 순간 바로 대본을 건네주시더라고요. 물론 그 영화에서도 음악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메인은 어디까지나 쿠미코라는 캐릭터였습니다.

 

홍상현

혹시 배우로서 롤 모델이라 할 만한 분이 계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오구라 아야노

딱히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 분은 없는데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2002년 작 <6월의 뱀>을 봤을 때 주연을 맡으신 구로사와 아스카 배우가 '어떻게 이 영화에 출연하시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무척 인상적인 답을 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개인적으로 침체기라는 생각도 들고 아이도 생기는 바람에 고향에서 평범한 일자리를 구해서 지내려던 참에 우연히 소속사 사무실에 들렀다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전해 받게 되셨대요. 그리고 돌아가던 차 안에서 시나리오를 읽는데 내용이 기가 막히더라는 거죠. 그 길로 새 직장에 가서 '죄송하지만 오디션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두게 해 달라'고 사정했답니다. 오디션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고요.

대단한 의지와 결단력 아닌가요? 저도 평소 어떤 일을 하든 절실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구로사와 배우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언제나 필사적으로 주어진 일과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홍상현

'절실함'이라고 하면 이번 작품, <미증유>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오디션에 응시하게 된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오구라 아야노

원래 쿠도 감독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었어요. 그 분이 조감독 시절에 만든 뮤직비디오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2020년 봄에 갑자기 오디션 공고를 올리신 거죠. 보는 순간 '이거, 운명 아닐까?' 싶더라고요.

 

「미증유」로 인연을 맺은 기타가와 유우키 프로듀서(왼쪽)와 쿠도 마사아키 감독(오른쪽).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들이다. (C)PÖFF
「미증유」로 인연을 맺은 기타가와 유우키 프로듀서(왼쪽)와 쿠도 마사아키 감독(오른쪽).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들이다. (C)PÖFF

홍상현

당시 일본은 코로나19로 비상사태선언이 나온 상황이었고, '동조압력(peer pressure)' 등으로 개인의 생활이 크게 제한을 받다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겠네요.

오구라 아야노

네. 정말 힘들었어요. 비상사태선언이 나온 해는 제 음악활동이 또 다른 전기를 맞이했던 시기와도 겹치거든요. 연주회 일정이 전국적으로 봄에서 겨울까지 꽉 차 있었어요. 생일이 4월 25일인데 그 전날에도 라이브 스케줄이 잡혀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그런 모든 일정이 다 중지, 혹은 연기되어버렸던 거예요.

연기 일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면서 너도나도 '밖에 나오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고. 틈틈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니까 당장 인원부터 줄이더라고요. 예컨대 원래 두 사람이 근무를 하는 시스템이었으면 이제부터 한 명씩만 나와서 교대를 하라는 식으로. 그래서 고향인 오카야마로 돌아갈까 했는데 노인 분들이 많아 확진자가 많은 도쿄에서 내려가 지내기에는 너무 눈치가 보였고, 동생까지 집에 머물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상황이라 도저히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죠. 알고 지내던 무용가 한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거예요. 그 일을 접하고 다들 너무 안됐다고 이야기하는데 가슴을 에는 것처럼 슬픈 한편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팬데믹 와중에 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다가오는데, 코로나19는 도대체 언제 잦아들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까. <미증유> 오디션은 그 와중에 만난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홍상현

밖에서 사람들과 영화를 찍는다는 행위 자체만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을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상당한 용기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오구라 아야노

물론 동조압력도 힘들었지만, 당시 제 입장에서 그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마음을 굳게 먹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 시점부터는 연기에 대한 순수한 욕구가 솟아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BIFAN 유튜브 채널 비비빞의 “이상한 인터뷰”에 출연한 오구라 아야노 배우. 특유의 밝은 모습과 유머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C)BIFAN
BIFAN 유튜브 채널 비비빞의 "이상한 인터뷰"에 출연한 오구라 아야노 배우. 특유의 밝은 모습과 유머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C)BIFAN

홍상현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보니 어떻던가요?

오구라 아야노

시나리오라기보다 각 신 별로 상황을 정리해 놓은 구성한 같은 스타일의 원고가 있는데 '전혀 새로운 상황이 주는 자극'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신 건지 쿠도 감독이 제게는 어떤 자료도 보여주지 않으셨어요. 그냥 인터뷰를 했죠. 우선은 큰 틀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나서 사쿠라가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하고 표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물으셨어요.

 

홍상현

모든 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이었네요. 그래서 사쿠라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에 있어서는 어떤 지점에 힘을 기울이신 건가요?

오구라 아야노

일단 저라는 사람을 사쿠라라는 캐릭터와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이 그녀가 처한 상황이었는데요. 극단적인 생활고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그러니까, 원조교제라는 행위 자체는 제게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취재에 공을 들여야 했어요. 그러나 취재에서도 제한되는 부분이 많았던 게, 당시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면 인터뷰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잖아요. 그래서 SNS를 활용했습니다. 잠입취재처럼 제가 직접 사쿠라와 같은 상황에 있는 것처럼 공고를 올린 뒤에 반응이나 노출해 놓은 계정으로 오는 메시지 등을 체크했어요.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술회한다. “오디션을 볼 때 쿠도 감독이 던져주셨던 질문이 생각나요. ‘코로나 19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는데, ‘바이러스 자체도 물론 무섭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들이나 환경이 더 무섭다고 답했었습니다.’” 제공: Ayano Ogura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술회한다. "오디션을 볼 때 쿠도 감독이 던져주셨던 질문이 생각나요. '코로나19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는데, '바이러스 자체도 물론 무섭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들이나 환경이 더 무섭다고 답했었습니다.'" 제공: Ayano Ogura

홍상현

엄청난 열정입니다. 무섭지는 않으셨나요?

오구라 아야노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말 그대로 '목숨까지 걸었던' 상황이다 보니 두려움의 감정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어요. (웃음) 그 과정에서 실제로 원조교제로 생활비를 조달하던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도 있었죠.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 구축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때 인물의 정서적인 포인트를 '현재형의 고독'으로 잡았습니다. 사쿠라는 도쿄에서 혼자 지내고, 대학생이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나,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죠.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이 실제로도 많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형성'이 아닌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홍상현

모든 일을 말로 표현하면 단 몇 마디로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실로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오구라 아야노

아시다시피 <미증유>가 단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촬영기간은 며칠로 나뉘어 있었고 개중에는 제 촬영분이 없는 날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 연기는 마치 길게 찍는 '셀프 카메라' 같은 성격을 띠기 때문에 오프인 날조차 사쿠라의 정서 상태를 유지해야 했죠. 평소의 기분과 감정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굉장히 우울하기도 하거니와 당연히 몸 상태에도 영향을 줘서 고생스러웠는데 그나마 촬영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웃음)

 

차기작인 「파 쇼어」의 제작에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캐스트 및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C)allen
차기작인 「파 쇼어」의 제작에 오구라 아야노 배우는 캐스트 및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C)allen

홍상현

기타가와 유우키 프로듀서한테 스케줄링을 치밀하게 해서 조금 타이트하지만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촬영을 끝내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이 특별했던 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오구라 아야노

셀 수도 없을 정도지만 뭐니 뭐니 해도 촬영 첫날의 기억이 제일 강렬합니다. 제가 서 있던 곳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카메라가 있었고, 루 역을 맡은 다카하시 유스케 배우와도 거의 처음 보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쿠도 감독은 '그냥 자유롭게 움직이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 말이 도리어 얼마나 당황되던지. (웃음) 그래도 이제 생각하면 연기경험이 많지 않은 저를 신뢰해 주신 거잖아요. 굉장히 값진 경험이었고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홍상현

<미증유>라고 하면 단연 사쿠라가 먼 곳을 응시하며 다시 만난 루를 지나쳐 가버리던 라스트신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구라 아야노

솔직히 당시 너무 집중하다 보니까 아예 기억이 없을 정도였어요.

촬영 전날부터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사쿠라가 원조교제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그 자리에 방치되고 나서 과연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있었을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더라고요. 작품 속 사쿠라도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는 환경이 원망스럽지만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한 상태로 아침을 맞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촬영장으로 이동했는데 어느새 제가 '사쿠라 역을 맏은 배우, 오구라 아야노'가 아니라 '사쿠라 그 자신'이 되어 몸을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또 한편으로는 '오늘이 지나면 사쿠라와 헤어져, 다시 오구라 아야노로 돌아가야 한다. 촬영이 끝나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이 밀려들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한참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고립된 상태로 지내다 <미증유>의 캐스트·스태프를 만나면서 위안을 받았지만 결국 다시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촬영이 끝나갈수록 힘들어졌던 거 아닐까 싶어요.

 

홍상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다행이었죠? <미증유>로 맺은 인연을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어서. (웃음)

오구라 아야노

네, 그렇습니다. (웃음)

<미증유> 촬영이 끝나자마자 쿠도 감독의 차기작인 <파 쇼어>(2022)의 마키 역으로 캐스팅되었고, 조연출까지 맡게 되었거든요. 원래 <미증유>보다 먼저 오키나와 올 로케로 기획되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었던 작품인데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작업이 중단되는 동안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카이로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었습니다. 연출부 일은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영화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른 작품으로도 꼭 한국 관객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그때는 마스크를 벗고 한국 관객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말이다. 제공: Ayano Ogura
"다른 작품으로도 꼭 한국 관객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그때는 마스크를 벗고 한국 관객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구라 아야노 배우의 말이다. 제공: Ayano Ogura

"<미증유>는 3년 전에 찍은 영화인데요. BIFAN에 와서 저도 관객 분들과 객석에 앉아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처음 촬영장으로 향할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더라고요. 힘들었지만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감정. 오디션을 볼 때 쿠도 감독이 던지신 질문이 생각나요. '코로나19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는데 '바이러스 자체도 물론 무섭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들이나 환경이 더 무섭다'고 답했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도 코로나19가 우리 모두에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는 데는 변함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로 인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소중함에 대해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경험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미증유>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제게 그토록 소중한 의미를 갖는 작품인 까닭에, 부디 영화제뿐만 아니라 일반에서도 공개되어, 한 분이라도 많은 관객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으로도 꼭 한국 관객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그때는 마스크를 벗고 한국 관객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구라 배우는 최근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는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각종 이벤트와 공연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하모니카 연주자로서 바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남다른 각오로 뛰어들었던 영화계에서의 활동이 이런저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캐스트이자 조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한 <파 쇼어>는 작가성에 주목하는 방향성으로 유명한 도쿄필름엑스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모두에 언급한 BIFAN 일본영화의 밤에서의 하모니카 연주를 눈여겨본 시라이시 코지 감독의 눈에 들어 2022년 잇 프로젝트 선정작인 <오미온나>에도 출연했다.

게다가 각종 영화제 초청을 계기로 다양한 나라의 작품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아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을 꿈꾸며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단다. 조만간 남다른 감성과 열정으로 승부하는 글로벌 스타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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