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또 다른 자기복제 ['정이' #2]
연상호의 또 다른 자기복제 ['정이' #2]
  • 이현동
  • 승인 2023.01.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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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향한 '정이', 그리고 우리의 정(情)이"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돼지의 왕>(2011)을 제외하고는 그의 모든 영화의 제목은 글자 수가 두, 세 글자이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영화로 보면 <부산행>(2016)을 시작으로 <염력>(2018), <반도>(2020), <지옥>(2021), <정이>(2022)까지, 이 같은 직관적인 제목은 그의 성격을 함축적을 보여준다.

또 그의 작품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이곳은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뒤엉켜있는 바로 세상이다."(돼지의 왕), 아내의 죽음 앞에서 천국을 믿는 친구에게 "미친놈아! 천국이 어디 있어."(사이비), "사람의 자율성이 만든 법체계가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세요?" (지옥) 등의 대사들은 일률적으로 '세상에 대한 부정'을 말한다. 세상이 오롯이 공명정대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의 영화에서 무참하게 깨어지고 인간을 향한 의심으로 확대된다. 이는 그가 세상을 반추하는 보편적인 요소로 믿기 때문으로, 그렇기에 자신의 수사에 주저하지 않는다.

디스토피아로 결부되는 연상호의 세계관은 희망적이라기보다 비관적인 표상을 배경에 심어놓는다. 약육강식의 세계였던 8~90년대 학창 시절, 종교 사기를 벌이는 집단과 수몰될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 좀비 바이러스로 전복된 세상, 철거민에 대한 세상의 시선, 지옥이란 죽음의 이미지,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이주 등이 바로 그 사례들이다.

 

영화 <서울역> ⓒ NEW
영화 <부산행> ⓒ NEW

애니메이션 제작 이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향한 연상호의 낙관적인 태도는 '가족주의'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애니메이터와 영화감독 연상호가 배경을 다루는 방법론에선 유사한 것 같지만, 필자는 전혀 다른 인물로 독해되기도 한다. 그가 이전에 추종했던 애니메이션의 디스토피아엔 전형적인 가족주의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이비>를 보면 주인공인 김민철(양익준)은 가정파괴범으로 도박을 일삼고 걸핏하면 가족에게 폭력을 사용한다. 가족마저 디스토피아인 애니메이션에 관계는 부재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산행>부터 '가족'이 대두되면서, 그의 영화는 <반도>의 마지막 대사인 "(가족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제가 살던 세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라는 문장으로 정의된다. <부산행>의 흥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영화가 가진 힘이 소멸된 작품의 시초였다. 이제는 한국의 가족영화가 '신파'라는 의미로 틈입하고, 그것의 성공사례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반도>는 제법 성공했지만, 그런데도 <신과 함께> 시리즈 이후의 한국 신파는 배우의 유명세를 의지하지 않으면 흥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연상호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영화가 설령 혈연(염력, 반도, 정이)이나 비혈연(부산행, 지옥)을 그려낼지언정 배경설정에 해당하는 서사의 발원지를 추적하기보다, 오로지 '인물들의 생존과 관계'에 주력한다.

"왜 그의 앵글은 결말쯤에 익스트림 롱 숏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건물, 자연 등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수행하는가"라는 의문과 무관하게, 그의 가족주의는 그 사이를 교묘하게 지나가는 사회적 논의를 무심하게 살해한다. 특히,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철거민과 용역 깡패의 대립을 다뤘던 <염력> 같은 작품도 그러했지만, 이번에 <정이>에서도 인간을 복제하며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로까지 깊은 성찰은 이뤄지지 않는 건 결국 그의 의도적인 회피 혹은 나태함이 아닌가.

결국에 디스토피아의 긍정적 갱신에서 필요한 도구인 가족, 그리고 선과 악의 명료한 구분이 등장하는 연상호의 담론은 이젠 프레임 밖을 나가지 못하고 쉽게 소모되는 부산물처럼 느껴진다. <부산행> 이후부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2013)가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와 초심자의 행운(!?)처럼 보이는 <부산행>이라는 작품을 비교해보자. 미개척지였던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와 유명 배우들의 협력은 연상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지만, 반대로 그의 성공이 인도한 건 그의 장기였던 디스토피아의 상실은 아니었을까.

 

ⓒ 넷플릭스(NETFLIX)

연상호 영화의 또 다른 자기복제

연상호 본인이 <정이>는 고전 멜로와 SF의 결합을 의도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결국에 또 다른 연상호식 가족주의의 복제로 귀결된다. 가족 멜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 영화는, 아까 말했듯이 '복제'라는 요소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정이의 복제는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강한 구속력을 가진 복제의 매개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의미가 있다.

연상호에게 필자가 품고 있던 의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공통된 이미지는 한 집단에 속한 개인이 가진 개별적인 경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종교적인 연대이든, 생존을 위한 것이든 그 안에서 '가족주의의 결말'은 그를 향한 가장 큰 불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정이>라는 제목을 듣고 아차 싶었던 것은, 왠지 '정이'(김현주)란 이름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정(情)이'로 일률적인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였다.

특히, 영화 제목이자 영화의 소재가 되는 '정이'는 유독 이것의 특성만을 부각하기 위해 강조된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파괴된 기계 조각들 사이를 서서히 패닝하는 앵글의 도착지에서 우리는, 쓰러져있는 정이를 목격한다. 여전사로 종횡무진하고 적들을 쓰러뜨리는 정이는 인류를 구할 매개체가 될 것이라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가장 최하등급인 C타입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다른 용도로 변경이 가능한 정이는 전투용병이면서도, 한편으론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성적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는 상품이다.

 

ⓒ 넷플릭스(NETFLIX)
ⓒ 넷플릭스(NETFLIX)

정이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과 전투에 걸맞은 세팅으로 구매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품으로 등장한다.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정이는 단일한 것이 아닌 마치 한 인물이 반복적으로 윤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와 같이 기억과 육체적 반응이 점차 개선되고 성장하는 이미지를 다룬 이 영화의 성공이 장르영화가 가진 투철한 목적 속에서 관객들을 설득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면, <정이>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떤 장르적 이점을 지니고 있는가.

먼저, 우리는 실패로 기록된 육체의 정이들을 마주하면서 그가 소유한 정신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목할 수 있다. 정이가 전쟁에 나가야 했던 이유가 딸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한 것임은, 이 영화가 주지시키는 물질성하고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 이와 결별하고 싶은 서현의 정서와 감응하는 몇몇 장면이 있다. 모노레일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빈민촌을 연상시키는 모습, 기계들의 반복적인 노동, 서현이가 어렸을 때 치료받은 암이 전이되어 의사에게 A, B, C타입의 권유받는 비용의 문제, 연합군과 아드리안 자치국 사이에서 협상 성공으로 전쟁에 필요한 AI가 아닌 서비스업 AI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회장의 말은 정이의 존재 여부가 무엇인지를 되새김하는 시퀀스들로 기능한다.

다만, 이것들이 영화 안에서 온전하게 하나의 덩어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디테일이 부재이기도 하지만 이를 가장 마감하기 편의적인 모양새가 바로 '가족주의'라는 사실이 이를 총체한다. 전투 AI가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정이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간 서현은 뜻밖에 그녀 안에 있는 기억이 재생성되는 것을 본다. 병이 치료된 어린 시절 딸의 이야기를 들은 정이가 기뻐하 모습을 목격한 서현은 목적을 수정하여 정이를 파괴하지 않고 탈출시키기에 이른다. 정이를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서현의 마지막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요. 자유롭게 살아요"라는 당부는 <부산행>이나 <지옥>에서 본 희생의 내러티브와도 그 의미를 공유한다.

 

ⓒ 넷플릭스(NETFLIX)

결론적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데이터가 다시금 갱신과 수정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통과한 상품만이 시장경제에서 유효하게끔 가공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정이의 딸 서현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게다가 가족주의를 이렇게나 쉽게 소각하도록 짜놓은 결론이 단 하나의 시퀀스로부터 집약되고 있다는 사실은, 설사 그가 영향을 받은 레퍼런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이>는 SF영화로도 별 특징이 없고, 액션 또한 <반도>에 비해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점차 연상호의 영화는 K-신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서성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SF라는 배경의 문제가 아니다. 주제 의식을 정밀하게 다루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의 관객을 향한 도전적인 침범이 그리운 영화였다. 서현, 즉 강수연 배우가 마치 자기 죽음을 통해 그 후 세대들에게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대사를 음미해보면, 결코 <정이>라는 영화가 그 후발주자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정이
Jung_E
감독
연상호
Yeon Sangho

 

출연
강수연
김현주
류경수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6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2023.01.2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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