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vs '교섭' 야심이냐, 안심이냐
'유령' vs '교섭' 야심이냐, 안심이냐
  • 김경수
  • 승인 2023.01.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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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선택은?"
ⓒ CJ ENM

<유령> 영화로 만화를 찍고자 하는 짓궂은 야심

이해영 감독의 <유령>(2022)을 보고는 이 영화가 그의 전작인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2014)에 이어서 '괴작'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호불호가 강하게 엇갈리는 대중의 평가를 보아하니 이미 그 반열에 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유령>을 괴작으로라도 말하고 있는 사람은 '호'에 가까운 입장일 것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얼핏 보기에 <암살>(2015)과 <밀정>(2016) 등의 연장선에 있는 에스피오나지 장르로 그려진 항일 영화로 보인다. 이해영 감독이 겨우 거기서 멈추는 감독이라면 실망했을 테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개연성과 고증, 완성도를 포기하는 대신 개성이 넘치는 스타일을 만들려는 감독의 야심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고증이 이루어지는 사물은 1933년 즈음에 개봉한 조셉 폰 스턴버그의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와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1931)가 끝이다. 특히 의상도 경성의 모던걸이 입던 패션이라기보다는 멜로드라마 장르 속의 의상처럼 화려하고 고풍스럽다. 심지어 알 카포네의 줄무늬 양복까지 등장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제외한 모든 것에 리얼리티를 제거하는 이 같은 연출은 "영화는 영화에 불과하다"는 선언에 가깝다. 당연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령>은 타란티노가 역사를 다룬 세 편의 영화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무튼 영화에 몰입하는지 아닌지는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남기야 하겠지만, 개성은 충분히 드러나 있다.

 

ⓒ CJ ENM

<유령>은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과 하나의 유니버스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사건의 판도가 손바닥 뒤집히듯이 전환되는 반전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퀴어 요소를 넌지시 드러내고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이질적인 장르를 교접한다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비슷하다. 주제에서도 이 두 영화가 남성성을 기반으로 하는 제국주의를 소수자가 전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야기할 거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박소담 배우가 두 영화에서 활약하기에 왜인지 하나의 유니버스로 보인다. 심지어 <유령>의 플롯 구조도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처럼 1부와 2부로 나뉜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카이토(박해수)는 조선총독부에 독립운동을 이끄는 흑색단 첩자인 유령이 숨어 있다고 의심한다. 그는 조선 총독 저격 사건 현장에 있던 다섯 명의 용의자를 별장에 불러서 감금한다. 그 다섯은 각각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의 직속 비서 유리코(박소담), 암호를 해독하는 천계장(서현우), 통신과 막내 백호(김동희), 그리고 총독부의 통신부 수장 무라야마 쥰지(설경구)다. (이때 무라야마 쥰지는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며, 식민 통치를 위한 목적으로 조선의 민간신앙을 수집한 민족지 『조선의 귀신』 등을 남긴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의 이름을 연상하게끔 하기에 눈여겨 볼만하다. 둘 다 유령을 추적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다섯은 유령을 발견하고자 분주히 움직인다.

1부는 애거사 크리스티 풍의 밀실 스릴러다. 영화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달리 초반에 이미 유령이 누구인지 드러난다. 되려 유령으로 지목된 자가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에서 서스펜스가 그려진다. 서스펜스는 캐릭터의 개성으로부터 유래된다. 각 캐릭터는 항일이라는 커다란 명분이 아니라 저마다 사랑(박차경), 정의(유리코), 생존(천계장), 명예(쥰지) 등의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가치에 따라서 움직인다. 선악이 아니라 저마다의 윤리로 움직이기에 캐릭터가 제법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편이다. 고딕 호러 풍의 저택에서 다섯 명의 욕망이 충돌하면서부터 긴장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다만, 이 긴장이 느껴질 즈음에 영화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 CJ ENM
ⓒ CJ ENM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기점은 2부가 시작하면서부터다.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이 2부에 이르러서 여성 히어로물로 전환되었듯, <유령>에서는 액션 장르로 전환된다. 1부에 뿌려진 복선이 액션 시퀀스 가운데에서 수거되기 시작한다. 2부는 로버트 로드리게즈나 <존윅>, 1990년대 홍콩 영화에서 유행했던 액션 활극의 클리셰들을 모아다 만든 듯하다. 후반에 이르러서는 1930년대의 갱스터 장르를 모방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혼성모방은 액션까지 포함해 영화 전반에 반복되는 문제다. 미장센은 훌륭하나 장르 전환이 일어나기까지 복선이 충분히 설명되지도 않고, 두 장르를 오가는 이음매가 깔끔한 편은 아니다. 급작스러운 반전이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의 합작인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며, 자칫 산만하다고 보일 수 있기도 하다.

물론, 박소담 등 배우 각자의 매력이 단점을 상쇄하기는 하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어떻든지 배우를 사랑할 수 있는 배우의 팬들 정도일 것이다. 박소담과 이하늬에게서 보기를 바란 것들을 다 보여주기는 하니, 배우 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는 진지해지지도, 액션 활극이 되지도 않는 어떠한 사각지대에 있게 되면서 관객과 멀어진다.

수많은 문제점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진 지뢰밭 같은 <유령>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려면, 이 영화를 아예 '만화로 즐겨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끔은 그리 감상해야 하는 영화가 있다. <유령>은 장르 영화라기보다 일본 아니메의 문법에 더 충실해 있다. 영화 초반에 <캐롤>(2015)을 떠오르게끔 하더니 곳곳에 백합 로맨스의 코드가 넌지시 던져진다. 천계장 캐릭터는 실사로 돌출해 있는 만화적인 뉘앙스를 연출하고, 카이토도 어딘가 감정선이 과장되어 있다. 박소담과 이하늬가 연기한 두 캐릭터도 당장이라도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어!"라는 세일러문의 대사를 내뱉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유령>은 아니메를 보듯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 모범생이 할 법한 무해하고도 안전한 선택

<교섭>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영화로, 지금껏 그녀의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요르단과 한국을 오가는 로케이션, 현빈과 황정민 등 스타 배우의 투입, 국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데에서부터 이 영화는 설날용 텐트풀 영화의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리틀 포레스트(2017)>부터 시작해 지금껏 임순례 감독의 작품은 상업영화이더라도, 예산이 소규모이거나 그보다 약간 큰 규모의 중형 영화들이었다. 임순례 감독이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피랍을 영화화한 <교섭>을 크랭크인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이 영화에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생겼다. <제보자>(2014)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한국에서도 '캐서린 비글로우'에 뒤지지 않을 감독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기대와 한편으로 '규모에 휘둘려 개성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오갔다.

<교섭>은 그 기대와 우려를 모두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영화다. 만듦새에 있어서 이만큼이나 모범적이고 깔끔하고 무해하기까지 한 상업영화는 드물다. 모난 곳이 없는 데다 플롯과 메시지도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이다. 플롯은 심지어 한 줄로 요약된다. 탈레반에게 피랍된 23명의 한국인 인질을 구하려는 외교부의 협상 담당자인 정재호(황정민), 아랍 담당 국정원 요원인 박대식(현빈)이 인질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계속 장애물에 부딪히다가 결국 그들을 협상으로 구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혐오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혐오의 시대에 연대와 우정 등의 다소 낡고도 고전적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 또한 지니고 있다.

다만, <교섭>이 텐트풀 영화로 지닐 수 있는 미덕을 모두 지닌 영화지만, 그것이 매력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정재호(황정민)과 박대식(현빈)의 인질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어떠한 욕망에 따라서 생기기보다 당연히 그래야 하기에 생기듯, 감독은 모험을 선택하기보다는 모든 관객을 아우르려는 당연해 그래야 하는 선택을 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장단점이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여기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교섭>이 이토록 늦게 개봉한 데에 대한 이유이다.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개인이 입은 피해에 국가의 책임 자체를 지우고, 그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가 유행어인 시대에 개봉했다. 국가가 헌법에 명시한 대로라도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되어주리라는 믿음이 사라져버린 뒤로 안전망을 벗어난 이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기에 이른다. 지난해 이태원 압사 사고를 기점으로 국가의 역할을 다시금 질문하는 보통 사람의 목소리마저 "누가 이태원에 가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라는 질문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교섭>은 23명의 기독교 선교단이 여행 금지 국가인 아프간에 불법으로 입국했다가 피랍당한 이들을 구하는 사건을 다룬다. 지금 시대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소재인 셈이다. 개인은 명백히 불법을 저질렀고, 거기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이들이다.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는 장재호와 박대식의 절규는 세월호 이후의 국가에게 하는 절규로 보인다.

그러나 <교섭>은 연대라는 고전적인 가치를 되새기나 이는 다소 공허하게 느껴진다. 피랍당한 선교단의 역할은 그저 선량한 피해자에 머물러 있는 데다가 다소 기능적으로 쓰이기까지 한다. '타인을 당연히 구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별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다. 실화 소재이기에 어떻게든 관객은 그들이 구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중요한 것은 그들을 구출하는 협상 과정일 것이다. 그마저 협상 영화라기보다는 재난 영화에 가까운 공식으로 그려진다. 국가의 공백을 어떻게든지 개인이 메우려 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거대한 권력이 개입해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하며, 개인이 거기서 필사적으로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 어딘가 익숙하다. 인터넷 밈처럼 이경영 배우가 등장해서 "진행시켜!"라는 대사를 외쳐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교섭>의 늦은 개봉은 영화의 주제의식이 동화 속 이야기로 보이도록 한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교섭>은 이러한 한계를 지니는 데도 볼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 심지어 설날에 볼 수 있는 최선의 상업 영화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캐서린 비글로우를 선망하는 임순례 감독의 야심이 담겨 있고, 이는 편집이나 촘촘하고 정확한 숏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특히, 한국 상업 영화의 템포라기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느릿한 숏으로 관객이 충분히 상황을 이입하게 만드는 연출은 눈여겨볼 만한 것이다. 또한, 요르단을 서부극의 모뉴먼트 밸리처럼 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평생 돌아갈 곳이 없이 방랑자로 사는 현빈의 캐릭터를 서부극의 보안관처럼 보이게 한다. 동시에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의 로렌스로 보이게 한다. 사실은 후자에 더 가까운 인상을 준다. 아울러 감독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한 만큼 인권감수성이 영화 곳곳에 배어 있기도 하다.

더불어 <교섭>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라든지 <모가디슈>(2021), <수리남>(2022) 등의 최근의 한국 영화에서 제3세계를 재현할 때 생길 수 있는 윤리적, 도의적 문제를 세심히 고려해서 찍었다. 현빈과 황정민 사이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강기영 배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쓰는 두 언어를 직접 익혀서 연기를 했을 정도다. 이방인인 박대식의 눈으로 이슬람 문화를 직접 관객에게 체험하게끔 하는 중반의 시퀀스는 그야말로 임순례 감독만의 감수성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해하고도 안전한 이 영화는 설날에 가족과 함께 보기에 무리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우리 시대를 더 이야기하게 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김경수, rohmereric123@ccoart.com]

 

유령
Phantom
감독
이해영

 

출연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김동희

 

제작 더 램프
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3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01.18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
The Point Men
감독
임순례

 

출연
황정민
현빈
강기영

 

제작 영화사 수박, 원테이크필름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1.18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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