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이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2]
아이와 어른이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2]
  • 이현동
  • 승인 2023.01.19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를 믿는 어른과 어른을 믿는 아이"

촬영 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홍열은 홍상수 감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촬영했지만, 이번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 후 교사입니다>(2022)는 이례적으로 자기 주도적인 목적성을 달성한 작품이다. 목적의 중심에는 맞벌이 부부인 작가 황다은과 감독 박홍열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인터뷰에서 그들 부부는 고심 끝에 아이들을 돌봐줄 '도토리 마을 방과후'와 함께 공동육아를 결심하면서 돌봄 노동자들의 일상을 조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는 마을 방과 후 교사입니다>에서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교사들은 코로나19가 발발하고 나서도 우선 접종 대상이 아니므로 접종받기 위해서 200통의 전화를 했다는 소회를 풀기도 했다. 경력 인정도, 직업란에 교사라고 쓸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무심한 현실 앞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오직 조합의 힘으로만 운영되는 '도토리 마을 방과후 학교'는 영화에서 호명하는 대표적인 모델일 뿐, 이렇게 많은 돌봄 노동자들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어떠한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로 노동을 이어간다. 박홍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촬영 감독으로 어떠한 영화적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 아닌 삶을 일차원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모든 몽타주는 고스란히 일상을 반복적으로 포커스하며 아이들의 웃음, 교사들의 고뇌, 학부모들과의 회의를 통해 도토리 마을이란 공간을 스케치한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 스튜디오 그레인풀

'놀이'하는 장소

영화의 첫 시퀀스는 한 건물 마당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답게 펼쳐진다. 이어 그다음 시퀀스에서 두 가지의 물음을 가질 수 있다. '공백이 된 공간을 비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공백의 효과는 영화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고요한 마당과 쓸쓸한 공간 안에서 문 앞 비밀번호를 누르며 출근하는 교사의 모습은, 아이들은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 초반 시퀀스는 아이들과 교사의 일상을 분리하기도 하지만, 이를 역행해서 보게 되면 이 작품이 규명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엇으로 시작되는 지를 보게 한다. 교사의 출근을 먼저 보여주지 않는 감독의 의도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려는 몽타주의 세심한 힘이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 학교'는 교사들의 터전이며, 삶의 중심이라는 내레이션은 이를 더욱 강조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 공간에서 자신들의 생기를 분출한다. 이것이 이어지도록 교사는 놀이하는 장소를 계속하여 단장해야 한다. 아이들 오는 시간에 맞춰서 쌀을 씻고, 요리를 준비하고,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면 편지와 간식들을 준비해서 활동이 끊어지지 않도록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를 준비한다.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이 시퀀스는 장소가 단장되는 과정이 한순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임을 암시한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 학교'는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 축적된 그들의 노력은 영화의 제목처럼 자신들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교사를 칭하는 독특한 형용사가 '마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마을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 정의된다. 우리는 한 아프리카 속담을 기억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격언은 그 정성과 더불어 공동체의 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학부모들과의 만남에서 '공동육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단지 학교가 아님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6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은 교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 전체가 '마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사들은 특정한 과목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전문가도 아니다. 그들에게 부착된 건 '선생님'이란 호칭이 아닌 우리 주변에 찾아볼 수 있는 토속적이며 일상적인 명칭이다. 분홍이, 오솔길, 논두렁, 자두라는 명칭은 교사와 학생들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패러다임을 변환한다. 영화에서 교사는 아이들에게 어떤 위압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놀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내는, 어떤 윤리적인 기능과도 결부될 수 있는 '감독의 앵글'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모든 장소를 놀이하는 장소로 구현한다. 영화에서 많은 숏은 놀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심지어 학부모들과 회의할 때도 놀이는 이어진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진리와 방법』에서 "놀이는 내가 노는 것이 아니라, 놀이에 참여하므로 놀이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놀이는 구성원으로 하나라는 자각을 하게 만들뿐더러 도덕성과 윤리적인 기능까지 포함하는 운동이다. 그들은 각각의 주체이지만 도토리 마을 구성원으로 하나가 되어 놀이한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곳'이라는 슬로건은 이 장소가 가진 정체성을 교사들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교사들도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놀이라는 룰 안에서 동일한 형태로 그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놀이는 놀이를, 그리고 아이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에서 놀이는 경쟁을 다루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단체 줄넘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단 한 번도 줄을 넘지 못하지만 불평하기보다 웃으려 하고, 좋은 마음으로 놀려고 한다. 씨름하는 아이들에게도, 요리하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놀이는 도토리 마을의 정신이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 스튜디오 그레인풀

'교사와 어린이'가 함께 자라나는 공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마지막 크레딧이 밝히듯 보육 현장에 대한 짧은 표명을 남기고 마무리된다. 4년 7개월 차인 논두렁이 떠나고 곧이어 1년 차 보름이, 1년 후 10년 차 분홍까지 떠난다는 이 말은 쓸쓸하지만, 초반에 언급했던 말인 '교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회 현실을 수미상관으로 반영한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다'라는 논두렁의 말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드문드문 숙고하게 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의식을 제고하는 말일 수 있다. 결국 필자는 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맡기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호소, 강구가 아니라 그저 카메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이 발산되는 이 영화는 모범적인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박홍열 감독의 인터뷰를 살펴보면서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대목이다.

"제가 방과 후에 카메라를 들고 찍으러 가면 아이들이 카메라를 챙겨주더라고요. 촬영하느라 차가 오는 걸 모르면 알려주면서 차 조심하라고 하고, 풀숲에 들어가 찍고 있으면 벌레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우리가 아이들을 무조건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돌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시퀀스를 떠올릴 수 있다. 논두렁이 결국 퇴직을 결심하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카메라는 그의 아쉬움과 눈물에만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점차 아이들은 손을 들고 논두렁에 말한다. "자기를 잘 챙겨주고, 잘 놀아줘서 고마웠어"라는 말. 아이들은 무엇보다 아이다운 말을 한다. 너무나도 아이다운 억양으로. 아이들의 말을 들은 어른은 더욱 어른이 된다. 결과적으로, 공간은 공동체 안에서 상보적으로 기능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교사의 역할은 그들과 같이 아이가 되는 것이다. 성장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방과후 '교사'의 정체성을 갖고 살기보다 마을로 더불어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투명한 영화다. 시간의 경과하면서 마스크를 사용하고 아이들이 뜸해진 그 공간 사이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마을을 지켜내려는 따뜻한 분투 속에서 희망을 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스튜디오 그레인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The Teachers: pink, nature trail
감독
박홍열, 황다은

 

출연
분홍이
오솔길
논두렁
자두

 

제작|배급 스튜디오 그레인풀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4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2.01.1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