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1]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1]
  • 이상용
  • 승인 2023.01.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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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가능성을 기록하는 영화"
ⓒ 스튜디오 그레인풀

분홍이, 자두, 오솔길, 보름달, 논두렁. 이것은 별명이 아니다. 성미동에 위치한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일하는 '도토리 교사회'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름이다. 이들은 선생님으로 불리지 않는다. 친구처럼 논두렁이라 불리고, 동등하게 보름달이라 불리며, 같이 밥을 먹고 노는 오솔길이자, 안전과 책임을 걱정하는 자두이며, 10년 넘게 활동해 온 분홍이다.

영화는 이들을 따라간다. 방과 후 모여든 아이들을 담고, 협동조합의 일원이기도 한 학부모들과 논의하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주된 초점은 '마을 방과후'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교사다. 이들이 돌보는 아이들은 대략 60명 정도다.

서울시에 속한 마포구 성미1동의 일부 혹은 성미산을 중심으로 한 마을 협동조합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주 다뤄져 왔다.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문제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고, 성미산 마을극장이 담기기도 하였으며, 이곳에서 자란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제작된 적도 있다. 성미산 마을로 불리는 이 지역은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마을공동체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는 곳이며, '마을 방과후' 활동 역시 이러한 역사와 함께한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하지만 지역의 남다른 에너지가 항상 열광과 연대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한국 사회에서는 없었던 형식이기에 어려움을 동반한다. 교사들의 첫 번째 고민은 '정체성'이다. 터전(영화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는 용어다) 혹은 공동체를 벗어나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공동체 바깥의 사람들은 '방과 후 활동'을 일종의 학원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무리 설명해도 '결국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묻기 십상이다. 실제로 자신들이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교육의 주체는 아이들 자신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교육의 대상이 된다.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이를 연결하는 존재다. 집이 아니라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의 저녁밥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아이들을 지켜보며 적절하게 개입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 그것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 모든 것을 보듬어야 하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보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과 돌봄 사이에서, 그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그것이 현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가능한지를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코로나19의 확산은 세상뿐만 아니라 '마을 방과후'의 활동 역시 어렵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졌고, 오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갔으며, 학부모를 만나기 어려울 때가 생겨났다. 친근함을 기반으로 하는 모임과 활동에서 접촉을 금한다는 것은 더욱더 치명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교사들의 또 다른 고민은 '아이들의 귀가'이다. 어제는 세 시 반에, 오늘은 다섯 시에, 내일은 다섯 시 반에. 아이를 맡겨 놓고 필요할 때 데리고 간다. 아마 이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의 경우만 보면 필요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일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전은 단순히 아이를 맡겨두는 곳이 아니다. 이 철학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는 미묘하고 어렵다. 집안의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일정을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공유 없이 아이의 입을 통해 통보하는 모습은 이곳 터전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세상과 같은 방식의 돌봄을 하려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다른 방식, 다른 고민, 다른 원칙에 대한 고민은 기성화된 눈과는 다른 지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내부뿐만 아니라 공동체 바깥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방과후 교사로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복지 경력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국가는 방과 후 돌봄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마을 방과후'는 사조직처럼 여겨져 지원을 받지 못한다. 조합원( 학부모들)의 조합비를 통해 월급을 포함한 유지비가 지불되고, 교사의 위상은 공적으로 사적으로도 애매하다. 그래서 교사들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를 아우르는 단어는 '지침'이다. 인정욕구도, 자본도 쉽게 채울 수 없는 현실은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동반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시종일관 영화는 여러 교사들이 터전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문과 창을 열고, 밥을 준비하고, 하루의 시작을 준비한다. 그것은 은밀히 지치는 하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교실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떠나기로 결심한 한 교사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영화의 말미에는 자막을 통해 떠나는 교사의 이름이 하나, 둘 거론된다. 이곳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스튜디오 그레인풀
ⓒ 스튜디오 그레인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여러 고민들을 늘어놓지만, 그것을 해결하거나 갈등을 폭파시키는 영화는 아니다. 교육소위원회 장면에서 교사의 고민이 등장하지만, 소위원회에 속한 학부모의 말을 들을 수는 없다. 그 모든 갈등을 대신해 차분히 채워지는 일상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런데 영화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논두렁의 고별사 장면이 뭉클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내부의 갈등을 언급하지만 갈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던 이 작품에서(한편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아쉬움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그가 떠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논두렁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놀이를 알려줘서 고맙다."였다. 

어느새 현실의 놀이 문화는 배워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놀이 문화는 공동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전수되는 것이었지만, 공동체가 사라진 현실에서 퇴조해 버렸다. 방과 후 활동의 대세가 된 학원 문화가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잠식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지점은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도 이어진다. 놀이 문화나 교육을 현실을 둘러싼 공동체 바깥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영화가 향하는 길은 아니다. 공동으로 연출한 박홍열, 황다은 감독은 마을 조합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상을 꼼꼼히 채우고자 한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록하면서 카메라는 터전과 교사들을 떠나지 않는다. 코로나19 시절을 통과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한다. 4년 7개월 차 논두렁이 고별한 것은 2021년 2월 25일의 일이었고, 자막을 통해 4개월 후 1년 차 보름이가 떠나고, 1년 후 10년 차 분홍이도 떠났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그렇기에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 '마을 방과후'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황다은 감독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온다. 영화와 함께 출간된 책에서 따온 내레이션은 분홍이의 입장으로 생각되는데, "20대 후반에 시작해서 40대가 되기까지 나의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터전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모습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은 그런 곳입니다. 이곳의 미래가 깜짝 놀랄만큼 변화하길 바라진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퇴근길이 미래의 걱정으로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돌봄을 향한 미래의 걱정과 근심이야말로 이 영화가 서 있는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이유다. 아이들은 돌봄을 필요로 하고, 어디선가는 이 고민을 실천하기 위해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 방과후와 마을 방과후 교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돌봄이 부재한 시간에 돌봄을 필요로 하고, 진정한 돌봄은 돈만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을 쓸 어른'이 필요하다. 그것이 마을 방과후 교사의 존재의 이유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을 쓴다는 것의 피로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즐겁지는 않지만 분명 생각하도록 만든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교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작품만이 아니라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 속한 아이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도, 학부모 방모임과 교육소위원회에 속한 학부모의 시선에서 '돌봄'의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여전히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미 편집되어버린 기록들을 새롭게 벼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럴 수 있다면 고민의 출발점이었던 교사들의 걱정과 근심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이 영화를, 미래를 위해서 봐두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가 된다. 변화를, 가능성을 기록하는 영화는 피로한 삶의 망각으로부터 깨어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아주 큰 목소리를 내거나 격렬한 현장의 기록을 하거나 깊이 있는 성찰의 화면을 제시하거나 놀라운 결론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담담한 기록이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그곳에서 교사들이 촬영과 편집에 함께 한 집단창작이라는 형태로 다큐의 한 정신을 내보이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 이상용, poema@ccoart.com]

 

ⓒ 스튜디오 그레인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The Teachers: pink, nature trail
감독
박홍열, 황다은

 

출연
분홍이
오솔길
논두렁
자두

 

제작|배급 스튜디오 그레인풀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4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2.01.11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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