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 편지 장건재#1] '잠 못 드는 밤' 그저 두 사람이 지탱하는 작은 세계
[한국독립영화 편지 장건재#1] '잠 못 드는 밤' 그저 두 사람이 지탱하는 작은 세계
  • 김민세
  • 승인 2023.01.0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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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하늘 아래에서 같은 꿈을 꾸다"

여름밤의 공기를 껴안은 듯한 섬세한 음향, 단편적인 일상의 대화로부터 윤곽이 드러나는 내러티브와 정서, 그리고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둘을 지켜보는 카메라.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 안에서도, 장건재의 다른 작품들 간의 비교를 통해서도 <잠 못 드는 밤>은 '일상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

 

ⓒ 인디스토리
ⓒ 인디스토리

그러나 왠지 모르게 <잠 못 드는 밤>에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영화는 단지 사람들의 삶을 찍는 것이다'라는 상투적인 말과 그것에 충실한 영화적 요소들은 이 영화의 질감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이 영화를 작동시키는 근본적인 힘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일상에 침투해 그저 그 자리에서 인물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아니라, 아무도 침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세계를 힘겹게 짊어지고 있는 '현수와 주희라는 두 사람'이다.

4대 3의 화면비로 촬영된 <잠 못 드는 밤>에는 신혼부부인 현수와 주희를 동등하게 담고 있는 투 숏을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로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좌우로 좁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프레임을 그들의 작은 우주로 창조한다. 반면 가끔씩 등장하는 시점 숏이나 인서트들은 두 사람의 이미지에 대응하는 듯한 이미지이다. 흥미로운 점은 시점 숏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시선이 현수 또는 주희라는 인물 각각의 시선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세운 이미지로부터의 시선, 즉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시선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잠 못 드는 밤>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견디고 있고 두 사람이 응시하고 있는 이미지이다. 오로지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 그렇다면 과연 이 둘 중에서 하나라도 지워진다면, 영화는 지속될 수 있을까. 단순히 하나의 쇼트 안에서 인물의 존재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하나라도 '지워진다면'. 이 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 인디스토리

<잠 못 드는 밤>에는 두 사람의 구도뿐만 아니라, 두 인물의 삶을 분절시킨 뒤 서로의 시간이 평행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장면들 또한 존재한다. 현수는 제조 공장에서, 주희는 요가 강습소에서, 두 사람이 각각의 직장에서 일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또는 두 사람의 구도는 변주된다. 주희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2세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현수가 이혼한 친구와 함께 단둘이 술을 마실 때가 그러하다. 현수와 주희가 만드는 두 사람의 구도가 둘의 가까운 거리를 설정했다면, 그 밖의 이미지에서 둘은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

각자의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 어떠한 율동하는 정서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세워져 있으며 이상하게도 서늘한 공기를 내뿜는다. 이 세계는 관계를 위해 아무도 애쓰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그저 생산물품을 정리하고 요가를 가르치는 시스템이란 우주(들)이다. 이 두 개의 평행하는 우주가 현수의 상상 또는 악몽으로 상상적으로 만났을 때(현수의 직장으로 주희가 찾아오는 꿈속의 장면), 세계는 붕괴되고 만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는 평행하는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기에, 다시 그들의 작은 우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둘이 일을 마친 뒤의 퇴근길에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이 위로와 안도감을 주고야 마는 것은, 그들이 결국은 서로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두 사람의 구도가 홀로 있는 이미지와 변형된 두 사람으로 대체되더라도, 부부라는 구심력은 현수와 주희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만나게 하고, 둘의 몸을 하나의 실루엣으로 겹치게 만든다.

현수와 주희가 지탱하는 작은 우주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4대 3의 좌우로 좁은 프레임, 이 우주의 균열은 현수의 운동으로 발생한다. 이웃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한 뒤, 둘만 남은 집에서 둘은 서로에게 자신을 민망하게 만들었다며 언성을 높인다. 결국 싸움으로 번지는 둘의 대화 끝에 현수는 집 밖으로 나간다. 동시에 둘을 함께 담던, 아니 둘이 함께 세운 4대 3의 프레임, 두 사람의 구도에서 나간다. 혹은 현수는 그 이미지에서 지워진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던 작은 우주가 현수의 작은 운동으로 균열을 일으킬 때, 둘의 가까운 거리를 대변하고 두 사람만을 위했던 좁은 프레임은 오히려 역으로 그들의 분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질문하고 싶다. 영화는 지속될 수 있는가.

 

ⓒ 인디스토리

거짓말 같게도 영화는 둘의 다툼이 주희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마치 한 사람이 지워진 후의 시간은 더 이상 흐를 수 없다는 듯, 둘이 함께 하던 시간과 다투던 시간을 현실과 꿈으로 분리시켜 버린다. 다시 말해, <잠 못 드는 밤>에서 한 사람이 꾸는 꿈은 상상적으로 붕괴된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세계에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건재가 긍정하는 세계는 한 사람의 상상으로 대체될 수 있는 대안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저 두 사람이 함께 있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작은 세계이다. 그러므로 현수와 주희는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그래야 영화가 지속될 수 있다.

잠에서 깬 주희는 밖으로 나와 현수를 찾는다. 정확히 말해 주희가 찾는 것은 두 사람의 구도, 두 사람의 세계다. 그리고 그 같은 여름 밤하늘 아래에서 함께 별똥별을 올려다본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현수와 주희의 응시는 두 사람이 꾸는 같은 꿈이다. 이제 두 사람은 온전히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장건재 자신의 신혼 생활을 영화로 오롯이 담아낸 <잠 못 드는 밤>은 두 사람이 만드는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낳은 여름밤의 꿈같은 영화이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서사일 것이고 사소한 일상의 반복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랑에서 비롯된 둘의 대화와 고민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세계는 결국 같은 하늘 아래 타인과 함께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는 작고 나약한 우리 인간들의 가장 솔직한 원형이다.

두 사람이 꿈에서 깨는 순간, 현수가 커피포트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과 주희가 침대에서 홀로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슬프고 애처로운 장면이 아닐까. 그래도 이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둘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맑고 투명한 꿈같은 순간 때문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인디스토리

잠 못 드는 밤
Sleepless Night
감독
장건재

 

출연
김수현
김주령
정영헌
최현숙
정대용

 

제작 모쿠슈라
배급 인디스토리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65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3.05.30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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