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BEST] 올해도 어김없이
[2022 BEST] 올해도 어김없이
  • 배명현
  • 승인 2023.01.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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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현 영화전문기자

*순위는 5위부터 무순

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다니엘 콴Daniel Kwan, 다니엘 쉐이너트Daniel Scheinert|2022

ⓒ 워터홀컴퍼니

"'지금-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예술"

어떤 영화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게 될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비판이나 비난을 방어할 논리가 생기며, 사랑하는 영화를 힐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워지기 까지 한다. 그리고 올해는 이 영화이다. 미학적, 서사적 완성도도 물론 놀랍지만 그보다 놀라운 점은 지금-여기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대해 해답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 있다. 단순하고 순진하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말하는 영화. 그리고 세계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영화인 동시에 나라는 인간의 삶의 태도까지 바꾼, 그런 영화였다. 살면서 이런 영화를 몇 번이나 더 만나볼 수 있을까.

 

2.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uke|2021

ⓒ 트리플픽쳐스

"하루키의 팬이 전복시킨 하루키"

이 영화는 두 번 시작한다. 러닝타임에서의 시작은 섹스를 마친 연인이 대사를 나누는 것이고, 두 번째 시작은 카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차를 끌고 터널을 빠져나오는 씬으로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이 두 번째 시작은 영화가 시작한 지 러닝타임 기준 40분이 지난 시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하나가 끝난 뒤 다시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어떤 부분이 망가진 인간이 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내용과 영화의 형식이 일치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하마구치 류스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불신, 혹은 어쩔 수 없는 (운명적) 허무를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삶 자체를 긍정하는 서사로 비틀어버린다. 삶의 긍정. 나는 이 태도를 너무나 사랑한다.

 

3.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박찬욱 | 2021

ⓒ CJ ENM

"다시 한번 찾아온 에피파니의 순간"

'너무 세련됐잖아?' 솔직히 첫 관람 당시 좀 당황을 했다. 너무나 유려하고 완벽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이었다. 이건 분명 경외감과는 다르다. 경찰서 내부의 구조와 좁은 복도 그리고 조사실까지 아름다울 필요가 있나. 탐미에도 정도란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미장센은 물론 사랑의 서사와 엔딩에서 보여준 붕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히치콕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설계한 레고블록을 완성시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재관람한 이유는 '이 아름다운 붕괴를 내가 거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관람이 끝났을 때 나는 이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침내.

 

4.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2021

유니버설 픽쳐스ⓒ 

"PTA의 자(위)조"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관람할 때가 되면 나는 관객이 아닌 팬이 되어버린다. 그의 작품은 개인의 반영과 예술가가 포착한 사회의 서사적 아이러니가 동시에 (따로 나뉘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전 작품인 <팬텀 스레드>(2017)에서 잠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었나?' 싶었지만 역시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마스터>(2012), <인 히어런트 바이스>(2014) 이후 다시 한번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만 이번 작품은 개인이 포착한 세계의 한계에 대해 더 집중한 것 같단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포착 혹은 판단에 실패해버린 예술가의 '자위'(自慰)라고 할까나. 나는 이 자위가 슬픈 실패라 보이진 않는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개인의 왜소함에 대한 솔직함에 더 가까워 보인달까.

 

5. <더 배트맨The Batman> 맷 리브스Matt Reeves|2022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오래된 영웅의 탄생"

'맷 리브스'라니, 사실 나는 좀 걱정했다. <혹성탈출> 트릴로지는 물론 좋은 영화였지만, 배트맨은 좀 다르지 않은가(물론 여기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만들어 놓은 아우라가 만들어 놓은 편견이긴 하지만).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뒤 모든 것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느리고 긴 호흡의 배트맨이 더 사회적이라는 사실도. 나는 지금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놀란이 보여준 '보수적 배트맨'과는 다를 배트맨을 기대하고 있다.

 

6.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uke | 2021

ⓒ 그린나래미디어

"상상으로 시작해 우연하게 완성 시키기"

세 가지 이야기 모두 훌륭하다. 이것을 '마치 잘 쓴 단편소설 세 편을 읽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면 진부한 표현이 될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게 하마구치 류스케는 일본의 젊은 이창동처럼 느껴진다. 소설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 소설이 언어이기에 가지고 있는 한계를 영상의 총체로 보완한다고 해야 할까. 무튼, 모든 이야기가 다 좋았지만 세 번째 이야기인 <다시 한 번>은 정말 압도적이다.

 

7.<썸머 필름을 타고!It's a Summer Film> 마츠모토 소우시Matsumoto Soushi|2020

ⓒ 싸이더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완성도는 작품의 훌륭함에 있어 중요한 척도가 되지만 늘 절대적 기준이 되진 못한다. 완성도가 높음에도 나쁘게만 보이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쉬운 완성도이지만 사랑스러운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영화가 사라진 세상에서..라는 가정을 가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잔망스러운 여운을 길게 남긴다.

 

8.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The Apartment with Two Women> 김세인KIM Sein|2021

ⓒ 찬란

"경고: PTSD 주의 요망"

올해 발견한 한국 영화이다. 누가 뭐래도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사실상 명백한)이 이야기는 내게 감독이 어떤 표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 골몰히 상상하게 한다. 이 영화를 찍으며 아팠을까 아니면 후련했을까. 혹은 둘 다 아닌 이상하고 기묘한 기분을 느꼈을까. 물론 이 영화를 보며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 관객들의 얼굴까지도.

 

9. <아마겟돈 타임ARMAGEDDON TIME>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2022

 

ⓒ 유니버설 픽쳐스

"과거의 미국을 회상하며 그린 회색 기억"

제임스 그레이의 가족은 늘 모서리가 부수어져 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해 있음에도 이격이 벌어져 있고 아프게 한다. 특히 살결이 여린 어린아이는 그 아픔이 배가되고 상처가 된다. 그레이는 이때 생긴 흉터의 흔적을 자양 삼아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레이가 판단하는 과거의 미국에 대한 야만은 <아마겟돈 타임>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10.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샘 레이미Sam Raimi|2022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감님 아직 살아 계시군요!"

영화를 보며 반가움을 느낀다. 아직 여전한 취향과 유머 그리고 만듦새까지. 말 그대로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혼란스럽긴 하지만 재미가 없을 순 없다. 마블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자기만의 테이스트로 바꾸어버리는 샘 레이미의 역량과 능력은 아직도 그가 건재한 동시에 감이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다만 걱정이라면 샘 레이미의 영화를 모른다면 온전히 즐길 순 없기에 오타쿠적 관람을 요구한다는 점 정도?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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