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BEST] 'X' 이후의 영화들
[2022 BEST] 'X' 이후의 영화들
  • 김경수
  • 승인 2022.12.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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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영화평론가

'올해의 BEST 10'은 10개의 영화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10개의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매해 BEST 10을 선정할 때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러 영화 중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택해야 한다는 고통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영화를 빠뜨려야만 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올해는 임의의 주제에 따라서 여러 영화를 선정하고자 한다.

올해 선정한 작품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X 이후의 영화'다. 이때 미지수 'X'에는 COVID-19든, 트럼프든 당대를 뒤흔든 어떠한 사건들이 들어가기에 마땅하다. 그리고 무수한 영화 감독이 그 X의 여진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무순

1.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Evangelion: 3.0+1.0 Thrice Upon a Time> 안노 히데아키Hideaki Anno|2021

1995년부터 지금껏 X세대 오타쿠의 성경으로 불린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는 에반게리온을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25년간 이어진 이 시리즈에는 일본이 경험한 두 차례의 큰 재난의 상흔이 깊숙이 배어 있다. 오리지널 TVA 시리즈는 옴진리교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의 상흔, 신극장판은 3.11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의 한가운데에서 제작된 것이다. 유년기를 가정 폭력의 그늘에서 오타쿠로 자라났지만, 자신이 역사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과도 같은 오타쿠들이 그 사건을 마주하기를 바랐다. 오리지널 TVA 시리즈는 사린 가스 테러의 상흔과 고통을 고백하며 끝나는 데에 비해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2021)은 훨씬 폭넓은 층위로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을 품으려 한다. 영화는 대지진 이후에도 일상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의지를 1시간에 걸쳐서 그려내며, 이카리 겐도의 자살을 통해서 옴진리교의 주범이면서, 동일본 대지진의 공범이기도 한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자리를 비키기를 바란다. 극 속 이카리 신지는 자신을 보듬어 준 레이와 아스카, 카오루 등을 모두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성장하고 현실에 나선다.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을 통해 신지가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나도록 격려한다. 그리고 신지의 성장을 통해서 모두가 재난의 상흔을 견디고 일어서기를 바란다.

 

2. <배드 럭 뱅잉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 라두 주데Radu Jude|2021

ⓒ 알토미디어

올해 최고 문제작인 <배드럭 뱅잉>은 미디어아트의 문법과 부조리 코미디의 문법이 뒤범벅된 파격적인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라두 주데 감독은 텅 빈 부쿠레슈티를 찍는 무대인사를 건넨다. 이윽고 교사인 에미가 성관계하는 영상을 삽입하며 관객을 도발한다. 에미 커플은 포르노에서의 성관계를 모방하지만, 포르노는 아닌 영상은 영화의 짓궂은 문법을 예고한다. 이 영화는 에미 커플의 성관계 영상이 원인불명으로 유출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영화는 총 3장으로 분할되며 장마다 고유한 형식을 지닌다. 1장은 시네마 베리테 형식을 모방해서 COVID-19와 소비주의에 잠식당한 부큐레슈티를 다룬다. 2장은 히토 슈타이얼의 미디어아트,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을 빌려서 A부터 Z까지의 단어를 통해서 루마니아에 잔재한 파시즘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는 감독이 자신의 단편에서 시도한 몽타주 실험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3장은 마스크를 쓴 채로 저마다의 말을 지껄이는 부르주아들을 풍자하는 부조리 코미디다. 루이스 부뉴엘이나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를 연상하게끔 만드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라두 주데는 COVID-19로 인해서 사회에 드러나게 된 루마니아의 파시즘을 비판하고자 아방가르드 영화의 유산을 총동원한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이 이 영화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이것이 단지 루마니아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유럽은 물론이며 한국의 상황과도 공명하는 이 영화의 상황은 블랙코미디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거다. 어떻게든 낯설어지겠다는 라두 주데의 장난이 다소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영화가 그에게는 극우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어서일 거다. 올해 장-뤽 고다르와 장 마리 스트라우브, 요시다 기주 등이 죽었다. 과거의 전위적인 아티스트들이 사라져 가고, 이제 아방가르드의 미래는 묘연하다.

 

3.

<컴온 컴온C'mon C'mon> 마이크 밀스Mike Mills|202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다니엘 콴Daniel Kwan, 다니엘 쉐이너트Daniel Scheinert|2022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워터홀컴퍼니

<컴온 컴온>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의 멀티버스 영화이다. 두 영화는 멀티버스를 통해서 갈라진 세대의 화해를 도모하고, 우리의 21세기를 소묘로 그려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무엇보다도 디즈니가 신파와 마법으로 해결해버리는 세대의 화해를 힘겨운 길을 우회해서 이루어낸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컴온 컴온>은 독창적이고도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는 저널리스트 삼촌(호아킨 피닉스)과 얼떨결에 떠맡은 조카(우디 노먼)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21세기의 풍경을 그려내고자 한다. 삼촌은 마이크 밀스 감독은 아이들을 인터뷰한 것을 영화에 삽입하고, 그것을 뉴욕 등 도시의 풍경과 몽타주해서 도시에 거주하는 아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보다 수고로운 작업은 없을 정도로 수십 개의 인터뷰가 오간다. 그중에서는 이민자도 있고, 빈민가에 살다가 죽은 아이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멀티버스가 열리며, 관객은 어른보다 더 철학적인 아이들의 세계를 한껏 경험하게 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정반대로 에블린(양자경)의 멀티버스를 통해서 그녀가 경험할 수도 있었던 무한한 세계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특히, 이 영화는 오마주나 패러디가 아니라 인터넷 밈에 가까운 온갖 영화의 삽입, 자칫 산만할 수도 있는 전개를 하나로 지탱하는 놀라운 극작술에 힘입어 폭발적인 파괴력을 지닌다. 또한 이를 틱톡 숏폼의 리듬으로 그려낸다는 것이 인상 깊다. 인간 없는 세계에서의 돌을 그려내는 등 전위적 상상력도 눈여겨 볼만하다. 딸인 조부 투파키의 염세주의를 경험해서 이해하려는 에블린의 의지는 기성세대로 인해서 잉여적인 존재로 밀려나게 된 밀레니얼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컴온 컴온>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고유한 스펙터클과 화려한 편집으로 무작정 우주를 확장하기만 하는 MCU의 멀티버스에 대한 싫증을 달래주기에도 충분했다. 이 두 영화를 관통한 주제는 멀티버스를 통한 가장 작은 대화의 복권일 것이다. 2022년 영화의 한 경향 중 하나는 "공동체가 보유한 가치들과 질서들을 반영하고 전승하는 상징적 행위"(『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p.8)인 '리추얼'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영화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드러낸다. 두 영화에서 드러나는 대화와 다정은, COVID-19로 가속화된 정치적 갈등과 세대 갈등을 봉합하는 상징적 행위다. 두 영화는 이를 윤리적으로 그려내려 한다.

 

4. <애프터 양AFTER YANG> 코고나다Kogonada|2021

ⓒ 영화특별시SMC

할리우드의 고전 SF영화에서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정체성 위기를 논의하는 거울로 쓰이기 마련이었다. <블레이드 러너>(1982)와 <터미네이터>(1984)는 인간 정체성이 위기에 처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산물이었다. 당시의 큰 화두 중 하나가 인간 주체의 소멸이었기에, 인간 주체의 복권은 할리우드가 빠르게 선점해야 했던 주제 중 하나다. <바이센터니얼맨>(1999), <A.I>(2001)는 다가올 혼란의 시대에 맞서서 인간다움을 증명해야만 했던 Y2K 시대의 산물이었다. <에프터 양>(2022)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 자체를 사유해보자는 과감한 시도로 가득하다. 2017년 유럽 연합에서 안드로이드 법안이 통과되었고, 동시에 브루노 라투르나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등 A.I나 비-인간 생명체 등을 사유하려는 사상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서 SF에서는 계속 다루었지만, 할리우드에서 왜곡된 테마인 미지와의 조우, 기후위기 등이 제대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에프터 양>은 기억을 다루는 보편적인 주제를 지니지만, 사실 이전에 우리 바깥의 것들을 사유하자는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양의 기억을 계속 추적하는 과정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연상하게끔 한다. 또한 그것을 오즈 야스지로를 연상하게끔 하는 카메라와 차분한 리듬,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조화로 그려낸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양이 사랑했던 안드로이드, 그들이 양과 살기 전에 양과 함께 살았던 이들을 알게 되면서 양의 기억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진다. 양에게는 찰나인 시간이 인간에게는 영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간과 기억의 차이로 영화 속 인간은 양을 서서히 객체로 이해하게 된다. <에프터 양>은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비-인간의 문제를 가장 직접 그려내는 영화로 이야기하기에 손색이 없다.

 

5.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2021
<Ditto>(NewJeans) 돌고래유괴단Dolphiners Films|2022

ⓒ 롯데엔터테인먼트

<탑건: 매버릭>은 예기치 못한 걸작이었다. 원작의 촬영을 그대로 따라가되, 스펙터클을 한껏 부풀려서 현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극작술에서도 당대 영화들(특히, 스타워즈)을 참고해 그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또 원작에 깃들어 있던 레이건 시대의 선전 영화의 색채를 지우되, 짙은 마초성으로 인해 퀴어 팬덤의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 점은 그대로 이어간다.(한 예로 모두가 팬티만 입고 있는 원작의 라커룸 씬이 의도치 않게 퀴어 팬덤에게는 서비스 씬으로 수용되었다. 영화 속 비치발리볼 씬은 이러한 반응에 응답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물론, 이 영화로 CG로는 대체 불가능한 할리우드 최후의 슈퍼스타 톰 크루즈의 존재감, OTT시대에서의 극장 영화의 가치, 미국적인 것의 창조적인 부활 등을 이야기할 수도, 어쩌면 이 영화에서 동원되는 전쟁 테크놀로지에 대해 추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기이하게 파일럿은 하나같이 전투기에 탈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으며, 그들은 CG로 형성된 지형을 통한 모의 시뮬레이션을 마치지도 못한 상태로 바깥에 나서는데, 이는 COVID-19 이후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시대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어쨌든 문제는 이처럼 지극히 미국적인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사실이다. 특히, <탑건: 매버릭>의 역주행은 기이하게도 주로 20대 중후반인 탑친자들의 N차 관람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199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 향수를 지니지도 않은 청년들이 왜 이 영화에 매혹당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OTT 시대에 접어든 지금 우리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권한을 지니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말 그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생영화라는 말이 OTT의 확산이 차츰 이루어지던 201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90년 중후반 세대의 영화관람에서 제외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케이블 영화 채널이었던 OCN과 슈퍼액션, 그리고 캐치온이다. 이들은 보통 성인을 대상으로 영화 시간표를 편성하나, 오히려 이것이 <더 록>(1996), <히트>(1995), <매트릭스>(2000) 등의 1980-90년대 액션 영화들을 90년대 중후반생이 호기심을 지니고 접하게끔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콘스탄틴>(2005) 등의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렸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의 시리즈를 계속해 방영하면서 시리즈의 팬덤을 양산하기도 했다. 즉, OCN과 슈퍼액션, 캐치온은 90년대 중후반의 영화 소비자에게는 공인된 영화 큐레이션인 셈이었다. 케이블 영화 채널이 90년대 중후반생의 영화관람에 끼친 영향은 비평에서 잘 다루지 않는 소재다. <탑건: 매버릭>의 극작술은 정확히 조지프 캠벨과 크리스토프 보글러가 전 세계의 신화에서 길어낸 스토리텔링 문법에 정확히 부합한다. 루스터가 조종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신화에서 영웅 되기의 여정과 같다. 이 문법은 90년대, 혹은 <스파이더맨 2>(2004)까지 2000년대 초 마블 영화의 문법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90년대 중후반생은 이러한 영화 문법을 자연스럽게 습득한 셈이다.

<탑건: 매버릭>의 역주행에는 영화 채널에서 방영한 80-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무의식에 내재화하고 그것을 향수로 느끼는 90년대 중후반생들의 영화 소비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다. 현재 예능 <무한도전>을 20대 중후반생이 반복 재생하듯이 말이다. 이는 레트로를 새롭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유년기의 뒤늦은 귀환'이다.

ⓒ ADOR

비슷한 맥락으로 뉴진스의 <Ditto>(2022) M/V는 향수 없는 시대의 향수를 그린다. 비록 이것이 뮤직비디오지만, 단편영화로도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돌고래 유괴단의 공력 때문일 것이다.

돌고래 유괴단은 신우석 대표를 중심으로 원래는 영화 사적 모임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다. 이제는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처음에는 기존 광고의 틀을 깬 파격적인 길이, 병맛의 감성이 가득 담긴 광고를 찍었다. 맥시멀리즘은 기존 문화 요소를 짜깁기하고 그것 사이의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돌고래 유괴단은 이말년의 만화를 원작으로 인터넷 스트리머 침착맨과 주펄과 함께 연출한 <잠은행>(2019)을 시작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돌고래 유괴단은 시네마틱한 문법에서도 이 맥시멀리즘의 정서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에 반해서 뉴진스의 노래는 악기 편성이 최소한으로 편성되어서 미니멀하다. 다섯 멤버의 목소리로만 채워진 이 미니멀한 곡은 곡 자체로는 쓸쓸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이 이 뮤비의 정서를 자아낸다. 모든 게 있지만 무엇도 없는 유령 같은 감각이 그러하다.

<Ditto>는 사이드 A이든 B이든 모두 90년대 영화의 흔적이 녹아나 있고, 00년대의 싸이월드에서 유행했던 패션이 뒤범벅되어 있다. <사랑과 영혼>(1990) 같은 X세대의 영화, <여고괴담>(1998)과 같은 호러 문법(사슴의 급작스러운 등장), 일본 청춘멜로의 설정(배우 박지후가 연기한 깁스를 하고 캠코더를 든 반희수)을 오가고 스티커 사진 등의 2000년대 초반의 싸이월드 문화가 패스티시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존재는 반희수다. 반희수라는 존재는 다섯 명의 친구들 곁에 서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기록한다. 그녀는 뉴진스의 팬으로도, 학창 시절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죽거나 사라져서 연락할 수 없는 친구로도 보이는 모호한 존재다. 사라진 반희수의 미스터리는 이 영화에 긴장을 부여한다.

<Ditto>는 뉴진스라는 다섯 배우를 중심으로 8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사라져 버린, 그러나 결코 누구에게도 경험된 적도 없는 이상적인 학창 시절을 그려낸다. 이 뮤직비디오(혹은 단편영화)가 자아내는 향수는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 <최선의 삶>(2021)에서 그리는 학창 시절이 되려 우리의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Ditto>는 움베르토 에코가 <카사블랑카>(1942)를 두고 이야기한 컬트 영화의 개념과도 이어져 있다. 클리셰들의 짜깁기라는 점과 모든 장면이 제각기 다른 장르를 지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노래의 작사에서도 드러난다. 프로듀서인 250은 물론, 검정치마와 우효 등 인디밴드, 뉴진스의 멤버 민지가 작사를 참여했는데 이 쓸쓸한 가사의 중추가 어딘지 감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 노래의 매력일 것이다. 에코의 말처럼 1개의 클리셰는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지만 100개의 클리셰는 사람을 울린다. 학교폭력과 사교육 열풍, 집단따돌림으로 얼룩진 학교에서 여섯 명의 친구들이 추억을 누린다는 것은 클리셰이자 기적이다.

<탑건: 매버릭>과 <Ditto>에 대한 20대의 마니아적 소비는 레트로가 아니다. 살풀이가 안 된 원한에 가깝다. 이는 침착맨 방송에서 등장한 궤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평좌표계를 고정할 힘이 없어서 지박령마저도 될 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유령적인 것'이다.

 

6.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2021
<아마겟돈 타임Armageddon Time>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2022

ⓒ 유니버설 픽쳐스
ⓒ 유니버설 픽쳐스

<리코리쉬 피자>와 <아마겟돈 타임>은 포스트-트럼프 영화로 1970-1980년대를 물색한다.

특히,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은 그간 1940년대부터 미국 현대사를 순례하듯이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고, 이제야 자신의 유년기인 1980년대에 도착했다. PTA는 그간 과학과 종교, 자본의 삼각관계를 그려내면서 자본주의와 오컬트의 유사성을 도출해 냈다. 이는 토마스 핀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2017)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 이끄는 주체가 남성이었으므로, PTA의 영화는 언제나 백인 남성성에 대한 통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도 변할 필요를 느낀 듯하다. <리코리쉬 피자>(2022)는 영화를 구상하기 20여 년 전에 본 풍경과 그의 친구 게리 괴츠먼의 회고담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다. 16살 남자과 25살 여자의 재기발랄한 로맨스를 다루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 살아가는 '1970년대의 풍경'이다. 영화는 1973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영화 속 풍경이 사실은 6-7살 때에 본 1976-77년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했다. 제목도 1970년대에 유행했던 레코드 가게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간 자신의 영화 속 캐릭터들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패러디한다.

PTA의 폭력적이면서도 유아기에 갇혀 있는 듯한 남성은 캐리커처로 그려지며,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PTA는 (위대한 개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소년이 위대한 개츠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도 앞선 세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리가 마주할 신세대는 그간의 남성적 세계와는 다른 세계다. PTA 영화에서 특히 성소수자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PTA는 남성을 거세시키면서 스크린에서 밀려난 여성과 소수자들을 중심에 둔다. 소년이 그들을 따라가게 하는 구조로 PTA 월드를 재편성하고자 한다. (조엘 코엔의 신작 <맥베스의 비극(2022)>도 이와 비슷하게끔 코엔의 남성이 파멸하고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는 순간을 담고자 했으나 어쩐지 더 활력이 넘치는 것은 PTA 쪽이다.) 유려한 촬영과 소년 소녀가 활주하는 씬에서의 트래킹 숏은 그야말로 놀랍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활력을 드러내는 씬이기도 하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을 배우로 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마겟돈 타임>은 1980년대 트럼프가 다녔던 중산층의 사립학교에 입학해야만 하는 유태인 집안의 아이인 폴의 이야기다. 이 영화도 1980년대 미국의 서슬 퍼런 풍경을 주인공으로 한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잔재해 있으며, 캘리포니아가 산업의 중심이 되어가기 시작할 즈음이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 부를 수 있는 자기계발 담론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폴의 아버지는 이를 아이에게 주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상류층으로 진입하고자 온갖 애를 쓴다. 폴은 자신을 감싸주고 성장하게끔 이끄는 할아버지인 아론(안소니 홉킨스)의 죽음으로 인해 정서적 기반을 상실한다. 우연히 사귄 흑인 단짝친구 죠니와 계급과 인종 차이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야만 한다. 감독은 차별을 몸소 학습한 아이들이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서늘하고 냉혹하게 고찰한다. 또한 자신도 그러했다고 조심스레 고백한다. 두 영화는 35mm필름으로 그 시대의 공기를 한껏 그려내고, 백인 중년 남성의 위치에 선 두 감독이 트럼프가 나오기 이전의 세계를 회상하며 차별과 혐오로 가득한 지금의 기원을 곱씹어본다는 데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리코리쉬 피자>와 <아마겟돈 타임>은 영화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혐오의 고고학이라 할 수 있다.

 

7.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Pinocchio>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2022

ⓒ 넷플릭스

피노키오를 통해서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간 자신의 필모를 정리한다. 나쁘게 말하면 자가복제일 수도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나이트메어 엘리>(2022)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양상을 드러내는 리얼리스트로의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쉐이프 오브 워터>(2015)에서도 예고된 것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간 환상적인 것을 찍는 감독으로만 여겨져 왔고, 그의 파시즘 비판은 다소 붕뜬 것에 가까웠다. 나날이 그의 언어는 정교해지고 있다. 그의 윤리학은 점점 자신과 같은 소외된 소년을 구제하는 사적인 윤리학에서 사회 전체에서의 소수자를 성찰하는 사회의 윤리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뮤지컬과 민담 등의 장르를 뒤섞으면서 기예르모 델 토로가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정점을 선사한다. 또한 우리에게 불복종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끔 한다.

 

8.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2021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노작이자 첫 뮤지컬이다. 다만, 이 영화에 내려진 혹평은 하나같이 그가 뮤지컬 장르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비판인지도 모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찍으려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가상의 무대 안에서 어떻게 현실을 드러내냐는 것이다. 뮤지컬은 임의의 무대를 설정해 현실과 환상을 분리하는 장르인데, 스필버그는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시퀀스를 다큐멘터리나 전쟁 영화에 가깝게 연출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원작과 현재를 겹치려 애쓴다. 아직도 이민자 차별과 자본주의로 인한 공간의 붕괴, 정치적 양극화 등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지고 있어서다. 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인서트는 여전히 망가져 있는 쿠바 이민자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또한, 원작에 깃든 인종차별과 혐오를 수정하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들의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마리아와 토니를 찍는 시퀀스에서 과도한 플레어 빛으로 인해서 드러난다. 둘은 플레어로 인해서 휘황찬란한 만화적 세계 안에 있는 것인 셈이다. 이 환상은 타인에게는 절대 수용될 수 없다. 스필버그는 이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아득하게 벌려서 관객이 소격효과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연출을 유려한 카메라에 담아내되, 절대 감상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스필버그는 우리 세대를 걱정하되 누군가 죽는 파국이 일어날 때까지 폭력을 멈추지 않을 미래를 무겁게 응시한다.

 

9. <스칼렛Scarlet> 피에트로 마르셀로Pietro Marcello|2022

<스칼렛>은 레트로가 아니라 재마법화를 이야기하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수공예품에 가까운 영화다.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아날로그의 힘을 신뢰하고 필름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몇 안 되는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네아스트다. 어떠한 글로도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없을 듯해서 말을 줄여야만 한다. 오로지 스크린의 힘으로만 승부하는 몇 안 되는 영화여서다.

 

10.

<헌트Hunt> 이정재|2022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박찬욱 | 2021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CJ ENM

<헌트>와 <헤어질 결심>은 전혀 다른 영화고, 한국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아예 없을지 모른다. 또한 <헌트>가 시대극인 데에 비해, <헤어질 결심>은 시공간이 다소 모호하다. 둘은 아예 다른 문법을 구사하는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비슷하다.

<헌트>의 서사 구조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극장판과 닮아있다. 우선 본편의 스토리와는 이어져 있지만 사실 그것에 개입하지 않는 평행세계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전두환을 죽이는 순간이 다소 모호하고도 현실에서의 여러 요소를 합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극장판화한 영화라는 인상이 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 캐릭터의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시리즈의 설정이 그 아니메를 시청하는 오타쿠들에게는 그 설정이 시리즈에서 자세히 드러났기에 단번에 이해하기가 가능하다. 다만 낯선 이들에게 그 캐릭터는 텅 비어 있는 존재에 가깝다. 사이토 타마키는 캐릭터와 캬라를 나눈다. 캐릭터는 문학에서 그러하듯 구체적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다. 한편 만화에서의 캬라는 캐릭터에 고유한 스토리가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외양적인 개성으로 인해서 캐릭터의 성격이 부여되는 것이다. 박평호와 김정두는 제각기 한국의 운동권이었던 NL과 PD의 이데올로기를 인물로 그려낸 캬라다. 이 영화는 분명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소재를 모두 지니고 있다. 역사가 아니메로도 해석될 수 있는 동시대의 역사 감각을 드러내면서도 이정재의 극작술과 놀라운 연출력을 동시에 드러내는 걸작이다. 아마 그는 동림이라는 간첩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스트우드eastwood를 표방하고 있다. 이스트우드 영화가 감독 본인의 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영화로는 만화적 캐릭터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헤어질 결심>을 아끼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 서래(탕웨이)가 모에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다. 언뜻 보기에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이 영화는 사실은 아니메에 더 가깝다. 중년 남성의 나르시시즘으로 인해서 모든 사랑이 파국으로 이른다는 이 영화를 사랑 영화라고 하는 것은 왜인지 무섭다. 내게 이 영화는 하렘물식 러브 코미디다. 왜인지 모르게 모든 캐릭터가 해준을 사랑한다. 수완(고경표)의 캐릭터는 퀴어로서 그를 사랑하고, 정안(이정현)은 그의 육체를 사랑한다. 서래(탕웨이)는 그의 이미지를 사랑하며, 후배 형사(김신영)은 자신을 배제하지 않는 그의 친절을 사랑한다. 이 하렘물에서 해준은 자신의 사랑을 물색하나 실패하고 만다. 이 서래의 "마침내"는 모에화의 정석에 가깝다. 멋쩍게 웃는 웃음이라든지, 시그니처 대사는 그 대상을 성애가 아니라 모에로 소비하게끔 한다. 이 영화에서 해준과 서래의 섹슈얼리티가 제거된 것은 그녀가 성애가 아니라 모에화 대상이라는 맥락에서일 것이다. 또한 서래도 TV드라마 속 인물의 대사 "독한 것" 등의 대사를 모에화한다. 두 영화는 정치적 양극화와 나르시시즘이라는 동시대의 문제를 아니메의 극작술로 누구나 동의할 수 있게끔 만든 올해의 문제작이다.

[글 김경수,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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