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채털리 부인의 연인' 어린아이의 진흙탕 싸움으로만 남은 멜로
[NETFLIX] '채털리 부인의 연인' 어린아이의 진흙탕 싸움으로만 남은 멜로
  • 김경수
  • 승인 2023.01.0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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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보야야 하는가?"
ⓒ 넷플릭스(NETFLIX)

모든 고전의 영화화와 리메이크에는 "왜 지금 찍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때 '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보통 고전과 현대에는 아득한 시차가 있으며, 그 시차는 원작을 제법 낡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 각색은 이 시차를 줄이거나, 시차가 느껴지지 않게끔 독창적인 변형이 있어야 최소한 논해볼 가치가 있다. 백 년 전 D.H.로렌스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채털리 부인의 연인>(2022)에는 이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 '원작을 지금 보아야만 하는 이유' 또는 '원작을 재해석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영화는 원작의 자극적인 플롯만을 벼려내어서 치정드라마를 만드는 데에 열중한다. 심지어는 원작에서 플롯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야기가 성립이 가능한 영화기에 배신감마저 든다. 이 영화는 원작을 망쳤다고 말하기에도, 원작과 평행우주라고 말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원본의 재해석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악성 밈에 가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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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플롯은 비교적 단순하다. 영화는 원작에서 세부적인 에피소드를 제하고 문제시되는 채털리(매슈 더킷)와 코니(에마 코린), ―원작에서는 멜러스로 불리는―올리버(잭 오코넬)를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채털리와 코니는 이제 막 결혼해서 행복한 신혼을 누리고 있다. 그러던 중 세계 1차 대전이 터져서 채털리가 징집된다. 그는 전장에서 하반신을 다쳐서 복귀하며, 절망에 잠겨서 작가가 되고자 애쓴다. 코니와 성관계할 육체적 여건을 상실한 뒤로 그는 코니와 서먹해지기에 이른다. 코니는 그의 무정에 지쳐 있던 참에 채털리가 사냥꾼지기로 고용한 대위 출신인 올리버의 오두막에 들르게 된다. 때마침 목욕하던 올리버의 육체를 본 그녀는 그에게 첫눈에 반하고 이윽고 둘의 밀회가 시작된다. 채털리는 때마침 망한 탄광 사업을 수습하느라 둘의 밀회를 감시할 여유가 없다. 그러던 중에 코니가 올리버의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올리버 전처의 남편이 둘의 밀회를 눈치챈다. 마을에는 어느덧 코니와 올리버에 대한 염문이 돌기 시작했고, 분노한 채털리는 올리버를 해고한다. 코니도 채털리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복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그러던 중 그녀를 발견해낸 멜러스의 편지를 받고 둘은 재회를 기약하게 된다.

그러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이러한 각색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먼저, 원작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둔 성과 문명이 상호작용하는 역학에 기반한 D.H.로렌스 특유의 성정치학이 사라져, 멜러스와 사랑에 빠지는 코니의 심리적인 동기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에서 코니는 말 그대로 소설을 쓰는 일에 골몰하느라 그녀가 아픈 줄도 모르는 남편 채털리의 무정에 지쳐서, 또한 그와의 성관계가 더는 불가능하기에 올리버라는 대안을 선택한 듯이 보인다. 다만 멜러스를 만나기 전까지 채털리의 무정을 드러낸 장면은 멜로영화의 클리셰에 가깝다. 클리셰를 통해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이 둘 사이의 균열'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반면 원작은 인물마다 그 인물이 표상하는 관념을 명확히 지시해 둔다. 채털리는 움직이기가 불가능한 제 육체가 죄 많은 육체라 여기며 정신적인 가치를 우선시한다. 반면 올리버는 육체적안 가치를 우선시한다. 또한 영화에서는 누락되었지만, 올리버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 코니는 돈에 미쳐서 성공만을 우선시하는 극작가 마이클리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원작에서의 남성 캐릭터들은 각자 우선시하는 가치를 코니에게 학습시키려 한다. D.H.로렌스는 코니를 통해서 당시 서구 백인 남성의 보편적인 사상을 객관화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코니는 섹스는 덧없고, 육체는 잠시뿐이라는 채털리의 사상에 처음에는 동의하지만, 그녀의 성욕은 이에 동의하지를 못하기에 코니는 채털리를 배신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채털리도 정신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하녀와 플라토닉 러브에 빠진다. D.H.로렌스는 코니의 성애를 통해서 서구 근대사회의 주류적인 이념(여기에는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다)들을 비판하는 성정치학을 펼친 것이다. 원작에서는 심리적 동기보다는 정신적 동기가 오히려 인물을 움직이게 한다. 코니와 멜러스가 사랑에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탄광촌에서 자란 코니는 같은 계급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멜러스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에서도 언뜻 드러나듯이 코니가 멜러스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둘이 서로 이방인이라 느껴서다. 이 이방인은 단순히 계급적 정체성뿐만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비롯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감이 둘의 사랑을 구성한다. 소설에서의 멜러스는 사투리로 대화하고, 그의 언어적, 정신적 기반이 주류 문화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제임스 조이스를 읽는다는 다소 지적인 캐릭터로 드러난다. 영화는 D.H.로렌스의 문명비판을 제거해버리고 그 자리를 공백으로 남긴다. 이는 관객이 영화의 감정선을 쉽사리 따라갈 수 없게끔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감정이 휘발된 자리에는 서로가 진흙탕에서 나뒹굴지만, 격정은 느껴지지 않아서 차라리 어린아이의 장난으로도 느껴지는 유치한 정사만이 남는다.

 

ⓒ 넷플릭스(NETFLIX)

마지막으로, '여성주의의 맥락'이다. 원작은 여성의 성애나 오르가즘을 전면으로 서술해서 1920년에 출판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서 소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인다. 2세대 페미니스트인 케이트 밀렛의 경우는 D.H.로렌스의 성애 묘사를 비난한다. 그의 성정치학은 여성이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워하는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밀렛의 비판은 코니와 멜러스의 성애를 다루는 장면을 중심으로 한다. 그의 거대한 성기가 코니로 하여금 정신적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육체적 가치를 각인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애는 남성의 성기로 인해서 존재가 드러난다. 이러한 성애는 원작이 지니는 필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다. D.H.로렌스는 여성의 성애를 이데올로기에 따라 반응하는 기계처럼 묘사하고 비평한다.

그러나 여성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여성은 원작에 없다시피 하다. 이러한 필연적 한계는 여성이 저만의 이데올로기를 지니기가 불가능하다는 해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영화는 D.H.로렌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결여된 여성주의적 맥락을 더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는 앞서 말한 사회문화적 맥락의 제거로부터 비롯한다. 영화에서는 멜러스의 남근을 찬양하는 로렌스의 서술을 제거하지만, 여전히 코니는 남성에 따라 성애를 깨우치는 비주체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케이트 밀렛이 무려 52년 전에 쓴 논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감독의 동기가 불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365일>(2020) 등 넷플릭스의 여러 여성향 세미-포르노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그나마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유일한 미덕은 촬영이다. 성에가 낀 듯한 렌즈는 영국의 안개 낀 날씨를 체화하는 동시에 특정 장면에서는 폭발적인 활력을 발하기도 한다. 코니와 멜러스가 비 오는 날에 나체로 물가를 뒹굴며 사랑의 절정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때의 코니와 멜러스는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 속에 나오는 청춘처럼 그려진다.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의 몽환적인 질감과 구도를 꼭 닮은 이 순간은 영화가 지닌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코니와 올리버가 라이언 맥긴리 사진에서 드러나는 청춘과 같이 허물없이 살아 움직이는 청춘이기를 바랐더라면 감독은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둘의 사랑을 더 격정적으로, 더 생생하게 다루었어야만 했다. 이 영화는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거부하며, 무의미한 리메이크가 되었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채털리 부인의 연인
Lady Chatterley's Lover
감독
로르 드 끌레르몽-토네르
Laure de Clermont-Tonnerre

 

출연
엠마 코린
Emma Corrin
잭 오코넬Jack O'Connell
페이 마세이Faye Marsay
졸리 리처드슨Joely Richardson
엘라 헌트Ella Hunt
니콜라스 비숍Nicholas Bishop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2.12.02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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