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왕: 이누오' 누구도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견왕: 이누오' 누구도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 변해빈
  • 승인 2022.1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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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그리움이라는 궁극적 아름다움의 조건"

팔다리 없이 몸통에 붙은 두 발과 왼손, 키를 두 배 넘어서는 오른팔, 세로로 달린 눈을 가리기 위해 표주박 가면을 쓰고 '개처럼’ 달리는 견왕(犬王), 이누오(아부짱). 괴물로 태어난 저주가 풀린 뒤 기형적인 그 몸을 지닌 사내가 그립다면, 기껏해야 연민에 불과한 것일까.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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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설치된 흰 천 위로 고래 모양을 본뜬 그림자가 올라선다. 수십, 수백 개의 작은 그림자가 모여 대왕고래로 자란다. 토모나(모리야마 미라이)의 비파 가락에 맞춰 대왕고래 등 위로 올라탄 이누오의 춤사위가 서서히 격렬해진다. 그 반동을 따라 흰 천이 파도의 물결과도 같이 펄럭이면 이누오의 신체는 인간의 구색을 조금 더 갖춰간다. 토모아리(이누오와 토모나)의 두 번째 악극이 펼쳐진 이 장면은 바다를 무대로 물의 유연한 물성과 리듬을 오선지 삼아 연주해온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가무를 떠올리게 한다. 저 너머 세계와 징검다리를 놓아주던 물기둥과(<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애달픈 사랑의 기억이 굽이치던 파도와(<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밤의 취기를 빌린 형형색색의 알콜(<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마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두 다리를 굴러볼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졌다. 뮤지컬 장르인 <견왕: 이누오>(이하 <견왕>)에서 음악과 춤사위는 더 선명해졌지만, 음파를 가시화하던 물결은 사물의 율동감으로 은유되는 데 그친다.

<견왕>에서 물의 이미지는 망령의 원한을 삼킨 죽음의 풍경이거나 비극적 운명을 공급받는 양수이고, 출혈을 유발하는 금단의 구역으로 오염된다. 무엇보다 몸의 저주를 풀기 위해 수심을 헤집어 건져 올린 과거의 기억이 이누오의 고달픔을 덜어낸다고 할 수 없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견왕>에선 불순물 섞인 물을 대신해 이누오와 토모나의 시야에 딸린 문제가 음악과 춤의 조건으로 쓰인다. '궁극의 미’를 욕망하며 극단의 최고 권위를 가지려던 이누오의 아버지는 아들의 운명을 담보로 악마와의 계약을 맺는다. 괴물로 태어난 이누오는 집안의 개들과 마당을 전전하면서, 표주박 가면에 뚫린 작은 구멍 두 개로 세상을 본다. 한편 타이라 가문의 의뢰로 심해에 묻힌 보검을 찾던 토모나는 그 길로 아버지와 시력을 동시에 잃으며, 훗날 비파를 연주하는 법사가 된다. 이누오가 쓴 가면의 작은 구멍 두 개를 제외한 화면의 여백이 검게 지워진다면(세 개의 눈 중 위치선정에 실패한 하나에는 구멍조차 없다), 영영 어둠에 갇힌 토모나는 과거에 보았던 이미지의 잔상에 의존해 보이지 않는 것(아버지 망령)을 보거나 실제 대상을 흐릿하게 어림잡은 윤곽으로 인식한다.

시야가 차단되고 영화는 청각과 촉각을 곤두세워 이를 악극이 이뤄지는 무대의 조건으로 여긴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그것이 부딪히는 표면의 성질에 따라 악기의 종류가 달라지고 토모나가 인식한 이누오의 꾸물거리는 실루엣은 음악의 파동을 닮으면서 두 사람의 춤과 연주를 지휘한다. 무대의 배경(하늘)은 스크린의 원천적 컬러(흑백)로 디자인되어서 세상의 일부분이 지워진 두 사람의 시야와 가장 공평한 환경을 조성하고 이로써 여백의 미야말로 두 사람이 채워가는 탐미적 체험의 절정으로, 스크린의 공간은 비파 가락과 노래와 춤사위로 채워진다. 이누오와 토모나의 합작은 희귀하게 포착되는 보이는 무엇이 아닌 희박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재귀시키기에 아름답다.

유아사 감독은 '사회적 통념을 깬 우정이 왜 이토록 어려운가'에 대한 역설로 그리움을 만남의 조건으로 내걸어 왔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접근을 경계하는 이누오의 긴 팔과 토모나의 지팡이가 둘 사이엔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가 끝내 너무 쉽게 절단되는 결말은 유아사다운 선택이다. 신체적 조건으로 이들이 서로 신체를 긴밀하게 접촉하는 장면은 있을 법도 한데, 영화에서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세 번째 악극에서 토모나는 이누오의 몸을 휘감은 긴 천을 붙잡은 채 무대에 오른다. 이것은 눈의 기능을 대체하는 지팡이나 또 이를 대체하는 상대의 팔을 붙잡는 것과는 다르다. 뒷면이 투명하게 비치는 얇고 긴 천은 이누오의 정제된 몸짓이 지난 자리에 파동을 지속하면서 프레임 사방으로 펄럭였다. 그것을 토모나의 손은 매듭의 인상이 느껴질 만큼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잡히지 않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는 쪽이다. 가무가 끝난 뒤 저주가 풀리든, 죽음을 맞이하든 이별이 예견된 자리에서 '이전’의 이누오를 붙잡으려는 한없이 간절한 손길이다. 그러나 태초의 이누오를 기억하는 탯줄은 불온하게 끊어지고 말았다. 둘을 잇는 토모나의 손길은 더없이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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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춤 또는 몸을 소환하는 주문이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다르게 '토모나의 음악'은 이누오의 춤을 추동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토모나의 연주가 중단되어도 이누오의 춤은 계속된다. 토모아리의 이야기가 금지되고 비파를 연주하던 토모나의 신체가 이누오의 양팔에 걸린 저주가 풀린 장소에서 하나씩 절단된다. 영화의 소리는 꽃잎이 흩날리는 공연장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이누오의 얼굴 앞에서 참수된다. 급기야 화면을 채운 문자를 눈으로 읽어내야 할 때, 우리는 두 사람이 빼앗긴 시력의 힘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덧없는가를 신체 절단의 통각과도 같이 단호하게 실감하게 된다. 잠깐의 격차도 없이 합을 맞추던 음악과 춤이 단순한 손짓으로 어느 한쪽을 절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누오와 토모나의 우정이 서로의 결함과 공허한 삶의 구멍을 완연하게 채울 수 없다는 깨달음처럼 당연하지만 슬프게 다가온다.

악마의 가면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 저주 입은 가면을 벗으면서 끝나는 이 영화에서 비로소 드러난 이누오의 민낯은 여전히 짙은 분장에 뒤덮여 있다. 좁은 구멍을 벗어난 두 눈은 괴물 시절의 검붉은 눈보다 인위적이고 혼탁하다. 입과 귀의 자리에 배치된 이누오의 눈이 아름다움의 외형적 기준에 대한 경고였듯 인간의 구색을 갖춘 몸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진 못했다. 이누오의 '민낯'은 아름다움이라는 가면을 썼다. 우리 중 누구도 이누오의 진짜 맨얼굴을 보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얼굴은 참수당한 토모나의 머리에 붙은 일그러진 얼굴이다. 성불하지 못한 토모나는 600년이 지난 도심의 거리를 배회한다. 부패하다 만 흉측한 얼굴은 가면의 미세한 틈으로만 허용되던 이누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지로 연계된 인상은 이내 두 사람의 과거의 목소리와 몸짓과 가무와 이것들이 어우러진 이야기의 귀환으로 이어진다. 유아사 감독은 절단된 영화의 신체를 희미해진 과거의 어느 순간을 엮어 재조립한다. 삶과 죽음, 음악과 춤, 600년의 간극을 이어 붙이는 '유아사의 팔'은 개연성이 제거되고 불현듯 출현하는 '그리움의 정서'다.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부서지기 쉬운 기억을 건드리는 그리움으로 이전의 순간으로 되돌아가 희박해진 잔상을 연거푸 세기는 일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던 토모아리의 찢긴 이름과 목소리를 "우리가 여기 있었다"로 재조립하기 위한 그리움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600년 동안 도심의 거리 밑바닥에 숨겨둔 궁극적 아름다움의 조건이다. 그리워하는 자만이 그 아름다움을 알아볼 것이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견왕: 이누오
Inu-Oh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Masaaki Yuasa

 

출연(목소리)
아부쨩
Avu-chan
모리야마 미라이Moriyama Mirai
에모토 타스쿠Emoto Tasuku
츠다 켄지로Tsuda Kenjiro
마츠시게 유타카Matsushige Yutaka
이시다 고타Gota Ishida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수입 미디어캐슬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12.08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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