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타임'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소망하기
'아마겟돈 타임'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소망하기
  • 배명현
  • 승인 2022.12.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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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이 아닌, 가능성으로의 세계로"

언어를 배운 다는 것은 곧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 않지만, 우리는 언어로 세계를 정의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세계 그 자체를 완벽하게 기술할 순 없지만 우리가 서술 가능한 영역의 세계라도 도달하기 위해선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를 배우는 것을 '세계'를 이해한다고 받아들인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우리의 세계' 안으로 통합됨을 의미한다고. 물론 거꾸로 뒤집는 것도 가능하다. 언어 학습을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의 세계'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많은 시스템과 똑같이 법칙이 존재하고 원칙이 있으며 규칙을 가진다. 때문에 어떤 언어는 어겨지고 훼손되지만 어떤 언어는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거의) 유지한다. 시간을 견뎌낸 언어와 어휘가 귀하고 소중한 이유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된 상태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언어는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외부적 권력이 작용할 때가 있다. 내부로부터의 확장되는 수호가 아닌,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날카로운 수호.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세계와 정확하게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 유니버설 픽쳐스

제임스 그레이는 <아마겟돈 타임>으로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정말 공고한가"

그는 이어 "우리의 세계(언어)가 정말 공고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단단한가" "그 세계가 단단하다면 조밀한 밀도만큼 경직된 세계는 얼마나 뻣뻣한 모습인가" 그리고 "쇠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여기서 제임스 그레이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선택한 제재는 '가족'이다. 그는 다시 한번 가족으로 세계를 기술한다. 사실 그가 가족을 포기했던 적이 있나 싶긴 하다. 그는 데뷔작인 <리틀 오데사>(형제)부터 <더 야드>(유사 가족), <위 오운 더 나잇>(형제), <이민자>(가족이 되길 실패하기), <잃어버린 도시Z>(가족의 분열), <애드 아스트라>(아버지의 그림자 떼어내기), 그리고 이번 작품인 <아마겟돈 타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가족이라는 인간 단위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레이에게 가족이란 매번 그 핵심이 바뀌긴 하지만 세대와 세태를 자주 드러내는 공통점을 가진다. 같은 피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 다른 반경의 삶과 태도를 가지며 속해있는 세대가 다르다.

제임스 그레이에게 가족이란 한 구성원을 이루는 단위이자 잘 개 쪼갤 수도 있는 조각마다 맛이 다른 피자와 같아 보인다.

 

ⓒ 유니버설 픽쳐스

<아마겟돈 타임>의 이야기는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폴'(뱅크스 레페타)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12살의 문제아다. 그의 흑인 친구 '존'(제일린 웹)도 마찬가지로 문제아이다. 유급을 해 나이가 한 살 더 많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 둘은 학교에서 서로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상대이다. 서로는 서로를 아이답게 응원하고 아이답게 맹목적으로 지지해준다. 그의 가족은 어떠한가. 이민자인 폴의 가족은 뉴욕에서의 삶이 각박하고 그리 풍요롭진 않다. 아버지 '어빙'(제레미 스트롱)은 보수 정치인을 욕하고 흑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엄마 '에스더'(앤 해서웨이)는 아들의 성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할아버지'(안소니 홉킨스)만이 폴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인정해준다. 이 각자 인물들의 관계망은 사회와 세계를 환유로 드러낸다.

여기서 사회는 폴과 존을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끔 한다. 폴은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존은 공립학교에 그대로 머무른다.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교에선 학칙이 엄격하고 정치적 보수성과 규율에 맞게, 그리고 백인답게 생활해야 한다. 그들의 가치는 폴의 가치와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폴은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철망을 놓고 마주한 존과의 대화가 힘들었던 건 마음이 변해서가 아닌, 생존의 어려움 때문임을 카메라의 각도를 통해 영화는 드러낸다.

하지만 이 선택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 안에서의 생존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백인의 규율을 완벽하게 내면화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흑인 친구와 대화하고 컴퓨터를 훔쳤다는 사실이 드러나 백인 경찰에게 잡힌 존을 비호하는 동시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가 과연 쉬운 일일까? 윤리의 영역에선 쉽지만 심정의 영역에선 어렵다. 아이는 비겁해져도 괜찮아서가 아닌, 세계의 엄혹을 견뎌내기엔 아직 이해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상태라고. 그리고 영화는 이를 의미하듯 두 사람의 무고한 동기를 보여준다. 대마초는 그저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컴퓨터를 훔친 것은 NASA에 취직하기 위해.

이 동기에는 사회의 규율이나 어른들의 논리 따윈 들어갈 틈이 없다. 그들은 기존 세계의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흑인은 NASA에 취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말하는 흑인, 네 친구가 책임을 지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 말하는 백인 아버지, 백인들의 학교에서 백인의 미국을 주입받는 학생들. 그리고 이 안에서 이들에게 통합되지 못하고 그러지도 못할 두 아이. 어쩌면 이 두 아이는 격렬하게 세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세계에서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폴은 감독인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 캐릭터가 아닌가) 영화의 세계 안에서만이라도 이 매력적인 거부가 유효하길 바라는 듯 보인다. 견고한 세계에 부딪혀 실패할 거란 걸 알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그런 거부. 두 사람은 세계에 의해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이 미숙한 방식으로, 그러나 표정만은 완강한 그런 거부를 보여주며 말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거부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들은 나이를 먹으며 의도하든 그렇지 않듯 더 많은 언어와 법칙 그리고 규칙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생과 부모, 경찰과 지하철에서 만난 흑인이 말했던 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양식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 속 1980년은 2022년이 될 것이다. 폴과 존의 러닝 타임이 끝난 이후의 행복한 얼굴을, 그러니까 그들의 안녕한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는 2022년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영화 밖 지금-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라는 규모 앞에서 개인은 너무나 작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다시 생각해보자. 1980년을 거부했던 두 아이에게 마음이 동했던 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세계가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건 <아마겟돈 타임> 속 세계 앞 무력한 아이들의 실패가 완벽한 실패가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아마겟돈 타임
Armageddon Time
감독
제임스 그레이
James Gray

 

출연
뱅크스 레페타
Banks Repeta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제레미 스트롱Jeremy Strong
제일린 웹Jaylin Webb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11.23

배명현
배명현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인생의 어느 순간 아! 하고 만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만나려 자주 영화를 봤고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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