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 자연에서 뼈와 모든 것을 발굴하기
'본즈 앤 올' 자연에서 뼈와 모든 것을 발굴하기
  • 이현동
  • 승인 2022.12.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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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갱신될 뿐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히 머무는 것"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2017)의 후반부에선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서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와의 완전한 이별 후에 아버지의 위로는, 감독의 세계관과 메타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있다면 '동성애', '자연주의'일 것이다. 감독은 공공연히 동성애자임을 공포해왔고, 인간이 얼마나 자연 앞에 무력한지를 설명해왔다.(여담이지만 그가 말하길 자신의 취미가 정원 꾸미기란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목가적인 배경은 예측 불가한 초월적인 변주를 예고한다. 특히,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3부작을 기획한 그의 작품은 신분, 혈연, 젠더 등이 가진 기능적, 고정적, 보편적인 선입견 등을 인간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사물의 이미지와 밀착시킨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왜 그는 시퀀스마다 필로우 숏(Pillow shot)를 삽입하여 이야기의 리듬을 교란하거나 분절하는가. 오즈의 것처럼 비연속적인 쇼트와 무균하게 개시되는 풍광들은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네오리얼리즘과 같이 서사의 인과성이 투과되어 펼쳐지는 정서적 감응의 세계뿐만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안토니오니와 베르톨루치의 중간지대에 있다고 할까. 이들하고 다른 것은 사회정치구조, 이미지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무위에서 표출되는 본능의 감화가 개인과 공명한다는 지점일 것이다. 물론 지금 이를 속단하는 것은 글의 본의가 아닐지언정 분명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무엇인가 뭉뚱그리며 생동하는 발화는 확실히 정돈된 형태는 아니다.

우선 <본즈 앤 올>을 파악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업의 경유지가 어디인지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경유지는 원작인 카미유 드 안젤리스(Camille DeAngelis)의 『본즈 앤 올』이라는 문학을 영화라는 방식으로 탈-언어화, 이미지화하는 것이고, 먼 경유지로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추출될 수 있는 형식과 접촉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로부터 우린 많은 질문을 추정하거나 유의미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두 영역을 영화적 언어로 통합하여 <본즈 앤 올>에서 작동하는 영화적 양식을 구획하는 것이 흥미로운 비평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학'이란 경유지

들뢰즈는 인간의 뇌를 '스크린'이라고 정의했다. 언어로 세공된 서사는 인간의 의식을 관통하여 각각의 이미지로 변환되기 때문에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필히 상상력과 연동되기 마련이다. <비거 스플래쉬>(2015)와 <서스페리아>(2018)의 각본가였던 데이비드 카이가니치(David Kajganich)가 각색한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숙제는 '영화의 톤'의 문제였다. 그는 로드무비, 성장 서사, 로맨스, 호러 등이 혼합된 영화의 형식을 결속하기 위해 '장르'가 아닌 하나의 '언어'로 규정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문학을 읽는 독자들이 작품에 내재한 장르적 요소를 미미하게 체감하듯이 <본즈 앤 올>은 톤은 장르적으로 포박되지 않고 루카 구아다니노의 고유한 색채를 경유하여 발산된다. 동화적 톤을 가진 문학에 비해서 영화는 낭만적인 접근이 두드러진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어린아이로 치부될 수 있는 16세의 연령이지만 영화에선 2살 많은 18세로 자기 결정권을 지닌 독립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는 <비거 스플래쉬>(2016)에서 해리(레이프 파인스)의 딸인 라니에(다코타 존슨)이 스메트(마티아스 스후나르)를 유혹하는 장면과도 대비되기도 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또한, 원작에선 식인종이라기보단 환상과 신비로 치장된 구울의 형태로 인간과는 외형부터 다른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는 매런(테일러 러셀)과 리(티모시 샬라메)가 관객에게 덜 낯설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하여 식인이라는 실존이 윤리적인 기준으로 통용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이 공포의 도구로 성문화되지도 않는다.(이것은 공통으로 내밀하게 새겨진 퀴어 감수성인 셈이다) 영화에선 어머니를 찾아다니지만, 소설에선 아버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는 식인 욕구의 갈등을 겪는 매런과 여자인 어머니와 교감하기 위한 장치로 어머니의 부재가 주는 파국을 더욱 정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이것을 루카 구아다니노의 양식으로 환원하자면 젠더의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변용이기도 한데, 소설과 반대가 되어버린 성적 연대의 방향성은 그가 세밀하게 짚어가고 싶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결부된다. 또한 호러 영화 장르로 기폭제 역할을 하는 설리(마크 라이런스)는 외지인이 아닌 매런의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그는 소설에서 유대관계, 상호작용,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장치로 동원되지만, 영화에선 욕구를 해소하려는 남성을 적대적으로 구성하여 일차원적 욕망을 경계하는 스탠스를 취한다.

이를 관찰해보자면 감독의 목표는 식인이라는 퀴어적인 연대, 즉 욕동의 불가항력보다 더 고차원적인 관계가 있음을 규명하는 것이다.

 

'자연'으로 환원하는 불사적 욕망

영화로 귀환해서 루카 구아다니노의 필모를 살펴보자면, 자연 풍광은 그의 작품 전체의 명암을 결정한다. 자연은 인간과의 상호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불가결한 요소이면서 그 간격과 공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유는 가동되어야 한다. 그의 영화에서 채취되는 풍광은 영원히 공존할 인류의 형상이면서 원초적으로 탐닉하는 남녀 관계를 포함한 모든 연대가 자연으로부터 확립되고 있음을 정의한다.

<본즈 앤 올>을 한정해서 본다면, 마지막 장면이 그 사례일 것이다. 매런과 리가 왜 자연이란 프레임 정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가. 지속되는 푸티지에서 현대적 질감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주체성이 자연적이라는 것을 이미지를 통해 호소하려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또한 '언어'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언어는 뒤틀리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이 난무하는 그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란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에게 언어는 단지 소통을 위한 도구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표정과 몸짓 그리고 깊은 감정의 합일은 '언어'라기보다 '감각'으로 환원되는 자연의 것이다. 이를 극명하게 관측할 수 있는 단편 <스테거링 걸>(2019)1)에서 줄리안 무어가 사용하는 다채로운 언어구사와 대화 장면은 언어 자체가 가진 역할을 초월하여 타자의 신분과 인종에 무관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사용된다. 이러한 규정이 식별되지 않도록 세부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구아다니노의 형식은 교훈적이거나 성찰이 아닌 감각적인 체험으로 인도하는 데에 더욱 관심이 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본즈 앤 올>에 매설된 미국이란 기호도, 정치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보다 인물의 감정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한 장소에 거주하지 않고 로드 무비의 형국으로 미국 중서부를 배회하지만, 이미지의 풍광은 결국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번 영화의 배경이 미국이란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지난 영화들과는 다른 감각을 내포한다. 미국 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야생과 문명이 미국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얼어붙은 두 가지 감각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1980년도를 영화 설정으로 삼은 것에 대해 당시 동성애 공포증과 에이즈의 위기 등이 공존했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본즈 앤 올>은 감독 자신의 내부적인 고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시대의 이탈리아 감독인 파올로 소렌티노가 형식의 구애를 받아 '로마'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 거침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설파하는 웅변가로 진출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영화에서 식인이라는 요소는 그들을 수긍하지 않으려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하려는 도구로 활용되지 않는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의 탐미적인 기획 전반에선 이런 자연세계에 대한 찬미와 단 한 번 주어지는 몸과 마음에 대한 그의 솔직한 반응이 작품 속에서 잔존한다.

사실, <본즈 앤 올>이 희망적인 이유는 구아다니노의 퀴어를 향한 관심이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죽음이 생략된 채 불사하는 그들을 반추하는 것도 분명 그가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매혹시키는 그는 아토포스2)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나는 그(사랑하는 대상)을 분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러 온 유일하고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롤랑 바르트)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추신

<본즈 앤 올>에 대한 김경수 기자의 글(「아이들은 생존의 밤에 산다」)이 티모시 샬라메의 활용, 생존주의로 풀어낸 영화의 (퀴어적) 은유 분석, 그리고 루카 구아다니노와 영화사적 맥락을 반추해낸 것이라면, 이 글은 원작 소설을 변용한 영화적 양식과의 대조, 루카 구아다니노의 이미지를 비롯한 전반적인 특성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 참고

1) MUBI에서 한글 자막을 지원하는 구아다니노의 단편인 이 작품은, 필자에게 그의 미학을 탐색할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 단편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내러티브의 구조에 항거하거나, 과거와 현실의 왕복에서 기인하는 불가사의하고 초현실적 침투의 진행, 기억의 구조의 갱신, 색채의 배열은 감각적 체험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고양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2)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리스어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에서 등장한 개념)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본즈 앤 올
BONES AND ALL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출연
티모시 샬라메
Timothee Chalamet
테일러 러셀Taylor Russell
마크 라이런스Mark Rylance
안드레 홀랜드Andre Holland
클로에 세비니Chloe Sevigny
제시카 하퍼Jessica Harper
마이클 스털버그Michael Stuhlbarg
데이빗 고든 그린David Gordon Green

 

배급|수입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30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2.11.3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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