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타임' 우주로부터 하강한 그레이의 진솔한 이야기
'아마겟돈 타임' 우주로부터 하강한 그레이의 진솔한 이야기
  • 이현동
  • 승인 2022.1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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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도 과거를 잊지 말라는 그의 당부"

<아마겟돈 타임>(2022)이 상영된 올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고 빛을 비추는 것이지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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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를 총체적으로 요약하자면 가족주의라고 표명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이번 신작 <아마겟돈 타임>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교훈'적이며, 가족을 배경으로 한 성장 서사를 반영한 영화라는 점에서 역설적이자 직설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교훈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인디와이어 인터뷰에서 밝혔듯 "명료하지 않은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담보로 하지 않고, 당시 시대의 목격자인 형에게 단서를 발견하면서 도리어 픽션화되지 않은 자전적 이야기"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즉, '가족주의'와 '인종차별'에 관한 코드화가 깊이 개입하고 있는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는 러시아계 유대인인 그의 경험, 배경과도 일맥상통한다. 형제애의 애증과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형상을 다루고 있는 <리틀 오데사>(1994), <더 야드>(2000), <위 오운 더 나잇>(2007), <애드 아스트라>(2019)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 <이민자>(2013), <잃어버린 도시 Z>(2016), 그리고 <아마겟돈 타임>(2022)까지. 그의 영화의 고착화된 형식은 시대와 배경을 변주하며 보편적이고 고전적 서사의 위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남녀의 관계를 주축으로 다룬 가장 예외적인 작품인 <투 러버스>(2008)에서도 가족의 개입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대두된다.

 

ⓒ 유니버설 픽쳐스

많은 감독에게서 발견되는 자기 자신 혹은 시대 배경을 또렷이 관철하려는 영화적 태도는, 관성적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감행하는 것 같다. 가령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2022)이나 파올로 소렌티노의 <신의 손>(2021), 폴 토마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2021) 등이 최근 대표적인 사례다.(예전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연출하는 이유로 PTA는 우리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응답하기도 했다) 

물론, 중반을 항해 나아가는 감독에게 발견되는 이 현상은 반성과 성찰, 혹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빌드업과 같은 것일지언정 모든 것은 선례적이지는 않은 법이다. 이례적으로 누벨바그의 투사 중 한 명이었던 프랑수아 트뤼포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400번의 구타>(1959)가 자신의 전기 영화이지 않았는가. <아마겟돈 타임>을 보며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던 영화가 바로 <400번의 구타>와 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머코드>(1974)인데, 이는 고전이 가진 이미지의 인장이 지금 감독이나 관객들에게도 전승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400번의 구타>의 오마주인 것처럼 등장하는 몇몇 장면은 약속된 듯 성장 서사에서 등장하는 클리셰적 양상은 영화의 구성을 느슨하게 조율하지만, 그런데도 그 가운데서 배우들의 연기, 그중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와 영향력은 과거를 복기하는 에너지원으로 수급된다.

최근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공간의 변주'는 그간 영화에서 일괄적으로 통용되는 가족주의의 진화이자 정서의 감응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아마존을 탐험하는 남미 탐험가인 퍼시 포셋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인 <잃어버린 도시 Z>(2016), 우주를 배경으로 SF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아빠 찾아 삼만리 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는 그간 초기의 범죄스릴러 장르를 연출해왔던 범위를 점차 확장할뿐더러 뉴욕이라는 정서적 고향이자 영화 배경이 되었던 장소를 이탈하여 또 다른 챕터를 예고한다. 필자는 감독이 영화를 구사하는 방식에서 큰 변화를 야기했던 것으로 <더 야드>에서 <이민자>까지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의 캐스팅과도 그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도시 Z>의 찰리 매튜 허냄, <애드 아스트라>(2019)의 브래드 피트 그리고 <아마겟돈 타임>의 아역 배우 마이클 뱅크스 레페타와 안소니 홉킨스는 단순히 공간의 변화뿐만 아니라 배역의 변화로 진공 상태에 머물러있던 그의 영화를 진동 상태로 갱신하는 양식을 창출한다.

<아마겟돈 타임>은 우주에서 내려온 제임스 그레이 '자신의 소탈한 이야기'이자,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그가 보폭을 넓히고자 시즌의 변주를 위한 '쉬어가기'로 보인다.

 

ⓒ 유니버설 픽쳐스

'차별의 기류'에 표류되거나 항해하며

'아마겟돈 타임'이라는 제목은 80년대 미국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윌슨 레이건과 많은 정치인이 핵 아마겟돈으로 인한 종말과 재앙을 언급한 것을 토대로 지어졌다. 당시 신냉전과 신자유주의로 연쇄하는 뉴욕 사회에서 이민자들의 삶은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을 마련해야 하는 방랑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 자신으로 지칭되는 폴(뱅크스 레페타)의 모습이 최초로 드러난 장면은 터키 출신 선생님의 얼굴과 짐승의 몸을 합성하여 그린 개구쟁이 소년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유명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의 꿈을 배척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무게를 직시하는 부모로부터이다. 유일하게 그를 응원하는 인물은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흑인 친구 죠니(제일린 웹)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할아버지다. 그는 영화에서 시류를 관통하여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을 제안한다. "차별에 관하여 과거를 잊지 말라"는 그의 강력한 당부는 <아마겟돈 타임>이 각성시키려는 교훈적 메시지다. 영화는 이 교훈과 갈등하고 대립하는 폴이 그가 마주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곧 신자유주의와 인종을 구별하는 선입견이 가진 규범과 규율이란 힘이 미국 사회의 층위를 형성하도록 하는데, 극에서 축적되는 모순은 이런 차별을 상기할만한 요소를 지속해서 삽입시킨다. 예를 들어 자녀의 미래를 무엇보다 걱정하는 부모이지만 두 아들들을 자신도 모르게 차별 대우하는 아버지 어빙(제레미 스트롱)과 학교 교육위원회의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엄마 에스더(앤 헤서웨이). 여기에 유대인의 부모로부터 명명한 '그라프'(Graff)라는 독일계 성씨를 부여받은 폴은 미국 사회를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지만, 이것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차별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음을 양가적으로 나타낸다.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로 전학 온 폴에게 "교복을 존중한다는 것은 학교를 존중한다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구호와도 같은 이 말은 외식적인 미국 사회를 고발하는 언표로 진술된다. 폴과 죠니가 학교의 울타리 안과 밖에서 대화하는 시퀀스에서 죠니를 향한 '시큰둥한 폴의 태도'는 결국, 미국 사회 혹은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아울러 폴의 영감의 대상이 된 칸딘스키의 그림은 학교에서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암묵적으로 설정해놓은 것이기도 한데, 칸딘스키가 러시아인이고, 그레이가 러시아계라는 지점에서 일치되는 정서의 연동은 미국 사회에서 반입되지 못할 창의성이라는 점을 내포한다. 영화에서의 차별은 이민자의 삶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꿈'조차 공상할 수 없었던 시대의 정황과도 마찰한다. 이러한 이미지 전체는 표면적으로 착상하는 관념적인 재앙의 기류와도 마찰하는 것이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메시지는 영화에 잔류하고 폴에게도 당도한다.

폴은 자기 학교에 배치된 컴퓨터를 도둑질하여 판매한 돈으로 죠니의 꿈인 플로리다에 함께 가기로 결정한다. 그가 NASA에 취직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훔친 컴퓨터를 판매하려는 전당포에서 삭제된다. 체포된 죠니와 폴이 심문당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인맥을 동원하여 폴에게는 컴퓨터를 훔친 것이 죠니라고 인정하라며 종용하지만, 폴은 같이 가자고 말한 것이 바로 나였다고 진술한다. 죠니는 "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폴을 밖으로 내보낸다. 밖으로 나와 "네 친구가 책임을 지는 건 불공평하지만 인생은 불공평한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과 다음 시퀀스로 등장하는 여론 조사로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는 TV를 보고 우파 머저리를 외치는 모습은, 그가 철저히 미국적으로 변해버린 한 인물의 속물적이자 가부장적 아버지임을 나타낸다.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인 추수감사절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폴은 벗어난다. 영화는 "너희는 엘리트다"라는 어른의 음성이 보이스 오버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폴은 정면의 모습이 아닌 어디론가 걷고 있는 뒷모습만을 담는다. 결말이 없는 이 시퀀스는 '제임스 그레이가 탈주하고 전복하려는 미국 사회 혹은 현실'을 영화란 도구를 활용하여 질문하는 것이다.

<아마겟돈 타임>가 제작되고 영화를 편집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사망을 경험한 제임스 그레이가 그리워하고 그토록 대중들과 공명하고자 염원하는 것은 그의 영화 시작도 그러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가족주의를 이탈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영화는 과거의 정황을 그레이의 시선으로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지점에서 전기 영화로 볼거리도 충만하면서도 메시지의 전달도 명료하면서 유려하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 영화가 존 F. 케네디라는 제법 알려진 이를 배경으로 한 전기 영화라는 지점에서 어떠한 장르와 주제를 연출할 것인지 기대해볼 만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아마겟돈 타임
Armageddon Time
감독
제임스 그레이
James Gray

 

출연
뱅크스 레페타
Banks Repeta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제레미 스트롱Jeremy Strong
제일린 웹Jaylin Webb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11.23

이현동
이현동
《코아르》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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